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도 결함상품과 관련한 판례를 살펴보면 대부분 전통적인 과실책임의 원칙을 그 근간으로 하는 불법행위책임법리로 제조물책임관련소송을 처리하고 있다. 다만 경우에 따라 피고의 과실 및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입증책임을 전환함으로써 과실책임의 원칙을 완화하는 입장을 취하여 왔다. 아직 결함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물책임에 관한 특별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므로, 제조물책임관련소송에서 결함개념을 도입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주로 법적용에서 주의의무위반을 들어 과실책임을 인정하였다.
1992년 11월에 이르러 비로소 대법원은 변압변류기 사건(1992.11.24. 92 다 18139)에서 제품의 안전성과 내구성에 기준을 둔 결함개념을 제조물책임관련소송에 최초로 도입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조물책임관련소송은 여전히 전통적인 과실책임원칙에 기초하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다.
1) 채혈병 사건 (대판 1976. 9. 14. 76 다 1259)
본 건은 망인이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수혈(동병원부속혈액원에서 피고회사가 제조하여 납품한 채혈병을 사용하여 채혈한 것에 의하여)을 하면서 수술을 하다가 쇼크로 인하여 사망한 사건이다. 그 쇼크의 선행원인은 어떤 독성물질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나 사후부검에서 독성물질을 발견할 수 없고 다만 납품된 채혈병중 2개의 병에서 대장균만이 발견되었다. 이에 원고는 채혈병제조상의 과실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 채혈병제조회사에 대해서 불법행위책임에 근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판결에서 "피고가 납품한 2개의 채혈병이 당초부터 오염되어 있었다고 단정할 증거가 없고 채혈병에서 검출된 대장균이 소외인을 사망케 한 쇼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단정하기에 미흡"하므로 "채혈병제조상의 멸균 등의 시험을 하지 아니한 채 납품한 잘못과 소외인의 사망 사이에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여 원고가 패소하였다.
본 건에서는 원고가 결함의 존재 및 결함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함으로써 패소하였다. 그러므로 제조물책임법을 도입하는 경우에도 본건에서는 결함의 존재여부 및 결함과 손해간의 인과관계가 문제된다. 제조물책임법의 도입시 원고의 입증책임을 경감하거나 결함의 존재 및 결함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규정을 둔다면 본건과 같은 사건에서 원고가 승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경상사료 사건 (대판 1977. 1. 25. 75 다 2092)
본 건은 피고가 경영하는 사료공장에서 사료를 매입하여 자기 양계에 급식한 바 2, 3, 4,일 후부터 닭들이 심한 탈모 현상과 더불어 난소가 극히 위축되고 복강 내 침출물이 충만하는 등 심한 중독현상을 일으키고 계사당 매일 약 80%에 달하던 산란율이 급격히 저하되기 시작하여 약 10일이 경과된 무렵에는 30% 이하로 떨어져 양계의 경제성이 완전 유실되어 끝내는 모두 폐계처분하기에 이르른 사건이다. 이에 원고는 배합사료에 어떤 불순물이 함유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하여 그 사료 제조판매자에게 불법행위책임에 근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대법원에서는 "본건 사료에 어떠한 불순물이 함유되어 있고 또 그것이 어떤 화학적 영양학적 내지는 생리적 작용을 하여 이를 사료로 한 닭들이 난소 협착증을 일으키게 되고 산란율을 급격히 현저하게 저하케 한 것인지는 이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사료에 어떤 불순물이 함유된 것이 틀림없어 제조과정에 과실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원고가 사육하던 닭들이 위와 같은 현상을 초래하게 된 것이라는 이른바 인과관계는 입증되었다"고 판시, 제조업자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였다.
이 판결에서는 동일한 정황증거 내지 간접사실군에 의하여 사료상의 결함, 그에 대한 피고의 과실 및 인과관계의 존재 등을 추정하였다. 당시 정만조 판사가 결함 및 과실의 추정은 반드시 "특정의 구체적인 결함 및 과실의 증명임을 요하지 아니하며 무엇인가의 결함 및 과실에 관한 그 사실상의 추정으로써 족하다고 한 점에 앞으로의 제조물책임소송은 물론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소송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하였듯이, 이 판례는 과실, 결함 및 인과관계의 존재 등을 추정함으로써 소비자피해구제를 보다 두텁게 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또한 이 판례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일반 불법행위에 의한 제조물책임의 법리구성의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평가된다.
