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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年(辛巳)刊 金海金氏璿源大同世譜
序文(서문) 1)
우리 始祖(시조)께서 하늘에서 龜旨峰(구지봉)에 내려오셔서 國號를 駕洛(가락)이라 定하고 도읍(都邑)을 김해(金海)로 十王 490年餘年間 王朝(왕조)를 繼承(계승)하시다. 그 후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近世朝鮮(근세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한 宗族(종족)의 歷史(역사)로 2,000年이 되었다.
首露王(수로왕)을 始祖(시조)로 讓王(양왕=구형왕) 金庾信將軍(김유신장군)을 비롯하여 羅朝(나조) 麗朝(여조)를 통하여 賢臣(현신) 良將(양장)을 輩出(배출)한 三韓甲族(삼한갑족)이다. 太大角干(태대각간) 金庾信將軍(김유신장군)의 三國統一(삼국통일)의 功(공)을 이룬 것을 頂点(정점)으로해서 麗朝(여조)에서만도 정승(政丞)을 비롯하여 名賢功臣(명현공신), 將軍(장군), 提學(제학) 등 숱한 인물(人物)을 輩出(배출)하여 威勢(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朝鮮朝(조선조)에 와서는 겨우 甲峰(갑봉) 金宇杭(김우항) 右議政(우의정)뿐이다. 이렇게 朝鮮朝(조선조)에 이르러 벼슬이 많지 않은 까닭으로는 흔히 濯纓(탁영) 金馹孫(김일손)의 史草(사초)에서 惹起(야기)된 戊午士禍(무오사화)가 指摘(지적)되고 다른 한편 王室(왕실)이나 當世(당세)의 權門勢族(권문세족)과 전연(全然) 婚姻(혼인)을 맺지 안했던 데에도 間接的(간접적)인 原因(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當時(당시)의 支配官僚體制(지배관료체제)는 全的(전적)으로 血緣姻戚(혈연인척)을 중심으로 한 大家族主義(대가족주의)의 基礎(기초)위에서 形成(형성)되었기 때문이다.
駕洛國(가락국)의 沿革(연혁)을 살펴 보면 옛날 洛東江下流(낙동강하류)의 沿岸(연안)을 中心(중심)으로 六伽倻(육가야) 즉 金官伽倻: 金海(금관가야:김해) 阿羅伽倻:咸安(아라가야:함안) 古寧伽倻:晋州 或 咸昌說(고녕가야:진주 혹은 함창설) 大伽倻:高靈(대강야:고령) 星山伽倻(성산강야:성주) 小伽倻:固城(소가야:고성)가 형성(形成)되어 東(동)으로 黃山(황산)으로 남해(南海) 서(西)로는 智異山(지이산)까지 그 경계가 뻗치고 찬란한 伽倻文化(가야문화)를 이룩한 駕洛國(가락국)이다.
우리 駕洛(가락)의 後孫(후손)들은 首露王(수로왕)의 一身(일신)에서 血統(혈통)을 이어 받아 一源(일원)의 물이 千波萬流(천파만류)로 一根(일근)의 나무가 千枝萬葉(천지만엽)이 되듯이 祖上(조상)이 보시면 다 같은 자손(子孫)이요 千萬身(천만신)으로 나누어졌으나 그 근원(根源)은 一身(일신)에서 血統(혈통)을 받았으니 이 어찌 遠近(원근)과 親疎(친소)의 다툼이 있으리요 同祖(동조)의 子孫(자손)은 百代(백대)라도 至親(지친)이라 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宗支(종지)의 昭穆(소목)과 先祖(선조)의 事蹟(사적)과 崇祖愛族(숭조애족)의 原理(원리)와 敦睦(돈목)의 美德(미덕) 등 모든 紀錄(기록)이 바로 族譜(족보)이다. 그 것이 나라의 國史(국사)와 같은 家史(가사)이니 우리 先祖(선조)님들이 남겨주신 偉大(위대)한 事蹟(사적)을 우리 後孫(후손)들이 이어받아 發展(발전)시키는 것이 當然(당연)한 義務(의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近來(근래)에 新進後生(신진후생)들이 이를 無關心(무관심)하고 等閑視(등한시)하는 傾向(경향)은 現代風潮(현대풍조)에 지나친 생각이다. 族譜(족보)의 必要性(필요성)이 높이 評價(평가)되어 西歐諸國(서구제국)에서도 韓國(한국)의 族譜(족보)는 民族(민족)의 精華(정화)요 文化(문화)의 本産(본산)이라하여 感歎(감탄)하며 硏究(연구)하고 있다 한다. 하물며 오랜 傳統(전통)을 이어 받은 우리 民族(민족)으로서 族譜(족보)의 必要性(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진다. 우리 駕洛後孫(가락후손)은 高麗末葉(고려말엽)에 분파(分派)된 후 華麗(화려)한 世德(세덕)은 子子孫孫(자자손손) 繼繼承承(계계승승) 이어지고 있다. 其後孫(기후손)들이 散之四方(산지사방)으로 各居(각거)하여 繁昌(번창)함에 世紀(세기)가 갈수록 相互疎遠(상호소원)하여 路上行人(노상행인)과 다름이 없을 것은 瞭然(료연)할 일이다. 