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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자락에서 국보(國寶)를 만나다
- 노래 詩人(작사가) 정두수-
노래 작사하면 정두수-. 정두수하면, 많은 노래들이 떠오른다. 그것도 우리 귀에 친숙한 감동적인 노래 말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들 대부분이 그의 추천을 받았거나,노래시를받았다.4천여편에이르는.대담-김미화
비 내리는 덕수궁 돌담장 길을
우산 없이 혼자서 거니는 사람
무슨 사연 있기에 혼자 거닐까
저토록 비를 맞고 혼자 거닐까
밤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밤에
밤도 깊은 덕수궁 돌담장 길을
비를 맞고 말없이 거니는 사람
옛날에는 두 사람 거닐던 길을
지금은 어이해서 혼자 거닐까
밤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밤에
-덕수궁 돌담길-(진송남 노래)
그랬다. 이 노래 ‘덕수궁 돌담길’은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정성이 함축된 노래 서정시였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간결하면서도 정감이 물씬 나는 이 노래시(작사)는 그 해 1965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노래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격조 높은 노래라 하여 크게 상찬을 받은 것이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 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흑산도 아가씨-(이미자 노래)
사랑은 그리움이다. 그리고 외롭고 쓰라린 고통의 기다림이다. 섬에 나서 섬에 자란 섬 처녀의 가슴은 사랑으로 하여 더 애절할 것이다.
-어떻게 ‘흑산도 아가씨’를 쓰시게 됐습니까?
“그 때, 흑산도를 가보지 못했지만, 나는 이 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지요. 흑산도란 섬 이름의 강렬한 이미지····. 역사성-. 예부터 섬은 우리 역사와 함께 했습니다. 유배지였으니까요.”
-그렇군요. 제주도, 강화도, 거제, 남해 등 모두 그랬었지요. 이 노래에서의 귀양살이는 어느 분을 말합니까?
“정약전입니다. 조선 정조 때 학자 정약전-. 그는 이 흑산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동생 다산 정약용은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하여 먼 바다를 두고 형제의 그리움은 얼마나 사무쳤겠습니까.”
-‘덕수궁 돌담길’은요?
“당시 호젓한 덕수궁 돌담장 길은 가난한 연인들의 아베크코스였습니다. 우마차(牛馬車)도 다니지 않는 고궁 돌담길이라서 젊은 연인들이 거닐면서 사랑과 꿈을 다졌던 곳이지요.
하지만 이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결국 결혼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남학생들은 대학 졸업과 함께 군에 입대하고, 결혼 적령기를 맞은 여인은 시집을 가야하기 때문이지요.“
-‘가슴 아프게’와 ‘마포종점’ 그리고 ‘그리움은 가슴마다’ ‘물레방아 도는데’ ‘공항의 이별’ ‘마음 약해서’ ‘우수’ ‘마음이 고와야지’ 등에 대해서도 한 말씀해 주시지요?
“많은 공을 들였던 작품들입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 같이 목메어 운다.
이 노래 ‘가슴 아프게’를 쓰기 위하여,1966년 봄. 나는 비내리는 인천연안 부두에까지 차로 달렸습니다. 노래시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나올 것 같으면서도 가닥이 잡히지 않는 창작에 대한 집념은 가슴만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진통 과정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그날 작품이 탄생 되었습니까?
“웬걸요. 안개 자욱한 부두에서 소주잔만 기울이다가 결국 돌아오게 됐습니다.
-왜 하필 연안부두였습니까?
“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할 땐 바다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TV가 없었고, 또 통행금지가 있었던 때라, 라디오 연속극이 붐을 이루고 있었지요.”
-한 잔 더 드시겠습니까?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이 대담자는 흥미로웠다. 노래시인으로부터 실타래 같이 술술 풀릴 것 같아서다.
