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서트레일 7구간 제2부
장승배기-팔중리마을회관-면남산-고풍저수지-
고색동마을-용현계곡입구-마애여래삼존상
20260416
1.백제 천년의 미소는 아직도 해맑게 천진난만하구나
4월을 맞이하여 동서트레일 6구간을 탐방한 뒤 2주만에 7구간 탐방을 위해 충남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에 다시 왔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T. S. 엘리엇(Eliot, 1888~1965)의 '荒蕪地'는 이렇게 시작된다. 제1차 세계대전 뒤의 유럽의 정신적 황폐 상황에서 4월은 생명이 약동하는 축복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가장 잔인한 달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전쟁과 문명 파괴를 겪는 이 봄은 축복이 아니며 春來不似春이다. 그럼에도 비판 의식이 무감각한 길손은 不似春의 봄을 이곳 저곳 찾아다니며 즐기고 있다.
동서트레일 7구간은 충남 당진시 면천면에서 서산시 운산면으로 넘어간다. 탐방 지역은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와 성하리, 대치리를 지나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로 넘어가 운산면 고산리와 수평리, 고풍리를 거쳐 운산면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에서 탐방을 마친다. 그래서 7구간은 당진시 면천면 지역의 법정리 세 곳과 서산시 운산면 지역의 법정리 다섯 곳을 탐방하는 구간이다. 7구간 탐방 체험을 당진시 운산면 대치리와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를 경계하는 장승배기를 경계로 하여 2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2부(장승배기~마애여래삼존상) : 당진시 면천면 대치리와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의 경계를 이루는 장승배기를 넘는다. 장승배기에는 한국전력에서 2015년도 송·변전 지역 지원사업으로 설치한 석장승과 목장승 그리고 장승비와 장승제단이 조성되어 있다. 장승비(長栍碑)에는 유교의 전통 덕목인 4대 교훈이 적혀 있다. "○孝弟仁本(효제인본) 효성스러움과 공손함은 인을 실현하는 근본이다. ○禮用和貴(예용화귀) 예의 쓰임은 조화가 중요하다. ○尊敬不韋(존경불위) 부모를 섬김에 우러러보며 공경하여 어기지 않는다. ○慾仁斯至(욕인사지) 인을 하고자 하면 곧 인에 이른다." 효(孝), 제(悌, 공손), 인(仁), 예(禮), 경(敬)는 지난 시대의 낡은 사상이 아니라 어느 시대이건 지켜야 할 인간의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 팔중배티길을 따라간다. 왼쪽 뒤에는 충남 서산과 예산의 경계를 이루는 가야산 산줄기가 들어온다. 동서트레일 8구간은 저 산줄기를 넘어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윤봉길 의사 기념관으로 내려갈 것이다. 팔중리 들녘에서는 벌써 논농사를 위한 써레질을 하고 있다. 이제 4월 중순은 기후 변화에 의해 초봄이 아니라 꽃들이 이미 지고 늦은 봄꽃들이 피어나는 봄의 한창 시절이니 농사일이 분망해지는 때가 된다.
팔중배티길은 팔중리경로당&회관을 지나며 팔중길로 바뀌고, 팔중길이 장생동로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운산면 고산리로 넘어간다. 고산리는 운산면의 북쪽에 길게 뻗어 있는데, 지방도 제609호선 장생동로가 고산천과 동행하며 고산리 지역의 중앙을 남북으로 가른다. 동서트레일은 고산천의 남쪽 둑방길을 따라 운산면 수평리 방향으로 올라간다. 둑방길을 따라 고산리 들녘을 통과하며 좌우의 나즈막한 산줄기와 그 아래에 펼쳐진 들녘과 마을을 살핀다. 고산천 남쪽에는 녹산리골 들녘과 사기장 마을이 자리하고, 그 북쪽에는 일산봉 능선 남쪽 곰실이골에 곰실마을이 자리한다. 이 두 지역 중앙으로 고산천이 흐르고 장생천이 지나간다.
