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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뜸 취재일기를 시작하며...
고발뉴스의 새로운 연재 기사가 선을 보입니다. 사회와 인간 대한 기자의 다양한 단상들이 '의학적 프리즘'을 통해 촌철살인의 모색이 되어 네티즌 여러분께 다가갈 것입니다.
<이상호의 침뜸취재일기>라는 이름으로 계속될 이 장기 연재는 일종의 취재일기입니다. 우리의 전통의학인 '침뜸'을 기자가 직접 배우면서, 주된 학습내용은 물론 그때그때 만나게 되는 작은 깨달음들을 기록하는 일기인 셈입니다.
침뜸의학에 대한 탐사기록이기도 할 이 코너는 주로 신자유주의 치하 의료문제와 언론현실, 나아가 이 시대 인간의 조건에 대한 다양한 개진의 장이 되길 희망합니다.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의견 바랍니다
2. 마음도 쑥밭인 밤에...
낯선 누군가와 손잡는 일, 마음속으로 흐느끼는 그들을 토닥이며 품어주는 일.. 그것이 항용 고발기자의 일인 것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초년 기자 시절 경찰서를 돌며 지푸라기를 잡듯 나를 부여잡고 하소연을 하던 수많은 민초들을 보았다. 경찰서라는 권력의 막장에서 비참하게 내팽겨지던 힘없는 사람들. 나는 그때 살인이 불과 돈 몇 천원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고, 또 여전히 소신과 양심 때문에 방패 밑에서 머리통이 깨져나가야 하는 시대의 아이러니가 상존하고 있음을 확인해야 했다. 바로 그들이 기자의 삶을 걸으며 내일을 꿈꾸던 내게 절대적인 목적이었고 주인공들이었다.
아마 그때쯤이었나 보다. 하나뿐인 중학생 아들이 교내 왕따 피해를 입어 정신병원에 보내야 했던 엄마를 만났다. 벌써 십년이 지난 일이다. 당시만 해도 왕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아주 없을 때였다. 아들이 학교 가서 맞고 오면 맞은 놈이 모자란 놈 취급을 받을 때니까. 형사들도 그랬다. 경찰서 형사계에서 엄마는 아들이 학교에서 당했을 법한 냉담한 대우를 고스란히 당해야했던 것이다. 아무도 '바보' 아들을 둔 엄마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다.
때마침 형사계 당직 데스크를 뒤지고 있던 내게 그 엄마가 다가왔다.
"혹시 기자세요?"
"네.. 그런데요?"
"여쭤볼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형사 분들이 일을 안 해주셔서 그런데.. 보통 수사 착수비를 얼마나 드려야하나요?"
"네? 수사 착수비라뇨?"
자기 아들의 왕따 피해 사건을 수사해주지 않는 형사들에게 이미 30만원을 찔러줬던 이 엄마는 그래도 경찰이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자 속이 탔던 것이다. 얼마나 더 쥐어줘야할지 그녀는 난감했던 것이다.
그녀를 설득해 카메라 앞에 세웠다. 이것만이 당신 아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득했다. 조명이 켜지고,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다. 졸지에 인터뷰를 하게 된 그녀는 떨리는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손은 몹시 차가웠고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오장육부가 타들어가는지 입에선 독한 냄새가 새어나왔다. 맥이 풀린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나는 그만 함께 울고 말았다. 그녀의 생생한 절규는 카메라에 그대로 녹화됐고, 덕분에 시청자들은 왕따 피해의 심각성을 한층 더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 위로했다.
그리고 그 뿐이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아들의 타살의혹을 풀어달라며 내 손을 놓지 않던 김광석의 아버지, 억울한 남편의 옥살이를 제보하며 울먹이던 아주머니.. 맥 빠져 싸늘한 손, 우울한 빛깔로 부서지고 있던 사람들. 취재현장에서 줄곧 내가 만나온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눈물 한 방울 기사 한줄 뿌려주는 것 뿐. 그리곤 그들은 다시 스스로의 고통으로부터 온전히 구제받지 못한 채 죽어지거나 시들어갔다.
오늘도 칠순이 다 된 할머니 제보자를 한 분 만났다. 사기 피해자였다. 남에게 조그마한 폐도 끼치기 싫어하는 단아한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가 평생에 처음으로 사기를 당한 것이다. 남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몇 년을 감췄단다. 티비에서 눈 여겨 봐왔다며 그녀는 그간의 억울함을 내게 털어놓았다.
죽고 싶었단다. 유서처럼 간직해온 그간의 일기장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이미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이 나의 최선이었다. 기실, 고작 기사 한줄 나간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부조리 구조가 온전히 개선될 리는 만무했다. 어쩌면 이런 경우, 기사는 모르핀에 불과한 것이다.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그녀의 육신도 함께 보듬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괴롭힌다.
11년 전 기자 질을 시작하며 세운 초심이 있다. 별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역사의 주인공인 민중과 사회적 약자, 억울한 사람들의 편에 서겠다는 것이다. 또한 필요하다면 그들을 압제하는 거악(巨惡)과 맞서겠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나의 초심은 그동안 비교적 일관되게 나를 현장과 야전으로 몰아세웠다. 카메라출동과 시사매거진 2580, 그리고 사실은..을 거치며 민중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대칭축에 자리 잡고 있는 사회악과의 일전도 의도적으로 피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사람' 보다는 '싸움' 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런 와중에 어느덧 '싸움닭'이라거나 '고발 전문기자'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이름값을 하겠다는 '심보' 때문인지 때로는 고발을 위한 고발거리를 찾거나, 기사를 위한 기사를 쓰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
돌이켜보면 온몸에 낭자한 칼자국, 핏자국 그리고 수십회에 달하는 소송의 악몽이 엄습한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영혼은 사람을 바라보는 내 눈에 선홍빛 핏발을 세우기 일쑤다. 혹시 나는 싸움에 매몰돼 정작 자신을 구해줄 공주에게 꽃 한송이 조차 바치지 못하는 미친 검투사는 아닌가.
마음길 끝에서 운명처럼 한 사람을 만났다. 그가 바로 구당 선생이다. 灸堂.. 그러니까 '뜸집'이라는 이 촌스러운 아호의 주인공이 바로 김남수 선생이다. 올해 92살. 1915년 생으로 70년이 넘도록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민족의학 -침뜸을 지켜온 분이다. '배워서 남 주자!'는 모토로 서양문물의 쓰나미를 온몸으로 막아선 이 분은, 박노해가 그의 헌시에서 적은 것 처럼, 가히 '민중의학의 살아있는 성자'라 할 만한 분이다.
구당 선생을 만나면서 불현듯 오랜 시간 잊고살아온 기자질의 초심이 되살아나는 체험을 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가 만나서 마주해온 수많은 손들. 대개 그 손들은 모멸감과 억울함, 절망감과 적개심에 치떨고 있었다. 나는 그손에 한줄 기사 얹어주고 돌아왔을 뿐 그 손의 주인공들을 생물학적, 실존적 위협으로 부터 꺼내주지는 못했다. 물론 그들을 압박해온 구조적 병폐가 도려지면 그들의 건강도 어느정도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사회악이 그렇게 간단히 제거된다면 왜 사회악을 무서운 '암'에 비유했겠는가.
나를 거쳐간 손끝 마다에서 느껴지던 육신의 고통은 결국 그리 쉽게 치유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몸과 마음의 고통 속에 숨을 거두고 말았을 것이다. 억울하게 숨진 김광석 보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억울해하며 숨져간 김광석의 아버지가 내겐 더 슬픈 노래다.
기자를 흔히 사회적 병폐를 치유하는 '의사'라고 한다. 고통을 호소하는 민초들의 정신적 고통을 해소해주는 처방전이 한줄 기사라면, 덤으로 그들의 육신 위로 따뜻한 차 한 잔 부어바칠 사랑을 내 안에서 키워낼 수는 없을까. 먼저 간 혁명가 체 게바라도 따지고 보면 의사가 아니었던가.
구당 선생을 알게 되면서 '망상'이 자라났다. 정신과 육체의 병을 함께 보듬어주는 기자가 되자는 것. 생각해보면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몇 날을 내 스스로가 열병에 들뜬 사람처럼 정신없이 보냈다.
기자 질에 뛰어든 초심이 무엇이었던가.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로 보자'는 것. 사람을 벗어나 사람의 관계와 기사적 요건에만 경도되지 말자.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난 인간해방. 이 또한 '망상'일까?
혹자가 공명심에 들뜬 철부지라고 하건 망상가라고 하건 개의치 않겠다. 한날 한시 기자에 입문했었던 동료기자를 둘이나 이미 황천객으로 보낸 처지아닌가. 남들이 뭐라 하든 한번 뿐인 인생길, 나는 나의 인생의 의미를 완성해야할 책임을 지닌다. 그동안 기자라는 삶의 방편으로 구체화 시켜온 인간애를 완성해야 할 책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한손에 취재수첩과 다른 한손에 침뜸을 들고 사람 속으로 들어가리라. 그들의 억눌린 일상을 취재하며 다른 한편으론 상처받은 그들의 육신의 기운을 회복시켜줄 수 있다면! 아..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나는 앞으로 구당 선생 문하에 들어가 침술과 뜸을 익히게 된다. 기자로서 나의 이 같은 경험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대단히 공적인 체험인 것이다. 나는 앞으로 구당의 뜸집에서 일어나는 일상사와 교육과정 전반, 그때그때의 상념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해나갈 것이다. 이 기록은 구당 선생의 인간면면에 대한 관찰기이기도 하며 동시에 위기에 처한 민중의학에 대한 보고서가 될 것이다.
기자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나 민중의학의 부흥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속 작은 뜸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05년 4월,
자신을 태워 치유를 이루는 쑥 향기를 그리며..
3. 구당선생과의 만남
구당선생과의 만남 4/10
드디어 구당 선생을 만났다. 19살의 열정 92살의 노구, 한국 정통침뜸술의 대가, 평생을 봉사와 인술로 일관한 민중의학의 성인..
그를 만나기 전 미리 보고들은 이야기들이다. 소문은 무시로 나는게 아니었다. 소문 그대로였다. 그는 놀라우리 만큼 건강했으며 정신은 매우 맑았다. 한마디 한마디 말에 힘이 느껴졌고 시선에도 깊은 여유가 배어 나왔다. 한 세기를 버텨온 고목처럼 빈틈없이 단단하고 또 푸른 봄기운을 담은 대나무처럼 투명했다.
사람이 늙어서 아름다울 수 있구나. 문익환 선생이나 리영희, 정경희 선생 등 원로를 만났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향(香)이었다. 은은하고 아찔한 그 무엇이었다. 흔히 '대가'라고 일컬어지는 분들은 공통점이 있다. 말과 삶이 아주 '심플'하다는 것. 일도양단.. 일관하는 원칙은 아름답다. 구당 선생도 그랬다.
"인간은 자연(自然)이고, 의료는 자연의 도술(道術)이다. 그래서 인술(仁術)이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의술은 상술(商術)의 하나로 전락했다. 인술회복 운동이 절실하다."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구당 선생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의료의 목적은 무엇인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자신만의 의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의술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존재하는 것. 굿을 해서라도 고칠 수 있다면 그리 해야한다. 양의는 무시로 째고 한의는 약 팔기에 급급하다. 환자의 말과 몸에 귀기울이고 환자의 자연치유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침뜸을 되돌려줘야한다."
"의사들 중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하소연을 제대로 듣지 않거나 반대로 과잉진료로 환자의 호주머니를 터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환자의 말을 들으라!'는 구당 선생의 말씀이 하루종일 귓가에 맴돈다.