이에 憂嘆(우탄)을 거듭하는 宗人(종인)의 衆意(중의)에 따라 修譜(수보)의 大事(대사)를 이룩한 것을 僉族(첨족)과 더불어 榮光(영광)으로 생각한다. 宗員間(종원간)에 親和敦睦(친화돈목)하고 爲先之事(위선지사)를 다 하고자 勞苦(노고)를 아끼지 않고 애써 주신 여러 任員諸宗(임원제종)에게 眞心(진심)으로 敬賀(경하)의 말씀드리오며 今般(금반) 修譜(수보)가 大和合(대화합)의 契機(계기)가 되어 遠近親疎(원근친소)의 區別(구별)없이 相扶相助(상부상조)하고 萬枝同根(만지동근)의 이치(理致)로 無窮(무궁)한 親睦(친목)을 圖謀(도모)함은 勿論(물론) 나아가 二十一世紀(21세기) 世界化(세계화)에도 이바지하는바 크기를 祈願(기원)하면서 序(서)로 代(대)합니다.
駕洛紀元 1960年 西紀2001年 辛巳 10月
金海金氏璿源大同世譜 編纂委員會 委員長 容圭 謹識
序文(서문) 2)
金海金氏大同譜(김해김씨대동보)를 새 밀레니엄의 첫 해에 發刊(발간)하게 된데 대하여 큰 보람과 意義(의의)를 느끼게 한다.
二十一世紀(21세기)는 世界化(세계화). 情報化(정보화)의 흐름속에 가장 심각한 社會問題(사회문제)로 떠오르는 것이 共同體(공동체)의 崩壞(붕괴) 現狀(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에 對應(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要諦(요체)는 民族(민족)의 正體性(정체성)과 고유의 傳統性(전통성)을 견지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각국은 이를 위해서 文化(문화)의 特性(특성)을 살리는데 國力(국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귀중한 자료중에 하나가 族譜(족보)이다. 族譜(족보)란 뿌리의 根源(근원)을 확인하여 자신의 正體性(정체성)을 定立(정립)하고 後世(후세)를 敎育(교육)하는데 더없이 좋은 資料(자료)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金海金氏大同譜(김해김씨대동보) 編纂(편찬)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저 大同譜(대동보)란 各派譜(각파보)를 集大成(집대성)한 것이다. 그런데 金海金氏大同譜(김해김씨대동보)에 이른바 一四八個派(148개파)가 모두 參與(참여)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大門中(대문중)을 이룬 많은 파(派)가 참여하면 그것이 곧 대동보가 되는 것이다. 己未譜(기미보)가 그러했고 龍山譜(용산보)가 그러했었다. 다행이 이번에 發刊(발간)되는 族譜(족보)에 全國(전국)에서 四十與個(40여개)의 派(파) 門中(문중)이 참여함으로써 名實相符(명실상부)하게 大同譜(대동보)로서 品格(품격)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派譜(파보) 編纂時(편찬시)에 누락된 一家(일가)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었음은 이번 대동보 발간이 거둔 큰 수확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번 大同譜(대동보)의 특징은 첫째 先祖(선조)들의 行狀(행장) 碑文(비문)등을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現代文(현대문)으로 번역을 했다. 둘째 各派(각파)의 派譜(파보)를 기준으로 하되 派譜(파보)에 不分明(불분명)한 部分(부분)이나 누락된 부분은 龍山譜(용산보)를 기준으로 했다. 可及的(가급적) 옛것은 고치거나 變造(변조)하지 않았다. 先祖(선조)들의 지혜와 학식으로 이루어진 族譜(족보) 내용은 개작하지 않은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른바 孔子(공자)의 述而不作(술이부작) 信而好古(신이호고)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젊은이들이나 청소년들이 부담없이 閱覽(열람)하고 쉽게 理解(이해)할 수 있도록 CD롬화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쉬움으로 남는다. 끝으로 이번 大同譜(대동보) 發刊(발간)에 飜譯(번역) 譯註(역주)를 맡아주신 金相丸 博士(김상환 박사)의 勞苦(노고)에 謝意(사의)를 표하며 發刊(발간)에 참여하였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면서 序文(서문)에 가름한다.