고산교회는 고산리 사기장마을 언덕에 자리하지만 실제 행정구역은 운산면 수평리 지역이다. 고산교회를 지나 운산면 수평리 와평길을 따라 올라간다. 도로명이 와평길이니 이 일대의 농가들은 운산면 수평리 와평마을에 속할 것이다. 면남산 능선이 서쪽으로 이어지고 그 동쪽 자락에 수평리 와평마을이 수평리 가장 남쪽에 자리한다. 와평마을 들녘에는 축사들이 많고, 인삼밭과 사과와 샤인머스켓 농장들이 있다. 농부가 사과농장에서 사과나무 가지를 손질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다른 농부들은 보이지 않는다. 와평길에는 식재한 듯한 그윽한 소나무들이 운치있게 자라고, 산벚꽃들이 흐드러진다.
해발 250m 면남산이 와평마을 서쪽에 솟아 있다. 이번 탐방에서 가장 어려운 곳은 한티고개와 면남산 오름길이지만 크게 어렵지는 않다. 면남산 능선의 안부(鞍部)로 오르기 위해 면남산 동쪽 골짜기로 들어간다. 산벚꽃들이 공중에서 반짝이고 보랏빛 각시붓꽃이 대지에서 웅얼거린다. 골짜기 오름길은 지난해 수해로 인해 골짜기가 무너져 내리고,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는 골물에 쓸려 내려가 골짜기에 처박혀 있다. 크게 위험하지 않아 천천히 비탈길을 따라 면남산 안부에 올랐다.
면남산 안부에서 능선을 따라 면남산 정상으로 올라가도 되지만, 면남산 정상 서쪽 산등성이길을 따라가면 정상으로 올라가는 임도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왜 면남산일까? 면남산 유래를 알고 싶지만 안내판은 없고, 이정목만 세워져 있을 뿐이다. 운산면 고풍리 지역으로 넘어와 넓게 확장 공사 진행 중인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전기 시설이 없는 민가 한 채가 나타난다. 농가 아래 넓은 밭에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경수를 재배하는 농가인 듯도 한데, 확실하지 않다. 이 농가를 지나면서 시멘트 임도가 이어지는데, 도로명이 고풍2길이다.
고풍2길을 따라 면남산 능선 남쪽 골짜기로 내려가는데, 수해 피해 현장과 가건물 창고 두 채를 지난다. 골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산벚꽃은 화려하게 반짝인다. 골짜기를 다 내려가면 넓은 호수가 펼쳐지는데 고풍저수지이다. 1975년 12월 31일 준공된 고풍저수지는 남쪽 원평골에서 흘러내리는 원평천과 용현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용현천을 가둔 농업 관개용 1종 저수지로서, 서산 지역에서 면적과 저수량이 가장 크다고 한다. 고풍저수지 아래로 용장천(역천)이 북쪽으로 흘러 서산시 운산면을 지나 당진시 석문호에 갇혔다가 서해로 흘러든다.
동서트레일은 고풍저수지 동안(東岸)을 따라 남단(南端)으로 내려가 원평천을 건너야 한다. 그런데 원평천이 고풍저수지로 흘러드는 유입구에 목교가 있어 원평천을 건너 다닐 수 있었는데 지난해 홍수 때 이 목교가 유실되었다. 그래서 원평천 남쪽 둑방의 내포문화숲길 안내소와 고풍야영장으로 곧바로 건너가지 못하고, 고풍리 고색동마을 입구까지 원평천을 거슬러 올라가 원평천의 다리를 건너 이곳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 덕분에 고풍리 고색동마을과 원평천을 살필 수 있었다.
내포문화숲길 안내소에서 지방도 제618호선 봉운로를 따라 고풍저수지앞 교차로까지는 금방이다. 산벚꽃은 절정을 이루어 화려하다. 봉운로 교차로에서 용현계곡 방향으로 운산면 용현리 마애삼존불길을 따라간다. 용현2리는 아랫강댕이라고 불린다. 최치원(崔致遠)이 893년(신라 진성여왕 7)에 오늘날 서산군수에 해당하는 부성태수직을 마치고 용현리에 강당을 마련하여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쳤다고 하여 강당이라고 불렸는데 강당이가 강댕이로 변화하여 용현1리는 윗강댕이, 용현2리는 아랫강댕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강댕이미륵불을 살피고 용현천의 용현1교를 건너 쥐바위, 인(印)바위, 사자바위를 지나서 용현집 식당 앞 마애여래삼존상 출입구에 이르렀다. 산벚꽃 흐드러지는 용현천의 다리를 건너 산비탈 돌계단길을 오르고 불이문을 지나 드디어 백제 천년의 미소 앞에 섰다. 청춘의 시절에 처음으로 왔었고, 결혼 뒤에 다시 찾았고, 2024년 가을에 세 번째로 만났으며, 이번에 네 번째로 그 미소에 젖는다. 첫 번째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암자의 천막 안에 마애여래삼존상은 안치되어 있어서 스님이 전등을 비쳐 주었다. 눈을 크게 뜨고 또 가늘게 뜨고 보고, 감고 상상하고, 정면에서 똑바로 보고, 비스듬히 보고, 앉아서 보고, 서서 보고. 이번에는 햇빛 영향 때문에 마애여래삼존상의 그 해맑은 미소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도 마음의 눈에 다 보인다. 백제 천년의 순진무구한 미소에 가없이 젖는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4.0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32분
당진시 면천면 대치리와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의 경계를 이루는 장승배기를 넘는다.
