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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필리핀 세부(Cebu). 하루 전에 형님으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옷가방 하나 달랑 싸들고 평소 늘 다니는 이웃동네 마실 가는 것처럼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 OZ 709편에 몸을 실었다. 어버이날부터 놀토를 지나 월요일 석가탄신일까지 황금연휴를 맞아 인천공항 출국장은 북새통. 승객을 다 태운 비행기가 계류장에서 활주로로 이동하는 Taxi Drive 중에 멈추어 서더니 기장의 안내 멘트가 방송된다. "이륙 준비중인 비행기가 많은 관계로 약 20분 가량 출발이 지연되겠습니다. 관제탑의 신호를 받아 대기중이오니 부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결혼 시즌이기도하고, 아무튼 중간기착 없이 세부 직항인데도 비행기에 빈자리가 거의 없다. 날씬하게 잘 빠진 에어버스기종의 세련된 기내 분위기가 승무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는 순간 제대로 다독이지 못한 일상의 걱정에서 벗어나 평소 꿈꾸던 여행의 설레임을 일깨운다.
고도 약 10,000m. 시속 880Km. 비행기가 제 항로를 찾은 뒤 안전벨트 등이 꺼지고 기내식이 나오는데, 쇠고기와 해물 메뉴 중에 앞 뒤 옆 승객들이 모두 해물만 고른다. 광우병 파동이 세긴 센가보다. 아는게 병인지... 스카치 위스키와 캔맥주를 마시고, 나눠준 필리핀 입국 신고서와 통관서류를 작성하고나니 벌써 절반쯤 비행거리가 줄었다. 도착하면 종훈이와 일정을 상의하겠지만 50대의 두 아저씨가 해양스포츠의 천국 필리핀 세부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즐길 것인지 심히 걱정된다.
필리핀. 인구 약 8천 5백만명. 루손, 비싸야, 민다나오의 세 지역으로 나뉘며 전체 약 7천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루손섬에는 수도 마닐라와 휴양도시 바기오가 있고 중부 비싸야에는 코발트와 옥색 바다로 유명한 보라카이와 세부가 있다. 남쪽 민다나오는 지금도 이슬람 반군들이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고 천연자원이 많이 매장 되어있다고 한다. 종교는 85%가 천주교. 나머지는 개신교와 이슬람교 불교가 있다. 키가 작고 가무잡잡한 말레이계가 인구의 95%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계, 백인과 원주민과의 혼혈인 메스티조족이 있다. 화폐 단위는 페소. 1페소는 약 25원 정도. 언어는 따갈로그어와 영어 공용인데, 학교와 공문서 방송에서는 주로 영어를 쓰고 일상 대화는 따갈로그어를 사용한다.
16세기 초 마젤란이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를 하며 괌을 거쳐 필리핀 세부옆의 막탄 섬에 다다른 이후 스페인 지배 320년, 그 후 미국에 50년, 또 태평양 전쟁 중에 일본에 3년 동안 지배당하였다. 식민 세월이 길어서인지 사람들은 대체로 온순하고 낙천적이다. 하지만 세계가 좁아지고 가까워진 지금 상대적 빈곤감은 어쩔 수 없어 소매치기 오토바이치기 권총 강도들을 양산해서 시내관광을 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필리핀 하면 얼핏 떠오르는 기억이 마르코스 이멜다의 구두 콜렉션. 시민들에 의해 권력의 중심에서 축출당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떠난 대통령 궁에서 제일 먼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이멜다의 사치 현장이었다. 신문 1면에 실린 수천 켤레의 구두를 보며 마르코스 지지자들 조차 아연 실색을 했었다지...
형님은 몇 년 전 태국 여행 때 타이항공의 좌석이 너무 좁고 불편했었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아시아나는 훨씬 편하고 좋으시단다. 어느덧 OZ 709 편은 네시간여를 날아 필리핀 막탄 세부 공항에 랜딩한다. 바퀴가 부드럽게 땅에 닿고 약간의 역추진 끝에 필리핀 세부에 무사히 내렸다. 짐 찾고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서니 종훈이 다가와 씩- 웃는다. 짜식! 열렬히 환영 하는 뜻으로 피켓 하나 써와서 흔들 것이지-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사이 처럼 편한 웃음으로 그냥 밋밋하게 가방이나 받아들다니... 하긴 그게 형제인가... 한국 보다 1시간이 늦은 현지 시각 24시 20분. 막탄 세부 공항은 밤비에 촉촉히 젖고 있었다.
<종훈 집 2층 오르는 계단-1층엔 거실 부엌, 2층은 침실>
아침에 일어나니 우선 물 먹는 것 부터 주의를 준다. 현지인들은 괞챦지만 우리는 수도물을 그냥 마시면 안된단다. 정수되어서 가정으로 배달되는 물이지만 석회가루가 많이 남아있는 관계로 마셨다간 여지없이 탈이 난다고. 세면대 배수관 입구는 석회가 하얗게 굳어있다. 그래선지 세수하고 내린물이 잘 안내려간다. 배수 파이프 라인에 문제가 생긴거다. 자주 세탁하는 면타월이 얼마 지나지 않아 딱딱해져서 버려야 한단다. 해서 먹는 물은 미네랄 생수를 배달 시켜 먹는데 한 통에 한국돈 1천원. 한국은 5천원... 물은 그렇고...
