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뒤편
ㅡ이승하 시인과의 만남
전윤호
이승하 시인은 해맑은 소년처럼 생겼다. 도무지 제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마흔이 넘은 1960년 생이고 중앙대학교 문창과 교수이며 8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며 3권의 평론집을 낸 평론가이기도 하다. 나이에 비해 오히려 많은 활동을 한 그이지만 그의 모습은 곱게 자란 부잣집 막내아들처럼 여리게만 보인다. 인상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에게 그는 함정이다.
최근 그는 지훈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다. 2002년 6월 15일 시상을 앞둔 그를 시인협회에서 만났다. 그는 시인협회 사무국장이기도 하다. 젊은 날 고생을 많이 했다던데 하고 말문을 열어보았다.
“가세가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요. 경찰을 하시던 아버님이 그만 두시고 어머님이 학교 앞에서 조그만 문방구를 해서 생계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무척 무서웠어요. 다섯 살 위의 형님이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집안의 희망이었는데 어느 날 고시공부는 안 하고 문학을 하겠다고 선언한 거예요. 그 날 이후 아버지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나는 그때 김천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가출을 했지요.”
그 후로도 그의 가출은 계속되고 당연히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말았다. 그 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 결국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끝냈다. 문제의 그의 형은 문학평론가 이동하 씨이다. 공부할 때 독서실과 형의 하숙집에 주로 있었는데 그 때 형의 방에는 법률서적 대신 문학서적만이 가득했고 결국 그도 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 문학에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중학교 때 문학적인 소질을 발견한 국어선생님께 3년 동안 지도도 받았다. 그가 등단한 것은 대학 4학년 때 신문 신춘문예를 통해서였다.
유약해 보이는 외모지만 그는 억척스럽게 살았다. 졸업 후 쌍용그룹 홍보실에서 7년 반 동안 근무했는데 그동안 대학원도 다니고 강의도 다녔다고 한다.
“일주일 중 하루는 아예 회사에 안 나가고 학교에 다녔지요. 윗사람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갈림길에 봉착했지요. 직장에서 대리로 있었는데 과장 승진 시험을 보든지, 아니면 대학원에서 박사논문을 쓰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그래서 미련 없이 직장을 버리고 박사학위를 받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