-비오는 날이라면 바다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텐데···
“그렇습니다. 안개 때문에 볼 수 없어, 바다 냄새만 마신 셈이지요. 지독한 안개 -. 그러나 나는 돌아오는 길에서 안개로 하여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안개만 없었다면
바다를 봤을 텐데, 바다를 봤을 텐데···
이 원망이 시로 승화되면서 안개가 바다가 되고, 바다는 이별이 되어 ‘가슴 아프게’의 탄생 배경이 된 것입니다.
‘마포종점’은 근대화 문명에 밀려난, 전차 고별의 노래. ‘그리움은 가슴마다’는 영화 주제가. ‘물레방아 도는 데’는 어린 시절 헤어진 삼촌과의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것입니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새 봄이 오기 전에 잊어버렸나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 물레방아 도는데-(나훈아 노래)
“노래마다 사연이 어찌 없겠는가. 1972년에 쓴 ‘공항의 이별‘은 서독으로 가는 광부와 간호사들이 김포공항에서 가족들 간의 이별을 다룬 것입니다.”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네
돌아서던 그 사람
혼자 남으니 쓸쓸하네요
내 마음 허전하네요
생각하면 그 얼마나 행복했던가
나 혼자서 길을 가면 눈앞을 가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네
마음 약해서 마음 약해서
가는 너를 잡지 못했네
-마음 약해서-(들고양이들 노래)
“이 ‘마음 약해서’ 노래는 메드리 붐을 일으킨 도화선이 되었고, ‘우수’는 가수 남진이 주연한 영화 ‘형수’의 주제가. ‘마음이 고와야지’는 ‘사랑의 공중전화’ ‘젊은 초원’ ‘목화 아가씨’ ‘아랫마을 이뿐이’는 노래의 향기였습니다.”
ud정두수 노래시의 문학성과 음악성ud
-정두수 노래시의 문학성과 음악성, 그리고 매력은 서정성과 향토성을 함축한 것이라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언젠가 어느 땐가 연인들끼리
사랑의 공중전화 빨갛게 타네
첫사랑 빛깔처럼 무지개 꿈을 안고서
돌아가는 다이알도 행복에 젖어
전화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사랑의 목소리
-‘사랑의 공중전화’-(남진 노래)
맺지 못할 인연일랑 생각을 말자
마음의 다짐을 받고 또 받아
한 백 번 달랬지만 어쩔 수 없네
빗줄기 속에 사랑 실어 그대 이름 불러볼 때
밤비는 끝없이 소리 없이
내 마음 들창가에 흘러내린다
-‘우수’-(남진 노래)
즐거웠던 그 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옛날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 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과거는 흘러갔다’-(여운 노래)
달빛마저 싱그러운 들길을 혼자 가면
나락단 묶음마다 흐르는 고운 달빛
오늘처럼 오롯이 행복한 푸른 밤엔
호수 깊이 파묻힌 저 별들을
조리고 그대 함께 건지고 싶어라
마른 잎이 떨어지는 가을 길 혼자 가면
등불이 켜져있는 마을엔 푸른 달빛
오늘처럼 그대가 그리운 가을 밤엔
언제까지 호수에 조각배 띄워놓고
이 밤이 다 새도록 노 젓고 싶어라
-‘가을밤’-(황기자 노래)
주름살이 새겨진 저 노신사는
조약돌이 호수에 던지고 있네
지난 날 젊음을 생각하는지
파문이 퍼지는 호수를 보며
아무도 산장에 홀로 앉아서
-‘노신사’-(최희준 노래)
-그야말로 서정미의 극치라고 하겠습니다. ‘아네모네’ ‘삼백리 한려수도’ ‘한 번 준 마음인데’ ‘황혼의 블루스’ ‘비에 젖은 여인’ ‘못잊을 당신’ ‘서귀포 바닷가’ ‘대답해 주세요’ ‘가을초’ ‘고향의 꿈’ ‘자주댕기’ ‘꽃잎 편지’ ‘하동포구 아가씨’ ‘쌓인 정’ 같은 노래들도 모두 한 편의 시요, 그림이라 하겠지요.
