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에 깼다. 다시 눈감고 있다 보니 5시. 기상.
갑자기 천둥치고 비 뿌리기 시작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님 산책 갈 채비한다. 난 밤새 방안에서 혼자 잘 자서
몰랐는데, 마루에선 로사님 밤에 또 안 좋아 새벽 2시 반엔가
선생님 깨우고 그랬나 보다. (코 상태(?)가 안 좋아 방에서
혼자 자는 게 이럴 땐 낫네. 미안하지만..)
세수만 하고, 또 넷이서 나간다. 오늘은 걷기가 더 힘들다.
힘도 없지만 숨도 쉬기 조금 불편.. 계단 내려가기도 힘드니,
힘없는 노인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겠다. 머리로가 아니라..
공원 앞에 내려 공원 안으로 살살 걸어들어간다. 비는 거의
그쳤다. 먼저 할머니꽃밭 들러 꽃들에게 '밤새 안녕?' 인사
하고, 나팔꽃 잎사귀 만져본다. 백일홍 주황색 꽃 하나 살짝
숨어 피어 있다. 앞에 걷는 분들 나무껍질, 나뭇잎, 꽃잎들
만지며 걷는다.
나는 맨 뒤에 한참 뒤처져 걷는데, 힘이 딸리니 첨엔 곁에
있는 것들을 어루만질, 쳐다볼 생각도 나지 않는다. 우산까지
무거우니... 솔잎에 물방울 맺혀, 고 조그만 것이 하얗게
반짝인다. 그리고.. 무궁화나무도 꽃 활짝들 피워 나를 맞아
주는구나.
선생님과 두 분 저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 그냥 지나치던
길가 삼나무 앞이다. 그 아래 돌에 앉아 좀 쉬란다. 삼나무에
기대선 선생님, 안나님더러 기대 보라며 자리 내주고 나무
뒤로 돌아간다. 편안하다며.. 물 마시고 나서 나도 삼나무에
기대 보았다. 안나님 기대 있던 자리에 서서.. 뒤로 손을 뻗쳐
나무를 만졌는데, 선생님 손과 닿았다. 선생님이 살그머니
손 잡아주신다. 조금 있다 삼나무 둥치를 안아 보았다.
삼나무는 처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데, 둥치가 진짜 멋있다.
그리고 껍질은 또 얼마나 멋진지.. 세로로 죽죽 시원하고
멋있게 홈이 파여 있다.
비가 와서 지렁이들 나다녀 군데군데 눈에 띈다.
나뭇잎들 많이 떨어져 빗물과 함께 발길에 밟혀 냄새 더 풍긴다..
돌아오는 길에 또 선생님 트럭에서 오늘은 콩나물, 고춧잎,
깻잎 샀다. 난 오늘 비에 떨어진 삼나무 이파리 주워 왔다.
집 나올 때 뿌리던 비가 이제 다 그쳤다. 신사동 사거리에서
택시 내려 골목으로 걸어들어온다. 선생님, 음식점 '땅끝마을'
앞에 고추 심어놓은 거(화분 여러 개에다) 보여주신다. 고추
꽤 달렸다. 내가 지난번에 집에서 상추랑 좀 심어 봤으면
그랬더니, 선생님이 일부러 멈춰서서 보여주신 듯..
오늘 단식 사흘짼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크게 드러나는 곳이
없다고 선생님도 그러신다. 위장에서 크게 뭔가 나타날 거라
기대(?)했는데, 뜻밖에 그렇지 않다. 지금까진.. 어깨, 허리가
많이 아파 운동하기가 힘든 정도. 그럼 위장은 내가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었나.. 확실히 점검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사람들, 생각보다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두만. 안나님은 단식
사나흘째부터 일주일 넘어까지 속이 엄청 쓰리고 긁어대어
힘들었던 모양인데. 자신도 그렇게까진 줄 몰랐는데 말이다..
사흘째가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하여튼 지켜볼 일이다.
7시 40분∼8시 40분 명상, 10시 반∼11시 반 운동.
누워 뒹굴며 선재스님 사찰음식책과 이정섭 아저씨의 요리책
보고, 일기 쓰고 쉬다. 2시 반쯤 된장찜질 한다 하니, 윤경이
잠깐 볼 수 있겠다. 건물 아래서.. 숄을 안 가져왔길래, 비도
계속 오고 하여 숄이랑 바지 하나, 시집 한권 가져다 달라
부탁했는데, 오늘 학원 가는 길에 들른다 했거든...
2시 반까지 온다더니, 2시 반 맞춰 계단 내려가 기다리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안 돈다. 핸드폰도 안 받고... 서 있기
힘들어 쪼그려 앉았다. 요가원 상미가 아르바이트 끝나고
벌써 온다. 아마 봉추(선생님 딸)랑 영어 스터디하기 위해
일찍 오나 보다.. 계속 기다리는데, 전화 와 큰길까지 나오
랜다. 학원(직장)도 늦었다며.. 알았다 하고 걸어가는데,
조금 걸어도 힘이 드니까(게다가 오르막이고) 원망심이
생기려 한다. 금방 접으려 한다. 여까지 갖다 주는 것만도
어딘데... 결국 3시가 다 됐다.
