관동별곡8백리길(제1구간)
소개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은 가슴 아픈 분단 현실을 여실히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도로에 시시때때로 보이는 군용 지프와 트럭, 검문소가 북쪽 땅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고성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여행자를 즐겁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금강산과 설악산을 비롯해 바다와 호수, 계곡이 수려하게 어울려 있다. 김일성과 이승만, 이기붕 등 한국 현대사 주역들의 별장도 이곳 고성에 있다. 그래서일까, 통일전망대에서 화진포에 이르는 걷기 구간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출발지는 통일전망대다.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서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탁 트인 전망이 여행자의 가슴을 열게 해준다. 휴전선과 금강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는 에메랄드빛 동해바다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더욱 한적해진 비무장지대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데 한국군 관측소도 아련하게 바라보인다. 동해선 철도와 금강산 관광객을 실어 나르던 남북 연결 도로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을 향한다.
해금강도 조망할 수 있다. 현종암, 부처바위, 사공바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기묘한 모습으로 떠 있다. 맑은 날이면 금강산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바라보인다. 어렴풋이 보이는 금강산 봉우리들은 왼쪽부터 일출봉, 채하봉, 육선봉, 집선봉, 세존봉, 옥녀봉, 신선대다.
북쪽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기에 통일전망대에서 내려와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밋밋한 아스팔트길이다. 바다가 보이지 않아 걷는 재미는 덜하다. 약간 지루해질 무렵 멋스럽게 생긴 건물이 나타난다. 바로 DMZ박물관이다. DMZ의 아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한데 DMZ가 탄생하기까지 과정을 담은 자료와 정전협정 서명서 등을 전시한 제1전시실, 한국전쟁 전사자들의 사진과 편지 등 냉전시대의 유물을 보관한 제2전시실, 전쟁으로 파괴된 DMZ의 자연과 지뢰 모형 등을 보여주는 제3전시실, 그리고 2000년 6월 5일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남북공동선언’ 등이 전시된 제4전시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박물관을 나와 계속 길을 따라나서면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와 육군부대를 차례로 지난다. 가는 도중 간간히 갸웃이 얼굴을 내미는 바다와 군인을 가득 태운 군용트럭이 여행자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본격적인 도보길은 통일전망대 검문소를 지나면서 시작된다. 검문소를 지나 몇 분을 걸으면 작은 수산물 매장과 아담한 민박집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아직 피서철이 아니라 그런지 수산물 매장은 한산하기만 하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해수욕장인 명파 해수욕장이다. 그동안의 여정을 좀 쉬기도 할 겸 해변으로 간다. ‘밝은파도’란 의미의 명파 해수욕장은 이름 그대로 발아래로 밀려드는 맑은 시냇물이 영롱한 곳이다. 하지만 명파 해수욕장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은 제한되어 있다. 평소에는 삼엄한 철책으로 막혀 있다. 분단의 현실이 바로 이런 것일 터. 명파 해수욕장은 여름 성수기에만 문을 여는데, 긴장감 넘치는 철책 아래서 나른한 휴식을 즐길 수 있어 이색적이다.
명파 해수욕장을 지나면 조그만 마을인 명파리가 나타난다. 민박집과 막국수집이 몇 곳 있다. 마을을 지나 명파교를 건너면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다소 숨이 차고 걸음은 느려진다. 하지만 오르막길은 오래가지 않는다. 고개를 넘으면 배봉리. 여기서부터 내리막길이다. 오르막길이 시작되면서 시야에서 사라진 바다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보려면 배봉리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금강산콘도까지 가야 한다.
금강산콘도 앞에 서면 드디어 검푸른 동해바다가 보인다. 먼 바다에는 어선들이 몇 척 떠 있다. 금강산콘도에서 대진1리 방면으로 길을 잡는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옆에 바다를 두고 유랑하듯 거닐 수 있다.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해안도로는 꽤 한적해졌나 보다. 오가는 차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해안도로를 따르다 보면 한적한 포구와 만난다.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대진항이다. 털게와 문어로 유명한 곳으로 바닷가 동산에 우뚝 솟은 31미터 높이의 대진 등대가 멋스럽다. 평범한 항구의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대진항은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특별하다. 영화 <파이란>의 강재와 파이란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스며 있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태어나 처음으로 파이란이 보게 된 바다가 바로 대진항 앞바다이고, 강재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몸속에 병마를 함께 키워갔던 곳도 바로 대진항의 작은 어촌 마을이다. 대진항 주변에는 영화 속의 쓸쓸한 풍경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만 같다. 파이란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해안도로와 파이란의 어깨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던 등대, 그리고 유서로 남은 아내의 편지를 읽던 강재가 오열을 토해내던 방파제도 그대로다.
대진항에서 나와 마지막을 향해 계속 걸음을 내딛는다. 대진어촌계 활어센터와 초도 해수욕장을 차례로 지나 초도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면 초도항이 여행자를 반긴다. 초도항은 성게로 유명한 곳으로 해녀가 직접 따온 성게를 맛볼 수 있다.
초도항 앞에는 금구도가 떠 있는데 이곳이 광개토대왕릉이라는 자료가 얼마 전 발견되었다고도 한다.
초도항에서 마지막 도착자인 화진포광장까지의 구간도 풍경이 좋다. 길은 그다지 오르내림이 없고 평탄하다. 하지만 보행자 구간이 없으니 다소 주의해야 한다.
출처:(해안누리길 정보, 한국해양재단)
2024-11-21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