참고문헌
金海金氏京派統合譜 大邱發行辛未譜 編輯委員長 金善益
金海金氏監務公派世譜 光州發行乙丑譜 委員長 金在烒
金海金氏三賢派大同譜 昌原楮山書院發行乙亥譜 都有司兼校正 金世坤
金海金氏侍中公派大同譜 光州發行癸亥譜 編輯人 金萬載
金海金氏栗隱公派世譜 醴泉發行辛未譜 發行人 金鍾得
金海金氏安敬公派世譜 서울發行庚辰譜 安敬公派宗會長 金鍾旭
韓國史大事典(年表) 柳洪烈博士責任監修 高麗出版社
金海金氏都摠管公派大同譜 釜山發行戊寅譜 發行人 金鍾碩
金海金氏璿源大同世譜 龍山發行戊午譜 編纂委員長 金宗洙
社團法人 駕洛中央宗親會承認下編纂譜等을 기준으로 標準하여 編輯하였다.
駕洛紀元 1960年, 西紀2001年 辛巳 10월 編輯人 金俸坤
少痊公舊譜遺記(소전공 구보유기)
省略(생략)
戊申譜序(무신보서)
省略(생략)
舊 甲戌譜序(구 갑술보서)
省略(생략)
己未譜序(기미보서)
省略(생략)
三賢派舊族譜序(紫溪書院刊行宗中標準譜)
삼현파구족보서(자계서원간행종중표준보)
解釋 : 金 順 大 2004. 12. 20.
國中喬木 世家標榜崔廬鈒鏤王謝第宅櫛比綽楔參差彬彬乎彧彧乎五桂之嘉瑞三槐之遺蔭也 鞏盤十世之基丕承百年之業思樂育乎
나라 안에서 교목세가[1]임을 표방하여, 처마(崔廬)밑에 왕의 사례를 새겨 넣고, 그 집과 정자(第宅)에는 작설[2]이 아주 많이 늘어서 있어(櫛比), 길고 짧고 들쭉날쭉한 것이(參差不齊;참치부제)아주 빛나고 무성하다. 오계(五桂)[3]의 가서[4]는 삼괴[5]가 남긴 음덕이다. 공반[6] 10세의 묘(基->墓)는 전하지 않으나, 백년동안 그 이루어 놓은 것을 생각하면 즐겁게 자라왔다.
[1]喬木世家; 여러 대에 걸쳐 중요한 벼슬을 지내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는 집안
[2]綽楔; 충신, 효자, 열녀 들을 표창하기 위하여 그 집 앞에 세우던 붉은 문
[3]五桂; 지명이름? 또는 五階; 音階가 5개로서 남려치평조(南呂徵平調)를 의미하는 것?
[4]嘉瑞; 조선 세종 때의 〈발상(發祥)〉의 제9변.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침실에 흰 용이 나타난 상서로움을 기린 내용이다.
[5]三槐; 사람의 호, 또는 지명이름?
[6]鞏盤; 사람인 것 같음
菁莪貽厥謨于豊芑者何限而以一姓而最蕃者莫如金氏以一貫而最蕃者 又莫如金海
무에서 자라난 순(菁莪)이 전하여 상추(豊芑)를 속인 것이 어찌 한도가 있을 것인가 마는(아주 많지만), 하나의 성으로서 가장 번성한 것이 김씨만한 것이 없고, 하나의 본관으로서 가장 번성한 것이 김해만 한 것이 없다.
金海系出駕洛王子皇孫繼繼承承遞羅麗趾文武歷年二千餘其麗不億其間淸德雋望偉勳殊烈焜耀汗靑指不勝屈
김해의 계통은 가락에서 나와서 왕자와 황손은 계속 계승되어, 번갈아 가며 신라와 고려에서 발자국을 남기고, 문무는 2000을 거치면서 그 수효는 헤아릴 수도 없고, 그 사이 청(공명정대한 신하), 덕(덕을 끼친 사람), 준(뛰어난 사람), 망(우러러 보는 사람), 위(위대한 사람), 훈(상을 받은 사람), 수(사형을 당한 사람), 열(열녀), 혼요(빛난 업적이 있는 사람), 한청(사서에 기록하는 사람) 들이 수효가 너무 많아서 손꼽아 다 셀 수 없다(指不勝屈).