왜 일까? 기실.. 명색이 고발기자라면서 제보자들의 하소연을 건성으로 넘긴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제보자나 민원인들이 본질과 관계 먼 이야기나 신상에 대해 이야기하면 서둘러 말을 끊고, 속사포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단 말이다.
어차피 기사는 사실관계로 구성하는 논리적 건축물인 만큼 감정적인 진술이나 비본질적인 언술은 사실을 이해하는데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인술을 베푸는 의사가 아닌 기계적으로 환자의 몸이 아닌 병 자체에만 집중해온 돌팔이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지..
좋은 기자가 된다는 것은 무얼까? 의사와 기자는 뭐가 다른가? 민중의 사회적 고통과 불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기자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말 어느 하나도 버릴 것은 없는 것이다. 분명 좋은 기자의 출발은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데 있다.
4. 놀라운 오행의 재발견
기(氣)의 고속도로 경맥 4/12
변형식 선생은 동양의학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경맥의 세계를 알려주실 분이다. 그에게서 오늘은 경락의 개관을 들었다. 우리몸에 361(365)개의 경혈이 있고, 그 경혈은 안과 밖으로 통하는 통로라는 사실을 알았다.
결혈이란 무얼까? 변선생은 경혈이 성격상 몸안의 상태를 밖으로 반영하고 또 밖의 자극을 안으로 전달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경혈은 몸 안과 밖이 마주하고 있는 얋은 '유리창' 같은게 아닌가 싶다.
어떤 이는 인체에 3천여개의 치료용 경혈이 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안팎으로 통하는 존재, 주변과 교통하며 하나되는 존재 - 범아(凡我)로서의 인간존재를 다시 한번 느껴본다. 몸으로 봐도 인간은 확실히 열린 존재다. 네게로 흐르는 나!
치료의 목적은 고통의 원인제거다 4/14
정우진 선생을 만났다. 멀쩡한 직장을 다니다 동양의학에 빠졌단다. 극도의 어지럼증 때문에 대학병원을 전전하다 원인불명의 심인성 장애라는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포기한 병을 스스로 고치려 동양의학에 접어들었고 병을 고친 뒤에는 구당 선생의 문하에 남게되었다. 인간은 서양의학적 관점에서 기계적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BODY의 세계도 있지만 정신세계도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의 의학적 체계를 음양오행으로 풀어내는데 능하다. 구당 선생이 주도하는 뜸사랑 교육원에서는 병인병기(병의원인을 파악)와 장상(생리학)을 가르친다.
정선생의 음양오행 강의는 명쾌했다. 동양의학의 요체가 음양론이며 천문학과 철학에서 연유한 사상적 일관성은 인간에게도 '자연스럽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다시금 세상사 우주만물 가운데 한없이 작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보게된다.
정 선생이 구당 선생으로 부터 들었다는 말을 옮겨주었다. "치료는 사람의 통증을 없애주는 것만이 아니다. 치료의 목적은 환자의 통증을 없애줄 뿐 아니라 그 원인을 밝혀내고 원인을 제기해 다시는 환자가 그 원인까지 가지 않고 장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말의 울림이 강했다. 진동이 온몸으로 퍼져나감을 느꼈다. 나는 기자질을 어떻게 해왔던가. 대증적 처방이 아닌 민중 고통의 구조적 요인에 얼마나 집중해왔는지. 고통의 구조적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또 나는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구당 선생에 대한 경외 한편에 깊은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놀라운, 오행의 재발견 4/19
오늘은 오행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았다. 어찌보면 놀라운 자각이었다. 너무도 익숙해서 잊고 지내온 것. 너무도 소중해서 무시해온 것에 대한 복원이랄까. 그런 느낌이었다.
세상의 기본원리가 음양이라면 순환의 질서는 오행이라는 것. 오행의 일행일행이 모두 태양과 지구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고 그 둘 사이에 인간사 모든 일이 흘러가고 있는데, 우리는 참 지독히도 모르고 살았다. 아니 철저히 무시하고 산 것이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안경을 얻었다. 깊이 느끼고 세밀히 볼 일이다.
5. 환자의 고통은 우리의 스승 - 4/21
임맥과 독맥을 배우다. 6장6부를 직간접적으로 지나는 12경맥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흐르는 일종의 저수지. 몸의 상황에 따라 경맥에 퍼주기도 퍼오기도 하는 건강의 보조장치.
경맥과 낙맥, 임맥과 독맥의 복잡한 신체내 흐름도를 그려보다. 머리가 찌끈거릴 정도로 복잡한 경맥의 흐름을 따라가다 누가 언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순간 아찔했다.
경혈은 고속도로와 같이 뻗어있는 경맥 상의 휴게소 처럼 군데군데 존재한다. 해당 경맥의 건강상태를 밖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고, 음양의 조화가 깨지면 몸 밖으로 일종의 통증을 보낸다. 이때 침구를 해당 부위 경혈에 놓으면 몸안으로 기가 전달돼 치유의 효과를 보게되는 것이다.
경맥의 흐름도를 유심히 지켜보다 문득 가슴이 찡해 오는게 느껴졌다. 경맥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경맥은 수천년동안 의사들이 환자들을 돌보며 그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몸 구석구석의 통점을 모아 분석한 결과이리라.
즉, 고혈압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몸의 어디어디의 통증을 대개 호소하더라. 이때 그 부위중 어디어디에 침을 놓으니 어떤 개선효과과 있더라. 이런식으로 무차별하게 확보된 통점에 질병별로 관련성이 높은 통점을 이어놓은 선, 그것이 경맥이고 해당 통점들이 경혈이 아니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수많은 의사들이 밤새 환자들의 고통에 귀기울여온 소중한 소산아닌가. 그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기자질의 이력이 붙으면서 어느덧 건방을 떨때가 있다. 특정 사안의 피해를 호소하는 제보자나 민원인을 만나면 그들의 고충을 충분히 청취하기 보다 말 머리를 자르는 경우가 있다.
"아 그건 알겠구요. 그러니까 결국 이 사람이 돈을 주기로 했는데 안줬다 이말아니예요. 좋습니다. 그럼 혹시 계약서 같은거 받았나요? 없으면 억울하시겠지만 구제받으실 수 없겠습니다." 뭐 이런 상황이다.
훌륭한 의사는 마지막까지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새로운 처방을 내린다. 법의 한계를 넘어서 법이 방치한 사각에서 우리사회 공동체의 따뜻함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게 언론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기자는 마지막 까지 포기해선 안된다. 고통과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에게 사랑의 귀를 기울이는 것을..
소우주인 인체와 침뜸 4/26
<시사매거진 2580>에서 왕종명씨가 대체의학의 현주소(4/24)를 점검하면서 구당 선생의 놀라운 의술에 대해서도 보도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밥그릇 싸움으로 인식한 일부 한의사들의 반박과 민간 전통의학을 사이비로 치부해버리는 양의들의 반대가 이어졌다. 뜸사랑에서는 내게 중재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 싸움이 어디 중재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인가. 궁극에는 세계관과 삶의 태도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 아닌가. 싸움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다만 그간 내재되어 있던 싸움이 겉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뿐이다.
오늘은 해부학 책을 시작했다. 서양의 분석과학적 학문의 대표적 경지인 해부학을 아주 새로운 시각으로 읽었다. 음양과 오행, 기와 경맥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른바 '침구해부학'은 전통의학이 서양의학의 방법론으로도 설명되어질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궁극에는 두 의학이 조화롭게 인간의 몸안에서 통합되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해주었다.
특히 혈 자리에 대한 개념이 점점 의미있게 다가온다. 아시혈의 이야기가 그렇다. 생체의 아픈 곳을 바로 침뜸으로 화답하는 경우다. 혈을 통해 전달되는 체내 신호로서의 통증은 '나'라고 하는 은하계안에서 전달되어지는 외계의 신호 같은 것이다. 60조에서 10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있다는 내 몸의 우주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전달되는 신호들이 결국 나의 경계를 설명해주는 것 아닐까. 내 안의 아픔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굳은 존재들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집사람 침을 맞다 4/28
경맥에 대한 학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주 임맥에 이어 기경팔맥중 대표적인 맥인 독맥에 대해 살펴봤다. 이로써 14정경에 대한 접근이 완성됐다.
사람의 몸을 도는 14개의 고속도로, '기'의 철로이자 혈맥을 살펴보며 다시금 인간이 결코 소홀할 수 없는 존재임을 느꼈다. 몸의 혈 하나하나가 소중한데, 수천개의 혈맥을 지닌 인간이야 얼마나 더 소중한 존재랴.
며칠전 부터 오른쪽 허리통증을 호소하던 집사람을 변 선생님께 보였다. 명문과 요추3번, 양관, 양관의 반촌 오른쪽, 그리고 5번에 이어 오른쪽 다리 아래까지 시침해주셨다. 시침이 이뤄지자 눈이 침침하다던 집사람이 갑자기 눈이 맑아졌다고 했다. 20분 가량 있다가 침을 빼주었다. 집사람은 허리에 힘이 생겼고 통증도 줄었다고 기뻐했다. 집사람과 함께 김치찌게를 맛있게 먹었다.
6. 혼란속의 모색, 기를 아십니까 - 5/3
'道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아본적이 있는가. 도를 알면 자기나 알것이지 무턱대로 길을 가는 사람을 잡아세워놓고 쌩뚝맞게 도를 아냐고 묻는 도인 아닌 도인들이 간혹 눈에 띈다. 도를 아느냐는 질문 처럼 쌩뚝맞은게 아마도 '氣를 아느냐'는 질문일 것이다. '기'의 존재만큼 생활주변 아니, 삶에 밀접하면서도 대화의 장에서 배척당하는 소재도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누구는 원기가 충천하다든지, 어느 장군은 기개가 대단하다든지, 아니면 기가 막힌다든지..' 하는 식의 말을 한다. 누구든 기의 존재에 대해 부인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야기를 전개하자면 대단히 복잡한 양상이 예상되지만 하여간 우리는 '기' 논의를 포함해 전통적인 것에 대한 사고의 금지를 강제당해온 셈이다. 이른바 서구주의적 우월사관에 입각한 교육탓이다.
오늘은 침구해부학적 논의과정에서 원기, 종기, 영기, 위기 등 각종 기의 양상과 몸의 조직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원기란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기운으로 신장에 저장되어 있으며 흔히 精이라 불리는 것이다. 종기는 가슴에 머물고 영기는 음식물 섭취를 통해 영양분으로 공급되며 위기는 체표밖을 돌며 외인을 막는 기운이다. 위기는 체온조절을 위한 땀의 배출과는 달리 심인성이라고 할 수 인는 진땀의 배출을 설명할 수 있는 대단히 강력한 동양적 설명근거라고 할 수 있다.
침과 뜸이 내포하는 기의 의미도 흥미로왔다. 침이 기를 빼주는(사) 반면 뜸은 허증을 보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침이 매라면 뜸은 칭찬이랄까? 사회비리에 따끔한 침을 놓는 것을 주업무로 하는 고발기자로서 한번쯤 귀담아 들어봐야할 대목이었다. 병든 사람의 몸도 침과 뜸을 섞어가며 치료해야 치유되는 것 아닌가. 대침으로 사정없이 찌르기보다는 적절한 칭찬과 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흔히 고발보도에서 특정 사안을 칭찬하면서 반대로 그렇지 못한 대다수를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피고발자들은 물론 일반 시청자들에게 소구효과가 대단히 큰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취재를 하다보면 칭찬할 사안을 찾기가 고발 사안을 찾기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기자들의 분발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저녁에 우연히 중국에서 온 기공사와 식사를 함께 하였다. 음양오행
과 12경맥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운기에 대한 대화를 흥미롭게 나눴다. 동양의학에서 침이나 뜸을 통해 기의 흐름을 다루는데 반해 이분은 자신의 기를 이용해 상대방의 기를 자유롭게 다룬다고 '주장'하였다.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내 몸이 떨리고 몸에서 열이나는 등 이상 현상을 체험하였다. 적잖히 놀랬다. 원래 나의 지감도가 높은 탓도 있겠지만 그의 기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침뜸 취재기를 시작하고 적잖이 혼란스러운게 사실이다. 기자로서 전통 동양의학을 직접 배워보고 민중의학적 가능성을 짚어봄으로써 시대와 공유해보자는 거창한 의욕을 가지고 취재여정을 시작한지 이제 한달째. 서구적 이성중심주의 과학관에 입각한 나의 자아가 끊임없이 내 행보를 감시하고 제약한다.
