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얼마나 이 글을 쓸지 말지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거짓말이라고 할까봐서요.. 하지만 저는 직접 겪은 일이니 안 쓸 수가 없고 또 저의 이 미천한 글이나마 관세음보살님께서 우리 중생을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계시는지를 여러분께 억만분지 일이나 밝힘으로써 우리 불자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계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의 빛을 느끼시길 바랄 뿐입니다.
저는 1964년도 생 여자로서 집안은 무교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상시는 제사를 지내다가 (유교) 가끔 점집에 가는(샤마니즘) 엄마밑에서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그당시는 대부분 그렇게 지내는 가정이 많았습니다.(1970년대 초반) 저는 부처님의 이름도 듣지 못했고 보살이라는 이름도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숙세의 인연으로 어릴 적부터 홀로 앉아서 참선을 하면서 (그게 참선인지도 몰랐지만)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 홀로 참선공부를 하다가 의문이 생기는데 물어볼데가 없었습니다. 학교 선생님께 여쭈었지만 대답을 못들었습니다. 엉뚱한 질문한다고 혼만 났지요. 그래도 존경하는 선생님께 계속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다 선생님께서 결국 나도 모른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온 동네를 다 뒤지면서 물어볼데를 찾았습니다. 시장에 가보니 죄 먹을 식당, 입을 옷가게, 뺑끼가게 (페인트가게) 문방구점이고 먹거나 입거나 팔거나 하지않는 곳은 교회와 무당집 뿐이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물어봤는데 목사님은 집에나 가라고 대답을 안해주셨어요. 질문도 이해를 못하시더라구요. 다른 교회에 몇군데 갔었는데 어린애가 묻는 말이라 비슷했습니다. 무당집은 가봤는데 울긋불긋한 사람들 그림이며 누런 불상이 있더군요. 그런데 상위엔 돼지 머리에 ,춤추다가 칼꽂고 칼 던지고 굿을 하는거에요. 그래서 거기는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생명을 죽이고 그 머리를 올려놓고 하는 곳이라면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더는 물어볼 데가 없었습니다.
저는 하늘에 대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 동네는 다 돌아 보았는데 더는 물어볼데가 없으니 저를 인도해달라고요. 그리고 그 다음날에 집을 떠나서 ,동네를 처음으로 떠나서, 멀리 떠난다는 것이 초등학교1학년짜리니까 길을 외울만큼 걸어서 갔다가 집에 돌아오고 돌아오고 해서 5일째만에 관음사에 도착했습니다. 거기 갔더니 무당집에서 보던 누런 불상이 있고 울긋불긋하진 않았지만 침착하게 색칠해 놓은 집이 나왔습니다. 거기도 아무 것도 팔진 않았어요. 그냥 이쁜 색칠한 집과 누런 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이 아주 마음에 들었읍니다. 집보다 더 마음이 편해서 그 뒤로는 주말이면 밥만 먹으면 그 곳으로 와서 지냈습니다.
어린애라 그런지 그렇게 만 삼년을 다녔건마는 스님도 아무도 나한테 물어보거나 신경써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당시는 법회도 없었고 그저 법당가서 절하고 가는 사람(주로 할머니)뿐이었습니다. 우두커니 법당가서 누런 동상(불상)의 아저씨 얼굴 보고 수염 한 번 보고 근처 산에서 놀다가 참선하다 집에 가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초등3년말) 저의 그 문제를 풀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관음사가 처음 가본 무당집과 비슷하게 생겨서 계속 물어보길 미루었었거든요. 왜냐하면 잡신에게 물어볼 수는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만 삼년동안 관음사에 다니면서 돼지머리를 자른다던가 굿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 한번도 못봤거든요. 항상 청정한 향을 피우고 꽃이 있고 초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법당에 가서 불상을 보면서 저 누런 상(불상)은 하나의 상징일 것이다. 분명 저 누런 상은 무언가를 대신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 저 누런 상이 듣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저는 거기 빳빳이 서서 기도를 했습니다.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마음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 저는 여태 물어볼 데를 찾았는데 다 뒤져도 물어볼 데를 못찾았습니다. 여기가 그래도 가장 믿을만 하고 물어볼 만하다고 생각되어 여쭈어봅니다. 저는 당신이 누군지 정말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절을 하진 않겠습니다. 당신이 무당집에서 본 잡신인지도 만에 하나 혹시 모르니까요... 제가 예절을 지키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잡신에게 절을 하기 싫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저는 돈이 없어서 바칠 것이 없습니다. 저기 이 방 밖에 돌틈에 작은 들꽃이 피어있습니다. 잘라서 바치는 것보다 저 상태로 바치겠습니다. 저 꽃이 잘리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있는 것을 당신도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물어볼 것을 죽 물어보았습니다. 그렇게 똑같은 것을 세번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꼭 대답해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 간절함은 저에게는 뼈가 녹는 듯했습니다.
