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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18) 2024. 11. 6
솔로몬의 신(神) 인식
왕상8:22-30(대하6:12~21)
<지난 시간 요약 – 솔로몬의 축복과 고백>
성전을 완공한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시온)에서 성전으로 이전하자,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지 못하고 다 엎드렸습니다. 이로써 솔로몬의 성전이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한 솔로몬은 기쁨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13)하고 성별하였습니다. 이제 이 건물은 하나님의 집으로 ‘등기 완료’된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왕은 얼굴을 돌려, 거기에 서 있는 이스라엘 온 회중을 둘러 보며, 그들을 축복하며, 성전 건축이 이루어지기까지 고장을 간단히 소개하였습니다.
첫째, 이 성전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약속하신 성전임을 밝힙니다(14~15절, 약속의 성취).
솔로몬은 자신이 주도하여 지었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아버지 다윗과 맺으신 약속이 성취된 것이라는 고백을 온 백성들 앞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의 손으로 이루신 성전’이라고 고백합니다(15절).
솔로몬은 성전 건축의 공로를 자신에게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 이 손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을 뿐, 주도자는 하나님 자신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셋째, ‘출애굽 사건’과 연결시켜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16절).
구체적인 약속은 다윗과 이루어졌지만, 하나님의 집을 짓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성전을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으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 이름을 둘 만한 곳이 되지 못하면’ 언제든지 떠나버리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후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신앙에서 돌아섰을 때 성전은 무의미한 건물로 전락하였고 결국 파괴되지 말았습니다(사 1:10-17).
<솔로몬의 봉헌 기도>
이어서 솔로몬은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봉헌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2회에 걸쳐).
먼저, 솔로몬은 온 회중과 마주 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했습니다.
22절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 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을 마주 보며’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기도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솔로몬의 자세와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의문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비판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구름 속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그도 역시 하나님 앞에 엎드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하나님 앞에서 일종의 봉헌 예식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봉헌 기도를 드리기 위해 서 있는 자리는 번제단 앞뜰 가운데 특별히 마련된, 길이와 너비 5규빗(약 2.3m) 높이 3규빗(약 1.4m)되는 연단(演壇)이 있었습니다(대하6:13).
오늘날 예배의 사회자가 단상에 서서 회중을 마주 향한 자세로 기도하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또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편다’는 것도 여러 ‘기도하는 행위’ 가운데 하나입니다. 손을 펴거나 뻗치는 행위는 보통 '간청'을 의미합니다. 출 9:29(모세 - 일곱 번째 재앙 우박을 그치게 할 때)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서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우렛소리가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아니할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사1:15). 즉 따라서 손을 하늘을 향하여 펴고 하는 기도 역시 성경적인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신(神) 인식>
솔로몬이 하늘을 향해 손을 펴고, 기도한 내용에는 솔로몬의 ‘신(神) 인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23절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 표현은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모세는 홍해를 갈라서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에 “신(神)중에 주와 같은 분은 없다!”고 찬양합니다(출15:11). 다윗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와 계약을 맺으시며 놀라운 복의 약속을 해주실 때 마음에 감격하며“주와 같은 이가 없다!”고 고백합니다(삼하7:22). 예레미야도 여호와 하나님을 다른 우상들과 비교하면서“주와 같은 분은 없다!”고 선포합니다(렘10:6).
이 고백의 의미는 많은 신들 중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제일(第一, the first)이라는 뜻이 아니라, 천지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유일(唯一, the only)하신 신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삼하7:22, 22:32). 비록 타민족의 눈에 여호와는 이스라엘만의 국가신으로 비쳤지만(왕하5:17), 이스라엘은 천지간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오직 한 분이신 유일신으로 알고 믿었습니다.
근동 지방의 무수한 신들이 땅이나 산 등 제한된 지역만의 신으로 믿어지고 숭배되던 당시의 환경 속에서 이같은 ‘유일신’ 신앙고백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여기서 잠시 기독교 신앙과 타 종교와의 차이점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종교는 크게 두 가지로 자연종교(自然宗敎)와 계시종교(啓示宗敎)로 구분하고 있는데, 자연종교는 출발점이 사람으로서 시작되고, 계시종교의 출발점은 하느님으로 시작됩니다. 즉 다시 말해서 사람의 종교심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자연종교이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생겨나서 사람들에게서 "신앙심"(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마음)을 요구하는 것을 계시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철저하게 ‘위로부터 계시된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하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지혜와 이성으로 알아낸 신이 아닙니다.
출3:14(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신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참고 - 출 15:11, 신 4:39, 시 86:8). 그런데 그 계시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의 신이 아니라 이 세계를 창조하신 유일하신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유일신 신앙’을 유지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누가 참 신인지를 겨룸.)
둘째,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십니다.
23절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온 마음으로’라는 말씀입니다. ‘전심으로’, ‘진심으로’, ‘순전한 마음으로’라는 뜻입니다. 이는 주를 섬기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응답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고백한 하나님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신’이 아니라 ‘인격적이신 분’이십니다.
인격적이라는 말은 지(지식), 정(감정), 의(의지)를 가지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 ‘정의와 공의’를 추구하시고,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시는 분이십니다(뉴턴의 제 3법칙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으로 반작용은 항상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이다.).
