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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의 산중산담 山中山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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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 기맥, 지맥 기타 스크랩 대간 2차1구간 : 지리산구간(1) : 하늘을 향해 백두대간길을 열다
최병의 5기(초보산꾼) 추천 0 조회 29 14.05.27 00: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3450온누리 산악회  백두대간 5기2차 (지리산구간1)  중산리에서 삼정리까지

 

언제 : 갑오년 푸른달  스물사흘 쇠날 밤  ~ 스물나흘 흙날 (무박2일) 
누구랑 : 대간5기 산우님들         

어딜 :  중산리 ~ 천왕봉 ~ 장터목 ~ 세석 ~ 덕평봉 ~ 삼정리 임도 삼거리 ~ 삼정리 

                                                        접속구간 포함 23.1 km (상황봉 대장님 공지내용)

                                  (산행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주자료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6715

            함양군 홈피

 

하늘에서 태백산(백두산)으로 내려오신 단군께서 만천하에 내땅임을 알릴 수 있도록 힘을 싫어 준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에 튼튼한 버팀목을 이룰 수 있도록

중간에 백두산과 비슷한 태백산을 이루고 거기에 마지막에 지리산이라는 영산을 만들어

두루두루 만천하를 다스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고마운 지리산에서 출발하는

백두대간 5기팀의 실제적인 출발을 위해 사당으로 출발한다

 

백두대간 지리산 구간 등로

 

이번 지리산구간은 산청군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에 올라 함양군과 경계를 이루며 내려오다

영신봉에서 하동군과 조우하며 함양군과 경계를 이루며 걷게 된다

즉 영신봉은 함양,하동,산청군의 삼군봉이 되는 샘이다

벽소령대피소에서 함양땅 삼정리 마을 중 가장 가까운 음정 마을로 내려와 구간을 정리하게 된다

 

문익점의 목화시배지가 있는 산청군, 산청군의 중산리에 도착하고

 

간단히 몸을 풀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제 우리는 백두대간의 시작점이자 마지막인 지리산의 하늘로 통하기 위해 통천길로 들어간다

 

어둠속에도 전설을 간직한만큼 무겁게 서있는 칼바위

칼바위 

조선 태조 성계가 등극한 후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지리산 중턱 큰 바위 밑에서 은신 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장수에게 그를 찾아 목을 베어오라고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장수가 지리산을 헤매다 이곳에서 2km 떨어진 곳에 이르러 큰 바위 밑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발견하여 칼로 치니 바위는 갈라져 홈바위가 되고 칼날은 부러지며 이곳까지 날아와 꽂히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형상의 바위로 변하였다고 하여 칼바위라 부른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다리를 건너 중산리계곡으로 하여 장터목으로 올라가는 코스와 갈라지는 삼거리 갈림길

 

이정표앞의 상황봉 백두대간 5기 대장님

 

갑자기 여러갈래의 길을 만나면 어디로 갈지 몰라하는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는 고마운 이정표이다

백두대간5기팀이 상황봉대장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것도 어런 이정표와 같은 역활을 해주실 것이리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인원이 함께 진행하는 단체산행에서 여러 갈래로 갈려지려는 대원들의 마음을 다잡는데도

이렇게 확실한 이정표를 세워주시면 하는 맘, 이정표에 서있는 대장님을 보고 느끼는 단상이다

남을 배려하라는 넓은 의미를 알려주는 이 이정표가 품고 있는높은 뜻을 실천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마치 경계병처럼 망을 보고 있는 듯한 모습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망바위 1,068m

 

로터리 대피소에서 바라본 법계사를 품고 있는 마당바위봉이 어둠속에서도 위용을 잃지 않고 있다

 

새벽에 참새가 잠시 내려와 맛보는 옹달샘에서 새벽에 맛보는 물맛?  지리산이라서 그런지 색다름으로 다가온다

 

지리산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법계사가 어둠속에서도 잠시 우측으로 모습을 보여 준다

법계사 1,450m.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지리산 천왕봉 동쪽 중턱, 해발 1,450m에 있는 남한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절이다.

법계사는 전란 때마다 수난을 겪었다. 그 첫번째가 고려 무왕 6 9월에 남원의 황산벌에서 이성계에게 크게 패한 왜구들이 황급히 도망가면서

지리산으로 들어가 불태운 것(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의 기운이 쇠퇴한다는 전설 때문에 고려말 왜적 아지발도에 의해 소실).