저무는 가을 길에 피었다해서
그 누가 가을초(草)라 이름 지었나
소슬한 찬바람에 낙엽은 지고
들새마저 어디론가 가버린 지금
가을초는 가을초는 이슬에 젖네
저무는 가을 길에 시든다해서
그 누가 가을초를 외롭다 했나
늦가을 가을비가 스치고 간 뒤
맑은 구름 사이로 별빛도 찬데
가을초는 가을초는 달빛에 젖네
-가을초(草)-이미자 노래)
ud못다한 사랑의 연가(戀歌)ud
-이성애씨가 부르고, 나중에 패티 김이 부른 ‘나는 가야지’ 또 조애희씨(이동기작곡가와 부부)가 불렀다가 정훈희씨가 다시 불러 크게 히트한 ‘그 사람 바보예요’란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이 노래들에 관해서도 이야기 해주시죠?
갈 곳은 없어도 나는 가야지
바람에 밀려가는 저 구름처럼
그 사람 없는 지금 나는 가야지
하늘과 땅 사이에 서로 살면서
아무리 그리워도 만날 수 없어
갈 곳은 없어도 나는 가야지
가을에 흩어지는 가랑잎처럼
추억을 묻어놓고 나는 가야지
-나는 가야지-(이성애 · 패티 김 노래)
단 한 번 윙크로 내 마음 줄까 봐
살짝쿵 윙크한 그 사람 떠났네
다시 한 번 윙크하면 웃어줄텐데
다시 한 번 윙크하면 사랑할텐데
아- 나는 몰라
그 사람 떠났네 그 사람 떠나갔네
단 한 번 윙크로 내 마음 줄까 봐
살짝쿵 윙크한 그 사람 떠났네
-그 사람 바보예요- (조애희 · 정훈희 노래)
“이 노래들 말입니까. 열정이 넘치던 젊은 날의 사랑의 연가입니다. 낭만에 대하여 못 다 부른 애틋한 아쉬움 같은 것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노래시인은 언제나 가슴으로 노래하는 것입니다.”
ud고향 노래 하동 노래ud
- 나를 키운 건 고향이요. 그래서 고향 노래가 많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가요?
지금쯤 고향집에는
떠날 때 심어놓은 한 그루 목련꽃이
달빛에 젖으면서 홀로 피겠네
몸은 떠나도 마음속에 사무치는 내 고향
머나 먼 남쪽 하늘에
구름이 흘러갈 때
아득한 고향 꿈에 노을에 붉게 타네
-고향의 꿈-(이미자 노래)
하동포구 휘돌아서 흘러가는 섬진강아
한줄기 물길은 누구의 마음인가
불러도 대답 없는 어머니의 이 강이여
영원토록 흘러가라 고향의 섬진강아
-섬진강-(설운도 노래)
“고향에 대한 애끓는 향수의 목가(牧歌)입니다.”
쌍돛대 임을 싣고 포구로 들고
섬진강 맑은 물에 물새가 운다
다도해 가는 길목 섬진강 물은
오늘도 굽이굽이 흘러서 간다
80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 님 데려다주오
흐르는 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지리산 낙낙장송 노을에 탄다
쌍계사 쇠북소리 은은히 울 때
노을진 강물 위엔 꽃잎이 진다
80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 님 데려다주오
-하동포구 아가씨-(하춘화 노래)
-선생님의 노래시집 제 1권의 서문을 읽어 보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노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노래하리라. 쉬임없이 노래하리라. 저 하늘에 해와 달, 별과 구름과 바람, 그리고 대지에 꽃이 피고, 또 비(雨)의 노래가 있는 한 생명을 예찬하리라.