나는 옳은 것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벌써 부터 회의가 틈입한다. 하지만 설명되지 못하는 모든게 비과학인 것 만은 아닐터. 길이 펼쳐져 있음으로 오늘도 한발한발 앞으로 걸어갈 뿐이다.
7. 간뇌의 발견, 민중의학의 가능성 5-10
오늘은 몸을 이루는 각 조직(상피조직, 근육조직, 결합조직, 신경조직..)들의 구조와 침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통상 노동자, 농민 등 반복적 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은 근골격계 질병을 많이 호소한다. 서민들의 질병이라고 하는 이 근골격계 질병에 침뜸은 큰 효과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침뜸이 민중의학으로서 더 큰 호소력을 갖게 되나 보다.
근골격계 질병에 침뜸이 큰 효염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면 근골격계 질병의 주된 원인이 되는 것은 뼈나 근육의 문제도 있지만, 상당부분이 인대(ligament)나 건(tendon)과 같은 '치밀조직'의 문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치밀결합조직이야말로 침뜸이 아주 좋은 효과를 보이는 부분이라고 한다.
또 재미있는 것은 몸의 주요 혈자리가 인대나 건의 위치와 상당부분 겹친다는 점이다. 민초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였던 민중의학 - 침뜸. 그 침뜸이 결과적으로 오늘날 근골격계 질병에 치유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민중의학으로서 침뜸이 가진 역사성의 발현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침뜸해부학 강의를 맡고 있는 조순희 선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다.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빈틈없는 몸가짐도 그러하거니와 시종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씨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을 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매사에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사고로 세상을 품어내는 마음 씀씀이를 보자면 침뜸의학이 가진 '공존과 상생'의 철학의 힘을 짐작하게 된다. 그런 조순희 선생이 오늘은 수업중에 자못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무엇때문이었을까?
바로 우리몸의 일부인 간뇌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음양오행에 입각한 침뜸의학에 깊이 매료되신 조 선생은 '우리네 일상과 몸의 관계'를 서구 해부학과 생활논리를 통해 하나하나 해체해낸다. 그리곤 다시 침뜸의학의 논리로 재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침뜸의학은 하루하루 체험하고 발견하는 긴 여행과도 같은 것이리라.
우리의 몸이 자연으로 부터 왔고, 자연의 이치대로 순행하다 다시 자연으로 가는 이 자연스러운 이치 앞에서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멀리 떨어져 살아온 것이리라.
비자연의 태클을 넘고 비인간의 방법론과 싸워 지켜낸 그녀의 의지. 무면허 의술을 한다고 봉사현장으로 부터 쫓겨나고 비과학적인 의술을 펼친다고 조롱받아왔을 그녀의 헌신적 삶이 아름답다. 그런 그녀가 지금 내 눈 앞에서 자못 흥분하고 있다. 바로 간뇌 때문이란다.
동양사상은 보이지 않는 본질을 눈 앞에 반짝이는 현상 보다 중히 여겼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본질을 양으로 현상을 음으로 분류해냈던 것이다. 서구의 이성중심주의(logocentrism)가 강조한 인식과 파단의 중추로서 대뇌는 지난 2천년 서양의 역사를 지배해왔다. 그 서양의 역사는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표면으로서 대뇌를 당연히 주된 부분인 '양(陽)'의 영역으로 분류해왔다. 사물의 드러난 겉부분을 '음(陰)'으로 규정하는 동양적 관점은 비과학적이고 후진적인 인식체계로 치부되왔다.
하지만 최근들어 뇌의 중심부에 있는 간뇌의 역할이 주목을 받고 있지 않는가. 시상과 시상하부, 뇌하수체가 수행하는 희노애락, 인간의 감정조절 기능이 뇌의 주요한 기능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 아닌가. 암기와 지식기반의 전체주의적 인간에서 감정 주체로서의 개체적 인간으로의 전환이 주는 의미는 비단 인문학적 중요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의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서양의학에 주눅들어온 동양의학의 역할 제고로 이어진다.
환자를 기능적으로 접근해온 서양의학에 비해 감정상태를 통해 문진을 해온 동양의학이 풀어낼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난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조 선생은 풋내기 학생들 앞에서 흥분에 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양의학 학도에서 동양의학, 그중에서도 침뜸학자로서의 길을 걸어온 그녀로서는 학생들 앞에서 간뇌를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테니까..
간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침뜸강좌를 들으며 품어왔던 일말의 회의가 씻은 듯 물러간 느낌이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의술로서의 침뜸의학에 나는 서서히 매료되어 가고 있다.
8. 침뜸은 물신성 극복의 보루 - 5/12
세상은 본질적으로 자본친화적인가? 돈의 목소리가 세상을 삼켜버려 사람들 사이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바람부는 2005년 5월 서울의 모습이다. 거리를 걸으면 상점들 마다 외쳐대는 확성기 소음에 아찔하고, 신문을 펴든 텔레비전을 켜든 바야흐로 물신을 예찬하는 '호객' 오라토리오에 귀가 멍멍하다.
도구나 물품은 제 효용 대신 돈의 이름으로 불리우고, 사람 역시 교환의 조건으로 평가된다. 도처에 불을 밝히고 있는 인간시장.. 돈으로 코팅된 지구가 숨을 쉬지 못해 겉으로부터 메말라 간다. 자본은 세상에 친화적인가? 그렇지 않다! 자본은 자연과 인간에 친화적인가? 아무리 봐도 그렇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라는 것이다.
침뜸취재 여정 이제 두달째다. 오늘은 오행론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동양의학이란 분석과학적 체계를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에 대한 철학을 느껴나가는 것임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태양과 지구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자연의 조건. 그 조건에 순응하며 자연의 일부로서 부여받은 인간의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 동양의학의 기본아닐까? 낮과 밤, 사계절 음양오행의 조건은 세계와 나를 하나로 관통하는 원리이다.
따라서, 사회에 있어서 그 자연의 조화를 유지하고, 조화의 실조(깨어짐)를 바로잡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면, 인간에 있어 조화를 관리하는 것이 바로 의술일터.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으로 인간을 더 가깝게, 하지만 서양의학 보다는 좀 더 멀리 바라보자는 관심. 바로 그 관심이 동양의학적 동기부여일 것이다.
자연과의 조응속에 인간을 바라보는 동양의학, 특히 침뜸의 관점에서 바라볼때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는 그야말로 가장 자연적인 것이 좋을 것이다. 환자와 의사사이의 관계는 최대한 인간적인 것이 좋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학이 구현한 물질적 조건과 장비를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물질이 수반하는 자본관계를 최대한 경계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가 들린다. 병원도 회사법인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젠 병원도 기업이라는 얘긴데.. 그렇게되면 병원이 환자의 치료권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으로서의 영리추구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것 아닌가? 우선 이렇게 되면, 의료계에 심화된 자본화 경향이 이제 전면적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서민들이 처하게될 의료여건은 더욱 열악해 질 것이다. 생존권으로서 의료권이 천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돈으로 구매되어야할 것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물론 공공의료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수조원의 돈이 투입된다고 하지만 믿기 어렵다. 자본화를 추동하는 기득권은 절대 자신들의 주머니를 열지 않는 법이니까.
대신 한동안 언론플레이가 불꽃놀이 처럼 요란스럽게 계속 될 것이다. 선진화된 최첨단 의료설비와 서비스에 대한 대대적인 소개가 이어질 것이다. 그러는 사이, 정작 그와같은 서비스로 부터 배제된 서민들은 마치 그것이 자신들의 것인 양 착각 속에 살다가 남모르게 죽어갈 것이다. 성전 앞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난민들 처럼.. 그것이 자본화의 현실이고 신자유주의의 말로아닌가.
자본화는 인간성에 반하고, 신자유주의는 자연의 조화에 역행한다. 세상의 질서를 근본으로 부터 다시 사유하는 동양의학과 동양의학이 이땅의 민중에게 허락한 침뜸술로부터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너무도 사소한 침이 거구를 무너뜨리듯.. 그래서 우리네 정문일침의 정진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병인병기, 무엇이 우리를 병들게 하는가.. 5/17
기(氣)를 인식하고 오랫동안 담론을 진행해왔지만 정작 '기'의 존재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존재는 인정하되 아주 무시하지 않는 수준에 그쳤던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기의 실체와 조우하겠지만 기의 존재가 신비롭고 또 새롭게 다가온다.
본격적인 시작, 경맥 속으로.. 5/19
수태음폐경과 수양명대장경을 집중적으로 살핌. 이제부터 시작이다.이론에서 생체로, 사람으로..
서양의학과 침뜸술의 만남 5/24
서양 해부학적 구조틀 속에서 경맥과 경혈을 찾아보고 해부학적 관점에서 경혈의 의미를 생각해보다. 건과 인대 등 관절부와 근골격계 질병에서 침뜸의 위력이 도드라지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뇌에서 허리로 내려오는 뇌수와 전신으로 퍼지는 신경망이 절묘하게 주요 혈자리와 일치하는 것을 보고 침뜸이 효과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과학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서구적 방법으로 확인되기 이전 부터 동양의학적 진실은 구름저편에서 빛나고 있나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어디가 아프니? 5/26
진단의 첫 걸음을 떼다. 음양오행의 관점에서 환자의 상태를 살핌. 새로운 관점으로 인간을 보도록 하는 방법론이 매우 흥미롭다. 사람의 얼굴형태와 색깔, 몸의 열 등.. 어느하나 놓칠 것이 없다. 관심을 집중할 수록 사람은 더 많은 메시지를 내놓는다.
9. 구당선생 미국가다 !
5/31
구당 선생님께서 미국에 도착하셨다. 미국 오레건 주에 있는 장모 선생의 집에 약 두달간의 일정으로 머무르시며 현지의 미국인 환자들을 보실 계획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건강이 썩좋지 않으시다고 한다. 나의 국민학교 동창인 장 선생은 열심히 선생님의 지시대로 침과 뜸을 놔드리고 있다고 한다. 쾌차하셔야할텐데.. 말이 나이가 92세이지. 정말 바람만 불어도 혹시 촛불이 흔들릴까 두려운 연세아니신가. 민중의학 침뜸이 아픈 사람들에게 보다 널리 이용될 수 있는 세상을 보셔야 할 터인데.. 걱정이다.
6/2
오늘은 사상체질에 대해 생각해봤다. 오행의 틀로 생활주변을 다시 훑어보는 경험도 했다. 자꾸드는 생각은 원래 우리가 살던 방식으로 부터 너무도 멀리 떠밀려 왔다는 것이다. 우리 것이 아닌 규범과 철학, 가치, 관습 그리고 생각들.. 몸이 소외되고 관계가 아파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까.