두번째가 조선시대 재건돼 많은 불자들의 기도처로 이용되던 중 1908년 지리산이 항일의병의 근거지로 활용되면서

박동의의 의병부대가 덕산에서 패한 뒤 법계사로 후퇴, 계속 항일전을 벌일 당시 일본군의 방화로 화마에 휩싸였다.

세번째는 1948년 여수반란사건을 겪으면서 지리산이 반란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자 토벌군이 대원사와 함께 불태워버린 것이라 한다

 

마당바위로 오르면서 서서히 밝아지는 지리산의 새벽 공기가 소리 없이 내려와 있고 

 

은신처로 활용할 법한 굴이 있는 바위?

 

잠시 뒤돌아 본 중산리 계곡이 아침안개를 품고 있어 아직은 잠든 새벽임을 알려준다

 

바로 넓은 바위가 나오면서 좌틀하게 되는 동부능선이 조망되는 곳에서 일출을 담아 본다

 

 

각자 산행을 하다 멈춘자리에서 지리산에서의 일출을 가슴속에 담아가기 위해 마음을 열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인간이 접할 수 없는 저 먼 동해에서 하나뿐인 해가  이렇게 수줍게 떠오르는 것은

저마다의 마음속의 소원을 하나라도 더 들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넓게 그리고 두루두루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고 살피기 위한 뜻이 담겨 있는 일출인 것이다.

우리가 꼭 천왕봉의 일출이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이 자리,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의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매일 뜨는 아침해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일께워 주었음을 느끼면서 걷는 대간길이 되었으면... 

 

 

새해에 맞이하는 새해에 떠오르는  일출은 새희망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 듯

우리에게는 지금 백두대간의 완주라는 먼 여정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지금

지리산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옴을 느꺼본다

백두대간팀의 밝은 여정을 지리산의 일출이 열어 주었음을 그저 감사하게 생각할 따름이다

 

봉을 썰어 놓은 듯 써리봉 능선이 일출의 산고를 지켜보고 있다 - 아래로는 일몰이 되면 황금능선으로 바뀌게 된다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부지런한 많은 산객들이 벌써 천왕봉을 차지하고 있다

 

개선문(개천문)

개천문(개선문)   

천왕봉 남서쪽의 통천문과 함께 천왕봉을 오르는 관문으로 여겨진다.

통천문처럼 신비스럽고 위용을 갖춘 모습은 아니지만, 마치 개선하는 기분이 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과거에는 왼쪽은 물론 오른쪽에도 비슷한 높이의 바위기둥이 서 있었지만, 지금은 오른쪽의 기둥은 붕괴되어 없어지고 왼쪽에만 높이 10m의 문설주가 있다.

통천문이 ‘하늘을 오르는 문’이라는 의미라는 점을 보면, 개선문보다는 개천문이 ‘하늘을 여는 문’이라는 의미에서 타당해 보임

 

천왕봉 일출 못지 않은 인기를 끌고 있는 연화봉과 촛대봉이 좌측으로 이어지며 미리 우리 갈 앞길을 안내해 준다

 

영신봉에서 분가한 낙남정맥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낙동강으로 흐르는 남강의 발원지인 천왕샘 - 오늘은 물이 다행히 흐르고 있다

천왕샘 1,800m.  남강의 발원지.

여기에서 솟구친 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지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1977년 덕산 두류산악회에서 석공을 동원해 물이 고일 수 있도록 홈을 파놓았지만 가물 때는 쉽게 말라버리기 일쑤다.

깍쟁이처럼 6m정도의 바위에서 졸졸 흐르는 정도의 양이지만, 남강의 첫물, 강이 되고 바다가 될 그 시초다.