윤경이 물건 건네주면서, 강남대로 엄청 막힌단다. 요즘 교통
사정 심한가 보다. 7월 1일부터 버스 교통체계 바뀌고 나서
더한가 보다.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문제는 문젠가,
토요일(7월 3일) 차 타고 올 때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이명박
서울시장을 상대로 소송까지 한다니...
아무튼 윤경이 학원도 늦고 나도 일정보다 30분이나 늦어졌다.
윤경이 10분쯤 나왔다니, 50분도 더 걸렸다는 소리. 길 막히니
골목으로 들어서고, 그래 더 걸리고... 아무튼 안에 있어 잘은
모르지만 버스 타고 다니기, 아니 서울에서 다니기 더 힘들어
졌다는 거. 차비도 엄청 올랐고...
-둘-
3시에 된장찜질 시작. 로사님은 2시 반부터 하고 있고..
그제와 똑같은 방식.. 1시간 정도 누워 가끔 코까지 골며 자다.
그 다음, 누운 채 <맑고 향기롭게> 7월 회보 보고, 옆자리에
누운 로사님하고 버스 교통 얘기를 비롯해 여러 얘기 나눴다.
옆에서는 상미, 봉추 영어 공부 하고 있다.
5시쯤 회원들도 곧 올 테고, 도장에 된장냄새도 좀 빼야 하니,
로사님이 먼저 그만했으면 한다. 난 더해도 괜찮은데...로사님
늘 남 배려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거 끔찍이 싫어하시니...
선생님이 로사님 먼저 치워드리고, 좀 있다 나도 치워주셨다.
오늘은 2시간밖에 못 했다. 그 많은 된장이 아깝지만..^^
오늘은 넷이서 목욕 간다(로사님도 가시겠단다. 며칠 안 씻었
더니 안 되겠는지, 힘들어도 갈까.. 하신다). 안나님, 로사님,
스님, 나.. 목욕탕 주인 아주머니 표 받으면서 요가원 전화번호
가르쳐 달라는데 아무도 모른다 하니, 목욕탕 명함 주면서
선생님한테 전화 걸어달랜다. 아마, 요가하실 모양이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엊그제보다는 목욕탕에 몇 명 더 있다.
그래도 넓은 목욕탕에 비해 사람 많지 않다. 몸무게 45.2㎏..
탕 안에 들어가자마자 로사님 상태 안좋아, 그냥 머리만 감고
샤워만 간단히 하고 나가시겠단다. 근데, 머리 감는 것도
힘들어(대야에 물 받아 머리 아래로 내리고 감아야 하니까),
로사님은 앉아 있고, 안나님이 밀가루 푼 대야를 들고 서서
물 내리며 머리 감겨 주신다. 고개 돌리다 얼핏 봤는데, 그
뒷모습..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벌거벗은 중년의 두 여인이
하나는 앉고, 하나는 서고, 그렇게 머리 감겨주는 모습.. 여느
영화의 어떤 장면(주로 남자가 여자 감겨 주지..)보다 감동적
이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자매..들..
일단 로사님은 먼저 바깥에 나가 선풍기 바람 쐬며 누워
있기로 했다. 나도 밀가루 풀어 머리 감고 식초 한 방울
떨어뜨려 마지막 헹구고, 세수하고, 안나님한테 탕에 들어갈
건지(냉온욕하러) 물어봤다. 안나님, 로사님 상태가 어떤지
걱정되나 보다. 그래 내가 나가 봤다. 로사님, 나무 침상에
누워 있다. 괜찮아졌다고 하시며.. 그래 그냥 들어왔다.
안나님.. 역시 남을 생각하는 마음, 챙겨 주는 마음.. 늘
앞선다. 진정이고... 나도 한다고 하지만 이럴 때 보면 한참
모자란다. 훨씬 내 생각 위주다.
안나님하고 로사님은 나이도 한 살 차이고 같은 수행자다.
천주교 수녀님.. 물론 로사님은 10년도 전에 수녀원 나왔다
지만.. 그리고 안나님은 사복 수녀님이다. 그렇지만 두 분은
당연히 통하는 게 아주 많을 거다. 다른 곳에, 다른 시기에
있었어도, 많은 부분 그럴 거다. 같은 경험이라는 거...
안나님하고 나하고 냉온탕 왔다갔다할 동안 스님은 밖으로
나가셔 로사님 돌보다, 문 열고선 두 분이 먼저 가시겠단다.
우리도 곧 나갈 거라며 먼저 가시라 했다. 난 냉온탕 3번 왔다
갔다했다. 엊그제보단 좀더 힘든 듯...
목욕탕 문 밖을 나오자마자 비가 듣더니, 몇 걸음 걷지 않아
우두둑 쏟아진다. 할수없이 길 한쪽 가게 앞으로 피신했다.
세탁소 앞 처마 아래 둘이 서서 잠깐 비 피하다, 그치지 않고
계속 오길래 그치면 가기로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비오는
거 바라본다.
