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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1-6절/ 어린아이 같이
김권사님이 지난 수요일에 고추 모종을 가져다가 목양실 앞에 심으셨습니다. 고추 모종을 심는 것을 보면서 주렁주렁 달릴 고추를 상상해보았습니다. 가까이 있는 저와 우리 교회 식구들이 먹을 것을 생각하니 행복해졌습니다. 어린 아이는 인생의 봄날과 같습니다. 봄날에 심겨진 작은도토리 같지요? 작은 도토리 한 알을 심어두면 거대한 상수리나무가 됩니다. 도토리 한 알 속에는 이미 거대한 상수리나무 한 그루가 오롯이 들어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밤에 동노회의 연합회 부흥회를 교우들과 참석해서 은혜 받았습니다. 강사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시다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함께 찬양했습니다. 찬양을 하는데 위층에 있는 아이들의 찬양소리가 청아하게 들려 왔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찬양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찬양을 기뻐 받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생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들이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서 서로 이름을 부르며 좋아하는 것을 봅니다. 사장이나 변호사나 의사나 농사를 짓든 상관없이 누구든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자꾸만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고향 하늘과 산과 들판이 어머니 품과 같이 푸근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누구나 아름다운 꿈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지 못해도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서로 아끼고 더불어 사는 동심이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아름다운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소녀들의 인권과 권리를 찾아주는 대표가 있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에는 야심이 매우 컸습니다. “군대를 이끄는 장군이 되어 나쁜 놈들을 무찌르고 싶었습니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고 했는데, 그는 백설공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10대가 되면서 꿈이 자꾸만 쪼그러 들었습니다. 외모와 몸매, 친구들에게 받을 인기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남자 아이들에게 인기 받는 것에 신경 썼습니다. 이전에 가졌던 꿈은 가슴 깊은 곳으로 자꾸 꾹꾹 누르면서 잊혀졌습니다. 얼마 지나고 나서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를 정도로 변해버렸다”고 회상했습니다.
요즘아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엄마 아빠, 저를 좀 가만히 놔두세요? 어른들은 주 5일 근무에다 하루에 8시간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학교에서 꼼짝없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학원이나 공부방에 갔다 오면 밤입니다. 그리고 학교 숙제 학원숙제를 하려면 잠잠 시간도 없습니다. 친구들과 놀고 싶고 유일한 기쁨을 주는 게임을 하고 싶어 합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생활하는 교실에 가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유일한 희망은 컴퓨터 게임뿐입니다. 부모님들이 저를 사랑하는 것은 알지만 저는 너무 부담이 됩니다. 저도 놀 자유와 생각할 자유과 꿈 꿀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린이날 하루 만이라도 공부와 부모의 지나친 관심에서 해방되고 싶어 합니다. 푸른 하늘을 보고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집과 학교 학원에만 가둬 놓고 어떻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
어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말로는 늘 행복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부모님의 말대로 자전거를 타면서 행복해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아이에게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공부하라고 강요한다고 불평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옭아매지 않습니까? 사랑하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지요? 나의 욕망을 채우거나 상대방에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힘을 가지고 상대방을 지배하거나 이용하지 않지요?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약한 것을 채워줍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어른들이 바라는 욕심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사랑입니다. 아이들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부모님들의 요구가 너무 많아 우울하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부모님들은 자식 공부시키느라고 허리 휘고, 아이들 보살핀다고 피곤합니다. 이 불행한 모순이 우리의 현실이지요? 아이들은 공부 잘하고 예쁘면 더 귀염 받고 공부를 못하고 못생기면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합니다.