入我朝而最著者三賢派是耳三賢卽節孝濯纓三足堂三先生而文章節義道德風猷爲國楨祥大鳴乎于世三世三賢幷享一院吁其盛矣
우리 조선에 들어와 가장 드러난 것은 삼현파로서 그 후손인 삼현, 즉 절효(극일), 탁영(일손), 삼족당(대유)의 세 선생은 문장과 절의와 도덕의 가풍의 가르침이 나라의 경사롭고 복스러운 징조로 크게 울려 퍼졌다. 이 3세의 3현은 한 곳의 서원(자계서원)에 모셔져서 제사를 드리고 있으니, 아! 그 성대함이여.
此三賢派譜之所以作也 然而烏衣靑箱非誇詡閥閱也
이 삼현파보는 이런 이유로 만들어 졌다. 따라서 어찌 나라에 공이 많고 벼슬이 높은(閥閱) 청상[1]이 자랑스럽지 않은가.
[1]靑箱; 임금이 친경할 때 쓰던 직사각형의 대나무 상자. 푸른 칠을 하고, 뚜껑이 없는 상자 안에 아홉 칸을 만들어 아홉 가지 곡식을 각각 담았다.
顧今桑海翻碧山河陵谷金縢之寶書天璜之玉牒盡化飛塵刦灰綱常斁喪禽獸縱橫人之類殆不辨族苟不明譜系叙昭穆其將執塗之人而而兄弟之而祖叔之其可乎哉 氏蕃旣如彼勢難大同而收族非今日也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 뽕나무 바다가 뒤집혀 푸른 산과 하천과 구릉과 골짜기로 되어도, 금으로 봉해놓은 보물과 같은 책이나 하늘의 보물로 만든 옥과 같은 책들이 전부 바뀌어 먼지로 날아가고 재가 되어도,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오륜)이 뒤섞여 없어지고 금수(짐승)가 날뛰어도, 사람들의 무리를 해치는 것은 종족을 분명히 하니 않는 것이니, 진실로 명확하지 않은 보첩의 계통으로 소목의 차례를 매기는 것은 장차 길가는 사람으로 처리되어 버리는 것이니, 형제간에 조숙(祖叔)간에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씨가 번성하여 이미 그 세(무리)도 이와 같이 되어, 대동(大同)을 하여 종족을 모으기 어려운 것은 오늘의 일이 아니다.
粤自甲子年間己有斯譜凡例規劃煥然爲一家之悖史而 又此纂修之汲汲實由世故之多端亦不書一世一譜之義 所謂先河而後海者也
예전 갑자년(1924)간에 이미 있었던, 그 보첩(王山世家石藏大同譜)의 범례가 규정하여 그어놓은 것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어 가문의 잘못된 역사가 되었다. 또 이는 모아서 정리하기에만 바빠, 실제로 유래와 세대의 여러 가지 일들(世故)의 많은 단서를 역시 기록하지 않아, 한 세대에 한번 보첩을 만드는 도리인 소위 선조가 강이면 후손은 바다가 되어 버리는 것에 따르지 못하였다.
盖人之有本有支如水之有派有源源遠則流長流長則派衆矣 細而溪潤鉅而江漢千岐萬分涇渭難釋而溯其源則一而己覽斯譜也
대개 사람에게 근본이 있고 가지가 있는 것은, 물이 그 파가 있으면 근원이 이 있는 것과 같다. 근원이 멀어지면 흐름이 길어지고, 흐름이 길어지면 그 파가 많아진다. 가늘고 작은 시냇물이 적셔서 큰 강으로 되어, 한수[1]가 수천갈래와 만가지로 나누어져 경위[2]를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풀기가 어려운 바와 같이 이 보첩을 살펴보는 것도 그러하다.
[1]漢水; 아주 큰 강
[2]涇渭; 사리의 옳고 그름이나 이러하고 저러함에 대한 분별. 중국의 징수이(涇水) 강의 강물은 흐리고 웨이수이(渭水) 강의 강물은 맑아 뚜렷이 구별된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尊祖敬宗之心油然自生悠久而有餘思矣非如無源之水朝滿而夕除也 人而無譜是空桑也虛影也 豈不愼且重哉
조상을 존귀하게 하고 종친을 공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오래 되었고 아직도 생각나는 것이 있으니, 근원이 없는 물이 아침에 차서 저녁이 없어지는 것과 같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보첩이 없다는 것은 공중에 뜬 뽕나무 밭이고, 헛된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신중하고 중요하지 않겠는가.
