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0번째 시간에서는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지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란은 죄이다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구체적으로 자위행위라는 소재를 갖고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기에 그리 표현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기독교 카페입니다만, 어느 형제님이 꿈속에서 자위행위와 같은 것을 꾸고나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외로운 생활을 위로해주시는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계시기에, 죄라는 인식이 필요하여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결론을 거듭 말씀드리면, 자위행위는 죄입니다!!!
자위행위는 현실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현저한 육체의 행위중 하나인 음행에 포함시키기는 어려운 속성이 있기도 합니다만, 자위행위가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신다면 우리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위행위는 다음과 같이 3가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첫째로는, 상상의 대상을 생각합니다. 그 대상이 불특정인이든 특정인이든 그 상대를 생각하게 되지요.
둘째로는, 선택된 그 상대와의 성관계를 상상합니다. 상상하는 과정에서 각종 음행이 나오기도 하며, 나름대로의 최고의 만끽을 위해서 음란한 요소들로 생각과 몸을 자극하게 되지요.
셋째로는, 일락을 느끼게 됩니다. 일락을 느끼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좋다라는 쾌락의 즐감을 심기우게 됩니다.
이런면에서 볼때, 자위행위는 몸에 일락을 행하기에 음행에 해당되기도 하며, 상상을 통한 쾌락을 추구한다라는 점에서 음란이라는 속성에 해당되기도 합니다.
아직 진리를 알지 못하는 초신자나 새신자라면 몰라도여, 그만큼 신앙의 연륜이 있거나 직분, 사명이 있는 사람이 이런 믿음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라는 것은 심히도 신앙이 지체되어 있음을 깨우치셔야 합니다.
그런데요, 장로나 권사 심지어는 교역자,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신 분들이 자위행위와 같은 은밀한 죄를 여전히 하고 계신다면 그것은 구원과도 직결될 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그만큼 직분과 사명이 중대하고 가르치는 입장에 서 계신 분들이 자위행위를 버리지 않고 은밀한 가운데 즐기고 있다라는 것은 하나님앞에 중대한 심판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버리지 못해 여차하면 구원과도 직결되거나 또는 그만큼 오래도록 외적으로 충성하고 봉사했어도 겨우 구원받아 낙원처소에 머무를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땅에서도 기도응답에 방해가 되기도 하구여. 그렇다고 난 초신자이니까, 난 아직 평신도이니까 상황 봐주시겠지, 아직은 괜찮구나 생각하신다면 이 또한 큰 착각이 되겠네요.
그런데요, 자위행위는 의학적으로 본다면 정신건강상에도 좋은 것으로 설명이 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의 관점에서 보는 것일 뿐이구여 우리가 영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위행위는 사단을 내 생각과 몸에 끌어들이는 것이기에, 우리는 반듯이 버려가야 하는 죄인줄 압니다.
그렇다면, 난 이제부터 안해야지 한다하여서 안하게 되던가요? 죄라는 것이 그렇게 내 결심과 마음먹은대로 잘 버려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특히나 남성의 경우에는 자위행위를 버리는 것이 쉽지 않은 면이 있기도 하구여.
그렇기에 우리가 죄라는 것을 버린다는 것, 죄와의 싸움이라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대목인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파에서는 예수님 영접하면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으니 더 이상 죄를 거론할 필요가 없다라고까지 하는데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부터 계시록까지 보십시요. 예수님 부활이후로도 끝없이 죄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 영접했다하여도 죄로 인하여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음을 누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요한서에는 죄중에도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음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율법의 의를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안에 거하게 되었음에도, 죄와의 싸움은 계속되어야 하며, 나아가서는 죄성을 버리는 성결의 단계로까지도 침노해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인데요.
여기서 보시면, <죄짓지 말라>는 율법의 의가 됩니다. 머 하지 말라는 율법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하게 되면 죄로 단정되어지고 그는 공의에 의해 그에 대한 보응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해 집니다.
그런데요, 신약에서도 보시면 머 하지 말라가 참 많습니다. 그리 본다면 죄를 하나하나 버려가야 하는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밀려오기 마련이요, 신앙생활이 무척이나 힘들게 느껴지고 낙심과 좌절의 연속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안에 들어온 기쁨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런데요,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약이후로는 성령님이 우리안에 내주하시어 죄짓지 않도록 도와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여, 우리가 이 개념을 잘 잡아야 합니다.
<죄짓지 말라>는 율법의 의입니다. 성경에는 머머머는 하지말라 했는데 난 이것을 했으니 죄를 지었구나 탄식하며 낙심과 정죄감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낙심과 정죄감에 빠져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죄와 연단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신앙생활을 무척이나 힘들게 꾸려가시는 분들이 있기도 합니다.
반면에, <죄짓지 않도록 도우신다>라는 것은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안에 성령을 내주케 하심은 여러 의미가 있으나, 그중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죄짓지 않도록 도와주시겠다라는 것입니다.
