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이양기.
동네 대장고양이가 바뀌는 중이다. 젠틀하고 매너있던 까만 대장고양이가 이제는 노쇠해서 뱃가죽을 늘어뜨리며 어릴적 밥자리로 은퇴했다. 그 고양이 소생임에 분명한 뒷산 사는 회색 턱시도 고양이가 대장고양이로 등극하고 있는 중. 권력을 절제하지 못하는 초임 대장은 포악하기 그지 없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인가 보다. 특히 이 놈한테 찍힌 땅꼬. 아파트의 중정이 산책 영역인 땅꼬가 눈에 가시인지... 중정을 차지하기 위한 공격이 계속되었다. 4번 이상 크고 작은 부상으로 온몸이 벌집이 되었지만 땅꼬는 포기하지 않는다.
또 문을 열어달라 조르는 땅꼬를 당할 도리는 없으니 이래저래 나만 고달프다. 혼자 밤 산책을 내볼낼 수 없으니 동행한다. 내 뒤를 졸졸 따르다가, 무슨 꼭 볼 일이 있는지 앞질러 가는 땅꼬를 쫒아다니다 보면, 나도 길고양이가 된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고양이 길을 헤메다닌다. 예쁜 얼굴을 해가지고, 맨날 당하는 주제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진지한 표정으로 오줌을 뿌려대며 마킹하는 땅꼬는... 갸륵하다. 내 영역은 어찌되고 있나... 자발적으로 놓아버린 자리들... 늦은 밤 어두운 골목을 서성이며 밤 고양이의 동행이 되는 시간. 나는 지금은 그저 밤고양이 친구. 자랑스런 친구, 불굴의 땅꼬의...
내가 사는 아파트로 걸어올라오는 밤길.
재개발을 기다리는 구옥들이 몇 채 나란히 골목길을 이루었다.
비가 많은 여름이면 안위가 염려되는 이웃의 가난한 보금자리.
어둠이 내리면 빛은 마법을 건다.
고단한 생의 누추한 자리는 위안과 구원의 온기로 손짓한다.
밤 산책 중 그 온기에 매혹당한 나와 땅꼬는 빛 앞에서 서성인다.
어둠 속 인가의 빛은 늘 동경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부재의 일깨움이었다.
여기 있어도 어딘가 있고 싶은...
누군가의 창 밖에서, 내 창 밖에서 서성이는 발걸음들...
더 이상 구원이나 위안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동경의 습관으로 창가를 서성인다.
그렇게 생은 서성이며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