譜局設紫溪三賢院詢謀僉同未周年而功告訖濯纓先生十七世鬯孫憲洙甫以有姻契請余一言弁首余以匪人介他斯文之望又與其族大父德坤族叔鍾升諸氏復來申之亦出於孝思不匱豈致辭諸遂盥手而書之曰美哉大哉
보국[1]을 삼현을 모시는 자계서원에 설치하고, 모든 사람들이 같이 자문하고 계획하여 1년(周年)도 안되어 일이 끝났음을 알렸다. 탁영선생(일손)의 17세 창손(鬯孫,=祀孫)인 헌수(1928~)씨가 사돈의 인연으로 나에게 서문으로서 한마디 해 주기를 청하여, 나는 그런 사람이 못되니 그 글을 기대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시키라고 하였으나, 또 그 종족의 대부[2]인 덕곤(悳坤?)씨와 족숙인 종승(1901~)씨 및 여러분이 다시 찾아와 청하니 역시 효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음이라. 어찌 여러분들의 감사함을 표시하지 않겠는가. 손을 씻고 글을 쓰서 아름다움이 크게 표한다.
[1]譜局; 보첩을 간행하는 곳을 말함
[2]大父; 할아버지와 같은 항렬
金氏之族蕃衍滿天下蘇氏云譜者管攝天下人心此眞金氏之大詮不謂非大同而小之世世事守勿替引之則斯譜其將與天地無窮乎是爲序
김씨의 종족은 번성하고 흘러넘쳐 천하에 가득 찼다. 소씨(소명윤)가 말하기를 보첩이라는 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인심이라고 하였다. 이 진실된 김씨의 큰 책은 대동(大同)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작은 것이라도 세대와 세상의 일을 지켜서 버리거나 물리치지 말 것이다. 이 보첩은 장차 하늘과 땅과 함께 무궁할 것이며 이에 서문에 대한다.
歲赤猿中和節 眞城 李世鎬 謹序
세적원(원숭이해) 중화절(2월1일) 진성 이세호 근서
殿(전),院(원),祠(사), 春秋(춘추)대제일(大祭日)
省略(생략)
凡例(범례)
一, 우리 金海金氏는 駕洛國으로부터 二千年에 이르러 세대(世代)가 구원(久遠)하여 세계(世系)와 문헌(文獻)이 고징(考徵)하기 어려울까 염려(念慮)하여 간혹(間或) 세보(世譜)로서 조상(祖上)의 계통(系統)과 자손(子孫)의 소목(昭穆)을 분명(分明)하게 한바 있었다.
一, 가락국(駕洛國)으로부터 선왕(先王)의 위대(偉大)한 사적(事蹟)과 선대(先代)의 명공거경(明公巨卿) 및 충효절열(忠孝節烈)의 문헌(文獻)을 고증(考證)에 의하여 일일이 수록(收錄)하여 후손(後孫)으로 하여금 추모(追慕)의 성의(誠意)를 갖도록 하다.
一, 선현(先賢)의 사적(事蹟)과 문헌(文獻)을 해석한 것은 외람된 일이오나 시대(時代)의 조류와 세대(世代)의 변천에 依하여 제족(諸族)의 차동을 얻어 워문(原文)과 해석문을 병기(倂記)하여 후손(後孫)으로 하여금 이해(理解)하기 쉽게 하다.
一, 三王의 존영(尊影) 및 각서원(各書院), 각사우(各祠宇), 재사(齋舍), 묘도도사진등(墓圖寫眞等)을 권두(卷頭)에 게재(揭載)하여 후손(後孫)으로 하여금 추모(追慕)의 정(情)을 갖도록 하다.
一, 보책(譜冊)은 현대양장(現代洋裝)으로 제본(製本)하며 내면(內面)에 규격(規格)은 육단(六段) 28행(行)이고 휘(諱) 함(啣) 또는 명자(名字)는 대자(大字)로 하고 2행(行) 3간(間)을 일자(一字)로 하며 방주(傍註)는 1字 낮추어 7字로 하고 배위(配位)란은 1字 上으로 올이다.
一, 생졸년월일(生卒年月日)은 서기(西紀)와 간지(干支)를 병기(倂記)하다. (單主의 5代祖까지만) 시대(時代)의 조류(潮流)에 依하여 공람(供覽)에 편의(便宜)케 하다.
一, 선대(先代)의 관직(官職), 생졸(生卒)은 구보(舊譜)에 준(準)하다.
一, 학력(學歷)은 專門大學(전문대학) 이상(以上)을 기재(記載)하다.
例: ○○大學校法科大學卒 學士 文學碩士 經營博士 醫學博士등
一, 경력(經歷)은 공무원(公務員), 교직원(敎職員), 군인소의급이상(軍人少尉級以上), 주식회사임원등(株式會社任員等)으로 기재(記載)하다.