장승배기에서 당진시 면천면 대치리 벌말골을 돌아보았다. 면천면 원동리와 대치리를 잇는 면천101호선(원대선) 농어촌도로 확포장공사를 2024년 9월 15일~2027년 9월 11일 진행한다는 공사안내판이 앞에 세워져 있다.
장승배기에 석장승과 목장승 그리고 장승비와 장승제단이 한국전력의 송·변전 지역 지원사업으로 설치되어 있다.
장승배기의 장승비(長栍碑)에 長栍(장생)배기 4대 교훈이 적혀 있다.
팔중리 마을회관 0.6km 지점, 장승배기에 동서트레일 7구간 안내판과 이정목이 서 있다.
당진시 면천면 대치리에서 장승배기를 넘어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로 넘어와 팔중배티길을 따라 팔중리 들녘으로 내려간다. 맨 왼쪽 뒤에 가야산 산줄기 석문봉과 일락산이 보인다.
영탑사 입구 2.36km, 팔중리 마을회관 0.40km 지점, 팔중리 들녘의 논에서 써레질이 한창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팔곡리(八谷里)의 ‘팔’자와 중산리(中山里)의 ‘중’자를 따서 팔중리(八中里)가 되었다.『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팔고리[八谷里], 즁뫼리[中山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팔골리와 중산리가 있었던 지역으로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중산리에서 이티리가 분할되고 팔골리가 팔곡리로 개명되었다. 1989년 서산읍이 시로 승격할 때 서산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서산군이 서산시와 통합되면서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가 되었다. 팔중리 남쪽은 200m 이내의 산간 지대로 중미[中山]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평석들이 있다.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경계에 황새바위산이 있으며, 국수봉과 배암산이 있다. 팔중리는 운산면의 동쪽 끝에 위치한다. 자연 마을로는 중미·당고랑·이티·팔곡이 있다. 중미는 팔중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산 중턱에 있어 중미라고 부른다. 당고랑은 팔곡과 중미 사이에 있는 마을로 과거에 신당이 있었다고 해서 당고랑이라고 부른다. 이티는 배티, 주티라고도 불리며 중미 북쪽에 있으며, 팔곡은 중미 남쪽에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팔중배티길을 따라 팔중리마을회 게이트볼장을 지나 팔중리경로당&팔중리회관 앞으로 이어간다.
팔중배티길을 따라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 팔중리경로당&팔중리회관을 지나간다.
팔중배티길의 팔중리회관앞 버스정류소를 지난다. 이곳을 지나면 도로명이 팔중길로 바뀌며 중앙 뒤 대덕식당은 운영하지 않는 듯.
팔중길을 따라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 들녘을 지나 고산리 들녘으로 나아간다. 왼쪽 뒤에 솟은 수정봉을 가늠한다.
팔중길이 장생동로와 만나는 곳에 팔중리 버스정류소가 있으며, 동서트레일은 장생동로를 횡단하여 고산천을 건넌다.
팔중리 마을회관 0.34km, 서산마애여래삼존상 5.96km 지점, 팔중리 버스정류소 옆에 내포문화숲길 이정목이 서 있다.
팔중길이 장생동로와 만나는 남단에 팔중리 버스정류소가 설치되어 있고, 그 옆에 팔중리 마을 표석이 서 있다.
지방도 제609호선 장생동로는 충남 운산면 동북쪽 지역 원평리, 고풍리, 고산리, 수평리, 수당리를 잇는 도로이다. 운산면 팔중리에서 고산리로 넘어가 장생동로를 횡단하여 고산천의 다리를 건넌다.
