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 17코스 (송정∼오미)
▣ 일시: 2025.3.8. (토)
▣ 코스: 송정∼의승재∼백의종군길 삼거리∼칠의사묘∼육각정 정자∼문수지∼운조루∼오미리
▣ 도상거리: 12.21km, ▣ 소요 시간: 5시간 10분
지리산둘레길, 새봄의 길을 걷다
이원근
송정에서 오미까지 섬진강을 보면서 농로, 임도, 숲길로 이어지는 길 위로 봄이 스며든다. 섬진강은 봄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며 흐르고, 강가의 버드나무 가지는 부드럽게 늘어져 바람에 춤을 춘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새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마른 가지에 남아 있던 겨울의 흔적이 사라지고, 생명의 기운이 피어오른다.
송정마을 어귀 주차장을 들머리 삼아 곧바로 숲으로 들어서면서 돌계단을 오른다. 길가의 논밭에는 촉촉한 흙 내음이 감돌고, 농부들은 새 계절의 시작을 알리듯 분주하게 손을 놀린다. 개울가에는 노란 산수유꽃이 터지고, 길섶엔 파릇한 쑥이 얼굴을 내민다.
원송마을로 넘어가는 의승재를 넘어서면 길은 칠의사골 계곡의 바윗돌을 징검다리 삼아 작은 개울을 건넌 뒤 400여 년 전 이순신 장군이 걸었던 ‘백의종군로’와 합류한다.
칠의사골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까지도 녹이는 듯하다. 이순신 장군이 걸었던 ‘백의종군로’와 조선 수군이 재건을 꿈꾸며 걸었던 ‘조선수군재건로’가 이곳에서 포개어진다. 땅을 밟고 가는 발자국마다 옛사람들의 소망이 스며 있어,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닌 역사의 길이 된다.
지리산둘레길이나 백의종군로, 조선수군재건로 등 세 가지 길은 저마다의 자기 사연을 안고 흐르지만, 이 땅에 살고자 했던 고달픈 목숨들이 새긴 소망의 발자국이라는 점에서는 한 길이다.
칠의사골 계곡 주변은 정유재란 때 수많은 구례 의병이 왜군에 맞서 백병전을 벌이다가 옥쇄한 피의 전장이다. 순절한 의병들이 흘린 피와 침략자들의 피가 한데 섞여 흘렀을 계곡물은 석주곡수라 불리며 석주관 칠의사묘 앞을 지나 섬진강으로 합류한다.
이 구간에는 꼭 들려볼 곳이 두 군데 있다. 석주곡수를 피로 채웠던 석주관칠의사의 묘와 부자가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운조루다. 선인들의 삶과 마주할라치면, 우리가 분노해야 할 때는 왜 분노해야만 하는가를 알게 된다. 불법 탄핵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시국이라서 더욱 그렇다.
나와 몇은 칠 의사를 만나 뵈러 둘레길을 버리고 칠의사골을 따라 섬진강 쪽으로 내려선다. 이끼 낀 돌과 세월을 품은 나무들이 반겨준다. 새들이 봄을 노래하며 지저귀고, 바람은 나뭇잎 사이를 부드럽게 스친다. 멀리 섬진강 너머로 길게 펼쳐진 호남정맥이 힘차게 내달린다. 칠의사를 만나 뵙고 강변을 따르다 둘레길로 복귀하기 위해 육각정으로 오르는데, 경사가 심해 코가 땅에 닿을 지경이다.
산허리를 감싸고 도는 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토지면의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고즈넉하고 따뜻하다. 길은 문수지에서 꺾어져 저수지 둑 아래 내죽마을로 내려간다. 수로를 따라 하죽마을의 250살 당산목, 서어나무를 지나 남한의 3대 길지 중의 하나로 꼽히는 금환락지 오미마을 운조루에 닿는다.
운조루에는‘누구나 뒤주를 열 수 있다’라는 뜻의‘타인능해’란 말이 새겨진 뒤주가 있었다. 배고픈 이들이 언제라도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고 쌀이 떨어지면 주인이 다시 채워 넣는 걸 잊지 않았다고 한다. 마당에는 운조루 창건주인 ‘류이주’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 오는 길에 가져왔다는 위석류나무가 고택과 함께 250년의 세월을 버티고 있었다.
지리산둘레길 17코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이 들려주는 봄의 이야기가 가만히 스며든다. 겨울을 이겨낸 생명의 힘이 곳곳에 살아 있고, 옛사람들의 소망이 아직도 이 길 위에 남아 있다. 봄날, 우리는 이 길에서 생명과 역사, 그리고 희망을 만나고 왔다.
칠의사묘 ▲ 정유재란 때 전라도 지방의 관문이었던 석주관을 끝까지 지키다가 숨진 구례 출신 의사 7명의 무덤이다. 석주관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안음의 황석산성·진안 웅치·운봉 팔량치와 함께 영·호남 사이의 4대 관문의 하나로, 고려 때부터 이곳에 진영이 설치되어 왜군의 침략을 막았다. 묘가 8기다. 다른 한 분은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당시 구례 현감이다.
운조루 ▲ 베푸는 자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까지 배려했다. 뒤주를 헛간에 두어 주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도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굴뚝을 마루 밑으로 내어 밥 짓는 연기가 높이 날리지 않도록 했다.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밥 짓는 연기는 큰 고통이라는 것까지 주인은 헤아렸다. 동학혁명과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도 운조루가 건재했던 이유다.
▲ 백의종군로와 조선수군재건로 안내
▲ 수령 250년 서나무 보호목
▲ 운조루의 우물과 우물 안의 모습
첫댓글 지리산둘레길 구간마다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찾아 빈틈없이 후기로 남겨주심에 새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17구간은 숲길과 임도가 반반으로 진행되어 부담없이 편안히 걸을수 있었네요.
이고문님 수고많으셨어요.
그래요. 칠의사 만나려고 욕심을 좀 부렸다가 혼 났다.
주욱 섬진강변 따라 토지천 하구까지 갈려다가 제돈 아우님 돌배주 한 모금 마실려고 ...
육각정 오르는 길이 얼마나 까뿔막 지던지... ㅎㅎ
암튼, 늙으이들 챙기느라 고생들 많았으이. 감싸!
ㅡ 권수문
이번 코스는 역사의 현장을 답사한 아주 뜻깊은 코스였습니다. 오랜만에 흐르는 계곡물도 만나며 봄의 기운을 만끽한 좋은 기회였습니다. 상세한 산행기를 올려주신 왕초성님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ㅡ 우성태
고문님~ 17구간 둘레길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보다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