그리고는 맨 끝에 협박을 햇습니다. 꼭 대답을 해달라고.. (저 참 얼굴 두껍고 나쁘죠) 대답도 안하고 벙어리로 그냥 있을거면 당신은 왜 이렇게 색칠한 이쁜 집에서 사느냐고 사람들이 여기 와서 돈도 쌀도 놓고 가느냐고 당신도 뭔가 불쌍한 사람을 도우니까 이렇게 대접을 받을 것 아니냐고 그러니까 꼭 저의 질문에 대답을 해달라고... 안그럼 아무 것도 안하고 그저 있다면 당신은 사기꾼이니까 저기 있는 향로 엎어놓겠다고..(잡신일까봐 무척 경계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례하게 향로를 엎으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잡신이 이 말을 듣고 장난칠까봐 경고를 주는 것이니 이해하시라고 저의 이 질문에 대답을 달라고 하면서 똑같은 말을 세번 마음속으로 반복하면서 기도를 마치고 법당밖을 나왓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왔지만 평범한 날의 연속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형태로 그 대답이 올 것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미리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질문만 올렸습니다.
그렇게 몇달여가 훌쩍 지났습니다. 나는 사학년이 되었고 초 봄이었습니다.4월말. 엄마는 집밖으로 외출하시고 혼자 대문밖에서 집을 지키고 있는데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저를 부르셨습니다. 키는 중간키이고 울엄마랑 비슷한 삼십대 중반의 외모였습니다. 블라우스에 조끼를 입고 종아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폭넓은 하얀 주름치마 밑으로 단정한 카라양말에 짙은갈색 구두를 신으신 옷을 매우 단정하고 깔끔하게 차려 입으신 모습이 마치 학교선생님보다 더 선생님 같아보였습니다. 제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얘야 네가 0 0 이니? " "네 맞아요. 어서 오세요. " 하면서 안방으로 모시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제 집앞의 하수도 수채구멍의 질척한 부분을 그냥 구두발로 밟고 대문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는 대부분 골목길이 포장이 안되서 질척질척한데 우리집 대문앞엔 하수도가 있어서 일년 내내 질척질척 했습니다. 하필 가장 질척질척한 부분을 발로 밟은 것입니다. 나보다 어린 애들도 안밟는데 저렇게 잘 차려입은 아줌마가 조심성도 없이 그걸 밟다니.. 하는데 마치 언땅을 밟은 것처럼 신발에 조금도 흙이나 먼지가 안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럴리가. 하면서 나는 그 아줌마의 발자국이 난 부분을 고대로 내 발로 밟았습니다. 그랬더니 내 운동화는 완전 하수구 슬러지천지가 되었습니다. 그 아줌마는 그런 나를 보고 살짝 웃으시는 것이엇습니다. 흙을 한창 떨어내고 대문안으로 들어가서 "아줌마는 누구세요? 우리 엄마 친구분이세요?"하고 물었습니다. "아니 난 네 엄마 친구는 아니야. " 그런데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을까? 엄마 친구인줄 알고 안방으로 모시려던 나는 마루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누구세요 하고 다시 물으니 내가 누구 같니? 라고 되물으시는데 모르겠는데요 하였습니다. "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있을때 가르쳐 주고 알려주는 사람이다" 그때 내 머리속에는 " 아...점쟁이구나" 하였습니다. 그당시 집을 다니면서 그렇게 알려주는 점쟁이들이 집을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점쟁이시군요 하였습니다. 저렇게 우아한 아줌마가 학교선생님보다 더 선생님같은데 어찌 점쟁이일까 싶어 실망스러웠습니다. 제 마음은 뜨내기점쟁이(점집도 없이 돌아다니는 초보점쟁이)를 믿지 않았으므로 마루에도 모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당에 겨우내 먼지를 둘러쓰고 있던 평상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놓고 평상을 치웠습니다. 먼지가 탱탱 쓴 평상에 있는 물건을 치우고 걸레를 빠는데 그 평상위에 그 완전 하얀 새 주름치마를 입은 아줌마가 또 조심성없이 덜컥 하고 앉는 것이었습니다. 아줌마 일어나세요 먼지 많아요. 닦기도 전에 앉으시면 어떻게 해요. 하면서 일어나라고 하니 나는 괜찮다고 하는겁니다. 아줌마 옷 다버렸다고 하면서 일어나는데 세상에 옷에 먼지가 하나도 안묻었어요. 하도 이상해서 아줌마 이 치마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줌마 신발은 초칠을 했느냐고 왜 흙이랑 먼지가 안묻고 아줌마 치마는 왜 먼지가 안묻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당시 학교교실바닥(나무로 됨)에 초칠을 하면서 청소를 하던 시절이거든요.) 아줌마는 신발에 초칠은 안했다고 하시는데 정말 신발에 초칠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평상을 물걸레로 닦고 나서 아줌마를 앉게 하였습니다.