침구술..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사고방식에서 행동양식은 물론 사람에 대한 생각까지 바뀌어야 제대로 병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사람을 보고서야 비로소 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따지고보면 기자 역시 사회병폐를 보기 전에 사회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하는 것 아닌가. 사회와 사람을 보며 기사를 쓰다보니 그들을 괴롭히는 구조를 치유하는 고발기자가 되었고, 또 고발기자가 침구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0. 오늘은 경락마사지 내일은 침 - 6/6
교회 모임에 나갔다. 칠순이 넘으신 할머님들과 수다를 떨었다. 요즘 배우고 있는 침뜸을 응용해 경락마사지를 해드렸다. 너무들 좋아하신다. 경락을 짚어가면서 혈자리를 확인해본다. 맥도 짚어보고 그런 가운데 친근함을 느낀다.
혈자리는 사람의 몸으로 소통하는 창문과도 같다. 혈자리를 짚어 나가는 내 손끝은 할머니의 세계를 열심히 노크한다. 경혈은 초인종이다. 짧은 시간에 할머님들과 많은 소통을 나눌 수 있었다. 나중엔 침도 놔드리마 했다. 열심히 배워야겠다.
11. 돈으로 안되는 세상이 있다
지난 4월 7일 첫 강좌를 시작으로 3개월 짜리 침뜸 기초반 과정이 끝나간다. 다음주면 몇가지 요혈에 대한 강의를 끝으로 시험을 거쳐 수료식이 있을 예정이다. 열병처럼 한계절을 지내고 이제 곧 여름이다. 창가에 장맛비가 닿기 시작했다. 조금전 뉴스는 이 일대 호우주의보를 전했다.
지난 3개월의 시간동안 침뜸의 비를 맞으며 내가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이제 나는 또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빗소리가 요란한 6월의 마지막 길목에서 작은 혼란과 벗하다 내안의 작은 설레임과 만나게 되었다.
4월 한 달 동안 침뜸의 역사와 동서의학비교, 음양 오행 등 이론적 과정을 거쳐 5월에는 해부학적 관점에서 풀어본 침구학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았다. 5월 중반부터 지금까지는 제 경맥과 경혈에 대한 실증적 점검을 시도했다. 한마디로 지난 3개월은 침뜸과 만나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고조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탐색기.. 정작 침봉 한번 잡아보지 못한 긴 모색의 나날들이었다. 장마를 기다리는 질척거리는 무더위 처럼..
특히 이달내내 전개된 각 경맥의 특성과 경맥에 딸린 경혈의 위치확인 작업은 그야말로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몸이면 그저 손과 팔, 몸통과 사지 정도로만 구분하고 살던 내게 밀리미터 단위로 전신에서 경혈을 찾아내는 작업이란 그야말로 아주 낯선 일이었다. 경혈들을 찾아낼 때마다 마치 이집트의 피라밋을 발견하듯 작은 희열도 느꼈지만 그 과정은 좁다란 미로를 헤매듯 답답한 시간들이기도 했다.
온몸에 퍼져있는 361개의 경혈 위치를 정확히 잡을 수 있는 능력은 그야말로 침구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경혈이야말로 환자의 병증을 진단하는 포인트며 그에 따라 치료가 이뤄지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환자와 침구사가 만나는 사랑방이며, 환자의 통증과 치료자의 정성이 만나는 가장 인간적 영역인 경혈.. 이곳에 침뜸술의 묘미와 비방이 있는 것이다.
길위에서 헤매기 3개월. 어지럽게 걸어온 황톳길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로소 뿌연 흙먼지가 조금씩 잦아든다. 아직.. 이 길이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이 길이 자본만능의 미친 세상이 구동하는 비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적 모색이 만들어낸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 길 위에서 새롭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서로 출발한 곳은 다르지만 그들은 동시대인으로서 시대의 중병을 함께 인식하고 있었다. 암울한 가운데 희망을 키우게된 것도 바로 이 길이 준 위안이었다.
생태에 대한 사유와 증여가치의 회복.. 이런 저런 대안들 사이에서 가장 빛나는 발견은 뭐니뭐니 해도 구당 김남수 선생이었다. 사람이 희망이되는 이유를 절감하게된 계기였다. 그의 삶 자체가 내겐 놀라운 희망이었고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변함없는 의지와 일관된 삶은 날카로운 침봉처럼 아름답다. 이것이 바로 '힘이되는 아름다움'이다. 그는 역대 대통령들이 찾을 만큼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침구사이면서도 결코 부자를 위해 침을 들지 않았다. 귀천을 떠나 아픈 사람이면 무조건 선착순으로 진료를 해주었다. 부를 향유하기 보다는 가난을 누렸으며, 70년 임상 경험을 비법으로 숨기고 홀로 챙기기 보다, 이를 쉽게 풀어서 원하는 모두에게 공개했다. 대신 가난하고 수고하는 민중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삶을 마주하며 나는 작은 충격에 휩싸였다. 애틀란타 스톤마운틴의 바위 절벽엔 축구장 크기의 부조가 있다. 조각된 위인들의 코나 눈의 크기만도 수 미터에 이른다. 그 조각 앞에서 나는 그토록 큰 바위를 내어준 자연에 경탄했고, 몇년이고 절벽에 매달려 정을 놓지 않았던 석수장이의 예술혼을 경배했다. 스톤마운틴에서 느꼈던 장엄함을 나는 지금 구당의 인생앞에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돈이면 뭐든지 되는 세상. 대학도 예술도, 심지어 인간의 마지막 영역인 의술까지도 돈으로 팔고 사는 세상이 왔다. 돈으로 안되는게 또 무엇이 있냐며, 골목마다 다이아 반지를 치켜들고 위세를 떠는 김중배로 넘쳐난다. 어쩌면 당신의 연인은 당신의 '인간적' 구애를 뿌리치고 김중배의 다이아에 팔려 내일이면 그대곁을 떠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자본만사 - 삼성공화국의 위세가 언론은 물론 사람들의 입과 귀 마저 완벽하게 틀어막은 세상에 올해 92살의 구당 선생은 그가 살아온 한세기의 무게로 오롯히 우리에게 웅변한다.
여기 돈으로 안되는게 있다고, 사람 만이 희망인 동네가 여기에 있다고, 인간이 주인인 세상이 여기 있다고 말이다.
장맛비가 내린다. 비를 버티고난 길은 더욱 명료하게 우리가 나아갈 곳을 가리켜줄 것이다.
12. 생명 그리고 진정한 용기
용기있는 사람이다. 울산지법 부장판사인 황종국 판사.. 그는 정말 용기있는 사람이다.
직업이 판사이다 보니 그는 주어진 법에 따라 '사이비 의사'를 가려 벌을 내려야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법의 명령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법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양심을 내던지지도 않았다. 법이 사이비로 규정하고 있지만 탁월한 치료효과를 보이는 민중의학의 효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료법의 문제점을 인식한 그는, 고래의 민중의학을 집대성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년 만에 방대한 자료를 몇권 책에 정리해냈다. 의사와 한의사 만이 의료를 독점할 수 있는 현행 의료법에 대해 위헌심판을 내기도 했다. 영국 처럼 생명존엄이 최우선으로 간주되기를 바랐다. 그가 누구든 환자가 원하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법을 바꾸자며 전국을 돌며 주장했다.
자기 하나 등따숩고 배부르게 살면 그만일 현직 부장판사가 남들의 불편한 이목을 받아가면서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 밖에 없었던건 왜 일까? 그는 먼저 깨달은 자의 숙명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값싸고 손쉬운 민중의학적 치료법을 알지 못해서 높은 병원 문턱 앞에서 죽어만가는데 과연 이땅의 지식인이 할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국민의 생명추구권 보다 소중한 것은 절대 없다!' 는게 황 판사의 지론이었다.
옳은 생각은 갖기도 힘들지만, 그것이 소수의 것이라면 생각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더구나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내놓기도 쉽지 않다. 만일 자신이 공적 위치에서 일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는게 우리사회다.
나는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황종국 판사의 인터뷰를 듣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한참 동안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창밖에는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비 때문은 아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도 차에서 내릴 수 없었던 것은..
진정한 용기는 과연 무엇을 필요로 할까? '무식해야 용기있다'는 말은 그야말로 정말 무식한 자의 이야기다. 자신의 주장을 벼릴 수 있는 지속적인 지식의 축적과 또한 옳음을 관철해내겠다는 굳은 신념의 재확인. 이 두 가지가 유기적으로 자극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이상 진정한 용기를 갖기는 요원할 것이다.
황 판사의 용기에 감화받은 나 비록 만신창이의 몸이지만, 이쯤에서 몇 마디 금지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의료원이 십여년 치료 끝에 포기한 삼성그룹 최고위층의 무릎병이 침 몇방에 치유된 사실을 아느냐고.. 역대 대통령들이 겉으론 의료법을 지켰다지만 밤마다 민중의학적 치료를 받기 위해 몰래 뒷문 빗장을 열었던 사실을 아느냐고.. 국회의원 자신들은 국회에서 민중의학 치료의 혜택을 입고 있으면서도 일반 국민들이 같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법을 만드는데는 왜 그리 인색한줄 아느냐고.. 국민건강과 생명을 의제화의 최우선 대상으로 삼아야할 언론들이 이토록 중차대한 민중의학 분야에 대해 왜 이토록 철저히 침묵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는 있냐고..
말이다.
13. 현직판사가 민간의료 합법화 나서
(주: 아래 기사는 12월 16일 연합뉴스가 전한 행사 관련 기사입니다. 현직 판사가 민중의술 서비스 합법화를 위한 시민단체 건설을 주도했다는 내용이지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도 소수의 서비스 공급자들이 법적 강제를 동원해 서비스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거의 모든 서비스 영역을 소비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21세기에 유독 의료시장 만은 철저히 아직도 공급자에 의해 공급자의 논리로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 저 만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의료서비스를 소구하는 소비자로서의 권리, 다시말해 시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의 추구는 공급자가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민간의료 합법화를 위한 시민단체의 결성은 의료시장에서의 시민적 목소리를 표출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시도라고 평가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기대합니다.)
(연합) 침술과 수기요법ㆍ우주초염력ㆍ생활요법 등 민간의료행위를 널리 보급하고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현직 판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민중의술 살리기 서울ㆍ경기연합은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 신학대학교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국민 대중에게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민중의술을 살리고 자유롭게 시술 및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되찾자"고 결의했다.
앞서 9월 10일에는 부산ㆍ울산ㆍ경남연합이 창립대회를 열어 현재 2천명의 회원을 모집했고 이달 18일 대구ㆍ경북연합도 창립대회를 개최한다.
이들은 "의사ㆍ한의사는 20∼30%의 질병밖에 고치지 못한다는데 나머지 환자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며 "민중의술을 무면허의료행위로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값싸고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강연에 나선 황종국(53)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이 진정한 의사인데 대한민국 의료법은 의사나 한의사가 아닌 사람에게 가서는 치료받지 못하게 한다"며 "국가가 법률로 치료수단의 선택권을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지법에서 의료분쟁을 전담하는 동안 지난해 `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라는 책 세 권을 저술했으며 오진으로 유방절제술을 한 의사에 대해 2억3천만원이라는 거액의 배상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단체는 앞으로 ▲민중의술의 시술자 개발 및 보급▲강연회ㆍ학술대회 개최▲무료 시술 활동▲의료관련법 개정 등의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noanoa@yna.co.kr (끝)
14. 일간스포츠 김천구 기자의 '뜸'사랑
(주: 민주언론을 위한 40여년의 전통과 기자회원 7천명을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최고 언론인 단체인 한국기자협회. 일명 '기협'의 기관지인 기자협회보에 다음의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침뜸을 배워 봉사하고 있는 현직 기자의 이야기입니다. 김기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처지이지만, 저 역시 혼자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든든한 느낌이 들더군요. 어려움 속에서도 전통의술의 유지발전과 이웃 봉사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김천구 기자에게 진심어린 격려를 보냅니다.)
