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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기적 팀
바르셀로나에 온 이래 매일 지인들을 찾아다니던 인야는 오늘, 두 명의 ‘인생 친구’들을 동시에 만나는 중요한 일정을 잡았다. 인야까지 포함하여 어쩐지 ‘한 그룹’ 같은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해온 세 사람의 모임이었다.
우선 여기 바르셀로나 토박이인 ‘까딸란(Catalan. 까딸루니아 사람. 여자이기 때문에 까딸라나(Catalana))’ '누리아(Nuria)'는,
젊은 시절부터 동양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태권도'에 입문한 뒤, 침술 공부까지 하며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한 '한국통' 여인이다. 인야보다 띠동갑 이상 나이가 많아 인야의 누님처럼 조언과 잔소리를 아끼지 않는 사이로,
무려 30년이 넘는 동안 친구로서의 삶을 공유해 왔는데, 특히 누리아의 막둥이 남동생이 인야와 동갑인 화가라는 점 또한 두 사람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방문 당시에는 인야의 누님 댁에도 초대받는 등 인야의 가족과도 친분을 쌓은 건 물론, 인야 역시 누리아의 온 가족들과도 다 알고 지내는 가족과도 같은 관계이기도 했다.
누리아는 인야가 1990년 처음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장’을 포함한 다른 한국인 교민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준 조력자이자, 현재도 침술 관련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친구 한국인 교포 ‘장’은,
인야보다 9살 어리지만, 인야와 같은 해인 1990년에 태권도 사범으로 바르셀로나에 일하러 왔기에... 인야에게 그는, 마치 '군대 입대동기' 같은 느낌이면서 의리도 많아... 남달리 사귀어왔던 친구다. 게다가 그는 미술 쪽에도 관심과 재주가 많아 인야의 작품 세계를 지지했고,
몇 년 전, 인야가 한국에 있는 동안 작고한 호아낀 씨 집에 맡겨두었던 다수의 '테라코타' 작품 보관 문제로 연락이 왔을 때, 인야는 장에게 부탁하여 작품들을 대신 맡아달라고 했고,
장은 흔쾌히 호아낀 씨를 만나 작품들을 수거해 지금까지 보관해주고 있는,
역시 신뢰를 중요시하는 인야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친구다.
이렇게 인간관계에서 ‘신뢰’와 ‘의리’를 중요시여기는 인야와 장, 그리고 누리아는 서로를 알게 된 후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으며, 이들 세 사람의 인연은 어느덧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왔다.
아무튼 인야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이미 어제 누리아가 살고 있는, 바르셀로나 교외 '산 셀로니(Sant Celoni)'에 도착했다.
누리아는 거의 평생을 바르셀로나 시내에 거주했지만, 최근에는 큰딸이 사는 이곳 산 셀로니로 거처를 옮긴 뒤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장도 거주하기 때문에, 장이 오늘 합류하기에 용이해... 마침내 세 친구가 함께 만날 수 있었던 것인데,
장의 일정상 주말 만남이 어려웠기 때문에, 평일인 오늘 만나... 점심 식사만 하고 헤어져야 하는 짧고도 아쉬운 만남이기도 했다.
물론 바르셀로나의 번잡함 대신 산 셀로니의 한가로운 시골 마을에서 만난 이들은, 식사 전에 함께 산책도 했고, 이후 점심 식사를 여유롭게 마친 후... 인근의 한 카페에 들러 못다 한 깊은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런데 인야가 이 모임을 '기적 팀'이라 부르게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이 이야기는 약 3년 전, 인야가 코로나 사태 이전에 스페인에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던 직후부터 시작된다.
당시 누리아와 와츠앱(WhatsApp)으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인야가 문득 느낀 것이 있는데,
누리아는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노파(공식적인 나이 언급은 실례일 수 있으나, 이 이야기에선 사실이 중요하다)였다. 하지만 전화 속 목소리의 힘이나 말투, 그리고 그녀의 활력 있는 삶의 태도는 전혀 노파 같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인야는 자신도 모르게,
"누리아, 당신은 '기적'이야!"라고 외쳤던 것이 출발이었다.