3) 서울적십자병원 질소가스 사건 (대판 1979. 3. 27. 78 다 2221)
본 건은 가스공급회사가 산소통으로 오인될 수 있는 용기에 질소를 넣어 병원에 공급하였는데 병원에서 이를 확인하지 아니하고 환자에게 마취제와 함께 질소를 주입함으로 인하여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다.
본 건에서 대법원은 "피고(가스공급회사)가 공급한 질소통이 외관상 산소통으로 오인될 수 있도록 도색과 문자가 된 채 서울적십자병원으로 공급되었다면 공동불법행위자로서의 연대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시, 가스공급회사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본 건은 제조 판매자로부터 제공된 정보의 표시결함에 관한 것이다. 제조 판매자는 안전한 사용방법을 지시 설명하여야 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표시결함으로 인하여 피해가 발생한 경우 안전상품공급의무의 일환으로써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 제조물책임법을 도입하는 경우 제조물책임을 물을 수 있다.
4) 공구결함 사건 (대판 1979. 7. 10. 79 다 714)
차량정비공장에서 자동차 하부링의 너트를 풀기 위하여 복스대(공구의 일종)를 너트에 끼워 힘주어 돌리자 복스대가 부러지면서 파편이 자동차의 앞바퀴를 잡고 있던 원고의 오른쪽 눈을 때려 원고가 우안각막열창 등의 상해를 입자 정비공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피고회사 정비공장에서 점유, 사용중이던 복스대가 낡아서 작업 도중 부러진 것은 그 공작물의 보존상의 하자 즉 공작물자체가 통상 지녀야 할 안전성에 결함이 있는 상태였다 할 것이며 만약 그것이 '제작상의 잘못' 때문에 부러졌다고 하더라도 이를 피고 정비공장에서 필요한 공구로서 비치한 이상 이는 공작물의 설치 보존의 하자에 해당된다"고 판시,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본 판례에서는 정비공장에 대해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등의 점유자, 소유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제조물책임법을 도입하는 경우, 본건에서 원고는 공구의 제조상의 결함이 있음을 전제로 제조업자를 상대로 제조물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5) 주사기 결함 사건 (대판 1979. 12. 26. 79 다 1772)
본 건은 만 6세의 어린이가 문방구점에서 구입한 교재용 주사기를 가지고 놀다가 주사기의 바늘구멍이 막히자 주사기를 왼쪽 눈앞에 들이대고 주사기를 압축하는 순간 공기압력에 의하여 '펑'하고 바늘이 튕겨 나와 왼쪽 눈이 좌안동공폐쇄증에 걸린 사건이다. 이에 원고가 주사기 제조업자에 대해 불법행위책임에 근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본 건에서 대법원은 "주사침을 주사기 몸통에 부착시키는 합성수지부분이 견고하지 못하고 엉성하여 이를 몸통에 부착시켜 공기를 압축할 때는 경우에 따라 주사침부분이 쉽게 주사기 몸통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되어 있는바 이는 주사기 재료가 저질일 뿐 아니라 제조상의 잘못으로 인한 제품의 현저한 결함이며 또 동결함은 외부적으로 노출되어 있어 이를 제조한 피고가 동결함을 알았거나 알 수 있는 정도이므로 피고는 위와 같은 결함이 없는 제품을 만들어 동주사기의 사용에 수반되는 사고발생을 미연에 방지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의무에 위반한 과실이 있었다"고 하고 "이 건 제품의 관계검사소에서 하자가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만으로 피고에게 위와 같은 과실이 있었음을 번복할 자료는 되지 못한다"고 판시, 제조업자의 과실을 인정하였다.