요즘 한 아버지의 이기적인 자식 사랑이 연일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술집에 갔다가 종업원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힘에 밀려 맞고 집에 왔습니다. 금쪽같은 아들이 맞고 왔다고 하니 아버지가 화났습니다. 어디 술집 종업원이라는 놈들이 감히 우리 아들을 건드려 하면서, 덩치 큰 경호원들을 데리고 한 달음에 술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종업원들을 야산으로 끌고 가서 상한 자존심을 보복하면서 흠신 두들겨 팼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바르게 가르쳐 주었습니까? 젊은이들이 싸웠으면 자기들 끼리 해결해야지요? 왜 비겁하게 어른이 개입합니까? 그것도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가 술집 종업원이라는 약한 사람을 건드렸습니다. 품위 있는 아들로 키우고 싶었다면? 경찰에다 신고를 하여 법으로 다스렸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법도 어기고 자신의 힘을 자랑해서 응석받이로 키우면 아들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밤늦게 까지 유흥을 즐기며 싸움질이나 하고 다닌 아들을 혼내야지요? 이 일이 어찌 대기업 회장만의 모습이겠습니까? 우리는 내 자식이 누구에게 조금 당했다면 온 집안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 상대방을 박살내려고 할 것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랑이 살벌한 세상을 만듭니다. 저는 이런 세상을 꿈꿔봅니다. ‘돈 있고 힘 있고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제 자식만 챙기지 않고, 그 힘과 돈으로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세상’ 말입니다.
오늘은 교회가 정한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른들에게는 무척 부담이 되는 5월이지요? 하나님은 부모님들에게 어린이들을 통해서 잃어버린 꿈을 회복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어린이들은 아무런 권리를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약자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모든 것의 주인공이죠? 어린이 장난감, 어린이 옷, 어린이 책, 어린이 용품이 잘 팔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가족들과 밖으로 나들이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다가와서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큰 냐? 고 물어봅니다.
이에 예수님은 2절에서 제자들에게 분명히 들어라 너희가 회개하고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 같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가졌습니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아직 판단력이 흐립니다. 쉽게 유혹에 빠지고 넘어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돌이켜 욕심을 버리고 어린이처럼 되라고 하셨습니까?
어린 아이들은 부모를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어린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금은보석이나 높은 권력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사랑하는 부모님만 계시면 만사가 편안합니다. 아이가 가장 평온한 때는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잠들어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축복하지 않고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볼 때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믿음 좋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의를 과시하면서 어른 아이 같은 이들을 무시했습니다.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을 자신의 밥이었고, 그들을 정죄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은혜 받고 자신이 가진 해박한 율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해야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자신은 신앙이 좋아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예수님과 경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미련한 생각을 바꾸고 어린이처럼 나를 의지라고 말했습니다. 경쟁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엎어버립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무시하고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나아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원수로 생각합니다.
기독교서적 저술가이자 목사인 고든 맥도날드는 학창시절에 육상 선수였습니다. 고든은 육상선수가 되어 열심히 훈련한 뒤 이웃 학교의 선수와 시합 하게 되었습니다. 이웃학교의 선수를 보니 키는 큰데, 몸집이 너무 비대하여 제대로 달릴 수 없을 듯했습니다. 그래서 코치 선생님에게 “선생님 저 선수의 몸을 보니 이번에는 제가 틀림없이 이긴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과연 누가 이겼겠습니까? 선수들이 출발선에 서서 땅 하는 출발신호와 함께 힘차게 달렸습니다. 고든은 애를 썼으나 몸집이 큰 선수를 따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 코치선생님이 고든에게 다가와서 “고든, 나는 자네가 처음 몸집 큰 선수와 비교할 때부터 나는 자네가 질 줄을 알았다네. 하지만 친선 경기를 통해 선수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큰 교훈 될 줄 알고 그냥 두었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경기에서는 그 누구든 자네의 경쟁 대상이 아니야, 경쟁의 대상은 자네밖에 없다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이가 사랑하는 부모님의 품에서 행복하듯이 예수님만 의지하여 천국에 갑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나의 욕심에 옭아매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합시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느라고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나 자신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믿음의 용사가 됩시다.
둘째,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영접하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는 종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종은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어린이들을 수를 세는데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 같다고 하면 흔히 유치하고 자기 밖에 모르고 때를 쓰는 골치 아픈 존재로 생각하지요? 어린아이는 인간으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자신을 영접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른 모여 있는 곳에서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고 그를 영접하라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과 도움을 받지 않고는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병자들과 함께 밥을 먹고 병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비방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병으로, 죽음으로, 직업 때문에 죄인이라 낙인찍히고 꼴지 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돌보았습니다.
