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한 상자에 바람맞은 아줌마, 아저씨들
여지없는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이른 아침. 게다가 오늘은 새해맞이 1월의 마지막을 여는 주말. 가정마다 학생들은 겨울방학이 가져다주는 게으름과 어른들도 오늘만은 따뜻한 이불 속에서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으리니.
저의 집은 수석동으로 의료원 네거리에서 우회전하다 보면 서울웨딩부페라는 예식장이 있는데, 그 주차장 가득 포장이 드리워져 있고 가느다란 입구에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아줌마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음, 또 뭐 행사하면서 공짜로 주는 게 있나 보구먼~~
그것이 못내 궁금해서 쌀쌀한 날씨지만 행사장에 가 보았어요. 입구엔 자잘한 열쇠고리부터 핫도그, 어묵 국물, 뻥튀기 장사들이 진을 치고 있고 내부에 들어서니 주방용품을 비롯해 신발, 의류, 화장품, 속옷, 건강제품 등 각종 유명 브랜드를 70~40% 싸게 판다는 플래카드가 즐비하게 걸려 있네요.
5층 건물 모두가 층별로 아이템이 다르게 진열이 되어 있고, 각 코너 마다는 각기 다른 주인들과 그날의 매상을 점검하는 캐셔(casher), 그 코너들을 관리하는 노랑염색 머리의 어떤 남자, 그 위에는 행사 주관자와 장소임대 제공자, 광고를 전담하는 사람, 물건을 공급해주는 사람들.
겹겹이 차곡차곡 이어지는 끈들 사이로 진정 서산지역에 도움이 될 소재는 무엇이던가? 각 코너는 대부분이 외지사람들이 엮어서 상습적으로 행사를 치르는 사람들이고 그 코너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 고작 몇이 서산 사람들이었는데 하루 일당이 3만 원이래요. 일부 코너를 임대받은 서산 사람들도 있었지만.
브랜드는 주로 예전에 부도났던 곳들이 대부분이고 가끔 현존해 있는 브랜드가 눈에 띄긴 하나 모두가 몇 해씩 묵은 이월상품으로 그 상품 위에 눈속임의 [신상품 세일]이란 스티커를 꽂아 놓았기에 물어보니 스티커 자체에 그렇게 씌어 있는 거 이용할 뿐이라는 기도 안 찰 종업원의 이야기.
계단 계단마다엔 라면상자를 품에 안은 채 뒤뚱뒤뚱 내려오는 손님들. 뭐 사면 이걸 주느냐는 질문에 물건 1만 원어치 사면 라면 한 상자를 준다네요. 그 라면 한 상자 타려면 5층까지 의무적으로 올라가야만 되게끔 설치해 놓고 엘리베이터도 5층까지 올라가게만 되어 있지 내려올 때는 계단을 이용해야만 되더군요.
"나 만원어치 샀응께 얼릉 라면 한 박스 줘유~" 아줌마가 보채네요.
"밑에서 나눠준 표 어딨어유~?" 라면 나눠주는 총각이 거드름 피우네요.
"뭔 표여~~ 난 안 줬는디...워디서 주는 거간~~" 아줌마가 기죽은 표정에요.
"아침에 일찍 나오셔서 줄 서서 기다리신 분께 표 줬잖유~그 표 있어야유~~" 그 총각 땍땍거리데요.
광고지를 보고 아침 일찍 시골에서 일부러 나오신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라면을 얻기 위해서 얼마치의 물건을 사고 5층까지 꾸역꾸역 올라갔는데 줄 서지 않고, 표를 받지 못해서, 그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함으로 그 라면 한 박스를 타지 못한 게 이내 속상해서 던지는 말. 아줌마 옆의 아저씨가 "에이~ 싸가지 읍는눔덜~~ 괜시리 우덜만 바람 맞었자녀~~"
아저씨랑 같이 온 아줌마가 "그러니께 뭔가 좀 자세히 알아보고 오야능겨~~" 아저씨랑 같이 온 아저씨인 듯 "그 1만5천 원 하는 츄리닝두 하나두 읍짠여어~~"
아줌마, 아저씨 모두 궁시렁 거리며 "괜히 춰죽껏는디 차비만 날리구 돈만쓰구 이게 뭐여~~" 길지 않은 열흘간 철새처럼 날아와 그 지역의 경제 소비만 부추기고 쌈짓돈 긁어 홀연히 달아날 그들에게 우리는 무얼 기대하는 것일까?
결코, 우리 지역에 도움이 될 만한 그 무엇이 뚜렷하지도 않은데 알 만한 사람들이 그러한 행사장소를 제공하는 건 또 무슨 연유일까? 각 코너의 판매액에 24~28%의 엄청난 수수료를 지급해야 함에도 유독 서산지역이 이러한 철새(?)들의 행사가 잘 먹힌다고 하는 소문이 자자하니 그렇다면 서산 사람들이 아직도 어리석은 것일까? 아니면 서산 유지들이 아직도 주머니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차라리 우리 지역 상인들끼리 좀 더 나은 방법으로 할 수 있는 행사를 찾는다면.
이제부터라도 서산지역 시민의 자존심을 걸고 깊은 사고와 반성으로 다시 태어나 진정한 지역경제 살리기를 위한 방법 모색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더 이상 이러한 슬픔으로 소박한 인심이 까맣게 얼룩지지 말아야 할 거예요.
오늘이 3일째라는데 내일부턴 그나마 장사가 별로 안될 거라는데. 아무리 예식장이 비수기라지만 그 화려한 내부 홀이 아수라장 되어 가벼운 시선만 하나 가득 남겨둔 채 예식비가 모두 공짜라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애처로워라. 라면 한 상자 때문에 바람맞은 아줌마, 아저씨들은 잘 들어가셨는지 못내 궁금하네요.
작성일: 200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