산과 바다와 강과 들판과 고향을, 내 이웃의 삶과 고운 인정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그렇게 노래하리라. 쉼 없이 노래하리라.“
-‘목화 아가씨’ ‘내 고향 남촌’ ‘섬진강처녀’ ‘삼백 리 한려수도’ ‘하동으로 오세요’‘노량대교’ ‘첫사랑의 강’ ‘감나무골’ ‘내 고향 하동포구’ ‘시오리솔밭길’ ‘시오리 학교 길’ ‘꽃잎편지’등이 모두 고향 노래인데, 아무리 고향이 좋아도 이렇듯 많은 노래가 쏟아질 수가 있을는지요?
“누구에게나 고향은 그런 것이겠지만 내 고향 하동은 각별합니다. 풍광이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길어 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고향의 우물은 노래가 됩니다.”
하동은 그랬다 하동포구는-.
산이 없나, 강이 없나, 바다가 없나
그렇다고 들이 없나
산도 큰 산 지리산 솟았고
강은 섬진강
하동포구를 휘도네
바다는 한려수도
노량해협이며,
들은 하동 땅 여기저길세
하동은 그랬다
삼포(三抱)하동은-.
-‘하동포구 이야기’-
민들레면 어떻고
들꽃이면 또 어떤가,
다시 필 수만 있다면
고향에서 피고 싶다
울타리 밖이라 해도
고향의 강, 질퍽한
강자락에서 피고 싶다
섬진강아, 섬진강아
-‘고향의 강, 섬진강아’-
지게목발이나 치면서 갈거나
가다가 쉬다가 저무는 강, 섬진강-.
(서둘지 마라,
임실· 남원· 곡성 지나면
바로 구례 길···.
압록에서 보성강 업고 가면 되지-)
신발끈 고쳐 매지 마라,
술친 막사발에 갈앉는 노을···.
쉬엄쉬엄 한 곡조 더 뽑고 갈거나.
휘어지는 육자배기 긴 자락에
너도 젖고···
나도 젖고···.
-‘섬진강 탄곡(嘆曲)’-
- 고향 사랑은 신앙 같은 열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특히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한려수도를 끌어안고 있는 하동은 풍광명미(風光明媚)의 삼포향(三抱鄕)이지요.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많은 고향 노래를 가슴으로 불렀던 것입니다. 하동에 노래비 공원이 있고, 전국에 세워진 노래비만 해도 현재 12곳이나 된다지요? 앞으로도 더 건립 될 것이라는···.
“하동에는 ‘물레방아 도는데’와 ‘시오리 솔밭 길’또 ‘하동포구 아가씨’가 세워져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에는 ‘서귀포 바닷가’ 흑산도에는 ‘흑산도 아가씨’서울 마포종점에는 ‘마포종점’노래비···. 충남 보령에는 ‘가슴 아프게’, 강원도 홍천에는 ‘척야산 진달래’와 ‘용호강’ ‘자작고개’그리고 행치려 고개에는 ‘마의태자’ 노래비가 있습니다.
-저서도 많으시고, 시집도 많으시고, 상도 많이 타시고···. 여기 광주에 새둥지를 트시면서 맨 먼저 쓴 시가 ‘무갑산’. 제가 한 번 읽어 볼까요?
무갑산
산봉우리도 없이/덥석 안기는 산이 무갑산이다/햇살 밝은 날은/구름 한 아름 안고
비 오고 안개 끼고 /바람 부는 날은/가만히 그냥 다가서는 산
말이 없는 산이 어디 무갑산뿐이랴만/무갑산은 침묵으로 철썩 안기는 산이다
산 봉우리도 없이 /덥석 안기는 산이 무갑산이다
햇살 밝은 날은 /구름 한 아름 안고-.
선생님을 만나자 오랜 선생님 삶의 관록이 묻어나 내 예상을 뒤엎는 검소함과 카페 한 켠 선인장이 방문한 자의 긴장을 덜어주는 건 왜일까. 조금은 경직되고 불안한 나이 어색함을 배려로서 앉혀주는 인격엔 역시 선생의 실체가 명불허전임을 느끼게 한다. 카페에 '제1시집(음반)을 내면서' CD와 오래된 책을 여러 권 들고 오셨다. 그러고 보니 아직은 선생님의 정신을 쫓아왔을 책들이 꽂힌 서재가 상상된다. 평소 타인들의 얘기처럼 외유내강의 한 모퉁이가 천천히 포근함으로 느껴진 것도 우연은 아니었으리라.