<종훈 집-여섯 가구가 모여 사는 타운 하우스로 깨끗하고 하루 종일 경비가 지키고 있다>
99년식 일제 혼다. 연식은 오래되었지만 주행거리는 얼마 안되고 관리를 잘해 아직도 새차다. 종훈의 애마. 있는 동안 베스트 드라이버 종훈이 이 차로 데리고 다녀 더 할 나위 없이 편했다. 형님은 일찍 일어나 마당을 서성인다. 제복 입은 경비 아저씨 사진도 찍고 동네 어귀까지 산책도 하고. "행님요! 계속 그라믄 노인네 취급 당한당께요."
아침 먹으러 가는 길. 신호 대기 중인데 앞에 손님을 가득 태운 지프니가 있다. 우리나라 타우너 정도의 차체에 약 20명이 탄다. 요금은 6페소. 150원. 뒤에 매달린 흰모자는 어디 간다고 어디니 내리라고 서라고 가라고, 소리 치고 돈 받고 하는 차장이고 흰 웃도리는 그냥 손님인데 이렇게 자리가 없어 매달려서 가면 공짜란다. 재미난 필리핀 소형 버스, 지프니다.
오른쪽이 포체로(pochero), 우족탕이고 왼쪽은 도가니탕이다. 이곳 소들은 사료가 비싸서 못 먹이는 관계로 100% 초원의 풀 만 먹고 자란단다. 해서 광우병은 남의 나라 얘기라는 거다. 종훈이 형님들 염려말고 많이 드시란다. 상시 여름이어선지 이 곳 소들은 다 말라있다. 길에서 보게되는 소들이 전부 눈이 맑고 예쁘다. 그래도 먹긴 먹어야 살테니...
2nd floor Marina mall Pusok st. Lapu Lapu City Cebu. 종훈의 사무실 JJ컨설팅이 있는 마리나 몰의 주소다. 어젯밤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묵을 곳 주소를 묻는데 몰라서 쭈뼛거린게 생각나 노트에 적었다. 필리핀에서 외국인으로서 공부를 하거나 취업을 하거나 사업을 벌이거나 할 때 종훈 처럼 오랜 경력을 쌓고 시에서 허가를 받은 사무실에 자문을 구하거나 업무를 대행시키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인즉 오픈한지 2년 째 되어가는 종훈의 컨설턴트 사무실은 앞날이 밝아 보인다. 직원 두 명이 바삐 움직인다.
Lapu Lapu는 16세기 초 마젤란이 막탄섬에 상륙했을 때 싸워서 그를 죽인 원주민 추장의 이름이다. 이 때 부터 라푸라푸는 필리핀에서 자랑스럽고 친숙한 것들의 이름이 되었다. 세부주의 시이름이고, 가장 맛있는 생선의 이름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막탄섬 푼타 엥가뇨(Punta Engano)에는 광장의 양쪽으로 마젤란의 동상과 라푸라푸의 동상이 마주보고있다.
야자나무를 자르지 않고 살려 건물을 지은 모습이 보기에 좋다. 따뜻한 남쪽나라 필리핀에는 어디를 가도 편하게, 바닷가에선 낭만적으로 바람에 살랑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여기저기 야자수들이 서있다. 우리에게 흔한 소나무 처럼. 사람들이 힘들여 열매를 딸 생각도 안한다. 껍질을 이쁘게 깍고 머리를 잘라 빨대 꽂아 내오는 야자열매 하나가 우리돈 300원이니 어디에나 그냥 지천으로 널려있다.
종훈과 지니(진희)는 밀린업무 처리중이고 형님과 나는 사무실 구경 중.
컨설턴트 면허증과 사업 허가증
'영수증을 요구하세요.' 얼마전까지 우리도 이런게 가게마다 걸려있었지.
사무실 풍경
사무실과 한 건물에 있는 세이브 모어 슈퍼마켓이다. 이 마리나 몰은 한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태국 일본 미국의 쌀을 팔고있다. 일본쌀이 Kg당 73페소. 한화로 1,825원, 20Kg에 36,500원이다. 우리쌀 가격과 맞먹으니 비싼 수입쌀이다. 70년대 까지는 세계의 곡창으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 필리핀이다. 국제 미(米)작 연구소가 이곳에 있고 마음만 먹으면 일년에 삼모작도 가능한 필리핀이 얼마전 국제 쌀 가격의 폭등으로 일반 소매 가격이 배로 올라 쌀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운 나라 국민들의 부지런하지 못한 면과 정부의 정책 부재, 오랜 독재의 후유증이 모두 이유가 될 것이다. 식량 주권 이야기가 오래 전 부터 나온 터에, 쌀 이외엔 식량자급률이 형편 없는 우리 나라는 어떤 준비가 있는 것인지...
싱싱한 생선을 보니 얼큰한 매운탕에 소주 한 잔 생각이 절로 난다. 느끼한 아침 식사 뒤에 당연한 Pop Up이지.
산 꼭대기 Tops에 갔다. 차에서 내려 이 곳에 안내한 종훈이 문제를 낸다. "형님들, 이 곳에 한반도가 있지요. 찾아 보세요." 빙 둘러 보니 바로 바다 한 가운데 한반도 모양의 섬이 있다. 마침 맞게 아래쪽으로 일본열도 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고향 생각 나면 이곳에 와서 한국 노래를 흥얼 거리고 부모님 생각하며 절도 하지요." 해발고도가 한 5백 미터 쯤 되려나...산 꼭대기 바람이 쌀쌀하다.
구멍 하나마다 음식을 싸와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인데 모던한 디자인으로 사진발이 좋다고 종훈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필리핀 사람들은 추워서 그런지 안보이고 외국 관광객들만 몇 명 사진을 찍고있었다.
Always Somewhere (Scorpions)
<네이버 위키 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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