 

전국이 꽃의 열병에서 벗어나 잊을 만 하면...  짱~하고 나타나는 것이 지리산의 벗꽃이고 진달래이다

 

 

천왕봉 직전 우측으로 보이는 미니 협곡에 소나무 한그루 또 다른 하늘길인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안전시설이 없어 힘들게 오르내렸는데?  우측에 보이는 천왕남릉이 중산리 계곡을 만들어 주고 있다

 

정상으로 오르면 동부능선과 아까 본 써리봉능선으로 이어지는 대원사 코스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먼저 보인다 - 웅석지맥을 일으킨다

 

웅석지맥이 북?으로 웅성산을 일으키며 한줄기를 이어간다 - 지리산 동부능선이며 태극종주의 시작점이다

웅석지맥 (熊石枝脈)?
백두대간 지리산 천왕봉(x1915m) 에서 분기해서 중봉(x1875m), 하봉(x1755m),두류봉(x1618m), 독바위(x1301m), △새봉(1351.4m), 도토리봉(x908봉),

△기산(611.0m), △웅석봉(1099.3m), △백운산(515m), 석당산(x291m)을거쳐  귀곡동 진양호에서 맥을 다한다. 57km

 

천왕봉 정상에서 본 지리산 주 능선 - 멀리 반야봉과 좌측으로 살짝 보이는 노고단과 삼도봉

 

천왕봉 서쪽 암벽에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뜻의 천주(天柱)라는 글자가 세겨져 있는데 하늘을 향한 기상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천왕봉(天王峰)의 천왕은 제정일치시대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군장(君長)을 달리 부르던 말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천왕봉은 군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령스러운 곳이었던 셈이다

거대한 암괴(岩塊)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니, 서쪽 암벽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천주'라는 음각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낙동과 함께 대간도 함께 계속하게 될 다라실님을 응원합니다.

천왕봉 1,915.4m.

남한 내륙의 최고봉. 3대가 덕을 쌓아야 천왕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속설과 더불어, 반드시 관문을 거쳐 들어오도록 하고 있다.

동쪽으로 개천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다

천왕봉에 지금의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기 전에는 '경남인의 기상'이 있었고,

그전에는 남명 조식 선생의 '하늘이 울어도 산은 울리지 않는다‘는 뜻의 '만고천왕봉 천명유불명(萬古天王峰天鳴猶不鳴)'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서산대사는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과 더불어 지리산을 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엄한 산이라 했다

 

추성리 내려가는 칠선계곡의 흐름이 칠선이 노닐만한 흐름을 만들어 굽이치며 길게 뻗어가고 있다

칠선계곡 코스

인터넷으로 사전예약을 하고 여행자보험증서까지 있어야 하며, 인원도 60명으로 한정 되 있을 뿐만 아니라 연중 4개월만 개방한다고 한다.

총거리는 14㎞이며 구체적인 코스는 추성리 - 1.5 - 두지터 - 2.5 - 선녀탕 - 3.5 - 칠선폭포 - 0.5 - 대륙폭포 - 4 - 마폭포 - 3 - 천왕봉이다.

추성리에는 벽송사가 있고 옛 가락국의 식량 창고였던 두지터, 용소, 선녀탕, 청춘홀, 칠선폭포, 합수폭포(대륙폭포), 삼층폭포, 마폭 등의 폭포와 소의 연속이다.

한때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었던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일 정도로 누구에게나 접근을 주지 않는 코스이다

지금은 추성리에서 마폭포까지만 개방되었다고 하나 너무나 숲이 우거저 길찾기가 어렵다는 후문이다.

 

단체사진을 남기면서 백두대간 긴 여정을 알린다 - 보물상자님 작품  : 짧지 않은 대간길 안전하게 끝나는 날까지...

 

식후 내려와서 바라본 통천문

通天門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마지막 관문인 통천문에 이른다. 동굴 입구에 옛날 필적으로 ‘通天門’이란 대각자가 보인다. 예로부터 부정한 자는 출입을 못 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제석봉으로 내려 올 수록 보이는 지리산의 속살이 왜 지리산이 넉넉한 품으로 역사를 안아 줄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이래 지리산만큼 넉넉한 품으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안아준 산이 있을까?

지리산의 험난한 역사는 삼한과 가야는 물론 삼국시대에까지 국경의 접변지대로 싸움터의 무대였기에

백제에 멸망당한 마한과 신라에 나라를 뺏긴 가야의 유민들에게는 그나마 마지막 남은 안식처였다

마한의 도성이 피난와서 만들었다는 달궁

신라왕국을 피해 지리산자락에서 최후를 맞이한 가야국의 전설이 살아 있는 산청에 있는 구형왕릉등

 

만나는 안부마다 보이는 계곡들이 한결같이 깊고 길기만하다

 

고려 때는 왜구의 침입과 민란의 현장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대변되는 침략의 한가운데에서

조선시대 전란을 피해 들어온 민초들이 숨어지내며 형성된 마을들이 존재하고

근대엔 동학민중운동,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에서 피로 얼룩진 전쟁터였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우리 근대사의 비극인 6·25전쟁 와중에서는 '빨치산'의 주된 활동 무대가 되기도 했다.

