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7장 6절 ~16절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 저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나와 같은 죄인도 구원해 주심에 감격함으로 성도는 형제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쉽게 해결될 줄 알았으나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듣고 목회적 편지를 다시 보내게 됩니다. 복음을 위한 삶에서 은혜를 떠난 삶의 모습과 바울의 권면도 듣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을 만나기 거부하였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교회가 세워 기지까지의 과정과 은혜의 모습 그러나 떠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디도에게 전하여 듣게 됩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폭동으로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부흥의 경험 중에도 고린도교인들이 은혜에서 떠남을 보고 마음 아파하였습니다. 존경받는 자들이 끝까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권리를 주장하며 믿음의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없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버려져 밟힐 뿐입니다.
세상과 이웃에 수치를 당할 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는 기준과 시선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이기적인 모습 속에 세상에 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를 듣기까지 초조하고 걱정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쉼 없는 환난 가운데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박해를 당하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고린도교회를 향한 걱정과 근심 속에 있었습니다.
힘들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역자에게 포기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심판의 날을 전파하고 선포할 때 많은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심판의 날을 아는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귀중했던 바울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음으로 세워 나가도록 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디도가 옴으로 낙심한 바울을 위로해 줍니다. 디도를 통해 받은 고린도교인들이 다시 은혜 위에 서게 되었단 소식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목회자는 사명을 따라 목횔르 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안에 살아갈 때 목회자는 기쁨이 됩니다. 성도가 주님 안에서 살아갈 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 따라 살기 원하지만 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함이 아니고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욱 찾고 회개하고 찾아야 합니다. 순간 넘어지고 끝이 아닌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죽기까지 살리신 한 영혼 한 영혼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바울은 16절에 은혜에서 떠났고 바울은 거부했던 고린도교인들을 기대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도시에서 구원의 삶을 살기로 한 고린도교인들을 다시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며 자랑하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자랑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회개한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써 보내긴 했지만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며 심판을 말씀을 보내고 참았어야 했나 하며 후회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상처로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후회도 하였습니다. 인간적 근심을 성령은 기쁨으로 변화해 주셨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근심은 평안함으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사역은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시사 바르게 세워 주십니다. 그러나 인간적 마음의 책망은 내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책망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 모습이며 생명 살리는 역사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부르신 뜻에 따른 삶은 세상에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