고산천의 다리에서 남쪽 고산천 상류 방향을 바라보았다.
고산천 다리에서 북쪽 고산천 하류 방향을 바라보았다. 동서트레일은 고산천 남쪽 둑방길을 따라간다.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고음곡리(古音谷里)의 ‘고’자와 두산리(斗山里)의 ‘산’자를 따서 고산리(古山里)라 이름 붙였다.『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곰실[古音谷里], 말산[斗山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고산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고음곡리와 수철점리가 있었던 지역이다.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수철점리를 폐지하고 고음곡리를 두산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고음곡리 일부를 수평리로 통합하고, 나머지 일부 지역과 두산리를 통합하여 서산군 운산면 고산리로 개편하였다. 수평천의 원류점인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에서 수당리까지 연속되는 계곡의 일부라 할 수 있지만 바로 접해 있는 수평리보다는 위쪽에 위치해 있음에도 골이 넓게 퍼져 있으며, 중앙으로 고산천이 흐르며 토지가 비옥하여 예로부터 운산면 내에서도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 마을로는 곰실[고음실, 고음곡]·두산[두치, 말산, 말티]·솟점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고산천 둑방길을 따라 녹산리골 들녘을 지나간다. 왼쪽 뒤의 골짜기는 사기장골이라 이르는 듯.
고산천 건너편 왼쪽에 수리봉, 중앙 뒤에 일산봉이 가늠되며 운산면 고산리 곰실이골에 곰실마을이 자리한다. 곰실은 고산리의 중심 마을로 곰의 모양과 닮은 마을 지형 때문에 웅곡(熊谷)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운산면 수평리 훈담골 언덕 동쪽에 고산리 사기장마을이 자리하며, 고산교회도 보인다. 왼쪽 뒤에 면남산이 솟아 있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5.15km 지점, 운산면 고산리에서 수평리로 넘어간다. 뒤쪽 마을은 운산면 수평리 와평마을인 듯.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상장수동(上長壽洞)의 ‘수’자와 와평리(瓦坪里)의 ‘평’자를 따서 수평리(壽坪里)가 되었다. 수평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장생동리였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와평리, 상장수동, 하장수동(下長壽洞), 상묵당리(上墨堂里), 하묵당리(下墨堂里)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와평리와 상장수동, 고음곡리(古音谷里)의 일부를 통합하여 서산군 운산면 수평리로 개편하였다. 수평리의 동북부와 남서부는 산악 지대이며 그 사이 남동 방향으로 골짜기에 고산천이 흐르며 약간의 들녘이 있다. 골짜기를 따라 지방도 609호선이 지난다. 원마루 뒤 북쪽에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옥녀봉(玉女峯)이 있다. 수평리는 수평1리와 수평2리로 나누어져 있다. 자연 마을로는 왯벌[와평리, 와동]·원마루[원말]·장사목골[장수목골, 장수골, 장수동, 장사동] 등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 훈담골 언덕에 고산교회가 자리한다.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 와평길을 따라 면남산 골짜기로 올라간다. 이 일대를 왯벌, 와평리라 이르는 듯. "왯벌은 장사목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기와를 굽던 마을이라 와평리, 와동이라고도 부른다."
와평길을 따라 운산면 수평리 지역의 인삼밭을 지난다. 중앙 뒤에 면남산이 솟아 있고 이 일대를 막골이라 이르는 듯.
와평길을 따라 운산면 수평리 사과농원을 지난다.
와평길을 따라 운산면 수평리 영승농원 출입구를 지난다.
영승농원 출입구에서 걸어온 운산면 수평리 와평길을 돌아보았다. 왼쪽 뒤에 수리봉이 솟아 있고, 오른쪽 건너편 능선 남쪽 자락에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이 자리한다.
와평길을 따라 수평리(壽坪里) 농가를 지난다. 농가 밭에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고, 길가의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멋지다.
와평길을 올라오다가 지나온 대나무숲을 뒤돌아보았다.
면남산이 중앙에 자리하고, 동서트레일은 면남산 능선 왼쪽 안부로 올라가 면남산 서쪽 등성이를 따라간다.
운산면 수평리 와평길을 따라 멋진 소나무를 지나 면남산 골짜기로 올라간다.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 와평길 동남쪽에 목장이 자리한다.