비가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두세 차례 크게 퍼부은 담에
조금 약해졌을 때, 옷 뒤집어쓰고 빨리 걸어가기로 했다.
강남시장 건물 안까지만이라도.. 근데 걸음을 빨리할 수
없으니... 강남시장 건물 들어서며, 안나님 아이구, 힘들다..
앞에 있던 아주머니 아저씨, 두 분이 우리 바라본다.
시장 안 골목골목 돌아가는데, 떡집 앞에 주인아주머니 앉아
있다. 자주 들르는 떡집인데.. 이젠 떡도 한참동안 못 먹겠다.
떡순이가 젤 힘들지 않을까?... 지금은 별 생각 안 든다.
쳐다보며 잠깐, 아 맛있겠다, 그 정도.. 길게 머리에 그려지
거나 하진 않는다. 내 몫이 아니라 생각해선가...
돌아오니 6시 반 운동 팀, 한창 운동들 하고 있다.
난 운동은 관두고 방에 들어왔다. 로사님 좁은 방에서 쉬고
있다. 둘이 몸 반쯤 접고 비스듬히 누워 얘기 나눈다. 얘기
하다 집안 얘기 나와, 시집간 막내(미영) 얘기 많이 했다.
시집가기 전부터, 시집가서, 직장 다니다 애기 낳고, 그리고
지금 런던 사는 얘기들.. 그러고 있는데 승영이 전화...
첫마디가, 어, 이모 뭐야? 뭐하러 그런 건 해? 할 만하니까
하지.. 열흘 휴가 얻어 지금 막 집에 들어왔단다. 오늘 7월
6일이구나. 날짜 계산하고 있었는데, 잊어먹었다. 지네 엄마
일찍 들어와 맛있는 거 준비하나 보다. 저녁 뭐해 주신대?
갈비찜. 응, 맛있겠다, 많이 먹어. 응.. 그리고 너 휴가 나왔
는데, 내가 맛있는 것도 못해 주고 미안하네.. 응, 괜찮아..
서글서글한 놈. 어디야? 어, 서울이야. 멀지 않으니까, 니가
위문 와라. 응.. 고맙다. 전화 끊고 나니 더욱 고맙다. 다시
언니한테 전화 걸어, 잘 있다고..(언닌, 몸조심하라며..)
승영이 전화 받아 기운난다며.. 말하고 끊었다.
로사님하고 얘기 이어진다. 로사님 말이, 선생님 내년에 인도
가신단다. 봉추랑 같이. 올 11월에 요가원은 그만두신단다.
아, 그렇게 계획이 잡혔구나. 작년에도 말 있었는데, 이번엔
확실한가 보다..
화장실 갔다가, 딴분들 마무리 운동할 때 쿠룬타 했다.
단식 선배 효진씨, 옷 맞는 거 없어 직장 갔다 오는 길에
터미널 상가 들러 옷 몇 개 샀다 하여 구경하자 했다.
만 원짜리 바지 두 장, 만 원짜리 블라우스 하나, 육천 원
짜리 셋트티 한 장... 효진씨 싸고 이쁜 옷, 또 개성 있는
옷.. 어디서 잘 산다. 예전부터.. 또 그런 옷 잘 어울리고..
효진씨, 이제 많이 힘이 올라 있다. 서른 넘은 이쁜 아가씨..
은희씨 후배이기도 하지..
회원들 다 가고, 안나님 식사(어제부터 죽으로 바뀌었다.
오곡죽에, 오늘 반찬은 미역국 조금, 무, 호박, 두부, 간만
살짝 하고 제 재료 맛 그대로인, 그리고 아주 잘게 썰었고)
하시고, 우린 바닥에 누워, 앉아, 얘기 나누고 있는데,
9시 넘어 손님 두 분 오셨다. 엄마하고 딸. 한눈에도 닮았다.
엄마가 먼저 왔다 갔나 본데, 오늘 딸하고 같이 오셨다. 딸이
직장 늦게 끝나 이제사 오셨나 보다. 6시 반 타임은 안 되고
결국 8시 20분에 반 하나 만들어 하시기로 한다. 이 아가씨도
단학선원 다니며 예전에 단식도 했단다. 그리고 몸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하고는 있는 듯..
9시 반 넘어 10시 가까이 되어 우리 식사(?) 마그밀과 숯가루
먹는다. 로사님은 워낙 특이체질이라 마그밀만 먹던 것도
오늘은 건너뛰고, 스님은 선생님이 마그밀 다섯 알 먹으랜다.
두 분 다 너무 힘들어한다. 향도 그렇고, 양도 그렇고..
먹고 나면 토하고 한다고.. 나는 먹을 땐 좀 힘들지만, 먹고
나선 그리 힘들지 않은데. 몸상태 어떤지 체크해 본다.
맥박 63, 혈압 98에 68..이든가..
오늘은 10시 반 가까이 되어 잠자리에 든다. 마그밀과
숯가루 좀 빨리 먹고 자는 게 낫겠다. 혹시 자다 깰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