-예술가로서 큰 별인 정공채시인과 정두채 작사가가 한 집안에서 나왔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저도 시인으로 정공채 선생님 의식을 존경해 왔었습니다. 선친께서 ‘큰 아들 정공채는 공자와 같은 품성으로 살아라’ ‘둘째 아들 정두채는 두보와 같은 문장가가 되어라'하셨다고 하지요. 가족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할아버지가 문장가라 그렇게 지으신 것 같아요. 제 본명은 정두채입니다.
6남 2녀이고 정공채 형과 저랑 3살 차이였어요. 형이랑 정공채 형을 존경하셨다니 감사하네요.
-지금 대중예술의 발전 방향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예술가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있으신지요.
“서로 참여해서 하는 것이 좋아요. 노래가 국민수준을 못 따라가기도 해요. 저도 그래요. 정두수 노래에서 보면 '죄'를 많이 나타냈죠. '한'이라고 할까요. 한 단계 격조를 올리는 것이 좋아요. 서정시를 쓰면 대중성이 동떨어지고 대중성, 문학, 음악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해요. 베에토벤 운명, 하이네의 꽃과 같이. 서정과 혼이 융화 되면 좋아요. 노래는 삶의 향기가 있어야 하는 데 욕설과 직접적(자극적) 표현이 광고 차원이고 일회용으로 밖에 안보여요. 멜로디를 위한 일회용이죠. 가사문학, 즉 시조는 운율이 흘러야 하고 정서가 담겨져 있어야 해요. 시를 보면 시로 끝냈다고 하지만 그 안에는 소설이 들어 있다고 봐야 해요. 우선 시가 되어야 작사가 되죠.
작사는 아버지, 작곡은 어머니, 가수는 자식이라고 봐요. 작사를 잘 쓸라고 하면 부담이 더 되고 쉽게 가야 해요. 문득 생각나는 걸 메모 했다가 짓기도 하고요.“
ud정두수 작품 평설ud
@정두수의 노랫말과 작사론(作詞論)연구/송희복
문학평론가(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작사자는 노래에서 자기희생적인 사람이다. 노래하는 가수가 대중과 가까운 자리에 서있다. 작곡자도 어느 정도 보이는 쪽에 있다. 그러나 작곡자는 대중으로부터 너무 멀찍이 떨어져 있어 보이지 않는다. 작사자의 운명과 애환을 이처럼 노래의 본디 주인이면서도 대중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창작의 의욕을 묵묵히 불태우는 낯선, 서럽게 가난한 존재라는데 있다. 작곡가 박춘석의 정두에 대한, 앞서 보여 준 시적인 헌사는 모든 작사가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다.-경남권 문화 제 20호
정두수의 하동노래는 인정과 세태를 반영한다.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풍광이 명미한 자연 속에서의 모듬살이를 이루고, 이 세간의 모듬살이는 하나의 어질고 착한 사람들의 마음 켜를 유지해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작사한 하동노래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의 고향의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점차 아련히 잊혀져가는 그런 고향 말이다. -섬진강 2011. 제 4호
@서병욱(전 스포츠조선문화부장)
-인간 정두수를 말한다/'시와 술'의 물레방아 청춘
할아버지는 아홉 살짜리 두수와 머슴만을 데리고 야산에 올랐다. 멍석에다 음식을 놓았다. 그해 따라 철쭉꽃이 지독스레 붉었다.
"이놈의 자슥이 꼭 돌아와야 할 낀데..."
감꽃이 무더기로 지던 날, 두수 삼촌은 하얀 천이 휘감긴 상자로 되돌아 왔다.