본 판례는 피고에게 제조업자로서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을 인정, 불법행위책임을 물었다. 품질관리법 등 일정한 형식이나 검사에 합격하였다고 해서 면책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유무의 판단을 구체적 사건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는 점 그리고 상품의 안전성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상품의 제조에 행정상의 인가나 허가가 주어지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은 문제된 사건이 행정상의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사실상의 추정에 불과하므로 제조업자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제조물책임법을 도입하는 경우 본건에서는 쉽게 제조물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6) 세원사료 사건 (대판 1983. 5. 24 82 다 390, 82 다카 924)
본 건은 양계업자인 원고가 피고회사에서 제조 판매하는 배합사료를 매입하여 종전방식에 따라 곡류 어분 등을 첨가 배합하여 자기양계에 급식하자 아무 이상 없던 닭들이 심한 중독현상을 일으키더니 약 500수 이상의 닭이 계속 죽어버린 사건이다. 이에 원고는 사료 제조판매자에게 불법행위책임에 근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본 건에 대해 원심에서는 "인근양계업자 4, 5명 등도 피고로부터 배합사료를 매입하여 닭들에 급식한 결과 원고의 양계장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심한 중독증상을 나타내어 폐사하고만 사실, 원고가 이건 사료를 보관함에 있어 어떤 잘못이 있었거나 그 배합과정이나 급식방법에 이상이 있었다고는 보여지지 아니하는 사실" 등을 인정하여 "피고 제조의 사료에 어떤 불량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그것이 어떤 화학적, 영양학적 내지는 생리적 작용을 일으켜 이를 급식한 닭들로 하여금 폐사케 한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피고의 사료가 당시 부패변질되었거나 아니면 어떤 불순물이 그 속에 함유되어 있었던 것이 틀림없고 그와 같은 사료를 급식시킴으로 인하여 원고가 사육하던 닭들이 폐사하게 된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는 없다"고 판시,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가축보건소 등에 닭의 폐사원인을 감정의뢰한 결과 모두 닭의 폐사원인을 뇨산침착증으로 감정하였고 이의 발병원인은 사육환경이나 사료의 품질 및 어떤 질병의 후차적인 증상이 그 원인인데 주로 단백질이나 칼슘성분의 함량이 너무 높은 사료를 지나치게 많이 급여하거나 비타민 A의 결핍으로 곰팡이 독소를 초래하는 변질된 사료를 먹일때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피고회사 제조의 배합사료가 단백질, 칼슘 성분은 함유하고 있으나 비타민 A성분은 아예 함유하고 있지 아니하고 또 그 배합사료를 검사한 결과 그 일부가 농수산부에서 정한 성분규격에 미달된 것이 있어 단백질이나 칼슘성분이 과다하였다고도 볼 수 없는 이상 피고회사의 배합사료 제조 판매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사육하던 닭들이 폐사한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 원고패소 판결을 하였다.
본 건에 대해 원심은 상기 경상사료사건에서와 같이 동일한 정황증거 내지 간접사실군에 의하여 사료상의 결함, 그에 대한 피고의 과실 및 인과관계의 존재 등을 추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상기 경상사료사건에서와는 달리 인과관계의 존재를 부인하여 제조물책임의 법리구성에 일관성이 결여되었다. 따라서 제조물책임법을 도입하는 경우 결함 및 인과관계의 추정규정을 두어 입증책임을 경감 또는 전환함으로써 제조물책임의 법리구성에 일관성을 기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7) 냉장고 병꽂이 사건 (대전지법 1987. 9. 17. 85 가합 828)
본 건은 원고가 토닉워터 1병을 냉장고문 안쪽 병꽂이 선반에 넣는 순간 그 선반의 오른쪽 부착부위가 떨어지며 선반과 그 선반이 부착되었던 냉장고 문부분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그사이로 넣어두었던 토닉워터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어졌고 깨진 유리조각이 원고의 눈에 튀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 이에 원고는 냉장고 제조회사에 대해 업무상 주의의무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본 건에서 법원은 "냉장고의 병꽂이 선반에는 주로 유리제품인 병이 놓여지고 불의에 병꽂이 선반이 냉장고에서 이탈되는 경우에는 병이 깨어져 냉장고 사용자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예견하고 위 병꽂이 선반이 냉장고에서 불의에 이탈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설계 조립하여야 할 업무상의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에 위반하였다고 보아 제조업자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였다.
본 건에서는 업무상 주의의무위반을 들어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였다. 본건과 같이 결함 및 결함과 손해와의 인과관계가 명백한 경우에는 제조업자의 책임추궁에 어려움이 없다. 제조물책임법을 도입하는 경우 그것에 의한 책임추궁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