현대에 접어들어 1948년 10월 여수순천사건에서 시작해 1955년까지 계속된 좌우 대립의 치열한 격전으로

수만 명의 목숨이 꽃잎처럼 떨어진 곳이다

 

계속이어지는 기암괴석지대를 지나 나타난 제석봉

제석봉 帝釋峰 (1,808m)

제왕이 자리했다는 제석봉인데, 옆에 최고봉 천왕봉이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과거에는 고사목이 즐비하여 별난 경치를 자랑했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 수도 많이 줄었다.

지리산에서 천왕봉, 중봉에 이어 세 번째로 높으며, 지명의 유래는 제석봉에 있던 신당이던 제석당(帝釋堂)과 관련이 깊다. 

제석은 삼신제석(三神帝釋), 천주제석(天主帝釋), 제석천(帝釋天)이라고도 하는 하늘신이며, 도리천(?利天)에 살면서 불법을 보호하는 불교의 호법선신이다

 

 

 

장터목 산장

 

화장실 방향으로 가면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하동바위 코스이다

 

 

장터목의 유래가 된 상상도

장터목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시천 주민과 북쪽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 장()을 세우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 데서 이름 붙여진 이름

하동바위코스와 한신지계곡, 그리고 칼바위로 내려가는 중산리계곡코스가 갈린다.

 

 

연꽃모양의 바위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연화봉이 지척으로 다가오고

 

연화봉의 봉우리 앞에서 잠시 휴식

연하봉 일출봉 (1,730m) 

천왕봉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봉우리다. 구름이 노는 아름다운 봉우리라는 뜻으로 ‘지리 8경’ 중의 하나다

 

연하봉 바위 잠시 감상

 

함양군 홈피에 들어가보면 조선시대에는 어떤 방법으로 산행을 했을까 하는 자료가 있다

지금이야 편하게 어떤 산이고 맘만 먹으면 차를 타고 갈 수 있고 지도라는 훌륭한 안내서가 있지만

옛날에는 지도도 귀할 뿐아니라 보안상 국가에서 관리하기 ?문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가장 많이 이용했던 방법이 바로 산속에 있는 절에 찾아가는 것이다

길을 잘 아는 스님을 길 안내자로 하고 여기저기 있는 절들을 돌아다니며 산행을 했따고 한다.

지체 높고 늙은 양반인 경우에는 가마에 태워 천왕봉까지 안내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ㅋㅋ

 

 

그럼 일출은 어디서 봤을까?

지금이야 장터목산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지리산 10경의 하나인 천왕일출(天王日出)을 꿈꾸게 되지만

조선시대에는 제석봉 바로 밑에 있던 향적사나 천왕봉에 있던 성모사에서 묵으면서 일출을 봤다고 한다

아무리 스님이라도 이 높은 곳에서 생활한다는게 쉽지 않았던지 한두명의 스님밖에 없었다고 하고

비워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지금과 완전 다른 지리산에서의 하룻반 어떠했을까?

 

봉하나를 더 넘고 나타난 헬기장에서 본 연화봉과 천왕봉

 

국립공원 지리산에 어울리지 않게 정상 이름이 없는 봉우리 이정표 : 삼신봉인 듯 - 각종규제는 최고이면서 ㅉㅉ 관리는 엉망

 

촛대봉이 서서히 앞으로 계속 다가온다

 

바위는 보는 각도 위치에 따라 이렇게 변하고 저렇게도 변하고... 열길 사람 맘 일께워 줄려는 걸까?

 

촛대봉삼거리에서 촛대봉으로

 

촛대봉에서 - 촛대봉의 유래를 안고 있는 촛대봉은 공사관계로 들어 갈 수가 없다

 

한 여인이 산신령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촛대를 켜고 천왕봉을 향해 빌다가 돌로 굳어버린 모습의 들어갈 수 없는 촛대봉 조망

 

당겨보면

 

연신봉과의 사이에 세석평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조망된다

세석평원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이현상이 이 평원에서 빨치산 투쟁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잔돌이 많은 평야 같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

한국 3대 고원평원 가운데 가장 넓은 세석평전인데 확실히 큰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잔돌만이 존재하고 작은 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주위가 12km가 되고, 면적이 무려 30여 만 평에 달해 남녘의 개마고원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에 한국 특산식물인 구상나무가 자생하고 있으며, 세석대피소도 있다.

