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시 : 11월 15일 (일)
* 위 치 : 경북 김천 / 충북 영동
* 코 스 : 우두령, 720 m - 삼성산, 985.6m - 여정봉,1.030m-바람재,810m-신성봉 갈림길-
형제봉,920m-황악산 비로봉,1.111m-운수봉,680m-여시골산,610m-괘방령,310m
우두령
삼성산 2.2 km
황악산 5.4 km
괘방령 5.4 km
총마루금 13 km/ 4시간 27분
10 : 36 우두령
11 : 45 여정봉
12 : 05 바람재
12 : 26 신성봉 갈림길
12 : 36 형제봉
13 : 16 황악산 정상
14 : 04 운수봉-직지사 갈림길
14 : 10 운수봉
14 : 37 여시골산
15 : 03 괘방령
* 掛榜嶺 (괘방령,310 m)
이 곳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이라 불리고 있다.
괘방령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及第를 알리는 榜에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秋風嶺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던 官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科擧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商路로서 추풍령 못지 않은 큰 길이었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때 朴以龍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도로변에는 장군의 공을 기리는 黃義祠라는 사당이 있다.
비록 이곳이 해발 31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精氣가 잠시 숨을
고르다 黃岳山으로 다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여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으로,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영남의 유생들이 과거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
처럼 낙방하고 괘방령을 넘으면 괘방령의 ' 방(榜)'자가 합격자 발표때 붙이는 방(榜)와 같은
글자라 과거에 합격한다는 속설때문에 마음 약한 유생들은 추풍령대신 이 괘방령을 넘었다고 전해 내려 오고 있는 곳이다.
최근 괘방령 표지석 제막식이 2009년 5월 19일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 괘방령 고개에서 김천시
주재로 백두대간 표지석의 일환으로 성대히 열렸다. 백두대간 보호 사업의 일환으로 한반도의
생태축인 백두대간의 중요성과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등산객에게 괘방령을 홍보하고 시승격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했다.
* 黃嶽山 , 1.111 m (경북 김천시 대항면 과 충북 영동 매곡면 상촌면)
예로부터 학이 자주 찾아와 황학산으로 불리웠으나 직지사의 현판을 비롯 택리지등에서
황악산으로 명기되어 있다.
산세가 전체적으로 완만한 편으로 전 산에 수림이 울창하고 동쪽 계곡은 폭포와 소가 많아
계곡으로서의 운치가 더한며 능여계곡이 대표적으로 봄철에는 진달래,벚꽃등이 , 가을철에는
단풍으로 절경을 이룬다.
: 우두령 - 삼성산- 여정봉- 바람재
901번 지방도로상의 우두령을 들머리로 대체적으로 완만한 능선을 어렵지 않게 오르다삼성산을 지나 임도와 중계탑을 지나 여정봉에 닿는다.
내리막 나무계단으로 내려서면 눈에 덮힌 황악산 줄기가 앞을 막으며 중앙에 헬기장이 있는
바람재로 이어지며 그 명성대로 흐린 일기 불순의 날에다 바람이 세차게 호흡조차 더디게
한다.
: 바람재-신선봉 갈림길-형제봉-황악산
전체적으로 평이 무난한 서비스구간으로 바람재에서 신성봉 갈림길까지 20여분, 형제봉에서
황악산까지도 약 20여분의 짧은 오름길로만 황악산 비로봉에 이른다.
정상직전 바람없는 안부에서 중식을 간단하게 .....
全구간이 적당히 내린 첫눈으로 설경을 이루니 내내 흥에 겨워 대간길이 너무나 황홀하다.
주위의 산과는 달리 유독 흰물감 마루금 산행이 투명하고 맑게 모든걸 비워준 듯 가벼히
닐 듯하다. 지역적 특성으로 보아 겨울 마루금 내내 눈에 흠뻑 젖을 듯.....
: 황악산 정상-운수봉-여시골산-괘방령
정상에서 직지사 방향으로 계속 40여분을 떨어지니 선두에서 알바인 듯 착각하여 갈팡지팡허나
개념도 및 일반 명산에는 없는 리본 표식기로 보아 대간길임이.....
우측 직지사 , 직진 운수봉 갈림길로 급경사로 오르면 운수봉, 지나 7-8개의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면 여시골산에 닿고....
내리막 30여분의 급경사 내리막 하산이면 오늘의 날머리인 괘방령을 만난다.
우두령 우측이 들머리
첫눈에 뭍힌 마루금
바람재
신성봉 갈림길에서 우측으로는 직지사
황악산 정상 직전 안부에서
지나온 마루금을....형제봉, 여정봉
우측으로 직지사, 직진 대간 마루금
괘방령 도착 직전. 다음 구간의 가성산
비교적 짧고 무난한 구간으로
첫눈을 만나 황홀하게 마루금을 산행.
1/3 지점인 추풍령을 이어주는
嶺南右路에 살던 사람들을 추풍령대신 직지사에서 황간 다시 한양으로
연결하는 괘방령에서
속리산권+소백산권을 향해 겨울속에 흠뻑 젖을터이다.
* 嶺南大路
부산에서 대구, 문경새재,충주,용인을 지나 서울까지 구백육십리 열나흘길
영남선비들이 과거 보러 가던길
임진년 왜군이 진격한 길이자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향하던 길
한강유역과 낙동강유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던 영남대로는 서울에서 부산의 동래부에
이르는 조선시대 9대 간선로 가운데 하나였다.
이 길은 우리나라의 영광과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민족의 대동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영남대로 외에도 여러갈래가 있었다.
영천과 안동을 지나 죽령을 넘어 서울로 가는 열닷새길인 '嶺南左路'
김천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서 가는 열닷새길인 ' 嶺南右路'가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나 벼슬아치들은 대부분 竹嶺 과 秋風嶺을 피했다.
죽령은 죽 미끄러진다는 속설때문이었고 추풍령은 추풍낙옆처럼 떨어 진다는 속설때문이었다.
그들이 넘었던 고개는 말그대로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聞慶)'의 새재(鳥嶺)였다.
영남우로에 살던 사람들은 추풍령대신 직지사에서 황간으로 이어지는 掛榜嶺을 넘었다.
鏡岩拜
첫댓글 추운 날씨에 바람이 꽤 세차게 불었을터인데...눈길 속에서 넘어져 굴렀던 괘방령의 추억이 아련합니다..언젠가 직지사 계곡으로 찾아 올라 황악산을 다시 올라 봅시다..화이팅!!
바람재에서의 세찬 바람은 더구나 눈발이 내리는 흐린 날씨에, 도연이 예상한대로 숨을 턱 막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