깜짝 놀란 누리아가 그 의미를 묻자, 인야는,
"어떻게 그토록 변함없이 젊음을 유지하며 지내는지, 너무 신기하고 대단해서 하는 말이야!" 했던 것이고, 누리아는 싫지 않은 듯 깔깔 웃었다.
그 후 이 말은 두 사람 사이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되었는데,
특히 어제, 인야가 산 셀로니에 오자 인야를 마중하기 위해 직접 차를 운전해서 온 누리아가, 이전과 다름없이 안정적으로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인야는 또다시,
"아무리 생각해도, 누리아 당신은 정말 기적이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데......
하지만 이제는 인야의 차례였다.
정확히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그와는 별게로 인야는, 이번 남미 여행 중에도, 늘 그렇듯... 와이파이가 되는 곳마다 누리아와 통화하며 자신의 여행 사진을 공유하곤 했는데,
한 번은 전화 통화 중에 인야가 또,
"누리아, 당신은 정말 기적이야!" 했더니,
이번에는 누리아가 이렇게 되받아쳤다.
"인야, 사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니 얘기인, '나는 돈 없이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며 여행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면, 모두들 '말도 안 된다'며 믿으려 하지 않아. 그럴 때마다 나는, 너와 알게 된 옛 얘기부터 지금까지의 상당히 긴 얘기를 꺼내면서,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국인 화가 ‘인야’는, 정말... 돈도 별로 없는데(너무 가난한데도)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너무나 잘 다니고 있다고, 니가 보내준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구체적인 얘기를 해주면... 다들 놀라면서도 내 말을 믿어주곤 하지." 그러면서는,
"그래서 얘긴데, 인야, 내가 '기적'이 아니고, 바로 니가 ‘기적’이라는 거지!" 하고 깔깔 웃는 것이었다.
그러자 인야는,
"그래, 당신 말이 완전히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그리고 물론 내가 돈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사람이 돈 한 푼 없이 여행을 하겠어? 당신이 너무 뻥친 거야. 안 그래? 누리아?"하고 농담으로 받아 넘기려 했지만, 누리아는 단호했다.
"아냐, 인야. 내가 보는 견지에선, 니가 그렇게 쪼들리는 상황에서도 가고 싶은 곳을 어떻게든 찾아다니는 게 정말 신기하고 대단해. 그게 어디 한두 번이야? 게다가 너처럼 여행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될까? 그러니까 내가 기적이 아니고, 니가 기적이라는 거지! 나도 너처럼 좀 살아봤으면 좋겠어!" 해서, 둘이서 한참을 웃기도 했었다.
그렇게 누리아와 인야는 최근에는 서로가 상대방에게 '기적'이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뭐, 다른 사람들이 뭐라거나, 그들 얘기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다.)
그러다 오늘 인야가 바르셀로나에 왔기 때문에 다시 그들 셋이 만나게 되었고,
가끔씩 전화 통화는 하지만, 서로가 사는 반경이 다르다 보니... '장'과 '누리아'에게도 모처럼만의 만남이었는데,
인야와 누리아가 오늘도 서로가 '기적'이라고 말을 하면서 떠들며 웃자,(장은 모르고 있었다.)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눈을 깜빡이던 '장'이, 고개를 갸웃하는 것 같더니...
"정말이네! 두 사람이 다 기적이네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호기심이 많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누리아가,
“장, 맞지? 내 말이...” 했고,
“그렇긴 해요. 근데, ‘인야’ 말도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은 늘 하고 있었거든요!” 하니,
인야와 누리아는 서로가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 보았는데,
"그러고 보니, 장, 너도 한 '기적' 하는데......" 하고 누리아가 말하였는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본인의 삶을 충실히 일구어 이젠 스페인 직장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장 역시 그들의 눈에는 특별한 존재라 아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야가,
"그럼, 앞으로... 우리들 모임을(인야는 늘 그들 셋이 만날 때마다, 뭔가 한 ‘그룹’이거나 '팀' 같다는 생각을 해왔기에)... '기적 팀'으로 부르면 어떨까? 하 하 하..." 했더니,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해서,
그저 그들끼리 농담으로, 순간적으로 붙인 그룹명이 되었던 것이다.