 

세석가림길 - 백무동 가는 길이 한신계곡코스

한신계곡코스

지리산 계곡 가운데 폭포를 가장 많이 끼고 있으며, 지리산 등반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빙벽의 연습으로도 유명했는데 지금도 그러나?

 

세석산장의 샘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림골과 남부능선으로 갈 수 있다

남부 능선 코스    결코 잊을 수 없는 비경 능선

총거리는 20㎞이며 구체적인 코스는 세석산장 - 2 - 1,050m 갈림길(거림골) - 3 - 한벗샘 - 5 - 삼신봉 - 1.5 - 송정굴 - 3.5 - 생불재삼거리 - 2.5 - 불일폭포휴게소 - 3 - 쌍계사 - 0.5 - 용강리이다.

 

거림골 코스        

총거리는 8㎞이며 구체적인 코스는 세석산장 - 0.5 - 세석 입구 - 3.5 - 1,050m갈림길(남부능선) - 1 - 휴게소 - 1 - 850m 갈림길 - 2 - 거림마을이다.

1,050m갈림길에서 남부능선과 거림골이 갈린다

 

잔돌평전의 오늘의 주인공님인 세석님과 그 친구분들과 함께 기념사진 한장 남기는 영광을 갖는다. - 칠갑산님 작품 : 계속 대간길 함께 하시길...

 

세석대피소를 떠나 헬기장에서 본 영신봉

 

낙동강의 남쪽을 책임지고  낙남정맥을 분기시키는 영신봉

영신봉 靈神峰(1,651.9m)

 영신봉은 말 그대로 신령스런 봉우리라는 의미다. 영신봉의 이름은 영신사(靈神寺)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동군 화개면과 함양군 마천면, 산청군 시천면 경계에 위치한 삼면봉이다

 

낙남정맥 방향

 

낙남정맥


백두대간 지리산 칠선봉 지나 촛대봉 못 미쳐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낙남정맥은 삼신봉, , 천주산,  경운산과 신어산을 지나 낙동강으로 맥을 다하는

길이 204.9km 하동, 산청, 진주, 고성, 함안,  마산, 창원과 김해지역의 정맥으로 좌측으로 낙동강을 우측으로 섬진강과 남해로 흘러드는 지류를 흐르게 한다.

삼신지맥

 

기암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칠선봉

 

칠선봉七仙峯(1,558m)

일곱 개의 바위가 오밀조밀 모여서 정상을 이룬 모습이 마치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는 형상과 같다고 해서 칠선봉이라 불린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비경의 암봉들이 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면 더욱 아름답고 고요한 운치를 돋운다고 한다.

오늘같이 밝은 날도 좋지만 구름이 흐르는 흐린날도 나름대로 멋진 풍경화를 연출 할 듯하다

 

이제 능선은 잠시 숨고르 듯이 능선을 잠시 벗어나 우회하게 되면 나타나는 선비샘

선비샘

함양군 지리산 주 능선인 덕평봉 남쪽 상덕평 해발 1,500m에 있는 샘터이다. 이 샘을 선비샘이라 한 데는 한 화전민의 사연이 전한다.

옛날 덕평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화전민의 자식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평생을 살았다.

배우지 못한데다 못생겨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던 노인은, 단 한번이라도 사람다운 대접, 선비대접을 받으며 살고 싶었다.

살아생전에는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고, 효성이 지극한 두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 위에 매장 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샘에서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인사를 하게 되니, 생전에 받고 싶었던 선비대접을 죽어서나마 이루었던 것이다

 

덕평봉

덕평봉(德坪)(1,521.9m)

정상부가 각이 지지 않고 평평한 것이 덕스러워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덕평봉(1,521.9m)

김택술(金澤述, 1884~1954)의 『두류산유록(頭流山遊錄)』에도 덕평이 나오는데, "1934년 4월 1일에 백무촌(白武村)을 떠나 직치(直峙)를 거쳐 덕평(德坪)을 찾았다. 길은 점점 넓어진다. 평평한 곳에는 비록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더라도 종종 인가가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덕평에는 일제강점기 때까지 30가구 정도가 살았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덕평봉 [德坪峰, Deokpyeongbong]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2011.12, 국토지리정보원)

