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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16) 2023. 3. 22
다윗의 감사 기도
삼하 7:18-29(대상17:16-27)
<지난 시간 요약 – 다윗을 축복하신 하나님>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는 그 마음을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에게 다섯 가지 큰 복을 약속하십니다.
첫째, 다윗을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복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마음을 품었기에 하나님도 다윗의 이름을 존귀케 해주신 것입니다(삼상2:30).
둘째,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안정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유리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또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다윗과 그 자손들에겐 안정의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셋째, 다윗의 왕조를 견고하게 세워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울의 왕조는 당대로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왕조는 후손 대대로 계속해서 견고하게 이어지게 하시겠다는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은 후손(솔로몬)을 통해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넷째, 다윗의 후손 중에 누가 혹시 죄를 범한다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 중에 누가 혹시 죄를 범한다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그를 징계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더라도 천국에 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징계도 축복입니다.
다섯 번째, 다윗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다윗의 왕조는 훗날 바벨론에 의해서 성전이 무너지고 왕조가 끊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손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서 메시아가 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다윗의 감사 기도>
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하나님의 축복 선언에 대한 다윗의 응답 즉 반응입니다.
전제적으로 세 단락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첫째 단락(18~21절)은 다윗은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18~21절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19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20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21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그는 기도의 장소로 향했습니다. 특별히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라는 말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여기서 ‘여호와 앞에’라는 말은 하나님의 법궤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즉 다윗이 기도한 곳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장막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가 앉았다’는 말은 언뜻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좀처럼 앉아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왕상 8:22, 느 8:4, 9:4).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브'는 '머물러 있다', '지체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의 기도 '자세'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 다윗이 시간을 내어 기도한 '행위' 자체를 묘사하고 있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기도하는 '골방'을 갖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공간의 중요성).
한편 우리는 이 다윗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다윗의 성품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1) 다윗의 겸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다윗은 성공 뒤에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첫마디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8b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대부분의 사람은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찾고 은혜를 구하고 믿음이 강해집니다. 그러나 성공과 형통 앞에서는 무너지고 교만해지고 맙니다.
특히 힘들고 어렵게 성공한 사람들은 공로의식, 보상의식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잠도 자지 않고 공부하고 쉬지 않고 일해서 안 먹고, 안 입고, 모아서 부자가 되고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하고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성공은 나의 노력과 열심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성공에는 타인의 몫이 반드시 있고, 나의 성공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왕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랫동안 있었지만, 겸손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양 치던 목동에 불과하던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다시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만도 감당하기 힘든 은혜인데 그 은혜를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19) 더 큰 은혜, 즉 다윗 왕조의 미래까지도 책임지시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그 큰 은혜 앞에서 다윗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19절 끝에서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라고 말씀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영어 성경(NIV)에는 “이것이 당신이 사람을 다루시는 일반적인 방법입니까?”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즉 이 말씀은 놀라움의 표현으로 “하나님, 어쩌면 저 같은 사람을 이렇게 엄청난 은혜로 대해주십니까? 그래도 되는 법입니까?”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다윗도 얼마든지 교만해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친 위대한 장군입니다(사람들은 그를 칭송 –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
통일 이스라엘 왕이 되고 열방을 정복한 위대한 왕입니다.
그러나 과거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겸손하였습니다.
이번 한 번만 겸손한 척 한 것이 아니라 늘 겸손했습니다.
시8:4~5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144: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성도 여러분! 바로 여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아는 자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은혜를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눅18:9-14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늘 기억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고전5:8-10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약 4:6, 벧전5:5).
교만한 사람은 아무리 큰일을 맡겨도 작게 감사하고,
겸손한 사람은 아무리 작은 일을 맡겨도 크게 감사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나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하겠냐고 하고,
겸손한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느냐고 말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아무도 못 하는 것을 내가 해내었다고 하고,
겸손한 사람은 다 도와줘서 이 일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늘 겸손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 설정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본문 전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종이라는 단어입니다.
20-21절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21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여기서는 2번 나오지만, 오늘 본문 전체에서는 총 10번 나옵니다.
다윗은 왕의 신분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분명히 설정하고 있는 것입니다(주인과 종의 관계).
이와 같이, 첫 번째 단락에서, 다윗은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은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여기까지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도 큰데 오히려 이것을 적게 여기시고 다윗 가문의 먼 미래의 약속까지도 주셨냐고 감사의 기도를 간절히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단락은(22~24절) 이스라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22~24절 “그런즉 여호와여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23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24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자신이 세운 나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23)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구원의 주도자가 하나님).
이스라엘을 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2절에서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과거 모세가 고백하였던 신앙고백입니다(출 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우리도 다윗처럼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도 다윗(모세)과 같이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대한민국을 사랑하셔서, 일제의 압제로부터 건져내시고, 민주화와 경제부국으로 여기까지 세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부흥케 하셔서,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제2의 영적 이스라엘로 세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셋째 단락은(25~29절)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25~29절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26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27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28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29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다윗이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다윗의 간절한 기도 내용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할 마음이 생긴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27절). 즉 기도의 동기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28)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기도의 동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40: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그림자도 없으시기(약1:17)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기도는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기 위하여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뜻)대로 되기를 원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나의 유익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하니, 마치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처럼 오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우리도 더불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현실이 어려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목회가 안 되고 어렵자 자기 아버님께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너무 힘들어요. 제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네 뜻대로 안 된다니 참 다행이다. 하나님 뜻대로 되는 중이니 감사하거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감사로 하나님께 아뢰기를 힘쓰기를 바랍니다. 현실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현실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맺는 말씀>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기도를 했는지 보았습니다.
1) 그는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철저히 겸손했습니다.
2)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부여잡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윗의 신앙을 본받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 대한민국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시다.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 덕분임을 알고 늘 감사 기도를 드리며, 다윗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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