중 3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취하고 ‘삼국지’ ‘초한지’에 녹았다. 이때 동시를 썼다. ‘새벗’ ‘소년세계’ ‘학원’에 더러 동시가 실리기도 했다. 또 영화광이었다. ‘마농’을 보고 잠을 설쳤다. 정두수는 64년 대학졸업과 동시 잡지사 기자로 들어가 3년을 보낸다. 이후 MBC라디오 스크립터로 입문, ‘전설 따라 삼천리’ ‘밤의 속삭임’등에 글을 쓴다. 이와 함께 KBS라디오엔 ‘즐거운 우리 집’ ‘즐거운 여름’ ‘언제나 당신’등 홈송을 작사한다. 이어 TBS라디오 건전가요 작사에도 손댄다. 강물 따라 왔는데‘ ’포플러가 있는 길‘ 그리고 ’가을밤‘ 이중 ’가을밤‘은 정두수의 시재(詩材)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60,70년대를 풍미하던 가요 작사가. 삼촌의 꽃상여는 훗날 '물레방아 도는 데' 된다. 나훈아가 불러 히트하면서 정두수는 작사가의 길로 접어든다.
정두수는 기분파다. 마음이 약하다. 기분이 좋으면 담빡 얼굴표정이 달라진다. 친구들과 술자리에 어울리면 늘상 물주노릇을 한다.'쓰는 자의 행복'을 아낌없이 누리며 산다.
@박건삼(시인, SBS라디오 국장)
-정두수 시에 있어 그리움과 별리의 미학
정두수 시인은 자유시란 이름으로 난해하고 분망하기만 한 현대 한국 시림에 김소월 이후 한국 현대 서정시, 특히 정형시의 전통과 맥을 이어온 큰 느티나무다.
좋은 노래싯말 한 편, 좋은 노래 곡조 한 곡이 생활에 지친 서민들에게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준다. 또한 정신의 해방감을 주고 욕망까지도 정확 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대의학은 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경철(문학평론가,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반만 년 민족의 핏줄을 흘러내린 그리움의 서정 시편>
-정두수 노래시집'꽃핀 노래 사랑시'를 따라
당신과 나 사이에/저 바다가 없었다면/쓰라린 이별만을 없었을 것을
바다처럼 피어오르는 남진의 허스키한 목소리에도 반했지만, 이 가사가 아직도 마음속을 파고들어 노래방에 가면 나도 즐겨 부르곤 한다. '가슴 아프게'1절의 가사처럼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 즉석에서 목메어 울게 하는 대신 노래로 터져 나오게 하지 못하면 대중가요로 성공할 수 없다. 꾹꾹 눌러 참으며 닫힌 것이 아니라 슬픔도 정갈하게 터져 나올 때는 기쁨이 된다.
하동 포구 휘돌아서/흘러가는 섬진강아/한 줄기 그물 길은/고향의 사랑인가/불러도 대답 없는/어머니의 이 강이여/천만 년 영원토록/꿈을 안고 흘러가라
정시인은 하동을 참 많이도 끊임없이 노래하며 시심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지리산자락 아래 섬진강이 흘러내려 한려 수도로 빠지는 하동의 풍광, 유년시절을 강가 외갓집에서 그런 그림 같은 정경을 바라보며 지낸 정 시인에게'고향의 강, 섬진강아'절처럼 섬진강은 곧 어머니이면서 민족 반만년의 정과 한, 그리고 풍류를 흘러들게 했으리라. 정 시인뿐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유년의 고향은 울긋불긋 꽃 대궐에서 너나없이, 이별 없이 천지만물과 동무가 되어 하나로 어우러지던 신화적 시간과 공간이었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못 견디게 그리운/아득한 저 육지를/바라보다 검게 타버린/검게 타버린/흑산도 아가씨
갈잎을 부는 사람소리인 양 앰프 진공관 불빛을 떨게 하는 이미자의 음색은 그대로 내 실핏줄 속으로 흘러들어 심혼을 울리곤 한다. 너와 나를 하나로 이어주며 깊이 있게, 애타는 그리움을 울리는 것, 그것이 고전 아니겠는가. 장식용. 과시용이 아니라 우리의 심혼은 그런 울림, 떨림을 원하지 않는가. 정시인의 시에는 그런 울림, 떨림이 있다. 섬 자체가 망부석이 되어 기다리는 그리움의 떨림이 있다.'검게 타버린'의 반복으로 '흑산도'라는 섬을 얼마나 선명하게 형상화하면서도 얼마나 우리들 마음을 그 그리움에 즉물적으로 떨게 하고 있는가. 해설의 중재 없이 그대로 우리들 핏속으로 들어오는 서정시가 정 시인의 노래시다.