'기적 팀'......
그런데 이제는 '기적 팀'의 탄생이라는 유쾌한 대화에서 잠시 빗겨나, 인야가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 그리고 곧 이 자리에서 벌어질 인야에게 정말 기적 같은 사건의 서막이 펼쳐질 차례였다.
사실 인야의 현상황은,
남미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스페인(마드리드, 갈리시아,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지만, 사실상 무일푼이었는데,
스페인에 도착한 지 이미 20여 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귀국 항공권을 구입할 돈이 턱없이 모자라, 인야는 매일 인터넷 항공권 구매 사이트만 들락거리며, 시간이 갈수록 가격이 오르는 항공권을 바라보며...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는 중이나 다름없었다.
인야는 스페인 친구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도 고민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드리드, 갈리시아,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스페인 친구들(그 중 한 사람)에게 귀국 항공권 문제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 친구들에게 금전적인 어려움을 털어놓는 것은, 수없이 망설였을 뿐... 실행에 옮겨지지가 않았다.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사실 인야는 이번 여행 중 한국의 누님에게도 이미 빚을 진 터라, 더 이상 가족에게 손을 벌릴 처지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 셋이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누리아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인야는 장과 단둘이 된 틈을 타 용기를 냈다.
"장, 내가 돈이 부족해서 한국에 돌아갈 항공권도 아직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나 좀 도와줄래?"
짧고 간단한 요청이었다.
인야를 빤히 바라보던 장은, 서슴없이,
"얼마나 필요한데요?" 하고 물었다.
"600유로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라는 인야의 말에, 장은,
"알았어요."라는 두 마디로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인야는 너무 고마웠지만, 제대로 된 감사의 말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누리아가 돌아와서 그들은 다른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곧이어 누리아에게 전화가 왔고,
누리아가 온 전화를 받으러 잠시 그 옆의 나무 그늘로 자리를 옮기자,
장이 인야에게,
"그럼, 여기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좀 꺼내올게요." 하고 일어나기에, 인야는
"아니, 현금보다는, 항공권 구매라... 인터넷 사이트에서 카드로 결제를 해야 돼." (인야의 카드로는 잔금이 없어선지 결제 불가) 하자, 장은,
"그럼 나중에 문자로 내 카드 정보를 보낼 테니, 그걸로 결제하세요."라고 했고, 인야는
"알았어. 고마워!"라며 일단락 지었다.
글쎄, 인야에게 그게 어떤 상황인지 스스로는 정확히 분석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인야에겐 '외국인'인 스페인 친구들한테 돈을 빌려달라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과, '장'처럼... 같은 나라 사람에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다른 기분이었다.
인야가 스페인 사람들과는 너무 잘 지내고 있었지만, ‘돈 문제’에서는... '가려운 데를 긁어달라'고 부탁하는 것 자체가 되지가 않았다. 그건 친하고 안 친하고의 문제가 아닌, 인야로서는 뭐라 단정(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벽’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나날이기도 했던 참인데,
그 얼마 뒤, 장이 돌아가야 한다며 서둘렀는데(오늘 인야 때문에 오전을 비워둔 채 왔기 때문에),
또 돌아가면서는, 누리아 안 보게(눈치를 보더니) 자기 지갑에서 현금(100유로짜리 지폐 두세 장은 될 듯)을 꺼내더니 접어서는,
“당장, 급할 때 쓰시고, 한국으로 잘 돌아가세요!” 하면서 얼른 인야의 호주머니에 쑤셔 넣어주면서, 도망치듯 차를 타는 것이었다.
그 행위 하나하나가 인야를 감동하게 했지만,
인야는 그에 따른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얼어붙은 듯)...
먼지를 일으키며(날씨가 건조한지 아스팔트에도 먼지가 많았다.) 떠나가는 장의 차를 바라 보고 서 있었다.
그렇지만 속으론,
‘장, 고맙구나. 너는 나에겐 '기적'이었구나!’ 하고도 있었다.