一, 상훈(賞勳)은 훈장(勳章) 표창(表彰) 국전특선(國展特選) 등으로 한다. 기능보유자(技能保有者)는 그 종류별(種類別) 명칭(名稱)을 쓰다.(人間文化財)
一, 묘소(墓所)는 군(郡), 면(面), 리(里), 산번지(山番地), 좌향(坐向),비갈(碑碣) 지석(誌石)을 상세(詳細)히 기록(紀錄)하여 실전(失傳)하는 일이 없도록 하다.
一, 각분파(各分派)의 자손(子孫)의 거주지(居住地)는 기두란(起頭欄)에 명기하여 공람(供覽)에 편의(便宜)케 하다.
一, 배위(配位)란은 본관성명(本貫姓名)과 본인(本人)에 관한 사유(事由)를 적고 다음에 부명(父名)을 기재(記載)하다.
一, 남선여후(男先女後)로 적되 출가자(出嫁者)는 부성명(夫姓名)과 子의 名을 기재하다.
一, 계자표시(系子表示)는 양가측(養家側)은 생부명(生父名)을 적고 생가(生家)에는 출계백부(出系伯父) ○○后 등을로 그 관계를 명시(明示)하다.
一, 보책(譜冊)의 분량(分量)이 많으므로 或 오기(誤記)와 탈자(脫字)등이 있음을 미안(未安)하게 생각하고 깊은 양찰(諒察)을 구한다.
一, 항렬(行列)은 금수목화토(金水木火土)로 오행(五行)의 상생지의(相生之義)하여 정명(定名)하다.
行列表(항렬표)
항렬(行列)은 金水木火土의 相生之義하여, 定名者例也라.
(1)金寧君諱牧卿派(京派) (自金寧君二十世로起顯字)
20세顯○ ○培 鍾○ ○泰洙 榮○ ○謙燮 在載○ ○鎭 浩○ ○根 性炳○ ○用坤 錫鎬○ ○淳 東○ ○煥烈 重○ ○鎔善 洛○ ○相 炯炳○ 41세○基奎
(2)監務公諱益卿派(四君派) (自監務公十七世로 起錫字라)
17세錫○ ○泰 相○ ○炫 在○ ○鎬 永○ ○植 炯○ ○奎 鎔○ ○淳 東○ ○勳 重○ ○會 源○ ○柱 燦○ ○基 鍾○ 38세○涉
(3)判圖判書公諱 管派(三賢派) (自判書公十六世로 起顯字)
16세顯○ 再○ ○圭 昌○ ○斗 容○ ○坤 鍾○ ○洙泰 相東○ ○煥熙 廷在○ ○鎬鎭 永汶○ ○根杓 炳炅○ ○埰基 錫銘○ ○洪淳 柱桂○ 36세○夏烈
(4)副護軍公諱巨公派 (自副護軍公十六世로 起洛字)
16세○洛泳 相炳○ ○烈燮 在圭○ ○鉉錫 泰源○ ○植榮 顯炯○ 24세○培採
(5)虞候公諱玉振派(自虞候公十一世로 起相字)
11세相○ ○煥 圭○ ○錫 泳○ ○根 炳○ ○基 鎔○ ○泰 柾○ ○熙 在○ ○鎭 25세河○
(6)承仕郞公諱之瑞派 (自承仕郞公十八世로 起致字)
18세致○ ○錫 永○ 秉○ ○煥 在○
(7)副正公諱平派 (自副正公十九世로起淵字)
19세○泰淵 秉榮○ ○煜燮 吉圭○ ○鎔鍾 永泰○ ○相 炳○ 27세○均
(8)版圖判書公諱添劍派 (自判書公二十一世로 起永字)
21세永○ ○柱 炳○ ○圭 錫○ ○洙 東○ ○燮 基○ 30세○鍾
(9)錄事公諱炤派 (自錄事公二十世로 起泰字)
20세○泰 相○ ○炫燮 在基○ ○鎭鎔 永○ ○植 成○ ○坤 鎬○ ○洙 秉柄○ 32세○煥
(10)判典公諱 明澤派 (自判典公諱十六世로起鎭字)
16세鎭章○ ○周柱 致炳○ ○祚 鍾○ ○泰 相○ ○烈 圭○ ○鎔 海○ ○植 炳○ ○埈 鉉○ ○洛 榮○ ○煥 在○ 35세○銖
(11)判書公諱不比派 (自判書公二十世로起洙字)