아줌마께 엄마는 출타중이시니 한두시간 있어야 오실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물드릴까요? 하고 여쭈었더니 그러라 하셔서 우물가에서 누런 양은 주전자에 물을 떠서 드렸는데 잡수시진 않았습니다.
아줌마는 저보고 이것 저것 묻지도 않는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너는 앞으로 이런 저런 일을 겪을 것이라고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말씀해주시는데 마치 과거를 이야기하듯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하나도 좋은 것이 없었어요. 정말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럴때 엄마가 오셨습니다. 엄마가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점쟁이 아줌마가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점쟁이인데 뭐든지 물어보세요. 하지만 돈은 한푼도 받지 않습니다. 하시는 겁니다.
엄마가 몇가지를 물어보시는데 말끝마다 귀신이네 귀신이네 쪽집게네를 연발하면서 감탄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 끝에 저는 어른들이 이야기 하시니 어린애가 낄 자리가 아니라서 방안에 들어가 공부하려고 했더니 그 아줌마는 내 팔을 딱 잡더니 몇발자국 걸어가서 엄마 못듣는 자리에서 나는 너때문에 이 집에 온 것이지 다른 이유가 없으니 방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내 옆에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줌마는 엄마한테 이 딸은 절에 가서 스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절에 데려다 주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절에 가면 큰 스님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주 큰 스님은 아니고 약간 큰 스님이라고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 엄마는 중이 되라는 말을 들으시더니 그 왜 막대기 뚜들기면서 쌀얻으러 다니는 거지가 중 아닌가? 내 딸이 거지가 되란 말인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점쟁이가 왔다니까 놀러온 옆집아줌마들도 맞아 중은 쌀얻으러 다니는 거지야 하였습니다. 결혼도 못해.하면서..나를 측은하게 보았습니다. 그당시 저는 한 반이 100여명이 되고 한 학년이 22반이나 되는 그런 학교에서 상장이란 상장은 다 타면서 거의 전교에서 놀던 아이였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를 받고 자랐습니다. .
그 점쟁이 아줌마 혼자서 스님은 좋은 것이라고 알려주려 했지만 인원수에 밀려서 말이 씨가 안먹혔습니다. 동네 아줌마는 중이 뭐가 좋냐고 네 엄마가 맨날 자랑하던 딸이 고작 커서 중이 된다니 니네 엄마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중이 좋은 것 같진 않고 거지가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아줌마를 따라서 한 번은 절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줌마 내가 중이 될지 말지는 거기 절에 한 번 가보고 정하면 안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가보고 정해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곳은 아주 먼 곳이었습니다. 버스타고 한시간 반이나 가야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럼 아줌마가 날 데려다 주고 우리 집에 도로 데려다 줄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아줌마는 날 데려다 주겠지만 그 절 앞에서는 혼자가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아니 왜요? 같이 가면 같이 가지 왜. 아줌마는 거기까지 갔다가 딴데 가고 ,나혼자 산속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집엔 어떻게 오냐고 물었더니 걱정을 말라고 스님들이 다 나를 버스태우고 데려다 준다는 것입니다.
부득불 아줌마는 그 절문앞에까지만 날 데려 가고 바빠서 들어가진 못하고 딴데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만 말하고 그 아줌마가 데려다 줬다고 하면 스님들이 어련히 알아서 너를 너네집까지 잘 데려다 줄거라는 겁니다. 그럴리가 있을까????
나는 어린애였고 오늘 처음 본 그 아줌마만 믿고 가다가 아줌마 가버리고, 산중에 나 혼자 남으면 집으로 오는 버스도 모르고 돈도 없고..길도 모르고 .. 1970년대 초반이라 ...완전 길 잃은 고아가 되는 것이엇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안간다고 했습니다. 산속에서 비 다 맞고 아무 것도 없는데서 며칠 버티다 아무도 없으면 죽게 될 것이라고요. 그랬더니 그 아줌마는 나를 보고 절에 테레비도 있다고 걱정 안해도 된다고 했지만 ...이미 나는 그 아줌마를 따라 산에 가는 걸 포기했습니다.
엄마보고 엄마 나 절대 저 아줌마 따라가게 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면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줌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내 이름을 말하겠다고 하세요. 아무도 묻지도 않았는데요.
