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구질이지만 메이저리그 특급 컨트롤 투수들이 즐겨 던지는 구질 중 하나이다. '한국산 핵잠수함' 김병현(보스턴 레드삭스)도 종종 던진다.
백도어 슬라이더(backdoor slider)는 보통 슬라이더와 그립은 똑같지만 손목을 틀어주는 방향이 다르다. 좌타자 바깥(오른 타자 몸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로 보통 슬라이더의 진행방향과는 정반대다. 주로 좌타자들을 상대할 때 많이 활용한다.
애틀랜타 시절 사이영상을 주거니 받거니하며 '투수 왕국'으로 이끌었던 우완 그레그 매덕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좌완 톰 글래빈(뉴욕 메츠)이 백도어 슬라이더를 잘 구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둘다 메이저리그 최상의 정교한 컨트롤을 자랑하는 투수들로 좌타자들을 상대할 때 백도어 슬라이더를 효과적으로 쓰고 있다. 둘 모두 좌타자 바깥쪽으로 꽉차게 던지기 때문에 타자들이 제대로 공략을 못한다.
보스턴의 김병현도 백도어 슬라이더가 일품이다. 볼스피드는 126km에서 134km까지로 속도 가감과 함께 좌타자 바깥 혹은 우타자 몸쪽으로 컨트롤이 잘 된다. 김병현의 광주일고 1년 선배인 뉴욕 메츠의 서재응은 "한국에선 몸쪽으로 몰려 얻어맞을 우려가 있다고 감독님들이 던지지 못하게 했으나 병현이는 고교시절부터 예외였다. 워낙 각이 예리하고 컨트롤이 잘됐다"며 김병현의 백도어 슬라이더에 대해 말했다.
서재응의 말처럼 제대로 컨트롤이 안돼 가운데로 밋밋하게 들어오면 난타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매덕스, 글래빈 등 메이저리그서도 컨트롤이 뛰어난 투수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는 구질이 백도어 슬라이더다.
뉴욕 양키스의 특급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34)가 경기 후반 이기고 있을 때 등판해서 156km의 빠른 공을 던지면 팬들은 깜짝 놀랜다. 분명히 스피드는 강속구이지만 볼끝이 오른 타자 몸쪽으로 파고드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변화구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리베라의 비밀 병기인 '컷 패스트볼(Cut Fastball, 일명 커터 Cutter)'이다. 볼스피드는 직구 만큼 빠르지만 막판의 변화가 심해 '예술'로까지 인정을 받고 있다. 리베라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 볼로 타자들을 제압한다. 리베라는 컷 패스트볼을 앞세워 타자들을 삼진으로 솎아내기 보다는 땅볼 타구로 가볍게 처리한다.
리베라의 영향 탓인지 양키스 동료 중에서도 선발 투수인 좌완 앤디 페티트도 심심찮게 컷 패스트볼을 구사해 재미를 보고 있다. 페티트는 올 포스트시즌서 주무기인 싱커외에도 컷 패스트볼을 많이 사용하며 강한 모습을 보여 '가을의 사나이'로 명성을 날렸다.
뉴욕의 라이벌 구단인 뉴욕 메츠의 좌완 알 라이터도 컷 패스트볼을 잘 던지는 특급 투수 중 한 명이다. 팀동료인 서재응은 "라이터의 컷 패스트볼이 제대로 구사되는 날에는 타자들이 꼼짝도 못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컷 패스트볼의 그립은 단순하다. 포심 패스트볼과 똑같이 실밥의 4군데에 걸쳐 공을 잡는다. 이처럼 그립은 직구와 같지만 투구시 실밥을 채기 위해 손목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틀어주느냐가 관건이다. 손목을 틀어주는 기술의 차이가 워낙 미묘해 메이저리그에서도 리베라 등 몇몇 선수 외에는 제대로 던지는 선수들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