20세○洙 秉○ ○燮 圭○ ○鎭 浩○ ○榮 炯○ ○載 鎬○ ○洪 權○ ○熙 柱○ ○錫 泰○ ○植 37세炳○
(12)左政丞公諱萬希派 (自左政丞公十九世로 起顯字)
19세顯熙○ ○培 鎭鍾○ ○澤海 根柱○ ○炫勳 在圭○ ○鎬銓 淳潤○ ○杓模 炯炅○ ○均根 錫鏞○ ○瀅淡 柱東○ ○烈煥 恒坪○ ○鐸 洪漢○ ○彬 燕燦○ 40세○堅孝
(13)崇政公諱宗貞派 (自崇政公十一世로 起律字)
11세○律 基○ ○鎬 永○ ○柱
(14)尙書公諱 洪寶派 (自尙書工二十世로 起秉字)
20세秉○ ○熙 奎○ ○鉉 源○ ○模 炫○ ○基 錫○ ○湜 相○ 31세○燁
(15)副護軍公 諱天翼派 (自副護軍公十二世로 起賢字)
12세○賢 榮載○ 圭○ ○銖 泓○ ○柱林 煥炳○ ○採基 鍊錫○ ○淳河 東相○ ○燮熙 均在○ ○鎭鎔 浩泰○ ○模根 永灝○ ○培坤 鎬鉉○ 31세○洙洛
(16)判決事公諱用萬派 (自判決事公十五世로 起鍊字)
15세○鍊 淙○ ○植模 炳煌○ ○基珉 鎬錫○ ○洙浩 ○相槿 熙烈○ ○圭埈 ○鎭鎔 26세濟淳○
(17)進士公諱虔派 (自進士公十二世로 起基字)
12세基○ ○鉉 濟○ ○柱植 煥○ ○坤均 鎭鍾○ ○洛 秉○ 21세○炯
(18)留守公諱藝派 (自留守公十五世로 起在字)
15세在○ 廷○ ○昊 鍾○ ○洙 相○ ○炅 圭○ 23세○銀
(19)雲隱公諱大震派 (自雲隱公十二世로 起澤字)
12세○澤 炳○ ○換烈 圭○ ○鍾 永○ ○杓 熙○ ○海 東○ ○燮炫 23세在○
(20)栗隱公諱遜派 (自栗隱公十八世로起柄字)
18세○柄相 斗○ ○時基 鍾善○ ○淳浩 根榮○ ○燮煥 圭載○ ○鉉德 洛永○ ○東植 勳熙○ ○堯培 鎭鍵○ ○大洙 柱樂○ ○煥 用均○ ○錫欽 漢泰○ ○模杰 煜烈○ ○坤聖 41세鍍承○
(21)承旨公諱侃派 (自承旨公十八世로 起植字)
18세○植 顯○ ○培 鍾○ ○洙 榮○ ○燮 在○ ○錫 浩○ ○秉 炯○ 30세○圭
(22)侍中公(文敬公)諱琢派 (自文敬公二十世로 起寬字)
20세○寬 永○ ○模 熙○ ○載 鏞○ ○泰 來○ ○燮 奎○ ○鍊 洪○ 32세○杓
(23)府使公諱瑾派 (自府使公十七世로 起鎰字)
17세鎰○ ○洙澤 相東○ ○燮炯 奎均○ ○鍾 洛○ ○相 烈○ ○載 27세鉉○
(24)翰林公諱王寬派 (自翰林公十六世로 起基字)
16세○基 錫○ ○浩洙 柄秉○ ○煥黙 枉圭○ ○鉉鎰 洪淳○ ○植權 炯26세燦○ ○喆
(25)忠貞公諱 球派 (自忠貞公二十世로起梓字)
20세梓○ ○炫 性○ ○錫 浩○ ○柱
(26)都事公諱璉派 (自都事公十八世로 起冑字)
18세冑○ ○載 相○ 俊○ 喜○ 錫○ ○洙 ○根 ○烈 在○ 鐘○ ○沅 ○模 ○炫 培○ ○鎭 淳○ 榮○ ○熙 ○坤 ○鎬 泰○ ○植 ○煥 泳○ 동○ ○炅 45세○奎
(27)長沙君諱璇派 (自長沙君十六世로 起煥字)
16세○煥 致○ ○鍾 泳○ ○植 炳○ ○圭奎 銀釪○ ○沅洙 榕○ ○勳 埈○ ○鎭 泂○ ○彬 31세然○
(28)參奉公諱麟瑞派 (自參奉公十五世로 起應字)
15세○應 鍾○ ○洙 柄○ ○煥 圭○ ○錫 永○ ○秉 燦○ ○培 26세鏞○
(29)都事公諱璘派 (自都事公十九世로 起中字)
19세中○ ○鎬 淳○ ○根 忠○ ○坤 鎭○ ○泰 東○ ○煥 圭○ ○善 洪○ ○榮 熙○ 34세○基
