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덕끄덕 1기에서 무익조를 읽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글을 쓰고 모두가 함께 보았습니다.
그리고 열띤 토론도 했습니다. 그런데 발제한 글을 소모임이나 분과에 올리라 했는데 저는 책이야기에 올리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여기에 올립니다.
무 익 조 (김성범)
날지 못하는 새, 또는 날개가 없는 새 '무익조'를 읽고 아이들은
"재미있어요", 또는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쉽고 쉬우면서도 어렵다"고 했다.
무익조는 원래 키위(kiwi)라는 뉴질랜드가 원산지이며 야행성으로 닭만한 새가 있다.
하지만 작가 김성범은 키위를 염두에 두거나, 알고 쓴 글이 아니라고 했다.
섬진강에서 살았던,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새를 말한다고 했다.
동학혁명을 배경으로한 이 이야기는 날개가 없는 새처럼 사회의 중심부가 아닌 소외되고
권리를 박탈당한 민초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연수와 무익조의 아름다운 우정이야기로 우리들에게 감동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작가는 연수의 아버지와 무익조를 대비시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시대의
날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그가 말하는 날개란 평화일수도, 자유일수도, 그리고 빵일수도, 환경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있어 잃어버린 날개란 이라크의 자유와 평화가 될 것이고 또 작게는 고봉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은 자칫 어렵고 난해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을 한결이와 그이 조상의 얼이 만나
책이 책을 읽어준다는 흥미로운 형식으로 시작되면서 아이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서게 만드는 독특한 접근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한결이의 조상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의 아버지 이야기로 그리 멀지 않은 시대에 어쩌면 내게도 나와 연관 있는 그분들의 작은 어떤 유산이나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짜릿한 흥미와 관계에 관한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또한 육식 동물인 갈색깃 무익조를 악의 화신으로 보지 않고 단지 육식을 위해 흰색 무익조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생태에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하는 동물로 묘사되어 자연의 순환과 이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연수가 대견했다.
그러다가 연수가 그렇게 갈색 무익조로부터 지키려 했던 흰색 무익조를 아버지와 함께 들어 온 동학군들이 불에 구워먹는 장면에서는 나도 너무나 화가나고 연수가 불쌍해서 참을 수가 없어 엉덩이를 들썩이며 읽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동학군들이 모두 죽고 난리 속에서 무익조는 사라졌다. 그리고 한결이의 고조 할아버지는 그들을 찾기 위해 섬진강의 산 주변으로 이사 와서 평생 무익조를 찾아 돌아다니시다가 결국 돌아가시게 된다.
그는 과연 무엇을 찾아 헤맨 것일까?
어린 시절 우정을 키웠던 어린 새들을 찾기 위한 것일까?
이미 나이들과 일상의 생활에 길들여 아련한 추억으로나 남아있을 무익조를 그 할아버지는 왜 그토록 찾아 헤맨 것일까?
차라리 찾지 못한 것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 한다.
그리고 한결이가 볼 수도 있었을 무익조를 섬진강 너덜겅 주변의 환경이 파괴 된 지금 찾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무익조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 그리고 우리의 최대의 바램은 너덜겅 주변의 환경을 되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무익조가 돌아와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책을 덮으며 소망으로 남았다.
-고혜수-
----------------------- 토론한 내용 -----------------------------
* 재미있었지만 어려웠다.
* 작가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전달하려는 욕심에 의해
일관성있는 주제의 가닥을 놓쳤다.
* 환타지소설도 아닌 것이 난해산 가상의 새를 등장시켜 놓고
또한 하얀 할아버지의 드러나지 않은 정체에 관한 의문도 모호 했다.
*동학군에 대한 평가 절하 할 수도 있을 행동들에 대한 서술에
의구심이 일었다.
* 그림이 내용과 맞지 않아 오히려 상상력을 떨어트리게 만들고
무익조를 마치 돌연변이의 한 형태로 형상화 시킨 느낌을 주었다.
*김성범씨의 호흡이 길어 역량있는 작가로 기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