@金種千-섬진강을 내놓으며(39편)
큰 詩人으로 성공한 古朴한 鄕土抒情의 詩人 鄭斗守
붉디붉게 피어나 기동애비 한으로 산마루 마루를 충분하게 뒤덮은 철쭉! 역사의 불씨와 강의 시원이 함께 어우러진 슬픈 영혼의 탄성 산 내음 구름 내음을 그대로 우리의 혀끝에 감돌게 하는 작설차 향기, 된장 냄새로 은근하게 와서 덤비는 정두수 특유의 시의 가락! 이 모든 천성적 바탕이 지리산이란 민족의 신선을 더욱 우러르게 하고, 더욱 친근하게 하고, 더욱 가다듬게 하는 한 시대의 시인으로서 큰 몫을 해 낸 것이다... 그대의 역사의식과 그대의 전통감각은 詩의 새로운 도약을 예감케 하고 있습니다.
- 하동포구 이야기(대하 영상시 86편)
푸른 河東의 詩情이 天然 가락으로 올올이 엮어진 詩
개성이 없을 것 같으면서도 구수한 인간미가 흠씬 배어있는 정두수시인! 욕심이 적은 것 같으면서도 타고난 예술미학의 감성에 포개고 또 포개어야 내놓는 창작욕! 그러기에 정두수의 특질은 된장국 냄새의 틉틉한 맛, 그 스타일이 온몸을 휘감싸고 있다. (포스트모던 겨울호.1995)
인터뷰를 마치면서
-아포리즘 징검다리를 만들어 주는 작사가 정두수
뭇 시인들 세계에서 정공채 시인의 의식을 존경하는 분이 많다. 아우인 정두수 작사가 또한 신선한 자극을 주시는 분이었다. 선생님과 대담하며 나눈 감흥적인 분위기가 저절로 예인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부드러우면서 안에는 카리스마적인 의식으로 감정을 이끌어가는 힘. 따뜻하게 느껴지는 미소에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예술의 근원 점을 구축한 영상을 보여 준다. 아마도 그 분위기가 우리 국민들 정서를 가늠하고 공감하게 했으리라. 시냇물에 징검다리 건너 듯 직립적인 행보를 일치되게 만드는 아름다움. 시대적인 아픔을 같이 느끼고 슬픔을 이겨내는 힘이 아니었나한다. 자랄 적에 고향 집 부모님은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을 자주 틀어 놓곤 했다. 어린 나는 그 뜻도 모른 채 흥얼흥얼 노래하고 다녔다. 아마 그건 백의민족이 가진 정서와 애환의 그늘을 자극하는 아포리즘(aphorism)에 그러했을 것이다. 시냇물 흐르듯 정두수 노랫말과 시, 그리고 만남. 그건 예술 그 자체였다.