가정안에서 자녀교육이나 교회안에서 유아교육에도 <하지마> <안돼> <혼난다>보다는 하지않도록 도와주는 개념으로 대화를 유도하거나 표명해 준다면 더 은혜로운 양육이 되는 줄 압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자위행위를 내 힘과 노력으로 버리려고 해서는 아니된다라는 것입니다. 자위행위는 죄라는 인식이 분명한 가운데서도, 이것을 버리려고 내 편에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노력과 열심으로 하시는 분들은 반듯이 패배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 패배안에서 사단이 주는 낙심과 정죄감에 생각이 휘감아지게 될 것이요, 이로 인하여 늘상 담대하지도 못하고 생각이 복잡해지며 마음도 영도 짓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럼 자위행위를 버리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첫째로는 보혜사 성령님에게 도움을 구하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실때는 공의와 사랑으로 우리를 도우시기에 한번 도와주셨다고 대번에 버려지지는 않습니다. 생활하다가 넘어질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럴때, <죄짓지 말라>라는 율법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령님께서는 <죄를 짓지 않을때까지 도우신다>라는 은혜의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라는 것이지요.
둘째로는, 영이 민감하고 감각되어져 있어야 하며 운행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5장 20절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오늘날은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어 버린 시대입니다. 신령한 것과 육적인 것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9명이 악이라고 하면 선도 악이 되고, 악이 악이라고 말하는 1명은 바보로 취급하는 시대이기도 하지요.
말씀을 듣고 보아도 저마다의 혼적인 작용과 이해, 감각이 다르다보니 여기가서 이 말 들으면 이 말도 옳고, 저기가서 저 말 들으면 저 말이 옳고... 분별하기 참으로 어려운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령한 것과 육적인 것. 선과 악. 하나님의 것과 사단의 것을 가장 잘 분별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성령님은 하나가 되십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께 죄의 여부를 응답받을찐대, 그만큼 내 영이 깨어있고 감각되어져있고 활성화 되어 있어야, 성령님의 탄식소리나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영이 정체되어 있거나 짓눌려 있는 상태에서는 혼의 지식과 이성, 감각이 움직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지식과 이론에 더 귀를 기울이며 내 생각과 사람편의 권위적인 소리에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내 영에 주시는 탄식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분별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여, 그 탄식소리조차 은혜로 알아 즉시로 회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는, 안목의 정욕을 차단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죄와의 싸움편>을 찾아서 읽어보신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독교 카페에 들어온다해도 시작 홈페이지서부터 시작해서 로그인, 가페에 들어오기까지 여러개의 자극적인 영상들과 그림들, 글귀들이 있습니다. 그런거에 기웃거리다보면 짧게는 몇십분, 길게는 한 두어시간도 훌딱 지나가게 되는데요.
그런것 작은 일에서부터 안목의 정욕을 차단해야 합니다. 특히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욕을 자극시키는 내용물에 대해서는 피해가는 기도와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넷째로는,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죄를 용서받는 것과 죄성을 버리는 것은 다릅니다. 죄를 용서받는 것은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하여 그 죄성마저 버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는 행위나 마음의 생각에서 지은 죄를 용서받는 것이지, 그러한 행위와 생각을 유발시킨 죄성마저 없애주는 것은 아닙니다. 죄성을 버리는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별도로 죄와의 싸움이 필요합니다. 이 때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섯째로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중에서 미혹의 영과 음란의 영을 대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방언기도를 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방언기도안에는 대적기도가 있습니다. 내 마음은 몰라도 내 영은 알기에 방언으로 대적기도를 하여,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천군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언기도가 아직 안터지신 분이라해도 발성기도로 마귀를 대적하시면 됩니다.
정리합니다. 기독교 모 카페에는 자위행위는 죄가 아니다.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다. 자주는 하지말고 가끔은 해서 몸에, 정신건강에 유익하도록 하면 좋다. 자위를 안하면 성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등등의 인간적이고도 육적인 견해와 해석을 끌어들여 혼란케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직 신앙이 여리신 분들이나 자위를 버리지 못하겠다, 버리기 싫어하시는 분들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더 귀에 들어오고 위안이 되기도 하겠지만, 분명 자위행위는 죄입니다!
생각에 음란의 영을 끌어들여 일락을 추구케하며 몸에 쾌락을 심게하는 사단의 개입입니다. 자위행위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마귀의 종으로 살았을때에 이미 몸에 좋다~라는 느낌을 심어놓았기 때문인데요,
위에서 설명을 드린 것처럼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반듯이 버려가야 하는 죄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겠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6절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첫댓글 제가 예전부터 가졌던 저의 생각과 같은
의견을 보아서 대단히 반갑고 동감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위행위를 남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구조적인 행위라고
당연한것처럼 인식들을 하곤 있지만
저는 그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음란을 불러들이는
시초라고나 할까요?...내생각이 어떻냐에
따라서 몸도 따라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쓴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혹시나 하여...
이글을 읽고 남편이랑 아들에게도 얘기해주었습니다~
지금은 노출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음란죄에 빠지기 쉬운듯 합니다~
무엇보다 이런것이 구원과도 직결된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지켜야 할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수믿고 구원받기 쉽지 않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