그러면서는,
‘내가 이번에 너에게 내 테라코타 작품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만약 내가 이 돈을 너에게 갚지 못한다면? 최소한 니가 맡고 있는 내 작품으로라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c. 기적 팀
바르셀로나에 온 이래 매일 지인들을 찾아다니던 인야는 그날, 두 명의 '인생 친구'들을 동시에 만나는 중요한 일정을 잡았다. 인야까지 포함하여 어쩐지 '한 그룹' 같은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해온 세 사람의 모임이었다.
우선 여기 바르셀로나 토박이인 '까딸란(Catalan. 까딸루니아 사람. 여자이기 때문에 까딸라나(Catalana))' '누리아(Nuria)'는, 젊은 시절부터 동양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태권도에 입문한 뒤, 침술 공부까지 하며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한 '한국통' 여인이다. 인야보다 띠동갑 이상 나이가 많아 인야의 누님처럼 조언과 잔소리를 아끼지 않는 사이로, 무려 30년이 넘는 동안 친구로서의 삶을 공유해 왔는데, 특히 누리아의 막둥이 남동생이 인야와 동갑인 화가라는 점 또한 두 사람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방문 당시에는 인야의 누님 댁에도 초대받는 등 인야의 가족과도 친분을 쌓은 건 물론, 인야 역시 누리아의 온 가족들과도 다 알고 지내는 가족과도 같은 관계이기도 했다.
누리아는 인야가 1990년 처음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장'을 포함한 다른 한국인 교민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준 조력자이자, 현재도 침술 관련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친구 한국인 교포 '장'은, 인야보다 9살 어리지만 인야와 같은 해인 1990년에 태권도 사범으로 바르셀로나에 일하러 왔기에... 인야에게 그는 마치 '군대 입대 동기' 같은 느낌이면서 의리도 많아... 남달리 사귀어왔던 친구다. 게다가 그는 미술 쪽에도 관심과 재주가 많아 인야의 작품 세계를 지지했고, 몇 년 전 인야가 한국에 있는 동안 작고한 호아낀씨 집에 맡겨두었던 다수의 '테라코타' 작품 보관 문제로 연락이 왔을 때, 인야는 장에게 부탁하여 작품들을 대신 맡아달라고 했고, 장은 흔쾌히 호아낀씨를 만나 작품들을 수거해 지금까지 보관해주고 있는, 역시 신뢰를 중요시하는 인야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친구다.
이렇게 인간관계에서 신뢰와 의리를 중요시하는 인야와 장, 그리고 누리아는 서로를 알게 된 후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으며, 이들 세 사람의 인연은 어느덧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왔다.
아무튼 인야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이미 어제 누리아가 살고 있는, 바르셀로나 교외 '산 셀로니(Sant Celoni)'에 도착했다.
누리아는 거의 평생을 바르셀로나 시내에 거주했지만, 최근에는 큰딸이 사는 이곳 산 셀로니로 거처를 옮긴 뒤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장도 거주하기 때문에, 장이 그날 합류하기에 용이해... 마침내 세 친구가 함께 만날 수 있었던 것인데, 장의 일정상 주말 만남이 어려웠기 때문에 평일인 그날 만나... 점심 식사만 하고 헤어져야 하는 짧고도 아쉬운 만남이기도 했다.
물론 바르셀로나의 번잡함 대신 산 셀로니의 한가로운 시골 마을에서 만난 이들은, 식사 전에 함께 산책도 했고, 이후 점심 식사를 여유롭게 마친 후... 인근의 한 카페에 들러 못다 한 깊은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런데 인야가 이 모임을 '기적 팀'이라 부르게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이 이야기는 약 3년 전, 인야가 코로나 사태 이전에 스페인에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던 직후부터 시작된다.
당시 누리아와 와삽(WhatsApp)으로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인야가 문득 느낀 것이 있는데, 누리아는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노파였다. 하지만 전화 속 목소리의 힘이나 말투, 그리고 그녀의 활력 있는 삶의 태도는 전혀 노파 같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인야는 자신도 모르게,
"누리아, 당신은 '기적'이야!" 라고 외쳤던 것이 출발이었다.