와평길에 소나무숲이 멋지다. 자연 숲이 아니고 식재 숲인 듯하다.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골짜기로 이어간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4.27km 지점, 수선화꽃핀 와평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면남산 골짜기 나들목길로 이어간다.
면남산 골짜기 나들목길에서 운산면 수평리 지역을 내려보았다. 중앙 뒤 능선 자락에 고산리 곰실마을이 보인다.
면남산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에 산벚꽃이 흐드러진다. 왼쪽 뒤에 면남산이 솟아 있고, 골짜기를 왼쪽으로 올라간다.
지난 해 수해 피해를 입어 산골짜기 비탈이 무너져 내렸고 계곡의 나무다리는 부서져 계곡에 처박혀 있다.
면남산 능선의 동쪽 골짜기를 따라 면남산 능선의 안부(鞍部)로 올라간다.
서산마애삼존상 4.27km 지점, 면남산 능선의 안부(鞍部)에 내포문화숲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면남산 안부에서 면남산 정상 아래 서쪽 산등성이 임도를 따라 운산면 수평리에서 고풍리 지역으로 넘어간다.
면남산 능선으로 오르는 곳에서 안부(鞍部)를 내려보았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오른쪽으로 면남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동서트레일은 면남산 서쪽 등성이를 가로지른다.
면남산 안부에서 면남산 정상 갈림길을 지나왔다. 맨 오른쪽 뒤에 수정봉이 가늠된다.
서산마애여래삼존상 3.38km 지점, 면남산 정상 서쪽 아래 넓은 터에 쉼터 의자가 조성되어 있다.
면남산 정상 서쪽 빈터의 쉼터에서 걸어온 등성이길과 해발 250m 면남산 정상을 올려보았다.
동서트레일 탐방로 개통을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인 듯. 왼쪽 면남산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동서트레일 리본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다. 면남산 임도를 다라 내려간다.
서산마애여래삼존상 3.0km 지점, 왼쪽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면남산을 바라보며,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전기 시설이 없는 개인 주택이 임도 아래에 자리한다.
면남산 서쪽에서 걸어 내려온 면남산 능선을 바라보았다.
시멘트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가 전기 시설이 없는 개인 주택을 뒤돌아보았다. 이 도로명은 고풍2길이다.
고풍2길을 따라 운산면 고풍리 면남산 서남쪽 골짜기를 내려간다.
면남산 서남쪽 골짜기 운산면 고풍리 산자락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는데, 연결 목교가 수해 피해를 입어 쓸려내려갔다.
고풍2길 골짜기 언덕에 공구들을 보관하는 가건물 창고가 있지만 전기 시설이 없다.
가건물 창고 벽에 망치와 스패너 공구 모형물이 붙어 있다.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 고풍2길에 산벚꽃이 흐드러진다.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에 고풍저수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서쪽으로는 지방도 제618호선 봉운로가 지난다.
농업 관개용 1종 저수지 고풍저수지는 1967년 4월 5일 착공하여 1975년 12월 31일 준공되었다. 2009년 가로 8m, 세로 7m 규모의 게이트[Radial Gate] 2련을 설치하는 재보수 공사를 통해 방류량이 288.9㎥/s에서 498.7㎥/s로 두 배 증가하였으며 2010년 8월 서산 지역 집중 호우에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제당 형식은 균일형 필댐(fill dam)이며 취수 형식은 취수탑형이다. 2011년 기준으로 구역 면적은 1,476㏊이고 제방의 높이는 33m, 제방의 길이는 227m이다. 총 저수량은 836만 톤이며, 유효 저수량은 782만 1800톤, 사수량(死水量)은 53만 8200톤이다. 유역 면적은 2,590㏊이고, 홍수 면적 63.28㏊, 만수 면적 62.35㏊, 수혜 면적은 1,293.8㏊이다. 가뭄 빈도는 10년이며, 홍수 빈도는 100년이다. 서산 지역에 있는 저수지 중에서 면적과 저수량이 가장 크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고풍저수지 건너편에 서산마애삼존상으로 올라가는 용현계곡 입구가 보인다.
오른쪽의 원평천이 고풍저수지로 유입되는 이곳에 목교가 있었는데, 지난 해 수해 때 유실되었다고 한다.
