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초강목」자오(慈烏)편에 보면 까마귀는 네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자오는 태어나서 60일간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 후 그 어미에게 60일간 먹이를 날라다 먹인다고 했다.
이를 반포(反哺)라 하며 새뿐만 아니라 짐승에게 은혜를 갚는 보은의 정이 있다는 개연성의 표현이 돼왔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개에게 이 보은의 정을 과시한 사례는 허다하다. 로마 사비누스의 개는 주인이 처형당해 강물에 던져지자 뛰어들어 사체를 끌어올리려다 기진하여 더불어 죽고 말았으며, 비극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의 애견 디스비는 주인이 갇힌 감옥 둘레를 맴돌다가 인근 세느강에 몸을 던졌다.
술에 취해 들불이 조여오는 것을 모르고 자고 있는데 그의 애견이 몸에 물을 적셔 불을 꺼 살려낸 오수(獒樹)의 개를 비롯, 고려 말 눈 먼 주인집 고아를 이끌고 동냥을 해서 먹이고 먹고 나면 우물가로 인도하여 물을 먹여 길러, 정삼품의 품작을 받은 개의 보은 이야기는 동서고금에 적지 않다.
한데 개 아닌 야생의 캥거루의 보은 이야기가 잠잠했던 동물의 반포관(反哺觀)에 각광을 비치고 있다. 지난주 호주의 한 농장주인이 강풍에 부러진 나뭇가지에 맞아 기절을 했다. 그 농장에서 방사하고 있던 캥거루가 이를 보고 약 300m 떨어진 농장주의 집에 달려가 앞발로 노크를 계속, 수상하여 뒤따라가 사경의 주인을 구조했던 것이다.
이 캥거루는 10년 전 농장 앞 도로에서 차에 깔려 죽은 어미의 배주머니 속에 살아 있는 것을 데려다 루루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농장에서 방사해왔던 암놈이다. 학자들은 새끼 때부터 사육했기에 신뢰감이 생겼을 것이며, 야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로 보았다.
애덤슨 부인이 아프리카 밀림에서 사자새끼 한 마리 주어다 엘자란 이름으로 친딸처럼 길렀다. 혼기가 닥쳐 야생으로 돌려보내고자 부인은 피나는 노력을 했다. 사람의 때가 묻었다 하여 야생의 사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자 생육을 듬뿍 들려보내 유혹했지만 고기만 빼앗기고 사랑은 주지 않았다.
이렇게 힘들여 야생으로 시집보낸 엘자가 새끼 세 마리를 낳아 거느리고 친정을 찾아왔을 때 애덤슨은 며칠을 붙들고 울었다. 짐승의 보은이 신기한것은 아닌데 캥거루의 보은이 새삼스러운 것은 세상이 배은(背恩)구조로 틀이 굳어져가는데 대한 반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