&별지참조
작사:정두수
*가슴아프게(남진)*감나무골(나훈아)*고향의그사람(나훈아)*공항의이별(문주란)*과거는 흘러갔다(여운)*꽃잎은 외로워도(이미자)*꽃잎편지(백남숙)*그때가 옛날(이미자)*그리움은 가슴마다(이미자)*그사람 바보야요(정훈희)*그사람(문주란)*김포 가도(남진)*나는 가야지(패티김)*낙조(문주란)*네온의블루스(이미자))노량대교(남상규))노신사(최희준)*당신이있으니까(문주란)*타국에서(이미자)*대답해주세요(이미자)*대관령 아리랑(화춘아)*덕수궁 돌담길(진송남)*도라지고갯길(김상진)*뜻밖의이별(조용필)*마음약해서(들고양이들)*마음이고와야지(남진)*마포종점(은방울자매)*목화아가씨(남진)*못잊을당신(이미자)*무정(이미자)*물레방아도는데(나훈아)*바람(패티킴)*별아 내 가슴에(남진)*비에 젖은 여인(이미자)*빗속에서누가우나(남진)*사랑의공중 전화(남진)*사랑의눈동자(백남숙)*사랑이스쳐간 상처(남진)*삼백리 한려수도(이미자))쌓인정(하춘아))*석양(이미자)*순이생각(이용복)*시오리솔밭길(진송남)*슬퍼도떠나주마(펄씨스터)*아네모네(이미자)*안개낀고속도로(강정아)*아랫마을 이뿐이(남진)*알고계세요(하춘아)*우수(남진))이별의순간(이상렬)*잊었을거예요(임희숙)*잊기로했네(조용필)*자주댕기(이미자)*젊은초원(남진)*첫사랑이야기(하춘아)*한번준마음인데(이미자)*타국에서(이미자)*황혼의 불루스(이미자)*해바라기마음(남진)*흑산도 아가씨(이미자)
시(詩)목록
가로수, 간도선, 갈매기, 강태공에게, 갯벌운동회, 갯벌전쟁, 경전선, 고구려 기행, 고구려 노래, 고독, 고려인 우배열차, 구름의 노래, 구름의 욕정, 내 마음 바다에, 노들강 연가, 눈 오는 날, 다도해 하늘, 동북 공정에 대하여, 동행(1), 동행(2), 두더지 노래, 두만강 강냉이죽, 능수버들, 뚝섬혼불, 러시아 노인과 보드카, 술병, 마른 잎사귀, 마지막 잎새, 목련, 무갑산, 바다공연, 바다의 꽃나무, 바닷가 노을, 바람, 박쥐와 동굴, 병중시대, 북해도 유품, 배다리 장날, 백두대간, 빈자리, 빈자루, 빛의 날, 사랑에 대하여, 섬진강연가, 섬진강탄곡, 수저의노래, 시인의노래, 시인의지게, 신록예찬, 아름다운 삶, 아무일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의자, 억새꽃 산행, 오오!100년, 왕회장님과 소싸움, 옥수수밭 사열식, 자갈치 시장, 장독대 개살구나무, 저녁놀, 제부도성찬, 지금은 깨어날 때다, 태백산, 하동포구 이야기, 함박눈은내리는데, 흑백사진, 흑룡강편지, 휘파람
프로필
1937년 경남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에서 출생. 동래고 재학 때 ‘올벼’ 동인.1960년 서라벌 예대 문창과. 국가 재건운동 본부 주관 문예작품 현상 공모 시부 당선(본명 정두채/시‘공장’/심사·조지훈, 박두진)
제1노래시집'시로 쓴 사랑노래‘ ’ 제2노래시집' ‘꽃핀 노래 사랑시' ’제3노래시집' ‘하동포구이야기' ’제4노래시집 '백두대간'
저서: 편저.‘알기 쉬운 작사법’‘한국걸작 가요 가사선’(해설집)
음반: 정두수 가요‘ 기념 음반(CD10집)
수상: 하동군민상, 국제가요 작사상, 제1회 한국예술윤리위원회 본상, 제1회 한국가요상 작사상, 무궁화대상, 방송가요대상, 한국문학예술상, 대한민국 연예공로상, 문화훈장, 포스트 문학상 등 50여회 수상)
2011. 10. 25
광주문예 연구회 간사 김미화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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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광진에도 오셨군요 이춘명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