내 이름은 아바로키테슈바라다 합니다. 그래서 뭐요? 하고 물었더니 내 이름은 아바로키 테슈바라다. 다시 물었더니 다시 내 이름은 아바로키 테슈바라다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아줌마. 아줌마 머리는 검고 눈이며 코며 영락없는 한국사람인데 왜 이름은 미국이름이에요? 아줌마 미국사람이에요? 한국말도 잘하는데...한국이름은 없어요? "하였습니다. 한국이름도 있다면서 내 이름은 관자재라 하기도 하고 관세음이라고 하기도 하고 줄여서 관음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였습니다. 아줌마 이름이 뭐가 그렇게 많아요? 관음? 성이 관씨고 이름이 음이네. 중학생이던 오빠에게 관씨가 있냐고 물었더니 관씨는 중국성이라고 친구들중에 드물지만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 그런데 관음..아줌마 나 관씨는 처음 들어봤지만 관음사는 아는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줌마 말이 ,맞다고 내가 바로 그 관음사의 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 정색을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아줌마 저 그 관음사 잘 알아요 . 자주 가요. 근데 관음사의 관음이 사람이름이었나요? 아줌마가 주인이군요? 그랬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절이 아줌마 이름을 붙인 것이라니...아줌마 그런데 그 관음사에서 어디 아줌마 방이 있나요? 다음번에 놀러가면 아줌마를 또 만나 보게요. 알려주면 찾아가겠노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줌마는 말을 바꾸면서 자는 방은 없다고 했습니다. 아줌마가 그 절의 주인이면 자는 방이 있을 것 아니냐고..내가 되물었습니다. 그 아줌마는 법당의 누런 상이 잇는 곳이 자기 방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는 잘 수 없잖아요 밤에는 어디서 자요? 하니까 밤에는 이 절뿐 아니라 다른 절도 많아서 다른 곳으로 다닌다고 했습니다. 밤에 거기서 자지는 않는다고요. 그럼 아줌마를 그 절에 가도 다음에 또보지는 못하겟네요. 하니까 다른 절도 다니니까 그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는 곳에서 또 그 아줌마가 의심이 갔습니다. "그러니까 아줌마는 절의 큰 방에서 낮에 있다가 밤에는 다른 절에 가고 또 거기서도 다른 절로 가고 그런단 말이죠?" 내 생각에 통금이 있던 시절에 그 아줌마 말은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이었죠. 밤에 12시 넘으면 아무데도 못다니던 시절이거든요. 그저 관음사에 자기가 주인이지만 자는 방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줌마는 이번에 나와 우리 엄마 오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주로 사람들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른다고.. 내 이름을 못들어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나도 엄마도 아무도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린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멍-한 얼굴로 한번도 못들어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줌마는 내가 그래도 꽤 쪼금 유명한 편인데 한번도 내 이름을 못들어보았느냐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쯧쯧하고 혀를 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그 아줌마를 비꼬았습니다. 아줌마가 가수냐고 탈렌트냐고 유명하게..테레비 나오냐고.... 자기가 자기보고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 처음보았다고..하면서 비꼬았습니다.
그 아줌마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밝혔지만 우리는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습니다. 엄마께 엄마 관세음보살이란 이름 들어봤냐고 내가 다시 물어봤습니다.
엄마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시더니 "처녀보살 선녀보살..이런건 들어봤거든...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이 점쟁이 이름이 맞다" 그러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러면서 저는 한 편으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기껏 잡신피한다고 벼르고 별러서 택한 곳이 관음사였고 관음사에 기도했고 오늘 드디어 관음사에서 어떤 아줌마가 왔는데 결국 점쟁이였으니까. 관음사가 점쟁이가 사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된거죠. 풀이 죽었습니다. 그만큼 불교에 ㅂ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아줌마는 절 보고 내 평생에 관하여 말씀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평생일에 대해 죽을 때까지 일어날 일을 다 말씀해주셨습니다. 뭐든 물어보는 것마다 다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미래의 일을 과거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커서 결혼하면 반드시 이혼하고 딸을 하나 낳는데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늦지 않게 시작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줌마가 정말 싫었습니다. 아줌마 나는 결혼하기 싫지만 만약 결혼한다면 이혼은 안할 것입니다. 이 동네에 이혼한 사람 하나도 없어요. 이혼은 인생 끝장인 사람이나 하는 것이어요 왜 저보고 그런 인생을 살라고 하시나요? 저 열살밖에 안먹었어요. 하였습니다.
아줌마는 앞으로 네가 어른이 되는 세상에는 이혼이 흔한 세상이 되고 흉이 되지 않으며 반드시 이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혼안한다고 막 우겼습니다. 왜 나보고 막간 인생 살라고 하느냐고 아줌마 나쁘다고 하면서 울었습니다. 불쌍한 딸은 어쩌고 나혼자 공부하느냐고 하면서요.
