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깊이 묵상했던 드라마틱한 요나의 이야기가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요나서 3장 니느웨를 향한 요나의 외침과 그 외침으로 인한
변화에 대한 말씀을 묵상했었습니다.
그때 느낀 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요나는 다시 주어진 기회를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하룻길을 다니며 니느웨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외침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 이야기가 당시에 어떻게 들렸을까요.
적국에서 한 선지자가 왔습니다.
옷은 무엇이 묻어 있는지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자국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무어라 외치는 처량한 모습!
그런데 하루 종일 미친 사람처럼 외치고 다닙니다.
자신들이 40일 후에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들이 믿지 않는 이스라엘의 신이
자신들을 40일 후에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멸망시킨다는 지 이유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막무가내로 40일 후에 멸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선지자의 말 한마디가 울러 퍼질 때
놀랍게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금식하고 회개하며
악에서 떠나겠다는 결단이 일어납니다.
그것도 왕에서부터 모든 백성들이 심지어 짐승까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 같은 한 도시 전체의
획기적인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도대체 말 한마디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도대체 무슨 말이기에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까?
어떤 위력을 가졌기에 이런 부흥이 시작되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저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드라마틱한 삶의 간증을 말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성경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멋들어진 강해를 설파한 것도 아닙니다.
많은 군중을 모으고 부흥집회를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는 자들도 아니지 않습니까?
부흥의 역사를 경험해 보지도 못한 자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어쩜 요나가 어떤 선지자인 줄도 모르지 않습니까?
더 놀라운 것은 요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 영혼 영혼을 사랑하면서 붙잡고 울면서
애타는 심정으로 말씀을 전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사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외치지만
니느웨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냥 명하신 것만을 외쳤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지못해 외쳐진 말 한마디가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부흥을 일으켰을까 하는 것입니다.
40일 후에는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만 외쳤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역사가 일어났는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있습니다.
니느웨의 부흥은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
분명한 것은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다는 것입니다.
부흥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 말씀이 부흥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거칠고 투박한 말 한마디, 외마디의 외침이라도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치 다이너마이트의 심지에 끝에 당겨진 불씨처럼
말씀이 서서히 니느웨 심장으로 타들어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복음의 파괴력이 그 말 한마디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늘 말씀이 역사하시면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기대 그 이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십일 후에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어쩌면 너무나 거칠고 매정하고 저주스러운 말씀이었습니다.
어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담고 있는 듯한 그런
감동이나 깊이가 있는 말씀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되고 받아 드려질 때
그 때 역사가 일어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것만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이 가능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단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가 외마디 말씀이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순종함으로 외치면
그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보이지는 것입니다.
부흥은 주님의 말씀이 외쳐져야합니다.
외마디의 외침이라도 주님의 말씀을 붙잡기만 하면
그것만으로 부족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슴 깊이 이 말씀의 울림을 듣는 자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으며
그 말씀의 성취를 경험하는 것보다 설래 임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성경의 지식보다도
말씀에 대한 설교의 감동보다도
말씀 그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주 감동하며 눈물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삶의 변화와 능력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얼마나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설명과 해석을 늘어놓으면서도
연약하고 무능하다고 핑계하고만 지내왔습니까!
문제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씀가운데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하지만 너무나 선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 없이
그저 그렇게 말씀을 우리 머리로 우리 가슴으로만 만족하고
이해하고 감격하는 것만으로 말씀에 반응하고 살지 않았던가요.
말씀가운데 하나님이 오셨으면 합니다.
말씀 때문에 내가 이해하고 감동하는 것을 넘어
그분의 능력과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임재로 인해
어찌 할 수 없어 금식하고 통회할 수밖에 없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만을 믿고 경외할 수밖에 없도록 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해 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십니다.
연약한 우리의 입술로 전해지는
외마디의 선포 속에도
말씀이신 그분을 계시하시면
우리가 주체 할 수 없는 역사가 이어집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언약을 주시고 성취하셨으며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리셨기에
오늘도 말씀을 부흥을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전 한마디의 외침이라도
내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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