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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17) 2026. 7. 1
일곱 번 씻으라
왕하5:8~14
<옷을 찢는 이스라엘 왕(여호람)>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던 나아만은 큰 용사였지만, ‘그러나’ 나병 환자였습니다. 나아만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치료하려 노력하였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에서 잡혀 와서, 자신의 집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작은 소녀’의 권면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소녀는 비록 포로로 이방 나라에 잡혀 와 종살이를 하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뢰할만한 행동거지를 보였습니다.
이 소녀의 말을 부인을 통해 전해 들은 나아만은 그녀의 말대로 하기로 합니다. 아람 왕의 친서를 받아 많은 예물을 갖고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이 편지를 받고 옷을 찢으며 탄식했습니다. 본래 나병은 고칠 수 없는 병인데, 아람 왕이 문둥병을 고쳐달라고 하니 아람 왕이 이를 꼬투리로 전쟁을 하고자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왕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형, 아하시야 왕은 난간에서 떨어졌을 때, 이스라엘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이 계신 것을 알지 못하고 바알세붑에게 묻다가 죽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어린 소녀도 아는데 왕은 엘리사를 몰랐습니다.
<엘리사의 자의식>
엘리사는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는 소리를 듣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8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사람을 보내서 왕에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왕이 옷을 찢으셨습니까?” 나아만의 나병을 고치는 것은 왕이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라”고 요청합니다.
자신에게 오라는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내 주십시오.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그에게 알려 주겠습니다"(표준새번역)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엘리사의 자의식(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선지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지자’라는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선지자’(先知者)를 ‘미래를 아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선지자’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예언자’(豫言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예언자를 ‘앞날의 일들에 대해서 말해주는 점쟁이’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원어의 정확한 의미는 ‘대언자’입니다. 즉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다’는 말은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엘리사입니다. 예, 그를 치료할 수 있는 분은 바로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엘리사의 반응과 명령>
이스라엘 왕은 나아만을 엘리사에게 보냅니다.
9~10절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은 말들과 병거들, 준비한 예물을 가지고 엘리사의 집으로 갔습니다.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병을 고치기 위해 이스라엘로 올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단순히 병을 치유하기 위해 가는 모습이 아닙니다. 단순히 병을 치료하러 온 것이라면 일행을 최소화하여 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위세를 한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권력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요, 나쁜 말로 표현하면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반응은 그의 자존심을 뭉개는 것이었습니다.
정작 엘리사는 집 밖으로 나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환을 내보내서 나아만에게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는 말만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나아만의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노한 나아만>
나아만의 노했습니다.
11~12절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나아만이 분노한 이유는 본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1) 나아만은 엘리사가 손수 자신에게 나와서 영접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한 나라의 군대 장관으로 대우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자신의 위엄을 보고, 맨발로 뛰어나와 영접하기를 바랐습니다.
2) 그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상처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쳐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말이 아닌 특별한 행위를 통해 자신을 치료하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에게 정성을 들여 치료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종을 보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는 말만 전하였으니 자존심이 상한 것입니다. 그는 차라리 다메섹에 있는 아바나와 바르발 강물이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두 강 중에 특히 아바나 강은 대단히 맑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물이 찬 강으로서 희랍인들과 로마인들에게는 '크리소로아스'(Chrysorrhoas), 즉 '황금의 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요단강은 작고 진흙 색을 띠는 혼탁한 강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이 요단강보다 자기 나라의 강들이 더 좋다고 말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났습니다.
<종의 권면을 들은 나아만>
그때 그의 종들이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습니다.
13~14절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그의 종들이 지혜로웠습니다. ‘더 큰 일을 하라’고 해도 순종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물며 ‘요단강 물에 씻어 깨끗하게 하라’는 말에 순종하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나아만이 들어보니, 종들의 말이 옳습니다. 비록 자신이 기대했던 생각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분명히 치유의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방법을 따를지 말지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나아만은 종들의 말대로, 요단강에 들어가서 일곱 번 몸을 잠갔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깨끗해졌습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세입니다.
나아만은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도, 세상에서의 권력을 모두 드러내려 하였습니다.
그는 ‘Pride’가 있었습니다. 좋은 말로는 ‘자존심’이지만 나쁜 말로는 ‘교만’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자존심’이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그 교만이 바로 인간을 파멸로 이끌고 넘어지게 한다는 겁니다(분노하고 돌아감).
오늘날 교회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수많은 사람 가운데, 이 교만이라는 산을 넘어서지 못해서 결국 신앙의 길에서 떨어져 나가고 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름대로 사회에서 성공하고, 유명하신 분이라고 교회에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께 나온 것이 아니고, 사람들 보라고 나온 것입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결국, 자기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잠언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예수님 비유 – 마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요9:41(바리새인 책망)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겸손해야 합니다.
빌 2장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함을 다음과 같이 아주 잘 표현해놓고 있습니다.
빌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본받게 되기를 바랍니다(세족식 –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심).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먼저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먼저 인사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끝내 만족스럽지 않으면 상처를 받지 않았습니까?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까?
바라기는 ‘교만’이라는 산을 넘으시기를 바랍니다. ‘자기만족’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좋은 믿음의 조언자를 두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개인적인 의지와 결심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옆에 있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틀어짐 –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조롱(광주일고) -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이것을 광주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문구입니다. 학생들이 해명하기를 ‘한 사람’이 선창해서 다 따라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도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문제... 상대를 조롱하는 응원 문화 근절해야(지역감정 조장).
나아만에게는 믿음의 조언자들이 있었습니다.
1) 우선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온 어린 소녀의 역할이 컸습니다. 만일 그 소녀의 제언이 아니었으면 나아만은 이스라엘로 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2) 나아만이 화를 내면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을 때, 나아만의 종들이 지혜로운 권면을 하지 않았다면, 나아만은 그냥 빈 손으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신앙 공동체(교회)가 있음을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수 있고, 특히 어려울 때, 믿음의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믿음의 식구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요구한 것은 ‘순종’입니다.
요단강물에 일곱 번 몸으로 담그면 병이 낫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요단강’이라는 장소가 아닙니다. 요단강물 자체는 어떤 효력도 없습니다.
나 ‘일곱 번’이라는 숫자가 아닙니다. 7번도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나아만의 썩어 문드러져 가던 살이 어린 아이의 살과 같이 깨끗하게 치유된 것은, 요단강물 속에 일곱 번 들어갔다가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 사무엘은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하였습니다(삼상15장). 그러나 명령대로 따르지 않고 좋은 짐승들을 남겨두었습니다(욕심). 이를 책망하는 사무엘에게 사울은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고 핑계하였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을 때 그는 눈이 떠졌습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갔을 때 하나님은 그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넷째, 복음의 참뜻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에게 한 조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더 큰 일을 하라’고 해도 순종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물며 ‘요단강 물에 씻어 깨끗하게 하라’는 말에 순종하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전해준 치유의 방법은 그의 생각과 달리 너무 쉬운 것이었습니다(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출애굽 당시 – 불뱀에 물린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방법 – 모세가 만든 ‘놋뱀’을 바라보는 것(민21:4~9).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 – 그를 믿음으로(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예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했습니다.
롬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하는 이 복음이 너무나 쉽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믿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자꾸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여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지식이나 상식으로 생각하면, 너무 쉬운 방법입니다.
타종교 – 스스로 성취해야 하는 구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만 이미 구원을 얻었기에, 구원받은 자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은혜중에 사는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그 후, 믿음의 삶을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교훈대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고,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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