그 아줌마는 그것은 세속법이다. 하셨습니다. 세속법이라는 말이 처음듣는 말이라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세속법이라는 말에 세상과 다른 법이 있다는 뜻으로 가슴에 확 들어왔습니다.
세세생생 가족에 얽매여서 가족을 못벗어나며 수도 없는 먼지같은 수의 겁을 윤회하면서도 벗어날까하면 또다시 그 구렁에 또 빠진다고 하시는 겁니다.
너는 이다음에 아이를 둘 낙태하는데 그 죄로 지옥에 떨어진다. 또 지옥에 가요? 이번에 또 지옥에 갑니까? 하니 그렇다고 하십니다.
(저는 전생에 지옥에 떨어져 고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옥에서 수많은 세월을 보내고 고생을 하다가 나와서 윤회를 거듭한 후에 사람이 되어서 나오면 다시 또 지금 네 남편을 만나서 다시 살아야 한다.
빚을 다 갚을 때까지 .
그러니 아이를 남편에게 주고 이혼한 다음에 너는 공부를 해야 한다.
열심히 해야 한다고..당부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 얻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가지고 결혼하고 애낳으며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이상태로 어떻게 진리에 도달합니까?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진리에 도달합니까?
그 답은 출가하는 것이 빠르고 출가하지 않고 닦는 것은 오랜 세월이 걸리거나 인과에 얽혀 불가능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1편에 이어서-----)
보통 사람의 경우에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낳고 살다가 아이 키우고 결혼시키고 늙어 죽죠. 이렇게 사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에 진리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것이 그당시 제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발원했었습니다.
관음이라는 외자이름을 가진 아줌마는 절보고 결혼하면 서로 전생의 빚을 갚아야 하니 그 구렁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미처 다 갚기도 전에 또 새로운 업을 짓는 것으로 윤회가 끝날 날이 없다는 참으로 무서운 말씀을 했습니다.
그말이 진실이라면 진리를 알려는 사람은 출가를 해야 하고 애욕을 떠나 가정을 벗어나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진실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잠자코 있었더니 아줌마는 나보고 너 이전에 날 본 기억이 있지? 하고 물으십니다. 저는 아줌마 오늘 저희 집에 처음오신 것 아닌가요? 전에도 오셨었나요? 전 기억이 없네요. 했습니다.
아니 이 집에 오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전에 네가 날 본 적이 있는데...기억이 나지? 하십니다. 아니요. 저 아줌마 오늘 처음봐요. 하였습니다. 이렇게 세번을 은근히 물어보셨지만 나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줌마는 나에게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니가 이다음에 커서 산골에 조그만 땅을 하나 사는데 거기에 집을 지어서 나에게 바치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별로 좋지도 않은 땅인데 그걸 꼭 바치려고 한다. 그걸 이루려면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시는 겁니다.
그 때 내 마음은 " 치, 점쟁이 아줌마한테는 절대로 아무 것도 안준다" 하고 있었습니다.
아줌마는 나의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마치 내가 지금 그 일을 한 것처럼 막 야단을 치기도 하고 알려주기도 하면서 저를 설득하기도 하면서 참으로 진땀을 흘리며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게다가 나는 그 아줌마가 점쟁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막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점쟁이는 돼지 머리 잘라서 상차리고 칼 던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말을 징글징글하게 안듣자 아줌마가 드디어 나에게 야단을 치셨습니다. 너 왜 내 말을 그다지도 안듣느냐고.. 그렇다면 왜 관음사에서 불상앞에서 말 잘듣겠다고 시키는대로 듣겠다고 도와달라고 했느냐고 니가 도와달라고 해서 말 잘듣겠다고 해서 왔노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것은 나 혼자만이 알고 있던 ..식구들에게도 말 안하고 입밖에 내지도 않고 관음사의 불상앞에서 빳빳이 서서 기도를 간절히 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걸 안다니.....비록 관음사에서 왔지마는 이 사람은 사람이니까 내 기도를 당연히 모를거라 생각을 했습니다.그런데 나는 입밖에 내지도 않은 것을 알고 왔다니 이 사람은 겉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기가 죽어서 그 아줌마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시는 말씀이 내가 미래에 한다는 일들이 완전히 지금의 내모습과 너무 달랐고 생각도 다르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미래는 완전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서 울면서 아줌마 빨리 가라고 아줌마를 못믿겠다고 했습니다. 미래를 더이상 알고 싶지 않다고...살다보면 알겠지 .이제 그만 가시라고 했습니다. 그 아줌마는 내 태도가 공손했다가 또 변하자 왜그런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줌마. 나는 관음사가 점쟁이 집인지 모르고 기도 했으니 미안하다고 다음엔 다시는 기도 안하겟다고 했습니다.