마애래삼존상 1.30km 지점, 목교가 유실되어 원평천을 건너가기 위해 원평천을 거슬러 오른다.
고풍2길을 따라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 고색동 마을을 지나간다. 맨 오른쪽에 원평천이 흐른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고색리(高色里)를 고풍리(高豊里)로 고쳤다. 이는 주민 생활의 안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군자동(君子洞), 무릉동(武陵洞), 운곡[雲谷里], 고빗[高色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고풍리는 조선 시대에는 해미현 이도면 고색리와 군장동리가 있었던 지역이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군자동, 운곡리, 무릉동, 고색리의 네 개 마을로 분할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네 개의 마을을 통합하여 서산군 운산면 고풍리가 되었다. 1995년 서산군이 서산시와 통합하면서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가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고풍2길을 따라가다가 앞쪽 고색동 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오른쪽 원평천의 다리를 건넌다.
고풍리는 개나리골과 속벌들 사이에 입지한다. 해발 100~300m의 산악 지대가 지역의 대부분을 이루며 촌락은 남쪽의 골짜기에 주로 분포한다. 북부 지역에 규모가 큰 고풍저수지가 있다.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와 용장리 경계를 기점으로 역천(驛川)이라고도 불리는 용장천(龍障川)이 흐른다. 역천은 금강 서해권 수계에 속하는 지방 2급 하천으로서 운산면 원평리를 흐르는 원평천이 용현계곡에서 흘러내린 물과 합류하여 고풍저수지로 모이고, 고풍저수지 아래로 역천이 북동쪽으로 흘러 충남 당진시 채운포로 유입된다. 자연 마을로는 고빛[고비실, 고색]·무릉대[무릉동]·음산말[아래고빛]·양지말[윗고빛]이 있다. 고빛은 고풍리의 중심 마을로 지대가 높아서 고비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무릉대는 돈대 밑에 있는 마을로 과거 상왕(象王)을 묻었다고 하는 전설 때문에 무릉대라고 부른다. 음산말은 고빛 아래에 있어 응달이 진다고 하여, 또 양지말은 그 반대로 양지쪽이 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 고색동 마을에 전원주택들이 들어서 있고, 마늘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운산면 고풍리 고색동 마을 입구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고, 느티나무 옆에 고풍리 표석이 세워져 있다.
고풍리 표석 맞은편에 고색동 경로당이 자리하고, 그 앞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고풍리 표석 뒷면에 '忠節의 고장, 고색동주민 일동'이 새겨져 있고, 받침돌에 "본 탑과 느티나무는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산 김씨 문중에서 기증하였습니다. 1998년 3월"가 적혀 있다.
고풍리 표석 앞면에 '내 고향, 高豊里, 忠孝 和合'이 새겨져 있고, 받침돌에 '1998년 삼월 무인 청명, 고풍향우회'가 적혀 있다.
원평천의 다리를 건너 원평천 둑방길을 따라 고풍저수지로 내려간다.
서산시 운산면을 흐르는 원평천은 가야산의 북동부인 충남 예산군 봉산면과 접하는 해발 150m의 계곡인 원평리 계곡과 와우리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원평(院坪)을 지난다 하여 원평천(院坪川)이라고 한다. 폭이 좁고 하천의 유로가 길지 않은 원평천은 계곡의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 고풍저수지로 유입되기 때문에 많은 토사를 운반하지 못하여 주변에 충적지의 발달이 미약하다. 고풍저수지의 아래에는 운산면 용장리를 지나는 용장천(龍障川)이 흐르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에 고풍야영장, 그 오른쪽에 내포문화숲길 안내소가 있으며, 안내소 옆 원평천에 있던 목교는 유실되었다고 한다.
내포문화숲길 안내소 오른쪽에 고풍야영장이 있으며, 내포문화숲길 안내소는 문이 잠겨 있다.
고풍야영장 표지판 앞에서 지나온 내포문화숲길 안내소와 고풍야영장을 돌아보았다. 맨 왼쪽 전신주 옆에 목교가 있었던 듯.
원평천 둑방에서 나와 충남 예산군 봉산면과 서산시 운산면을 잇는 15.6km의 봉운로 동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지방도 제618호선 봉운로를 따라 서쪽 용현계곡 입구로 이어간다. 산벚꽃이 화려하게 흐드러진다.