여러분 힘들고 지칠 때 함께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습니까? 온갖 편견과 가면을 쓰고 살다보니 진실한 모습을 내어놓지 못하지 않습니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시기할까봐 두려워하고, 내가 슬픈 일이 있을 때 무시당할 까봐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지금 어른들이나 아이들은 지나친 기대와 간섭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원하는 것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관심 가져 주는 것 입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교회를 다니다가 쉬는 사람들은 교인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남을 가르치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가 먼저 은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 베푸신 방법대로 다른 사람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면 됩니다. 그런데 오래 신앙생활 하다보면 자신은 다 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몇 해 전에 전남 화순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십대학생 4명이 동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파트에 침입하여 모녀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들 중 송모군은 소년범 최고형인 20년을 구형 받았습니다. 송군의 어머니가 사건이 일어난 후에 모 텔레비전과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삐뚤어지기 시작했는데 어머니는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돈을 주어 사 줄 줄만 알았지, 아들의 마음에 정말 갈급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못했어요? 하면서.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부모가 알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재미없고 짜증나고 밤이 되어도 잠이 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동부 예배 시간에 가셔서 아이들을 안아주고 함께 놀아보세요? 그러면 보약보다 더 좋은 비타민을 드실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옆에 있는 아이들을 안아주세요. 교회 아이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쓰다듬어 주시고 칭찬해 주세요? 축복하는 대로 아이들이 자랄 것이고, 다음 주일부터 아이들이 먼저 달려와서 인사 할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이 연약한 사람들을 품에 안아주세요? 저는 성도님들이 작은 일에 기뻐하고 감동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행복합니다. 특히 새로 나온 분들이 교회에서 은혜 받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덩달아 기쁩니다. 내가 전도 한 성도의 신앙이 자라가는 것을 보면서 기쁩니까? 어린 아이같이 하찮은 사람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영접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실족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가도록 인도하라고 하십니다.
실족케 하다는 말은 덫이나 장애물을 놓아 걸려 넘어지게 한다는 말입니다. 자녀들을 자기의 소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아이 내 마음대로 때려도 상관 말라고 하는 이들을 봅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선물입니다. 내 품에 있을 동안에 책임지고 키우는 축복을 누려보세요? 우리 주변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실족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지나친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봅니다. 공부를 못하다고 무시당하여 실족한 아이들이 있지요? 부모가 없어 버려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멋있게 하여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새신자가 있습니다. 먼저 된 분들이 은혜 받는데 방해되는 장애물을 제거해 줍시다. 그들이 예수를 만날 때까지 기도하고 사랑해주십시다. 그러면 스스로 자라는 씨앗처럼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무럭무럭 자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링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경을 받습니다. 링컨이 이런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링컨의 어머니 낸시는 아들이 겨우 말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성경을 읽어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링컨이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링컨을 베갯머리로 불러 두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엄마가 죽어도 성경을 손에서 놓지 말고 읽어라, 또 하나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머니가 죽어 어린 링컨 곁을 떠났으나 그는 대통령집무실 옆에다가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는 발전소라는 방을 따로 하나 두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깃든 곳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죠? 거기에서 하나님이 하찮은 노예들도 사랑한다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세우신 것은 노예들에게 인간의 권리를 회복해주라는 사명을 준 것으로 생각 한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뎅은 거친 돌맹이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유명한 조각상을 보았습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들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볼 줄 압니다. 그리고 아이가 하나님의 뜻대로 자라는데 방해되는 장애물을 치워줍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비싼 옷이 아니라 입고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옷입니다. 넓은 평수의 집이 아니라 흠이 있어도 이해하고 감싸주는 가정입니다. 지식과 물질이 넘치는 화려한 곳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꿈꾸기 좋은 세상입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주님이 주신 꿈과 사랑을 먹고 자라도록 합시다. 이들이 주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나도록 기도해주고 사랑으로 돌보는 좋은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