깜짝 놀란 누리아가 그 의미를 묻자, 인야는,
"어떻게 그토록 변함없이 젊음을 유지하며 지내는지, 너무 신기하고 대단해서 하는 말이야!" 했던 것이고, 누리아는 싫지 않은 듯 깔깔 웃었다.
그 후 이 말은 두 사람 사이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되었는데, 특히 어제 인야가 산 셀로니에 오자 인야를 마중하기 위해 직접 차를 운전해서 온 누리아가, 이전과 다름없이 안정적으로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인야는 또다시,
"아무리 생각해도, 누리아 당신은 정말 기적이야!" 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데......
하지만 이제는 인야의 차례였다.
정확히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그와는 별개로 인야는 이번 남미 여행 중에도 늘 그렇듯... 와이파이가 되는 곳마다 누리아와 통화하며 자신의 여행 사진을 공유하곤 했는데, 한 번은 전화 통화 중에 인야가 또,
"누리아, 당신은 정말 기적이야!" 했더니,
이번에는 누리아가 이렇게 되받아쳤다.
"인야, 사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니 얘기인, '나는 돈 없이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며 여행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면, 모두들 '말도 안 된다'며 믿으려 하지 않아. 그럴 때마다 나는, 너와 알게 된 옛 얘기부터 지금까지의 상당히 긴 얘기를 꺼내면서,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국인 화가 '인야'는, 정말... 돈도 별로 없는데도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너무나 잘 다니고 있다고, 니가 보내준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구체적인 얘기를 해주면... 다들 놀라면서도 내 말을 믿어주곤 하지." 그러면서는,
"그래서 얘긴데, 인야, 내가 '기적'이 아니고, 바로 니가 '기적'이라는 거지!" 하고 깔깔 웃는 것이었다.
그러자 인야는,
"그래, 당신 말이 완전히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그리고 물론 내가 돈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사람이 돈 한 푼 없이 여행을 하겠어? 당신이 너무 뻥친 거야. 안 그래? 누리아?" 하고 농담으로 받아 넘기려 했지만, 누리아는 단호했다.
"아냐, 인야. 내가 보는 견지에선, 니가 그렇게 쪼들리는 상황에서도 가고 싶은 곳을 어떻게든 찾아다니는 게 정말 신기하고 대단해. 그게 어디 한두 번이야? 게다가 너처럼 여행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될까? 그러니까 내가 기적이 아니고, 니가 기적이라는 거지! 나도 너처럼 좀 살아봤으면 좋겠어!" 해서, 둘이서 한참을 웃기도 했었다.
그렇게 누리아와 인야는 최근에는 서로가 상대방에게 '기적'이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그날 인야가 바르셀로나에 왔기 때문에 다시 그들 셋이 만나게 되었고, 가끔씩 전화 통화는 하지만 서로가 사는 반경이 다르다 보니... 장과 누리아에게도 모처럼만의 만남이었는데,
인야와 누리아가 그날도 서로가 '기적'이라고 말을 하면서 떠들며 웃자(장은 모르고 있었다),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눈을 깜빡이던 장이 고개를 갸웃하는 것 같더니...
"정말이네! 두 사람이 다 기적이네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호기심이 많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누리아가,
"장, 맞지? 내 말이..." 했고,
"그렇긴 해요. 근데, 인야 말도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은 늘 하고 있었거든요!" 하니,
인야와 누리아는 서로가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 보았는데,
"그러고 보니, 장, 너도 한 '기적' 하는데......" 하고 누리아가 말하였는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본인의 삶을 충실히 일구어 이젠 스페인 직장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장 역시 그들의 눈에는 특별한 존재라 아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야가,
"그럼, 앞으로... 우리들 모임을(인야는 늘 그들 셋이 만날 때마다, 뭔가 한 '그룹'이거나 '팀' 같다는 생각을 해왔기에)... '기적 팀'으로 부르면 어떨까? 하 하 하..." 했더니,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해서, 그저 그들끼리 농담으로, 순간적으로 붙인 그룹명이 되었던 것이다.