지방도 제618호선 봉운로의 고풍저수지앞 교차로에서 왼쪽 마애삼존불길로 이어간다.
운산면 고풍리에서 용현리로 넘어간다. 교차로 왼쪽 용현리 버스정류장 옆에 서산 관광안내도와 아라메길 안내도, 교차로 위쪽 주차장 입구에 용현2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차장 뒤쪽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왼쪽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용현계곡 방향으로 올라간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자연 마을인 용비동(龍飛洞)에서 ‘용’자와 보현동(普賢洞)에서 ‘현’자를 따서 용현리(龍賢里)가 되었다. 용현리는 용현1리와 용현2리로 구성된다. 용현1리는 조선 시대에 서산군 동음암면 갈동리 지역이었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해미군 부산면 갈산동, 보현동, 태봉동, 벌리 등으로 분할되었다. 용현2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강당리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갈동, 보현동, 옛 홍주목 운천면 소속이었던 거산리의 일부, 해미군 이도면 강당리까지 합하여 용현리가 되었다. 1989년 서산읍이 서산시로 승격할 때 서산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도농 통합으로 서산시에 속하게 되었다. 용현리는 일락산 중턱에 있으며 운산면에서 면적이 가장 넓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산 아라메길은 모두 8개 노선이 있으며, 이 안내도는 천년미소길 노선과 천년미소길 순환 노선을 안내한다.
주차장 맞은편에 내포불교순례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왼쪽은 수정봉 2.9km 방향, 오른쪽 마애여래삼존상 0.6km 방향으로 이어간다. 내포불교순례길 6구간은 '용현계곡입구-면천읍성'이고, 4구간은 '마애삼존상-용현계곡입구-수정봉-개심사'이다.
마애삼존길을 따라 마애삼존상 방향으로 이어가면 왼쪽에 강댕이 미륵불(彌勒佛)과 안내판이 있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2리(아랫강댕이) 강댕이 미륵불은 현재의 고풍저수지 상단부 안에 있었던 것을 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수몰되게 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조성연대는 고려말~조선초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216cm, 어깨의 폭은 65cm, 두께는 25cm이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팔을 위로 올려 가슴에 붙이고 왼팔은 구부려 배위에 대어 서산지방의 다른 미륵과 같은 형식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행하는 중국 사신 등이 오가는 통로에 세워졌다고도 하고 또는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승이었다고도 한다. - 안내판
운산면 용현리 강댕이 미륵불 앞에서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왼쪽의 산수가든을 지나 용현천의 용현1교를 건넌다.
용현리의 경지는 1.1㎢에 불과하고 산과 들이 13㎢를 차지한다. 원벌리와 인접한 서부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400m 내외의 산악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신창리와 인접한 용현1리의 남부 지역에 용비저수지가 있다. 용현1리와 용현2리로 구성되며, 강당이·구갈골·도두람지[도두리]·보현동·용나름의 자연 마을이 있다. 강당이는 최치원(崔致遠)이 893년(신라 진성여왕 7)에 7년간 부성태수[서산군수에 해당]직을 마치고 가야산에 위치한 용현리에 강당을 마련하여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쳤던 데서 연유됐다고 전해 온다. 보현동은 용현리의 중심 마을로 보원사(普願寺)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두람지는 갈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해돋이를 볼 수 있어 붙은 이름이다. 용나름은 보현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용이 날아갔다는 용나람 못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용현천의 용현1교를 건너 마애삼존길을 따라가면 오른쪽 앞에 쥐바위, 그 위쪽에 인바위가 있다. "강당골은 쥐형국으로 하천을 건널 수 있게 다리를 놓음으로써 건너편에 있던 고양이기 쉽게 개울을 건너 쥐가 잡어 먹히어 불교의 성지로 찬란했던 100여 개의 사찰들이 모두 쇠하여 없어졌다고 한다."(안내판)
용현1교를 건너 마애삼존불길을 따라왔다. 왼쪽의 쥐바위는 위쪽에서 바라보아야 쥐 모양이 확연하다.
마애삼존불길 전신주 뒤에 인(印)바위와 안내판, 왼쪽 위에 사자바위가 있다.