그 아줌마는 점쟁이 아니라고...하면서 저를 만류하였습니다. 분명 다른 아줌마한테는 조금 전에 자기 입으로 점쟁이라고 했는데...공짜라고 하면서..
아줌마는 다시 나를 설득했습니다.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열심히 나를 설득했습니다. 오전 10시쯤에 오셔서 점심도 굶고 컴컴해지려는 시간까지 나를 붙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아줌마한테 내 평생에 일어날 일에 대해 다 들었습니다. 너무나 고생바가지 인생이었습니다. 그러시더니 왜 네가 이런 생고생을 하려고 하느냐 .그냥 나를 따라 산에 가자꾸나. 하십니다.
나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 아줌마 말대로라면 산에 가서 거지가 되던가 아님 고생바가지 인생을 살던가 였습니다. 아줌마 빨리 우리집에서 나가라고 여기 우리집이라고 울면서 아줌마 말 안믿고 아줌마 가면 아줌마가 말한 것 다 잊어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아줌마는 안가고 끝까지 남는 것이었습니다.
이때까지 네가 반드시 집을 나와야 한다고..그 후론 늦는다고.. 반드시 이혼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그 아줌마 등을 밀었습니다. 대문밖으로 쫒아내려구요 그러나 나는 어린애고 아줌마는 어른이라 나의 서슬에 밀려 대문앞까지 쫒기더니 대문바로 앞에서 앉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애의 힘으론 그 아줌마를 집밖으로 내쫒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 아줌마 손을 할퀴었습니다. 아줌마 손에서 피가 났습니다. 기저귀찬 아이한테도 맞고 다닐만큼 나는 지독한 순둥이였지만 내가 평생 아무도 돕지 못한다는 말씀을 들었을때 그 아줌마가 마구니로 보였습니다. 아 마구니가 내가 아무도 돕지 못하도록 기를 쪽 빼려고 왔구나..그 때저는 이런 식으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구니가 사람몸으로 왔으니 그것도 어른 몸으로 왔으니 대문밖으로 쫒아내야겠는데 힘이 없어서 할퀴었던 것입니다. 관음아줌마는 기가 막힌듯 왜 너를 돕는 사람을 할퀴느냐고 물어보십니다. 나는 피가 나면 안되는데 하면서..
하지만 나는 미안한 얼굴도 전혀 없었습니다. 아줌마 가시라고 ..다 들었으니 가시라고 여러번 말씀 드렸고 미래 알고 싶지도 않고 더 알고 싶은 마음 없다고 했고, 살다보면 알아지겠지 말씀도 다 드렸는데 왜 안가시면서 악담만 계속 하시느냐고.. 저도 오래 참았다고 오늘 하루 종일 악담만 들으면서 참을 만큼 참았고 더이상은 못참아서 가시라고 벌써 몇번 말씀드렸느냐고 그런데도 또 악담만하니 이제 더는 못참겠다고 했습니다. 나도 무서운 면이 있다고 날 어리다고 깔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줌마는 성냥꼴만하게 패여서 피묻고 찢어진 손등을 문지르면서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셨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또 미래에 일어날 일을 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발 가시라고 저는 귀를 틀어막았습니다. 안듣겠다고... 그 때 그 아줌마는 이제 앞으로 너의 기도는 듣지 않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앞으로 네가 커서 어른이 되어서 참회를 해도 네 기도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영원히요? 그렇다고 합니다. 다라니기도를 해도 들어주지 않을거라 하십니다. 그게 뭔데요? 하니 나중에 알게 된답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습니다. 아줌마 말대로 행동해도 안들어줄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십니다. 네가 다른 보살님께 부탁을 해도 안들어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그 아줌마의 말을 듣고나니...아 이 아줌마는 마구니가 아니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마구니는 자기 말만 들으라고 하지 안들어준다는 말은 안하니까요...
그 한 마디에 나는 이 아줌마가 날 도우러 오신 분이라는 신심이 들었습니다. 마구니가 아니라 날 도우러 오신 분이라고... 나는 그 때부터 아줌마 말씀을 꼬박꼬박 들었습니다. 해는 져서 컴컴해지려고 했습니다.