(30)大提學公諱得河派 (自大提學公十六世로 起斗字)
16세○斗 ○煥 圭○ 鎭○ 永○ ○東根 熙炳○ ○基均 錫○ 25세○洙
(31)-1)都摠管公派諱敬臣派 (自都摠管公十九世로起奎字), (西岡公諱係錦派)
19세奎○ ○壽 鍾○ ○永求 秉○ ○熙勳 在○ ○鎭 泰○ ○柱 炯○ ○基 鎔○ ○淳 榮○ ○輝 遠○ ○鉉 澈○ ○彩 煥○ 40세○圭
(31)-2)都摠管公派諱敬臣派(自都摠管公二十一世로起履字),(築隱公諱方礪派)
21세履○ ○燮 堯○ ○鍊 漢○ ○錫洙 海東○ ○烈 垣○ ○會鎬 泰○ ○柱 榮○ ○輝 遠○ ○鉉 澈○ ○彩 煥○ 40세○圭
(32)忠景公諱大理派 (自忠景十六世로 起相字)
16세相○ ○煥 致○ ○鍾 源○ ○休 炳○ ○圭 鎔○ ○浩 東○ ○燮 在○ ○鎭 永○ ○根 熙○ 33세○培
(33)司正公諱利亨派 (註 首露王부터 起世하였음. 75世起在字)
在○ ○鍾 泰○ ○根 炳○ ○圭 錫○ ○湜 東○ ○烈 孝○ ○鎭 泳○ ○樂 南○ ○基
(34)文川公諱貴存派 (自文川公十四世로 起淵字)
14세○淵鍊 泰○ ○根榮 熙○ ○圭 鎭○ ○浩 東○ ○烈 在○ ○鍾 洙○ ○根 炳○ ○基 29세賢○
(35)忠順衛公諱克悌派 (自忠順衛公九世로 起在字)
9세在○ ○鎭 永○ ○植 炯○ ○圭 鎔○ ○淳 東○ ○煥 用○ ○鎬 泰○ ○根 炫○ ○均 鍊○ ○洙 柄○ 28세○烈
(36)通政公諱昌壽派 (自通政公十四世로 起鍾字)
14세鍾○ ○泰 榮○ ○燮 在○ ○鎭 浩○ ○根 性○ 23세○用
(37)判書公諱盡業派 (自判書公八世로 起濟字)
8세濟○ ○植 顯○ ○培 鍾○ ○泰 榮○ ○燮 在○ ○鎭 浩○ 19세○根
(38)參議公諱盡始派 (自參議公九世로 起植字)
9세○植 顯○ ○培 鍾○ ○泰 榮○ ○燮 在○ ○鎭 浩○ ○根 性○ 21세○用
(39)隋城伯公諱昉派 (自隋城伯公十九世로 起植字)
19세○植 顯○ ○培 鍾○ ○泰 榮○ ○燮 在○ ○鎭錫 浩永○ ○根東 30세炯○
(40)學生公諱洛瑞派 (自學生公七世로 起元字)
7세○元 塡○ ○鈺 瀀○ ○柱 炳○ ○均 錆○ ○洽 東○ 17세○炅
(41)副護軍公諱宇榴派 (自副護軍公六世로 起植字)
6세○植 顯○ ○培 鍾○ ○泰 榮○ ○謙 在○ ○鎭 浩○ ○根 17세炳○
(42)生員公諱鉉重派 (自生員公十五世로 起培字)
15세○培 鍾○ ○泰 榮○ ○燮 載○ ○鎭 22세浩○
(43)果州公諱 宇派 (自中祖諱鶴十一世로 起榮字)
11세○榮 炳○ ○圭 鍾○ ○泰 東○ ○熙 基○ ○錫 永○ ○根 炅○ ○培 24세鎭○
(44)通仕郞公諱汝龜派 (自通仕郞公十三世로 起植字)
13세○植 顯○ ○培 鍾○ ○泰 榮○ ○燮 在○ ○鎭 浩○ ○根 24세益○
(45)中郎將公諱 庥派 (自監務公二十七世로 起鏞字,中郎將公諱庥系行列)
27세鏞○ 泳○ 東○ ○烈 圭○ ○鉉 泰○ ○根 炳○ ○均 鍾○ ○浩 榮○ ○煥 廷○ ○錫 河○ ○模 炅○ ○培 47세鎭○
(46)通仕郞公諱守翯(학)派 (自通仕郞公八世로 起植字)
8세○植 顯○ ○培 鍾○ ○泰 榮○ ○燮 在○ ○鎭 浩○ ○根 19세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