'기적 팀'......
그런데 이제는 '기적 팀'의 탄생이라는 유쾌한 대화에서 잠시 빗겨나, 인야가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 그리고 곧 이 자리에서 벌어질 인야에게 정말 기적 같은 사건의 서막이 펼쳐질 차례였다.
사실 인야의 현 상황은, 남미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스페인(마드릳, 갈리시아,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지만 사실상 무일푼이었는데, 스페인에 도착한 지 이미 20여 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귀국 항공권을 구입할 돈이 턱없이 모자라, 인야는 매일 인터넷 항공권 구매 사이트만 들락거리며 시간이 갈수록 가격이 오르는 항공권을 바라보며...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는 중이나 다름없었다.
인야는 스페인 친구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도 고민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드릳, 갈리시아,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스페인 친구들 중 한 사람에게 귀국 항공권 문제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 친구들에게 금전적인 어려움을 털어놓는 것은, 수없이 망설였을 뿐... 실행에 옮겨지지가 않았다.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채 그날에 이르렀던 것이다.
사실 인야는 이번 여행 중 한국의 누님에게도 이미 빚을 진 터라, 더 이상 가족에게 손을 벌릴 처지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날, 셋이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누리아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인야는 장과 단둘이 된 틈을 타 용기를 냈다.
"장, 내가 돈이 부족해서 한국에 돌아갈 항공권도 아직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나 좀 도와줄래?"
짧고 간단한 요청이었다.
인야를 빤히 바라보던 장은 서슴없이,
"얼마나 필요한데요?" 하고 물었다.
"600유로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라는 인야의 말에, 장은,
"알았어요." 라는 두 마디로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인야는 너무 고마웠지만, 제대로 된 감사의 말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누리아가 돌아와서 그들은 다른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곧이어 누리아에게 전화가 왔고, 누리아가 온 전화를 받으러 잠시 그 옆의 나무 그늘로 자리를 옮기자,
장이 인야에게,
"그럼, 여기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좀 꺼내올게요." 하고 일어나기에, 인야는
"아니, 현금보다는 항공권 구매라... 인터넷 사이트에서 카드로 결제를 해야 돼." (인야의 카드로는 잔금이 없어선지 결제 불가) 하자, 장은,
"그럼 나중에 문자로 내 카드 정보를 보낼 테니, 그걸로 결제하세요." 라고 했고, 인야는
"알았어. 고마워!" 라며 일단락 지었다.
글쎄, 인야에게 그게 어떤 상황인지 스스로는 정확히 분석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인야에겐 '외국인'인 스페인 친구들한테 돈을 빌려달라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과, 장처럼 같은 나라 사람에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다른 기분이었다.
인야가 스페인 사람들과는 너무 잘 지내고 있었지만, 돈 문제에서는... '가려운 데를 긁어달라'고 부탁하는 것 자체가 되지가 않았다. 그건 친하고 안 친하고의 문제가 아닌, 인야로서는 뭐라 단정할 수 없는 '감정의 벽'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나날이기도 했던 참인데,
그 얼마 뒤, 장이 돌아가야 한다며 서둘렀는데(그날 인야 때문에 오전을 비워둔 채 왔기 때문에),
또 돌아가면서는 누리아 안 보게(눈치를 보더니) 자기 지갑에서 현금(100유로짜리 지폐 두세 장은 될 듯)을 꺼내더니 접어서는,
"당장, 급할 때 쓰시고, 한국으로 잘 돌아가세요!" 하면서 얼른 인야의 호주머니에 쑤셔 넣어주면서, 도망치듯 차를 타는 것이었다.
그 행위 하나하나가 인야를 감동하게 했지만, 인야는 그에 따른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얼어붙은 듯)...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가는 장의 차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렇지만 속으론,
'장, 고맙구나. 너는 나에겐 진짜 기적이었구나!' 하고도 있었다.
그러면서는, '내가 이번에 너에게 내 테라코타 작품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만약 내가 이 돈을 너에게 갚지 못한다면? 최소한 니가 맡고 있는 내 작품으로라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