아줌마가 이제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나는 아줌마 팔을 붙잡았습니다. 아줌마 진지 잡숫고 가셔요. 아줌마가 진짜든 아니든 아줌마 오늘 하루 너무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점심도 굶으셨잖아요. 그러니까 저의 집에서 저녁을 드세요. 제가 엄마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때 부엌에서 생선국(동태찌개)끓이는 냄새가 났습니다. 그 아줌마는 " 사바는 탁해서 먹을만한 것이 없다. 또 만약에 내가 밥을 먹을 것 같았으면 차라리 물을 한 방울이라도 먹었을 것이다. " 하시는데 그토록 비지땀을 흘리며 나를 가르치셨건만 되돌아 생각하니 정말 하루 종일 물 한방울도 안드셨습니다. 하루 종일 죽도록 고생한 아줌마한테 나는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정말 미안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 아줌마랑 더 있고 싶었지만 더 붙들 명목도 없었습니다.
대문앞에서 저는 그 아줌마한테 다시 물었습니다. 아줌마 이제 아줌마를 보면 다시는 못보나요? 영원히요? 그렇다 하십니다. 저는 이제야 그 아줌마를 믿게 되었는데 아줌마는 가실 것입니다. 나는 그 아줌마한테 나를 데리고 절에 데려가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찼습니다. 하지만 벼룩도 낮짝이 있다고 ..그렇게 구박하고 때리고 발로 엉덩이 차고 손으로 할퀴어 피까지 낸 분한테 또 부탁할 면목이 없었습니다.
저는 안녕히 가시라고 공손히 인사를 하고 대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줌마는 금방 대문앞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대문을 도로 열었습니다. 아줌마는 거기 서계셨습니다. 나는 다시 공손히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하는데 울음이 목까지 올랐습니다. 이제야 이 아줌마를 믿게 되었는데...... 아줌마는 다시 대문을 닫고 다시는 열어보지 말라 하십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대문을 열었습니다. 아줌마가 가신 것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다섯번이나 대문을 열면서 확인했습니다. 아줌마는 이제는 정말 안녕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대문을 열지 말고 집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아줌마께 다시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줌마 안녕히 가세요. 하고 대문을 닫았습니다. 바로 열지 않고 5초쯤 후에 대문을 열었습니다. 아줌마는 없었습니다. 겨우 5초 후에 열었는데 아줌마는 외길인 길목의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 아줌마를 보내고 힘들고 긴 하루를 보내고 나는 그 날 있던 일을 다 까먹었습니다.
내가 사십세가 넘어서 인터넷이 생기고 인터넷을 하면서 저는 관세음보살님은 경전상에서 보는 분이고 그 아줌마는 점쟁이라고 생각을 했고 연결을 못지었습니다.
그러다가 관세음보살영험기를 읽다가.... 관세음보살님이 여자의 몸으로 또 특히 젊은 아줌마의 몸으로 다닌다는 점 흰옷을 즐겨 입으신다는 점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는데...특히 그 말투....완전히 그 아줌마 말투였습니다.
나는 이전의 기억을 되살려서 그날 일을 다 기억했습니다. 그 아줌마가 말했던 부분은 지금 까지 다 맞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토록 많은 죄를 지었고 아이도 둘이나 낙태하여 죽였습니다. 초기에 모르고 감기약을 먹었고 두번째는 병때문이었지만 낙태를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분 말씀이 하나도 틀린 부분이 없었습니다.
나는 관세음보살님을 어릴 때 친견했던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지도 모르고 평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앞으로 내 인생에 대해서 내가 죽을 때까지, 그 분께서 가실 때까지 누누히 말씀하시던 것을 다 기억했습니다. 나는 정말로 땅을 샀고 거기에 작은 선원을 지어 관음선원을 지으려고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릴 때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 것도 다 까먹었습니다. 아 다 맞는구나.
선원을 지을 때 힘들때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하신 것까지 다 맞았습니다. 바로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그 때 집중적으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참 있다가 내가 그 분을 때리고 욕하고 할퀴고 발로 찬 것까지 기억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그 분은 가지 않고 끝까지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또 내가 앞으로 영원히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잃어버린 것도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박박우겨서 아줌마 말은 안들을테니까 빨리 가라고 막 조른 것도 생각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그날 끝까지 저를 염려하여 가르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10살때 36년 후의 변한 세상과 제 인생에 대해 중요한 부분을 다 하나하나 짚어주시며 애욕을 끊고 가족과 애착을 끊고 공부에 매진하라고 하신 그 분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저는 이제야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인터넷을 보니 관세음보살님은 후기 경전에 있고 사람들이 창작한 허구의 창작보살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읍니다. 그런데 제가 입을 다물면 정말 관세음보살이 창작보살인지 아닌지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제가 이렇게 글을 씁니다.
사람들 중에 관세음보살님이 창작보살인지 아닌지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관세음보살님은 경전에 나온 그대로 32응신을 나투시며
직접 사바에 노니시면서 인연있는 중생들을 단 한중생도 남기지 않고 하나 하나 다 굽어살피시는 분이라는걸 압니다.