“뜸과 침으로 사랑 전달합니다”
일간스포츠 김천구 기자 매주 소외된 이웃에 봉사
[기자협회보, 이대혁 기자 / daebal94@journalist.or.kr ]
“부처에게 하듯이 합장하며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인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도 행복함을 느낍니다.”
일간스포츠 김천구 기자(편집부)는 매주 토요일이면 종로구 창신동 금호팔레스빌딩 18층에 위치한 ‘뜸사랑’ 상설 봉사실을 찾는다. 벌써 2년째다. 이곳에서 그의 공식직함은 ‘기자’가 아닌 ‘무극보양뜸 강사’. 그는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곳에서 불우노인과 생활보호대상자, 장애인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뜸과 침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가 침과 뜸이라는 다소 낯선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 12월. 일간스포츠의 노조위원장을 마치고 몸이 만신창이가 된 후였다. 우연히 TV프로그램에서 지금의 스승인 김남수 회장을 보고 몸을 추스르기로 다짐했다. 상담차 방문한 ‘뜸사랑’ 사무실에서 그는 많이 놀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처음 방문했을 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 한결같이 얼굴이 밝고 피부색도 좋았다”고 말했다.
그 후 김 기자는 1년 6개월 동안 매주 2일, 하루 4시간씩을 투자해 뜸과 침에 심취했고 이제는 예찬론자를 넘어 이제는 어엿한 강사가 됐다. 매주 해온 무료봉사는 이미 6개월이 넘었다. 이 과정에서 그의 회사인 일간스포츠는 정리해고가 겹쳤고 그를 포함한 동료들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당시에도 김 기자의 침술은 동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특히 올해 전면파업을 했던 일간스포츠의 사무실에서는 그가 뜸을 뜨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김 기자는 “침을 놓거나 뜸을 뜰 때 피로나 고민, 분노는 사라진다”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동료들에게 뜸을 뜰 때 동료애도 더욱 깊어졌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최근 잇단 기자 사망과 관련해서 김 기자는 아쉬워하며 기자협회 차원에서 스트레스가 많은 기자들을 위해 조그만 사무실을 만들라고 권유한다. 매주 자신이 직접 동료 기자들에게 뜸과 침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주겠다고 장담까지 했다.
현재 그의 희망은 회사가 안정되고 업무량이 줄어들면 두 달 정도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 잠비아는 에이즈 환자가 인구의 60%에 달해 의학의 최첨단이 모여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이미 김 기자가 소속된 ‘뜸사랑’에서도 여러 명을 파견했었다.
김 기자는 “침과 뜸을 접하면서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며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뜸사랑 봉사단’의 기치인 ‘배워서 남주자’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력 : 2005-12-21 10:13:59] / [수정 : 2005-12-21 17:17:31]
15. 강원도민일보 이주섭 기자의 '침'사랑
(주: 언론전문지 미디어오늘에 실린 기사다. 수지침을 배워서 취재현장에서 빛을 발하고 있을 뿐아니라 동료들의 건강증진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이주섭기자가 주인공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허임'을 '허준'으로 오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 '약의' 였던 허준은 침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조 최고의 '침의'는 선조 당시 명성을 날려 고위 관직까지 제수받았던 허임이다. 허임과 침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주섭 기자의 건투를 빕니다.)
수지침은 사랑을 싣고...
[만화로 만난 언론계 사람들] 다섯번째 강원도민일보의 '허준' 편집부 이주섭 기자
이용호 미디어 오늘, 연재작가 toon@mediatoday.co.kr
강원도민일보의 '허준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모든 병의 원인은 오장육부에 있고 그 위에 마음이 있다'는
이주섭기자.
철원주재기자를 거쳐 현재 편집부에 근무하고 있다. 아마도 내근 편집기자를 하게 된 이유가 사내에서 침술을 펼치라는 상부의 의도가 아닐까 한다. 그정도로 그의 사내외명성은 대단했다.
회사에서 그에게 침 한번 안 맞아본 동료직원이 없을 정도다. 물론 누구나 무료다. 특히,그는 기자에게 수지침은 '무기'라고 한다. 취재원을 처음 만날때의 어색함도 침 앞에서는 바로 수그러진단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게 침이지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 또한 침이다" 라고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부모님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침술원에 갔을때다. 중국인의 신기에 가까운 침술을 접했던게 '허준'탄생 배경이다. 그리고, 경기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전통침구학 과정을 정식 수료했다.
철원주재기자시절, 일주일에 두번씩 서울과 철원을 오가는 힘겨운 등하교길을 감수할만큼 침술에 대한 열정은 강렬했다.
현재,그는 침술계의 스타로 통한다.
철원여성회관에서 매주 강의를 하며, 군부대에서 민방위대원들에게 침술강좌도 열고있다. 내년부터는 철원군 노인건강관리프로그램중 수지침 강좌를 열게 될 예정이다.
마음만 먹으면 1년 365일 매일 침 놔주러 다닐수 있을정도로 그를 섭외하려는 여러 단체들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하니 그의 사람됨과 침술을 정평이 나 있다.
그러다보니 회사업무시간보다 동료들 침 놔주는 시간이 더 많을때도 있단다. 동료들도 그의 수지침을 신뢰하기에 기꺼이 '고통'을 인내하며, 그의 '침술사랑'을 듬뿍 받아간다.
중풍으로 한쪽 다리를 못 드는 회사 동료의 다리를 들게 했으며,어깨위로 손을 못 들던 동료의 손을 들게 했다. 그리고 길가에 쓰러진 아주머니를 침으로 응급처치하여 일으켜 세울 정도로 그의 침술수준은 정통하다.
아빠의 침을 무서워했던 4남매들도 지금은 먼저와서 침을 놔달란다. 그의 매력은 침 만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일단 사내에서 알아주는 주당에,독서광이다. 전공이 철학인지라 특히 동양철학에 조예가 깊어 사내에서는 전문가로 통하며 편집국내 논술스터디 회장으로서 동료기자를 상대로 강의도 한다. 그리고,시인 동호회 '철원문학회' 회장이며, 태극권에 심취되어 있는 무예가 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무료침술활동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다고 한다. 박정희정권때 사장된 '공인 침구사 자격증제도'를 부활시키기 위해 정책적인 활동도 할 것이며, 언론사'제1호 대체의학전문기자'가 되고 싶단다.
사랑이 가득 담긴 그의 수지침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중 옆에서 멋진 카메오역할을 해준 유호일기자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6. 당신의 비위는 좋습니까 ?
(주: 매일 한의원 정재연 원장이 <데일리서프라이즈>에 기고중인 '생활언어 속의 한의학' 칼럼중 일부입니다. 정 원장은 생활주변의 한의학을 읽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지요. 일반인들이 이미 역사적 코드로 물려받은 한의학의 DNA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동양적 인술의 힘을 깨닫게 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재미있을 겁니다.)
우리말에는 한의학적인 논리가 보이는 여러 표현이 있습니다. 이런 말들을 잘 이해하면 한의학의 생리학적인 내용이나 병리학적인 내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쓰임의 예를, 간, 심, 비, 폐, 신, 오장(五臟) 순서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이 오장의 순서는, 목, 화, 토, 금, 수, 오행(五行)의 상생(相生) 순서에 따른 것입니다. 이런 말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우리 몸 안의 장기에 대한 의미가 현재의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간이 부었다”, 혹은 “담이 크다, 담대하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용기가 있다, 혹은 겁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반대로 소심하다든지, 겁이 많다든지 하면, 간이 작다든지 혹은 담력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간과 담은 오행상 목(木)에 속하는, 한의학적인 표현으로 부부(夫婦) 장기입니다.
그리고, 한의학에서 간은 장군(將軍)의 장기(臟器)로 불립니다. 그리고, 간에서 ‘모려(謀慮)가 나온다’ 라고 합니다. 간은 외부의 질병 기운과 맞서서 우리 몸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그래서 모려 즉 지략이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담 즉 쓸개에서는 ‘결단력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 두 장기는 장군과 같은 기개로 결단을 이끌어내는 장기라는 말이 됩니다.
즉, 간이나 담이 작다는 말은 그런 용기가 적다는 말이 되고, 반대로 간이나 담이 크다는 말은 용기가 크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 주장 한 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용기가 없는 것을 일러 “쓸개 빠졌다”라고도 합니다.
실제 치료에 있어서도 겁이 많다든지 혹은 잘 놀란다든지 하면 담(쓸개)을 튼튼히 해주는 치료와 처방을 하게 됩니다. 대개 처방 이름에도 씩씩할 장자에 쓸개 담자를 써서 ‘장담(壯膽)’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한편, ‘담력이 작다’는 말을 ‘소심하다’고 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담(膽)과 심(心)은 서로 관련이 됩니다. 그래서, 이 두 장기 이름을 합해서 ‘장담보심(壯膽補心, 담을 씩씩하게 하고 심을 보강한다)’이 겁 많고 잘 놀라는 이들을 위한 치료방법이 됩니다.
또한, 간은 소설작용(疎泄作用), 즉, 몸의 기운을 잘 소통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치면 간의 기운이 윗 방향으로 과하게 치솟아서 마치 화가 치솟는 모양이 되게 됩니다. 이러면 간기(肝氣) 혹은 간화(肝火)가 위로 오른다고 하여 “간이 부었다”는 말과 유사한 표현이 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쉽게 노하고 얼굴이 쉽게 붉어지는 등의 증상이 있게 되며, 두통이나 어지러움, 또는 구역질이나 식체 같은 증상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구역질이나 식체 등은, 간의 기운이 윗 방향은 물론이고 좌우 옆 방향으로 과하게 작용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간의 기운을 평탄하게 하는 평간(平肝)시키는 치료법이나 혹은 간의 기운을 풀어 헤치는 소간(疎肝)시키는 방법을 이용하게 됩니다.
쓸개인 담 역시, 간과 함께 작용하므로, ‘간(혹은 간땡이)이 부었다’고 하는 말이나 ‘쓸개가 부었다’고 하는 말이나,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는 듯 합니다.
이번에는 심장 차례입니다.
심장이라는 게 사실 한의학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바로 그 ‘마음’ 혹은 ‘정신’과 매우 흡사한 개념입니다. 한의사들에게서, 심장이 약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심전도 체크해보러 간다면 그것은 개념의 혼란 때문일 겁니다. 우리의 ‘심장’은, 지금의 서양의학적 기준으로 본다면, ‘염통’과 ‘뇌’를 섞어놓은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음과 관련해서는 “심보(소리나는 대로 하면 ‘심뽀’)”니 “심통”이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예전 사람들은 마음이나 정신이 모두 가슴, 심장에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심장신(心藏神), 즉, ‘심장이 정신을 저장한다’ 라는 한의학 기본 생리 원칙이 있고, 그래서 잘 놀라거나 가슴이 자주 두근거린다거나 하면 심장이 약하다는 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심장이란 한의학적인 심장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심장과는 다른 심포(心包)라고 하는 한의학의 장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체 장기를 일컬어서 오장육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육장육부가 맞습니다. 한의사들이 침치료를 시행하는 지표선으로 여기는 경락도 그래서, 장부(臟腑)를 기준으로 하면 모두 12경락이 있습니다. 육장육부 각각 경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포란 심장을 싸고 있다는 말인데, 아마도 여기서 ‘심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심포도 일단은 심장과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하는 것으로 봐도 될 듯 합니다.
