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같은 사람이 5-6명 있으면 진주 시내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사람이자 후배들이 닮고 싶어하는 ‘어른’인 사람 김장하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여러 번 볼 가치가 있다. 아주 많은 디테일들이 시사점들을 꽉꽉 채워서 갖고 있다.
영화 끝자락 쯤에 어떤 여자가 ‘선생님, 사람 농사가 대풍이네요.’라고 하는 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사람을 기르는 것은 농사로 치면 아주 어려운 농사고, 이 사람이 어떤 종자인지 계속 교류하면서 알아보며 대응해야 하는 것인데 김장하 선생님은 그것을
너무나 훌륭하게 잘 하신 것 같다. 생명을 다루는 것은 단지 거실에 놓아둔 10개쯤 되는 화분을 다루는 것마저도 엄청나게 섬세한 이해를 요한다.
하물며 사람임에랴.
그가 사람을 치유하고 키워낸 것을 보면 엄청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새벽 3시까지 800제의 약을 준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보통 사람은 그냥 그것만으로도 며칠 못 버티고 뻗는다. 그러나 그는 그 하나 하나를 사랑과
정성으로 해내고, 그래도 못 하는 부분은 근처 다른 한약방으로 보내는 식으로 경쟁자라는 개념이 없는 듯이 살았다. 한약 제조에 대한 기술료를 받는 대신
수가를 줄이는 역발상으로 박리다매 방법을 써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그것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살려냈다.’
그가 아래로부터 위를 보는 관점, 가까이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 차별없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존중하는 것, 이런 것이 다 합쳐지면 아마도
중간에 최관경교수라는 친구가 언급한 無住相布施라는 것이 될 것이다. 그의 기부는 아무런 조건이 없고, 후회도 바램도 없는 것으로 그저 받는 사람이 건강하
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보시는 단지 돈으로만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조언만 들은 셰프의 이야기처럼 돈 이상으로 진심어린 귀기울임을 통해 제 정신이 들도록 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포함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운영했던 명신고등학교는 입학식날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는 특이한 학교였는데, 교사는 힘들어도 보람있고 즐거웠다 하고 학생은 든든하고 자신있고 떳
떳했다고 회고한다. 이 학교의 분위기나 그가 운영한 남성당 한약방의 분위기나 거의 비슷하다. 엄청나게 일하는데도 자부심이 있고 즐거워서 그다지 피곤을
못 느끼고 불만이 없었다. 이는 김장하선생님이 아래로부터 위를 보는 관점을 가진 경영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경영자가 갖추려면 초년에 고생을 했거나
혹은 일부러라도 어딘가에 말단 사원으로 취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아래에서의 경험이 아주 많은 사람이며 청소년기에 한약방에서 일하면서 맞기도 많이 맞
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직원들에게 나는 당신들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며 권위를 획득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단에서 시작해서 성공한
사람에게 더욱 큰 존경심을 갖지 낙하산에게는 존경심이 안 생긴다. 그의 검소함 역시 그의 엄청난 부와 효과적인 봉사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은퇴하는 그에게 60년이 넘게 일한 사무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김주완 기자는 그것이 어떤 감옥 같은 것이었는데 거기서 벗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낡고 고즈녁한 공간은 뭔가 숭고하고 깨끗한 성소
(聖所)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한약방이 일종의 박물관으로 진주시 당국에 의해 꾸며질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영감을 주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많이 베풀고 나서도 자기가 많은 은혜를 입었고 힘을 받았다며 감사를 표하고 퇴임했다. 경지가 높은 사람은 그런 것을 더 많이 느끼나보
다.
세상에는 김장하 선생님을 닮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 하니, 그를 닮아가기 위해서 일단 나로서는 연구실을 깨끗이 정리하기, 좋은 기운이
흐를 수 있게 하기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