제가 이번 생에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나서 여기 지구에 또 태어나면
관세음보살님이 창작보살이다 아니다가 지금은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하겠지만
언젠가 이것이 커져서 세월이 갈수록
큰 파장을 일으킨다면 그 죄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단 한 중생이라도 믿음을 잃게 한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클 것입니까?
삼보를 비방하는 죄가 얼마나 큰지는 경전을 보십시요.
오무간죄에 해당합니다.
지옥에 가지 마십시요. 거기는 정말 1초도 가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불쌍한 중생들의 의지처는 불법승 삼보 뿐인데
그 단하나의 의지처를 훼방놓지 마십시요.
잘 알지 못하시면 묵언하시기를...
못믿겠으면 열심히 기도하십시요.
참회하시고 열심히 기도하십시요
가피가 왜 없겠습니까?
가피가 있을 때까지 참회하십시요.
수많은 불자들은 참회하고 정진하고 기도하면 정성만큼 가피를 얻습니다.
제가 제 전생을 기억하거나 ,전생에 지옥에 간 것과 그 지독한 고통을 기억하는 것도 모두 불보살님의 가피였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아무에게도 배우진 않았지만 저절로 뭔가를 외웠습니다.
토막났지만 외웠습니다. 외우면서 그게 뭘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어 절에 가서 보니 바로 신묘장구 대다라니의 앞구절과 중간구절 끝구절이었습니다.
제가 남보다 뭐가 잘나서 전생을 기억했겠습니까.
바로 다라니 기도를 전생에 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생은 불교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부모님 모두 절에 단 한번도 안가보신 분입니다. 저는 그런 집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보살이나 부처님이란 말도 못들어보고 자랐습니다. 관음사란 말도 바위위에 페인트로 빨갛게 칠한 것으로 한글로 썼으니까 초등학생이 읽었지 한문으로 썼으면 못읽었을 것입니다. 관음사란 말이 무슨뜻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저는 인연이 되어 관음사에 가서 기도하였고 그 응답을 들었는데 사람몸으로 그것도 아줌마의 몸으로 직접 집으로 오셔서 아침10시부터 저녁 7시가 넘도록 하루 종일 그 아줌마한테 혼나기도 하고, 또 불쌍하다고 저를 위해 눈물을 흘리시고, 또 혼나고 하면서 배웠습니다.
저는 그 아줌마를 믿을 수가 없어서 말도 징글징글하게 안듣고 가라고하고 등을 밀고 엉덩이를 발로 차고 손으로 할퀴고 하면서 저항하였습니다.
결국 그 분께 노여움을 샀습니다. 말을 안들었으니까요. 약속을 안지켰죠. 말을 잘듣겠다고 기도해놓고 정작 오셨을 때는 말을 안들었습니다. 그 분께서 네 기도는 안들어줄거라고 하셨지만 그 후로 가실때까지 가장 중요한 말씀은 다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에는 인과가 없다고 하지만 지금 이 세상은 인과가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를 둘 뗀 죄값으로 죽으면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러니 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또 관세음보살님을 할퀴어 피를 낸 5무간죄를 지은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관세음보살님은 저를 위해서 그 후로도 몇시간을 더 계시며 끝까지 제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관세음보살님의 말씀대로 정말 관음선원을 지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작지만 이미 땅도 사놓았었습니다.
제 소원은 이 사바의 모든 중생이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아래 열심히 공부하여 윤회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돕는 것이 제 소원이기도 합니다.
제가 관세음보살님의 은혜를 입고 그 분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저야말로 마구니며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용기를 내서 쉽게 믿지 못할 말을 하는 것은 관세음보살님이 저처럼 보잘것 없는 단 한사람을 위해서도 피땀을 흘리셨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모두 사실이며 거짓이 아닙니다.
불보살님은 저희들을 부모가 눈동자처럼 자식을 살피는 것보다 더 자세히 살피면서 보살피고 계십니다. 우리가 몰라서 못느끼고 모르는 것 뿐입니다.
관세음보살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같은 지독한 죄인을 위해서도 피땀을 흘리신 그 분께 감사를 올립니다. 너무 염치가 없어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못 드리겠습니다. 용서해 달라는 말씀도 못드리겠습니다.
그저 저를 도와주시러 오셨는데도 못알아뵈었고 , 감사의 말씀을 못드려서 감사를 드리며 염려하신대로 되지 않도록 애를 쓰겠다는 말씀을 올리면서 여러분 모두 견성하고 윤회를 벗어나 함께 해탈하길 바랍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생명들을 함께 진리의 세계에 들도록 하십시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