마음 씀씀이가 좋으면 그런 말을 듣지 않겠지만, 마음 씀씀이가 나쁘고 심술이 많은 경우, ‘심보가 나쁘다’느니 ‘심통 사납다’느니 하는 말이 여기서 나온 듯 합니다.
또, “비위가 좋다” 혹은 “비위가 안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위는 지금의 용어라면 비장과 위(胃)를 말하는데, 비위는 소화기관의 대표적인 장기입니다. 오장의 비장과 육부의 위 역시 부부장기입니다.
한의학의 비장은 소화기능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지금의 췌장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겁니다. 즉, 위가 튼튼해야 음식을 잘 받아들이고 또 그 아래 장으로 잘 소통시켜줄 수가 있으며, 비장이 튼튼해야 그 음식물에서 받아들인 영양분을 전신에 골고루 잘 퍼뜨려서 우리 몸에 기운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위가 좋은 사람은 아무 음식이나 잘 먹고 흡수를 잘 합니다. 여기에서 그 의미를 따와서 기분이나 어떤 사물에 대해 잘 견디는 것을 ‘비위가 좋다’고 하는 말이 된 듯 합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 비위에 안 맞느니, 비위에 거슬린다느니 하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인 듯 합니다.
한편, “배짱이 좋다” 혹은 “뱃심이 넉넉하다” 하는 말도 여기에서 나온 듯 합니다.
이번엔 폐 차례입니다.
“부아가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혹은 옛말로 ‘부화’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분이 나는 모양을 말합니다.
부아는 폐를 뜻하는 말입니다. 아마도 분한 마음이 있어서 숨을 고르게 내쉬지 못하고 가슴을 들싹거리는 모양을 보고 그런 말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상의학에서는 폐기능이 잘 발달된 태양인이 부아를 내기가 쉽다고 합니다.
폐는 신체 내부의 비교적 위쪽에 위치해 있지만 그 주요 기능은 몸의 기운을 그 아래쪽으로 내려주는 것입니다. 한의학 용어로, 숙강지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능에 문제가 생겨서 자꾸 위쪽으로, 상부로 기운이 거꾸로 솟으면 기침이 난다든지 천식이 생긴다든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아가 치밀면 자꾸 기운이 상부로 치솟게 되는 것이므로 건강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 폐가 기운을 아래로 내려주는 것의 또 다른 예는, 우리 몸의 수분대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폐의 기능이 온전하면 비장의 소화 기능과 함께 방광에서 수분이 잘 배출되도록 하는데, 이게 잘 안되면 소변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든지 부종이 생긴다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한의학에서는 이런 증상이 있는 경우에 폐를 치료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초가 부실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오장육부(五臟六腑)라는 것이 있는데, 이 육부 가운데 삼초(三焦)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도 오장육부라는 말은 자주 쓰지만, 그 종류를 다 아시는 분은 거의 없으실 겁니다. 그 삼초는 다시 상, 중, 하초로 나누는데, 하초(下焦)는 간장과 신장을 포함하는 부분입니다.
신장은 한의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장기인데, 우리 몸의 기본적인 생명유지 물질이 한의학적인 신장에 저장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즈음의 지식으로 말하자면, 비뇨기계와 생식기계가 이 하초에 포함되는데, 따라서 정력이 떨어지거나 혹은 허리나 무릎에 힘이 없거나 하면 ‘하초가 부실하다’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양의학적으로 보는 장기(臟器)의 뜻과는 다른 말들을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한의학의 기초가 되는 철학적 가치관이 우리의 삶 속에 넓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이 존재하는 한, 한의학은 우리 민족의 값진 재산으로 남아 그 역사적, 민족적, 그리고 의학적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주2: 지금까지 살펴본 장상학의 이론적 주된 근거는 5행설입니다. 5행설은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크게 돌며 자전하면서 생기는 자연현상학적 원리를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 똑같이 적용시키면서 생긴 것입니다. 5행설의 핵심은 목화토금수와 상생과 상모의 상호관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푸른한의원 박윤희 원장의 설명으로 함께 보시죠.)
한의학과 숫자 5 '오행(五行)'
드디어 그 유명한 오행입니다. 본디 음양과 오행은 각기 다른 사상체계였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음양가 오행가가 따로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뒤에 음양오행으로 합쳐져서 하나처럼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오행도 음양과 비슷하게 소박한 자연관에서 출발했는데 나무(목), 불(화), 흙(토), 쇠(금), 물(수)이라는 다섯 가지 물질의 특성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한 것입니다.
즉 나무는 구부러지기도 하고 곧게 뻗기도 해서 자라고 위로 승발하는 특성이 있고, 불은 타오르고 위로 올라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흙은 온갖 생물을 다 포용해서 살게 해주는 특성이 있고 쇠는 엄하고 변혁을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물은 만물을 촉촉하게 해주고 아래로 흐르며 차가운 성질이 있습니다.
이런 인식으로 모든 사물을 각각 오행에 배속시켜서 모든 것을 오행의 상호작용과 상호변화로 이루어졌다고 생각을 했으며 사람의 내장이나 조직, 기관, 정신활동도 오행에 귀속시켰습니다.
이 오행의 상호작용에는 상생(相生), 상극(相克), 상승(相乘), 상모(相侮) 네 가지가 있습니다.
상생은 서로 자생해주는 것으로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목 ⇒ 화 ⇒ 토 ⇒ 금 ⇒ 수 ⇒ 목
상극은 서로 제약하는 것으로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목 ⇒ 토 ⇒ 수 ⇒ 화 ⇒ 금 ⇒ 목
이 상생과 상극은 한의학의 중요한 생리학설인 장상(臟象)학설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상승(相乘)과 상모(相侮)는 비정상적인 조건에서 일어나는 상극(相克)으로 상승(相乘)은 오행중의 한가지가 허(虛)해져서 더 제약을 당하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원래 목극토(木克土)인데 토가 허해졌을 때 다시 목이 토가 허해진 틈을 타서(乘) 제약을 해서 토가 더욱 허해지는 것입니다.
상모(相侮)는 오행중의 한가지가 지나치게 강성해져서 꺼꾸로 제약을 하는 것으로 본래 목극토(木克土)인데 토가 지나치게 강하면 꺼꾸로 목을 업신여겨(侮) 오히려 토극목(土克木)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상승과 상모는 병리현상을 해석하는데 쓰입니다.
이런 오행학설은 장부의 생리와 병리 질병을 해석하는 중요한 이론이며 진단과 치료에도 중요한 이론이나 가끔은 개념이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고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경우도 생겨서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17. 당신의 병은 어디쯤 있나요 ?
(주: 과거에 비해 식습관과 체질 등의 변화로 '양-표-열-실'의 병증이 늘고 있습니다. 비싼 한약을 통한 기존의 '보법(補法)'이 국민들 사이에 지지 기반을 급속도로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런사이, '사법(瀉法)'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 '침뜸'을 한국은 물론 서양에서 다시 찾고 있습니다. '一針, 二灸, 三藥'의 조화가 이젠 필요한 시점입니다. 시대가 동의학의 정신으로 회귀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래 글은 팔강변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는 좋은 글입니다. 박윤희 원장님의 귀한 글(아래)을 읽으며, '시대의 도도한 운행질서'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팔강이란 음양(陰陽) 표리(表裏) 한열(寒熱) 허실(虛實)을 말하며 복잡한 증상들을 이 여덟 가지 대강을 통해서 분석하고 귀납해서 치료를 하는 근거를 만드는 것이 '팔강변증'입니다.
이 '변증(辨證)'은 여러 증상을 종합해서 증후를 찾아서 조금 포괄적으로 진찰하는 것으로 해부생리학에 기초를 두고 병리를 살펴서 세분된 병명을 붙이는 서양의학의 진단과는 다른 한의학 진단의 특징입니다.
팔강 중에서 음양은 질병의 전체적인 속성을 구별하는 것이고, 표리는 병변 부위가 깊은 지 얕은 지를 가리키며, 한열은 질병의 속성이고, 허실은 정기와 사기의 성쇠를 말하는데 음양이 팔강을 대표해서 표, 열, 실은 양에 속하고 이, 한, 허는 음에 속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양증(陽證)은 급성이고 동적이며 흥분적이며 기능이 항진 된 것으로 대사율도 높고 진행적이며 몸의 바깥이나 위로 향하는 증후입니다. 반대로 음증(陰證)은 양증과 반대로 만성적이며, 정적이고 허약해지거나 억제되거나 기능이 저하되고 대사가 감퇴되거나 퇴행적이며 몸의 안으로 향하는 증후입니다.
표증(表證)은 몸의 겉에 해당하는 피부와 경락 눈 코 입 등의 병증으로 주로 감기나 독감 등의 급성 전염성 질환의 초기에 해당되는 외감 육음을 말하며 이 표증도 세분하면 표한(表寒) 표열(表熱) 표허(表虛) 표실(表實)로 구별이 됩니다. 이증(裏證)은 외감표증이 진행이 되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생기는 병증과 내장의 병증으로 몸의 상대적인 안쪽에서 생기는 증후입니다.
한증(寒證)은 체온이 떨어지거나 추위를 느끼는 증후로 만성적이며 기능이 저하되는 질병에서 주로 나타나는 증후이고 열증(熱證)은 체온이 올라가거나 열감을 느끼는 증후로 감염성 질환이나 대사기능이 항진되어서 나타납니다.
허증(虛證)은 인체의 정기가 부족해서 저항능력이 떨어지고 생리 기능이 저하된 증후이고 실증(實證)은 병사(病邪)가 강해서 정기와 사기의 반응이 강렬하게 나타나거나 인체 내부의 기능장애로 기혈이나 담음 식적 등이 쌓인 것입니다.
이런 변증으로 질병의 대강을 파악해서 한증(寒證)은 열로 치료하고 열증(熱證)은 한으로 치료하고 허증(虛證)은 보(補)하고 실증(實證)은 사(瀉)해서 항상성의 회복시켜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한의학 치료의 특징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의학에서는 건강한 상태의 항상성을 중심으로 해서 상대적으로 인체를 관찰하고 치료도 인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자연치유력을 조절해서 건강 상태를 새롭게 만드는 (make)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상태를 유지(keep)하고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박윤희 한의사; 푸른한의원 원장)
18. KBS에 김주한 기자가 있었군요..
(주: 10년전 제가 초년병 기자시절, KBS는 한마디로 엉터리였습니다. 별로 볼만한 프로그램 하나 없고 뉴스도 힘이 없어서, MBC 뉴스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시청률을 보였고, 결국 국민으로부터의 지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과거 정권과의 밀월 아니, 종속관계를 기억하는 국민들의 불신의 벽은 정말 높았습니다. 그랬던 KBS가 요즘 참 많이 좋아졌습니다. 시청률도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이제 MBC와 자세역전이 되어버렸을 정돕니다. KBS의 달라진 뉴스. 저는 오늘(4/29) KBS 9시 뉴스를 보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매우 민감한 '침구사' 부활 문제를 다뤘더군요. 2만명에 달하는 대한한의사협회가 가장 발끈하는 이슈를 건든거죠. 한의사들의 반발이 간단치 않을 겁니다. 김주한 기자.. 잠시 좀 고통스럽겠지만, 힘내세요. 당신은 옳은 보도를 한 것입니다. 이제보니 KBS에 당신같은 기자가 있었군요. MBC의 분발이 아쉽습니다. 다음은 김기자가 보도한 리포트입니다.)
제목: 90대 침구사의 무료 봉사 60년
<앵커 멘트>
지난 60여년간을 소외된 이웃을 위해 침과 뜸으로 인술을 베풀어온 분이 계십니다.