 

벽소령 대피소가 있는 안부를 가리고 있는 1435봉봉 하나가 기다리고 있지만 옆으로 우회하게 된다

 

덕평골을 담아보고 - 삼정(하동)과 의신마을로 이어지는 계곡

 

전에 임도삼거리가 있었던  마른재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위험구간이라 지금은 폐쇄된 길

 

낙석의 위험구간이므로 조심 또 조심

 

벽소령대피소가 나오고

벽소령碧宵嶺(1,350m)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코스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지리산의 허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예로부터 화개골과 마천골, 즉 지리산의 남북을 연결하는 고개 중의 대표적인 곳이다.

벽소령에서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碧嶺’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벽소령의 달은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다. 언제 한번 보름달에 이 곳에서 달구경할 날이 올려나?

 

하늘아래 첫 마을로 잘 알려진 하동 의신방향 이정표 - 우리는 반대편인 함양 삼정리로 하산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고독한 영웅' 빨치산으로 알려진 이현상 최후장소 아지트로 알려진 빗점골(산태골)이 있는 마을이다.

또 하나의 비극인 동학농민군이 이곳에서 참살 당한 곳이기도 하다 - 다음 지리산 구간에서 자세히 만나게 됩니다

 

음정방향으로 하산 시작

 

아까 폐쇄댔던 임도와 다시 만나 계속 임도릉 따라 내려간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출발하여 삼각고지 삼각봉에서 삼정산으로 내려오다 삼정리로 빠지는 길을 만나고

 

급격하게 좌틀하는 임도 삼거리에서 물탱크가 있는 산속으로 직직하여 내려오면 오늘의 날머리 음정마을이다

 

오늘의 날머리 삼정리 중 지리산 방향에 제일 가까운 마을 음정

 

인월로 옮겨 뒷풀이 장소

 

맛있게 마무리

 

오랜만에 만차에 날씨까지 도와주고

거기에 천왕봉 가까이에서 본 일출을 시작으로 마무리까지... 이렇게 지리산 1구간을 마친다

 

한반도의 든든한 버팀목인 백두대간의 모든 짐을 다 받아주고 있는 지리산

허리의 든든함을 방패삼아 찾아온 어려움에 처한 민초들을 아무 조건 없이 안아 주었듯이

새롭게 출발하는 대간 5기팀도 맑은 날씨와 일출의 영롱함으로 맞아 주었다

거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만차의 기쁨까지 함께하고...

 

산을 한번이라도 올랐던 사람이라면 지리산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한번쯤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한번 지리산에 발을 들여 놓으면 추억의 그림자는 평생을 따라다니게 된다

한번 다녀왔다는 자체가 바로 산이야기 할 때 반드시 하나의 가십거리가 되는 샘이다

그게 지리산의 커다란 자산이며 우리의 자랑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저마다의 마음속의 소원을 하나라도 더 들어주기 위해서 동해 저 멀리에서 떠올랐 듯이

지리산에서 대한 일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세기면서 대간길을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개천문과 통천문을 통과하면서 마음이 통하는 하늘의 문을 열었듯이

하늘을 향해 부끄럼 없는 삶을 더불어 빌어보고

대간길에서도 서로에 대한 마음까지 통했으면 하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天柱라 세겨진 천왕봉에 있는 암괴를 바라보며 다짐했듯

 

갈 때마다 밤잠 이루지 못하면서 계속 이어가야 할 백두대간길

이미 시작된 대간길, 또 계속 이어가야할 대간길이기에

오늘 지리산에 열어준 대간길이 그래서 더욱 값지게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대간길을 계속 이어가실 산우님도 계시고

또 지리산이 좋아서 오신 산우님도 계시고

마음을 언제나  3450온누리 산악회에 마음을 두시고

중요한 때에 항상 같이 해 주시는 운영위원님들

 

그분들의 소중한 마음 하나하나를 모아서 

안전한 대간길을 이루며 끝까지 완주 할 수 있는 대간팀이 되리라 생각해 봅니다

 

쉽지 않았던 지리산 구간을 함께 해주신 

산우님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재밌는 대간길을 위하여

 

상황봉 대장님과 정이 총무님과 함께...

 

 

                    초보산꾼   도   덕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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