전설에는 상왕(像王)이 도장을 가운데 감추었다고 한다. 본읍 성주 모씨가 그 말을 듣고 이를 취하려고 석공을 불러 큰 정으로 깨뜨리려 하였을 때 갑자기 운무가 모여 들더니 천둥과 함께 소낙비가 내려 모든 산천이 진동하였으며 지척을 분간치 못했다. 성주는 크게 놀라 두려워하여 귀신이 보호함을 알겠다 하고 즉시 중지했다고 한다. - 안내판
인(印)바위에서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돌아와서 사자바위를 내려보았다.
이곳은 용현계곡의 수호자, 사자바위입니다. 수천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이 바위는 마을의 평화와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사자는 용기와 리더십, 그리고 수호의 기운을 더합니다. 이 세 가지 기운이 하나로 어우러진 이곳은 자연스레 사람의 마음을 밝히고, 삶의 길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말합니다. "이곳의 기운을 받으면 윤이 트이고, 진심으로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공중화장실과 용현슈퍼을 지나 용현식당 앞에서 용현천의 다리를 건너 골짜기를 오른다.
용현천의 다리에서 용현천 하류 방향을 내려보았다. 용현천은 고풍저수지로 유입된다.
용현천의 다리에서 용현계곡 방향을 바라보았다. 산벚꽃들이 화사하다.
마애여래삼존상으로 올라가는 돌계단길이 가파르다. 위 오른쪽에 화장실, 왼쪽에 마애여래삼존상 관리사무소가 있다.
암자는 사라지고 마애여래삼존상 관리사무소가 자리한다.
마애여래삼존상으로 가는 불이문 오른쪽에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마애여래삼존상을 바라볼 때, 중앙에 석가여래 입상을 기준으로 왼쪽에 제화갈라보살 입상,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는 백제 후기의 마애불이다.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선을 새겨 넣거나 도톰하게 솟아오르도록 다듬어 만든 불상을 말한다. 삼존불은 6~7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보편적 형식이지만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입상 보살과 반가보살이 함께 새겨진 것은 중국이나 일본, 고구려, 신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불상은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2.8미터의 거대한 불상으로, 단정하고 유연하게 조각된 솜씨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자리한 이곳 충남 서산시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문화가 태안 반도를 거쳐 백제의 수도 부여로 가던 길목이었다. 6세기 당시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하던 곳으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보통 백제의 불상은 균형미가 뛰어나고 단아한 느낌이 드는 귀족 성향의 불상과 온화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서민적인 불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민적인 불상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다. - 설명안내판
불이문을 나와 삼존상이 새겨져 있는 바위를 올려보았다.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 바위 전체를 보았다. 햇빛 영향 때문에 마애여래삼존상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왼쪽 뒤의 상왕산 능선을 배경하여 마애여래삼존상을 바라보았다.
정면에서 볼 때 왼쪽에 보살입상, 중앙에 여래입상, 오른쪽에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햇빛 때문에 삼존상의 미소가 흐릿하며 오른쪽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더욱 흐릿하다.
여래입상 얼굴의 미소가 해맑고 온화하다. 천년 백제의 미소, 아름답다.
2024년 9월 21일 비가 내리는 날 백제 천년의 미소를 찾아왔었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암벽에 새긴 백제시대의 불상이다. 중앙에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백제시대「법화경』이 유행한 것을 보면, 중앙은 현세불인 석가모니불, 왼쪽은 미래불인 미륵보살, 오른쪽은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이다. 다만 가슴 앞에서 구슬을 들고 있는 보살입상은 당시 중국과 일본 불상을 근거로 관음보살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일반적으로 좌우 보살이 대칭을 이루는 삼존상과 달리 이 삼존상은 오른쪽은 보살입상, 왼쪽은 연화대좌 위에 앉은 반가사유상을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또한 조각 솜씨가 뛰어나고 평면적 부조이면서도 입체감을 살려 생동감이 넘치는데, 특히 삼존상의 자비롭고 인간적 미소는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산은 백제 사비시대 중국과 부여를 오가는 교통로의 중요 길목이었다. 이 옛길의 길목에 새겨진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서산 지역과 중국과의 문화교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반가사유상 : 연화대 위에 걸터앉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포개 얹고 오른손으로 얼굴을 괸 채 사색에 잠긴 모습의 불상.
○법화경(法華經) : 일반적으로 <묘법연화경>을 지칭하며, 석가모니의 설법을 집약한 경전.
○부조(浮彫) : 미술 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