아흔을 넘은 연세에도 봉사활동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김주한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92살 침구사 김남수 옹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뜸 사랑 봉사실'로 향합니다.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노인이나 외국인 노동자들... 특히 중풍이나 관절염 환자가 많습니다.
의사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해방과 함께 무료봉사를 시작한 지 60여 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웃들에게 침과 뜸을 놓아주었습니다.
<인터뷰>김태순(서울 풍납동) :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소문 듣고 왔는데, 너무 잘 하셔서 지금은 좋아요."
<인터뷰>조삼용(서울 이문동) : "많이 다녀봤는데 효과 없더니 여기 오니 팔을 들 수도 있고 효과 있다."
김 옹이 백수를 눈앞에 둔 지금까지 무료 봉사를 계속하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지난 1962년 침구사 제도가 폐지된 이후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인 전통 침술과 뜸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섭니다.
<인터뷰>김남수 옹(침구사 92살) : "지금 바라는 건 하나도 없어요. 이 침구사 제도가 다시 부활하는 게 제일 큰 바람입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봉사를 계속하겠다는 김남수 옹. 낮은 곳으로 임해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주한입니다.
19. 우와! 라즈니쉬가 말하는 침술론
(주: 라즈니쉬가 말하는 침술론을 읽으며 두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라즈니쉬 철학의 깊이와 정교함이고, 다른 하나는 라즈니쉬와 상통하는 구당 선생의 선각적 혜안이다. 다시금 구당 선생의 감동적 인간 사랑의 실천에 감사드리며, 네이버에 오른 라즈니쉬의 글을 옮긴다.)
침술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침술은 전적으로 동양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적인 마음을 가지고 동양의 학문에 접근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대의 모든 접근 방식은 방법론적이고 논리적이며 분석적이다. 그러나 동양의 학문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그대의 에너지를 지력(知力)보다는 직관(直觀)에 쏟을 수 있는지, 그대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양에서 음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접근 방식에서 수동적인 접근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대는 수동적이고 수용적이 될 수 있는가? 오직 그 때에만 침술을 배우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침술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있지만 그것은 전혀 침술이 아닐 것이다. 그대는 침술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지만 침술 자체는 모를 것이다. 가끔은 침술에 관해서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침술을 알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의 침술은 요령이다. 단지 침술에 대한 통찰인 것이다.
동양의 여러 학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양은 동양의 학문에 관심을 갖는다. 동양의 학문은 심오하기 때문이다. 서양은 동양의 학문에 관심을 갖지만 서양의 마음을 가지고 동양의 학문을 이해하려고 한다. 서양의 마음이 들어오는 순간, 동양의 학문은 기초부터 파괴된다. 그때 단편들만 남게 되며 이런 단편들은 결코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침술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침술은 작용한다. 그러나 오직 동양적인 접근 방식을 지닐 때에만 작용한다.
그러므로 그대가 정말로 침술을 배우고 싶다면 침술에 대해 아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가능한 모든 것을 배우라. 그리고 나서 배운 것을 모두 잊고 어둠 속을 더듬어 나아가라. 그대 자신의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환자와 일체감을 느끼기 시작하라. 그것은 다르다…….
환자가 양의(洋醫)를 방문하면 의사는 추리하고 진단하고 분석하며, 질병이 어디에 있는지, 질병이 무엇인지, 어떻게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내려고 한다. 그는 마음의 한쪽 부분, 즉 이성적인 부분을 이용한다. 그는 질병을 공격하며, 질병을 정복하기 시작한다. 이제 의사와 질병 사이에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환자는 게임에서 벗어나 있다. 의사는 환자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질병과 싸우기 시작하며, 환자는 완전히 무시된다.
그러나 침술사를 찾아가면 질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환자가 중요해진다. 질병을 만든 것은 환자이기 때문이다. 질병의 원인은 환자에게 있으며, 질병은 단지 증상일 뿐이다. 그대는 증상을 바꿀 수 있으며, 그러면 새로운 증상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대는 한 가지 질병을 약으로 제압해서 질병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으나 그 질병은 다른 곳에서 좀더 위험하고 좀더 심하게 나타날 것이다. 나중에 생긴 질병은 처음 것보다 치료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그대가 두 번째 질병도 약으로 제압한다면 세 번째 질병은 치료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역증요법은 이렇게 해서 암을 만들었다. 의사는 계속해서 질병을 한쪽으로 밀어 놓는다. 그때 질병은 다른 쪽에서 나타난다. 그러면 의사는 또 다른 쪽으로 질병을 밀어 놓는다. 이제 질병은 극도로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환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원인이 남아 있으므로 계속해서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침술은 원인을 다룬다. 결코 결과를 다루지 말라. 항상 원인을 다루라. 어떻게 하면 원인에 다가갈 수 있는가? 이성(理性)은 원인에 다가갈 수 없다. 이성은 그저 결과를 다룰 수 있을 뿐이다. 원인은 이성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오직 명상만이 원인에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침술사는 먼저 환자를 느껴 본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모두 잊고 단지 환자와 같은 느낌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는 환자와 일체감을 느낄 것이며, 자신과 환자 사이에 다리가 놓였음을 느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질병을 자신의 몸 속에서, 자신의 에너지 체계 속에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느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원인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거울이 되며 자신 속에서 그 반영(反影)을 찾아낸다.
이것이 침술의 모든 과정이다. 침술은 가르쳐지지 않는다. 가르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침술은 몰수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제안한다. 먼저 서양에서 2년 동안 침술에 대해 배우라. 그리고 극동의 나라로 가서 최소한 6개월 동안 침술사와 함께 있으라. 그의 현존 속에 있으라. 그가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라. 그의 에너지를 흡수하라. 그러면 그대는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힘들 것이다.
서서히 자신의 에너지를 느끼기 시작하거나 몸 속에 있는 에너지의 작용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침술은 기술에 멈루지 않고 도구가 될 것이다. 침술은 통찰이며―그대는 기술을 배울 수 있지만 그것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예술이라기보다는 직감에 가깝다. 고대의 기술들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고대의 기술들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과학적인 견해를 가지고 고대의 기술에 접근한다면 약간의 지식은 얻겠지만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대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을 것이고, 그대는 실망할 것이다.
고대의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그것은 좀더 여성적이고 좀더 직관적이며 비논리적이다. 그것은 과학적인 마음이 생각하듯이 삼단 논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에 깊이 참여하고 있기에 오히려 꿈이나 몽상에 가까우며, 자연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밀과 신비를 드러내도록 한다. 그것은 자연을 공격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자연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접근한다.
그대는 가장 깊은 중심에서부터 자신의 육체로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 7백 군데의 포인트는 객관적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깊은 명상 속에서 알려진 것이다. 그대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서 내면으로부터 모든 것을 바라볼 때, 마치 별들로 가득 찬 밤하늘을 보듯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침술의 포인트를 볼 수 있다. 이것은 굉장한 경험이다. 포인트를 보았을 때 비로소 그대는 준비가 된 것이다. 이제 그대는 내면을 이해하게 되어, 다른 사람의 몸을 만져 봄으로써 신체의 어느 부위에서 에너지가 빠졌는지, 어디에 에너지가 흐르고 어디에 흐르지 않는지, 어디가 차갑고 어디가 따뜻한지, 어디가 살아 있고 어디가 죽어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포인트 중에는 감응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전혀 감응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대는 자신을 아는 정도에 비례해서 침술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을 알고 침술을 알게 될 때 거기 위대한 빛이 있을 것이다. 그 빛 속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대는 자신에 대해서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체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제3의 눈이 열린 것처럼 새로운 비전이 보일 것이다.
침술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모든 예술은 깊은 내맡김을 요구한다. 침술은 기술자가 조작할 수 있는 다른 기술과는 다르다. 침술은 가슴을 필요호 한다. 그대는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시인이 시를 쓰거나 음악가가 연주를 할 때 자신을 잊어버리듯이, 그대 자신을 잊어버려야 한다. 침술은 그런 것이다. 기술자도 침술을 시술할 수 있지만, 결코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물론 몇몇 사람을 도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침술은 위대한 예술이며 위대한 기예다. 그대는 침술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그 비밀은 내맡기는 것이다. 그대가 침술 속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길 수 있다면, 그대가 자신을 바쳐 침술에 몰두할 수 있다면, 침술 속으로 뛰어들라. 기쁘게 온 힘을 다해 침술 속으로 뛰어 들라.
그대 자신이 되기 시작하라. 그대 자신만의 비법을 발견해야 한다. 침술은 비법이며 예술이다. 그리고 침술에서는, 누군가를 규칙처럼 따라야 할 필요가 없다. 침술에는 아무 규칙이 없다. 단지 통찰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대 스스로 시작해 보라……. 처음에는 다소 확신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자꾸 걱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렇게 헤매며 시작하는 것이다. 조만간 그대는 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단 문을 찾아나서게 되면 헤매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당장 시작해 보라!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거나 침을 놓을 때 그대는 신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매우 공손해야 하며 신중해야 하다. 그대는 지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시술해야 한다. 지식은 결코 적절하지 않으며 충분하지도 않다. 지식으로 사람을 대하면 항상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지식은 한계가 있는 데 반해, 상대방은 하나의 온전한 세계이며, 거의 무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대를 건드리지만 결코 그대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표면을 건드리지만 그대는 사랑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깊은 중심 속에 있다. 인간은 신비이며, 영원히 신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신비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신비가 바로 그의 존재다.
20. 한 국회의원의 용기있는 제안
(주: 다음은 국회의원 김춘진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 제안서입니다. 저 역시 국회의원들을 정치모리배쯤으로 치부하며 경멸해온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몇몇 헌신적인 국회의원들을 알지만 그들은 국회의원 이전에 사회운동가일 뿐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김춘진 의원의 공개제안서를 보며 그 어느 연설 보다 뜨거운 열정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 기득권을 포기하며 양심으로 외치는 국회의원의 기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디 유시민 장관이 이 국회의원의 발언에 귀를 기울여, 국민건강과 생명을 위한 전향적인 결정을 내리시길 기원합니다. 유시민 장관 자신 역시, 국회의원 시절 침뜸 봉사실을 찾아 '침과 뜸' 봉사를 받았던 사람중에 하나였던 사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님께,
얼마 전 유 장관님께서 추석 연휴에 작성하여 공개하신 의료급여제도의 재정문제와 절감방안 대한 장문의 보고서를 읽고,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의료급여 비용증가에 대한 장관님의 깊은 우려에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아래와 같은 해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치과의사면허를 가진 의료인으로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에 관한특별조치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의료시장의 공급자로 두터운 보호를 받았습니다.
보건학을 공부하고 지난 2004년 5월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2년이 넘도록 보건·복지 정책분야에서 의정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매일 매일 벌어지는 보건, 복지, 식품 등의 현안 속에서 '과연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정책적 대안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장관님!
그러나 제가 확신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장관님이 그토록 염려하시는 전 인구 3%의 의료급여수급권자들을 위해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 지출 부담 외에도, 나머지 97%인 4천7백만명의 건강보험 의료비 증가, 특히 노인 의료비가 만성질환진료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향후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005년 우리나라는 전 인구의 97%에 해당하는 4천7백여 만 명의 건강보험급여에 25조원(본인 부담금 제외), 3%에 이르는 180만 명의 의료급여수급권자 의료급여비용 3조2천억(본인 부담금 제외)을 합쳐 모두 28조 2천억 원의 의료비를 감당했습니다.
연간 28조의 의료비는 2006년 국방비 예산 22조원보다 6조원이 더 많고,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갖는 교육인적자원부 예산 29조원(방위산업청 신설로 수 조원 감소)보다 1조원 적으며, 사교육비 시장의 6배에 이르는 엄청난 비용입니다.
