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의 정치학
새마을금고는 1963년 재건국민운동본부가 농촌을 중심으로 조직한 것이 그 효시다. 민족 고유의 상부상조 정신에 입각하여 지역 주민의 경제, 사회적 지위향상을 도모하고 지역사회 개발을 통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비영리법인으로 설립, 출발했다.
그 후 1982년 제정된 새마을금고법에 따라 명칭이 새마을금고로 바뀌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그동안 국가 경제 발전과 국민 소득 증대에 편승되어 전국의 3,000여 개 금고들도 엄청난 자산증가를 이루고 있으며, 이제는 제1금융권 못지않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새마을금고는 아직 제2금융권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금고의 관리는 금융기관 전담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가 아니라 행정안전부가 담당하고 있다. 이는 새마을금고가 단순히 경제적 금융기관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신용협동기구라는 늬앙스가 강한 것이다. 다시말해 새마을금고는 새마을운동의 잘살기 운동 일환으로 우리네 전통적 향약이나 두레, 계 등과 같은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새마을금고의 역사는 대한민국 1번지 종로구와 그 연관성이 깊다. 우선, 1970대 초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운동에 살던 고 이두학 종로구의회 의장과의 전설이 있다. 고 이두학 의장은 육사를 나와 헌병대장을 지냈고 군에서 나와 기업을 경영하기도 했는데, 어느날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종자돈 100만원을 하사하면서 동네 새마을금고를 설립하라고 주문을 하여 자신의 사재를 보태 청운동 새마을금고를 맨 처음 설립하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 의장은 그때부터 종로구 여러 동네별로 새마을금고 설립을 독려하면서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했고, 그러한 결실과 함께 이 전 의장은 종로구 새마을금고 연합회장을 맡아 금고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더 나아가 이 전 의장은 전국 새마을금고연합회 초대 회장을 맡아서 국내 새마을금고의 기초를 이룬 것이다.
새마을금고와 종로구의 두 번째 인연은 역시 이 전 의장으로부터 비롯되는데, 1982년 새마을금고법 제정과 함께 정부의 새마을금고 육성방안이 마련, 추진될 때 종로구 국회의원이던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당시 내무부로부터 80억 원이라는 정책자금을 새마을금고중앙회에 지원하여 오늘날의 새마을금고 발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는 종로구 국회의원이던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이두학 전 의장 두 분 모두가 종로구 주민으로서 서로 의기투합, 합심단결하여 이룬 결실이다. 그러니까 새마을금고 역사와 발전에는 종로주민 두 분의 노고와 열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종로인의 열정으로 성장한 새마을금고가 이제는 과거의 금고가 아니다. 전국에 약 3,200여개 점포가 운영되면서 수백억 원에 불과하던 각 금고별 자산도 이제는 1천억 원대를 상회하는 금고가 부지기수가 됐고, 새마을금고중앙회 총 자산액도 200조원을 넘기며 사회공헌 활동 확대를 추진 중이다. 또한 최근에는 베트남, 미얀마, 우간다 등 국제협력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어서 향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도는 물론 ‘포용 금융의 한류’라는 새로운 사조를 기약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새마을금고의 급성장세와 함께 어두운 그림자들도 곳곳에서 어른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새마을금고가 성장하면서 점점 사금고식 경영에서 탈피하여 동네 공동체적 공공성격이 더욱 요구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동네 특정 인사 일부의 전유물처럼 운영되고 있는 요소는 시급히 개선될 사항이다. 또한 금고 이사장을 선출하는 방식이 아직도 대부분 금고에서 대의원 간선제로 진행되고 있는 점은 민주화 시대에 역행하는 오점으로 남고 있다.
특히 현행 새마을금고의 급성장세 속에서 발전과정의 변이가 귀추를 모으며 주목 시 되는 점이다. 아무리 진화의 요체가 변이와 도태라는 생존경쟁이라고는 하지만 금고의 진화는 그 매트릭스가 신용 또는 금융협동조합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금융기관으로서의 성장보다는 지역의 발전 및 성장 동력과 그 맥을 같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마을금고중앙회의 성장 정책에 따라 금고의 대형화 추세를 잇는 합병방침이 기존의 전통적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다. 물론 금고의 합병은 영세금고의 부실 운영에 따른 금고 신용 훼손과 추락을 방지하여 전체적인 금고의 신용도를 높이는 측면과 앞으로 금고 성장세를 감안해서는 확실히 지향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종로구 교남동 새마을금고가 5,6백억 원대 자산에서 1,400억 원대의 중형금고로 급성장하면서 교남동을 벗어난 사직동 새마을금고 관할 광화문 지역에 지점을 설치하기 위한 추진은 여러모로 파열음을 낳고 있다. 이는 ‘1동네 1금고’라는 전통적인 사고에서도 벗어나는 것이지만 더 큰 우려는 금고별 약육강식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금고의 성장과 발전이 중요하지만 지역에서 ‘땅 따먹기 식’ 으로 금고 운영이 이뤄지면 결국 ‘제살 깎아 먹기’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 지역의 금고끼리 금리 전쟁도 치열하게 전개하면서 상호간의 경쟁과 반목이 우려되는 가운데 이같은 남의 구역 침법 운영은 지역 내 금고 간 매우 심각한 불협화음으로 작용될 공산이 크다. 어디까지나 새마을금고의 진화는 동반 성장 속에 함께 가는 협동조합으로 변이해야 하는 것이지, 약육강식의 적자생존도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새마을금고 종로구협의회의 정치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