삼상2:30b(엘리의 집에 저주를 내리시면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요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지와 감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1:11~14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그런데 ‘온 마음으로’(23)라는 말은 누구의 편에서 그런지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래야 합니다. 자기 마음에 흡족하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사사시대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미가’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삿17:1-6). 어느 날 미가의 어머니가 숨겨 놓은 돈(‘은 일천 일백’)을 도둑맞았습니다. 그녀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의 귀중한 돈을 훔쳐 간 도둑에게 매일 입에 담을 수 없는 엄청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범인은 바로 그녀의 아들 ‘미가’였습니다. 미가는 돈이 탐나서 훔치긴 했지만, 매일 바로 옆에서 어머니가 퍼붓는 저주를 빠짐없이 들어야 했습니다. 매일 어머니의 저주를 들으니 두려움이 몰려 왔습니다. 결국, 미가는 그 돈을 자기가 훔쳤다고 자백을 하고 어머니에게 돌려줍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머니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돈도 돌아오고 아들도 용서했지만, 이미 내뱉은 저주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저주받을 것을 염려한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축복을 빌기 시작하였습니다.
2절b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하였습니다. 급기야 그 아들을 위하여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호와께 드린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미가 역시 잘못된 신앙행태를 보입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입니다. 그는 자기 집에 신당과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삿17:13). 천만의 말씀입니다. 말로는 여호와를 믿는다고 하면서 실상으로는 얼마나 그의 말씀과 뜻에 대하여 무지한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호세아의 탄식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6절“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저는 이 미가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는구나!’ 자기 아들에게 저주가 임할까 두려워서, 정말 최선을 다해 하나님 앞에 복을 빌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의 방식이었을 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천 하지(上天下地)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고, 주의 앞에서 ‘온 마음으로’ 행하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셋째, 솔로몬은 그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 매이시는 분이 아님을 증언하였습니다.
27절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먼저 솔로몬은 하나님은 제한된 곳에 매이시는 분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하나님의 편재성(偏在性)]. 즉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대주재(大主宰)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건축된 전(殿)에 국한되실 수 없다(행 17:24). ‘하늘들의 하늘’이라는 표현은 최상급 표현으로 우주 전체를 수사적(修辭的)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품을 수 없는데,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고 말합니다. 우주 전체로도 무한하신 하나님의 처소로서는 부족하거늘 하물며 일개 건물에 지나지 않는 조그마한 성전이 감히 하나님의 처소일 수 있겠느냐는 겸비의 표현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솔로몬은 성전에 관한 아주 중요한 진리를 선포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집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기로 선택하신 곳이라는 사실입니다(신12:21). 정말 그렇습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처소일 수 있는 것은 성전 자체의 어떤 가치나 능력이 하나님을 매어 둘 수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오직 은총으로 성전을 인간들 사이에 임재하시는 당신의 처소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게 되면 심각한 오류를 낳게 됩니다. 실제로 후대의 타락한 이스라엘은 그 역사에서 자주 불순종과 불의에 빠지면서도, 무조건 성전을 마치 하나님이 묶여 있는 장소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신 개념을 가졌던 것입니다.
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렘 7:9~11절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미 3:11~12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넷째,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입으로’ 약속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24~26절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26 그런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과 ‘입으로’ 약속하신 성전 건축의 약속이 이제 실제로(‘손으로’) 실현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금 눈 앞에 전개된 일들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 성취임을 인식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감사를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맺으신 약속(삼하 7:8-16) 가운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25절 말씀인데, 이는 솔로몬에게 한 다윗의 마지막 유언의 내용입니다.
왕상2: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다윗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았고, 또한 위대한 성전 건축 사업도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다윗 가계를 통해 영원토록 왕위에 오를 자가 끊어지지 않는 것뿐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바로 이러한 약속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26절 b “...주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그 약속에는 ‘그들의 길을 삼가’(25절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라는 조건이 부가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향후 이스라엘 열왕들의 행적을 가치 판단 하는 표준과 척도로서 제시됩니다(9:4, 15:11 등). 그런데 다윗이 그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인물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다'는 말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말년의 솔로몬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11:6). 그 결과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북 왕국은 다윗의 혈통과 무관한 자에 의해 통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다 왕국조차도 누적된 범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는 운명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표면상으로는 하나님의 왕위 약속이 깨어졌다 하겠으나, 영원한 왕국에 관한 하나님의 숨겨진 경륜은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눅 1:27).
다섯째,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28~30절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오늘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으면서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라고 기도합니다.
성전에서, 그리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를 드리는 근거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즉 그것은 성전 자체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주의 눈이 주야로’ 성전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그곳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그곳을 향한 인간의 기도를 매개(媒介)해 주는 장소입니다(단 6:10, 시5:7, 욘 2:4). 이러한 성전의 핵심적 특성 및 기능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속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사 56:7, 마 21:13).
그리고 하늘에서 주의 종의 회개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들으시는 대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30).
성전은 그곳에 계시는 주님께 기도하는 곳이고 용서받는 곳입니다. 지성소의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고 우리는 이곳에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신약 시대를 사는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을 받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첫째,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십니다.
셋째, 솔로몬은 그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 매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넷째,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입으로’ 약속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솔로몬이 기도 중에 고백한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과 같은 신은 없습니다!” 우리도 성령님과 더불어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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