고령화 사회 속도를 감안할 때 이러한 의료비 증가와 국가적 부담은 장관님께서 우려하신대로 복지재정을 늘려도 실질적으로 필요한 자가 혜택을 받기 보다는 생산성 없는 의료시장의 '블랙홀'로 빠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5년 건강보험진료비와 의료급여진료비는 각각 전년도에 비하여 10%, 23.8% 증가하였고, 이중 노인의료비는 각각 18%, 38% 증가하였습니다. 의료급여 지출비용 증가율이 건강보험보다 2배 이상 높으며, 전체의료비 증가율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에 비하여 2배(2005년 기준)이상 높습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급속한 의료비 증가는 고령화 속도에 비례하여 더욱 빠르게 증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연간 28조가 넘는 국민과 정부의 엄청난 재정부담에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적 만족도는 매우 낮습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의료접근성에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지표를 보유하고 있고, 국민 의료비 효율성도 GDP 대비 5% 수준으로 미국(17%) 등 선진국에 비하여 매우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국민들은 이러한 국제적인 지표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인을 만나도 충분한 설명도 들을 수 없을뿐더러, 내용도 알 수 없는 각종 진단과 검사비로 엄청난 비용을 비급여로 지불하고, 이로 인하여 의료인에 대한 불신과 건강보험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연간 두 자리 수 이상으로 증가하는 의료비는 제조업 등 다른 산업에 대한 투자와 달리 우리나라의 수출을 진작시키지도,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지도 못하며, 양극화시대에 양질의 직업을 창출하지도 않습니다.
이상이 제가 확신하는 첫 번째 이야기였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확신하는 두 번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장관님께서 좀더 귀 기울여주시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제 두 번째 이야기는 저의 제안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하여 보건복지분야 최고 정책결정자인 장관님께서 정책적 결단을 내리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면, 장관님께서 그 토록 소망하시는 연간 의료급여 재정 1% 절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오늘 저는 뜸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뜸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전통 민간요법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 정부 수립후 1951년 국민의료법 제정, 1962년 의료법 대체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전통의료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또한 침구행위가 침구사제도의 폐지로 인하여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사라 졌는지, 그리고 그 책임이 누구에 있는지, 등 구구한 이야기를 늘어 놓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의 뜸은 과거의 '전통'의료의 한 분야였고, 뜸은 국민 누구나 쉽게 배워 시술할 수 있는 민간요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의료법 체계가 들어서면서 관련 법령과 판례는 일제시대에 면허를 취득했던 43명의 침구사(2006년 8월 기준)와 2만여명의 한의사만이 뜸을 시술 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건강증진을 위하여 집에서 스스로 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행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의료행위의 본질이 침습행위라는 일반적 상식의 잣대를 갖다 대어도 뜸은 직접구(피부 위에 직접 뜸을 시술하는 것을 말하며, 간접구는 화상을 방지하기 위한 받침대를 놓음) 를 한다 해도 반경 수 밀리 이내 피부에 1도 화상이 '부작용'의 전부입니다.
뜸을 배우는데 필요한 시간은 불과 몇 시간이며, 뜸을 뜨는데 필요한 시간은 15분, 월 1인당 비용은 3천원이 고작입니다.
그렇다면 효과는 어떨까요?
국회와 감사원에는 침과 뜸을 특히, 뜸을 중심으로 하는 봉사실이 있습니다. 이 봉사실은 어느 침뜸봉사단체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는데, 전국 7개 시도에 26개소의 침뜸봉사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농어촌 무료 봉사를 포함하여 연간 10만여명 이 무료봉사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의료행위입니다.
그런데 국회 침뜸봉사실에서는 70여명의 국회의원이, 감사원의 봉사실에는 16명의 고위관료가 침뜸봉사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편, 국내의 대기업과 농협,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 단체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법' 봉사에 대하여 대기업들과 국회,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가 후원하는 배경에는 우리나라 상당수의 고위층들이 뜸을 통해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향후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의료비의 대부분은 만성질환, 만성퇴행성 질환, 감기, 아토피 등 면역성 질환 등 입니다. 이러한 질환은 환경 오염, 식생활 등 습관병으로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도 늘고 있으며, 급속한 고령화와 맞물려 '의료비 재앙'의 진원지로 예측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성질환, 만성퇴행성질환과 면역 관련 질환은 소위 '정통'의학으로 완치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며, 다만, 증상의 악화를 늦추고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뜸의 사례를 볼 때, 뜸은 가장 저렴하고 안전하며, 국민 누구나 쉽게 배워 만성질활을 관리하여 국민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좋은 예라 생각합니다.
뜸을 통한 국민의료비 감소라는 정책 결정은 다음 단계를 밟아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만성질환과 면역체계에 대한 뜸의 효과와 부작용 등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연구를 하고, 이를 국민께 공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안전성과 비용 효과성이 검증되면, 대대적인 국민 보급활동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아까 말씀드렸던 그 봉사단체는 1990년대 중반부터 침뜸봉사를 불법으로 해왔는데,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2000년대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고발한 것은 의료법을 관장하는 복지부와 보건소 등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전국 곳곳의 이해당사자였다는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2005년 양방, 치과, 한방 건강보험 진료비를 살펴보면 한방은 전체 진료비의 4.2%로 1조 1천억원에 이르며, 이중 뜸이 차지하는 금액은 160억원으로 한방 진료비의 3%에 불과합니다.
한의사와 43명의 침구사 등 이해당사자가 뜸을 포기한 대가로 연간 160억원, 향후 20년간 3천2백억원을 일시에 보상한다 하더라도 이 금액은 2005년 의료급여제도 예산의 적자폭(4천3백억원)보다 천억원이 적습니다.
개인적으로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영구적인 보상(어업권 등에 따른 폐업보상과 같은 개념)을 한다 하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요?
40세 이후 국민들이 만성질환으로부터 스스로 몸을 관리하고 건강증진을 할 수 있다면, 삶의 질뿐만 아니라 장관님께서 그 토록 고민하시는 수발수요도 줄어들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리고 그 효과를 금전적으로 환산할 경우, 지금 현재 세대와 우리 후세대가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값어치는, 장관님께서 이해당사자들에게 지불한 대가의 수십 수백 배 많을 것입니다.
요컨대, 뜸은 비침습적이며, 누구나 쉽게 배워 활용할 수 있는 건강관리법으로 국가가 그 효과를 검증하고, 국민건강증진과 삶의 질을 위하여 국가차원에서의 보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믿는 두 번째 확신입니다.
장관님,
장관님께서는 연간 14억을 사용하는 혈우병 환자를 포함하여 180여만명의 의료급여자에게 죄의식을 덮어씌우고, 30년 동안 의료급여제도를 유지해온 공무원을 대표하여 '사과'하시는 작은 용기를 낼 것이 아니라,
이해당사자들과 맞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뜸시술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보급시킬 수 있는 큰 용기를 보여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의료비로 인한 노인 파산신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의료비는 가정 파산의 주요 원인입니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의료급여수급권자는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몸이 아파도 의료비 때문에 의료문턱을 높게 여기고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권자에게 의료급여 수급권자격은 원치 않은 선택임이 분명합니다
아울러, 장관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만하게 의료급여 재정을 사용하는 사람은 의료급여 재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제도에도 있다는 말씀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21. 몽골에서 만난 고름 / 구당선생
얼마 전 뜸사랑 회원들과 함께 몽골 울란바토르에 침뜸 봉사를 다녀왔다. 우리와 너무도 닮은 몽골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자니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요즘 거의 보기가 힘든 고름 환자가 눈에 많이 띄었다. 그래서 얼른 침뜸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물어봤더니 몽골에는 고름이 생기는 종기가 많다고 하였다. 필자가 생각한 바와 다르지 않아 제차 몽골에도 암 환자가 있느냐고 물으니 많지 않다고 하였다.
필자는 일제시대에 태어났다. 지금으로부터 90여년전이다. 조선의 침쟁이 자식인 덕에 어려서부터 부스럼과 종기로 생긴 고름을 빼내는 치료를 다반사로 보아왔고 철이 들면서부터는 직접 치료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고름 환자가 거의 내방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것을 그저 현대의학 발전의 혜택이라고만 생각해왔었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종기치료를 잘하는 의원을 명의라고 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외과의사가 당시 최고의 명의였던 셈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문종, 세조를 비롯해 많은 왕들이 종기로 사망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종기를 못 고친 어의가 유배의 몸이 되었다는 내용이 사기(事記)로 전해지기도 한다. 저승길에 임금도 없다는 말처럼 고름이 생기는 종기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당시 흔히 빈발하는 질환으로 치료가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연배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지난날 아이들은 눈 다래끼와 부스럼을 달고 다녔고 부인들의 경우, 유방이 붓는 유종(乳腫)을 살아서 앓지 않으면 죽어서라도 앓는다고 할 정도로 고름이 생기는 종기가 흔했다. 실제로 불과 3~40년 전까지만 해도‘차고약’,‘이명래고약’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종기를 치료하는 고약이 가정상비약이었다. 오늘날 이러한 종기를 치료하는 고약은 그 이름조차 생소할 정도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 주요한 원인은 다름 아닌 현대의학의 개가 항생제 덕분이다.
옛말에 여름 꿩고기는 먹으면 죽는다고 하여 금기시 하였다. 꿩은 콩을 좋아하는데 여름만되면 산비탈 밭에 무성하게 자란 반하를 콩 좇듯 주어먹는다. 법제한 반하는 가래, 구토에 명약이지만 생반하는 독약이나 다름없다. 이런 생반하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꿩은 결국 반하 덩어리가 된다. 그러다 보니 이 시기에 꿩고기를 먹는 사람은 반하독을 그대로 먹게되는 것이다.
양식장이나 사육장에서 집단으로 기르는 물고기나 닭, 돼지, 소들의 경우도 같은 이치이다. 집단으로 사육하다보니 항생제가 들어있는 사료를 먹이지 않으면 길러 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횟집에서 한상 푸짐히 나오는 횟감도, 식탁에 오르는 군침 도는 삼겹살도 결국은 모두 항생제 덩어리인 셈이다. 여름 꿩고기와 다를 바 없다. 먹이사슬의 최종 소비자인 인간은 이렇게 간접적으로 항생제를 상복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몸도 항생제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고약은 종기를 곪게 만들어서 치료하는데 항생제는 종기를 곪지 않게 해서 치료한다. 그러다 보니 탁기(濁氣)가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악성종양인 암의 발병률이 점점 증가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의사들에게 암을 곪게 하라고 말하여 왔다.
몽골에는 해충이 없으니 농약이 필요 없고 모든 동물들이 인공 사료가 아닌 몽골의 광활한 초원을 자유로이 몰려다니며 야생풀만을 뜯어 먹고 살기 때문에 몽골 식탁에는 우리와 같이 항생제가 들어있는 사료를 먹은 육류나, 생반하를 먹은 꿩고기와 같은 유해한 식품이 올라올리 만무하다. 이렇게 항생제 축적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몽골사람들은 일단 고름이 생기면 고생은 하지만 죽음에 이르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고름이 생기는 종기가 사라진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현대의학의 발달로 고름이 생길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몽골에서 오랜만에 만난 고름은 필자에게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주: 구당 김남수 선생의 종기와 항생제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의학 문제를 넘어선 문명비판이었다. 눈앞의 편리를 취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가. 시인 박노해는 민중봉사를 덕목으로 하는 의료인 구당을 민중의 성자로 추앙한 바가 있다. 구당 선생과 같은 시대의 끄트머리에서 만나 그와 함께 하고 있는 나날을 감사히 여기고 있는 나로서는, 구당선생이야말로 시대의 참 스승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구당선생의 최근 언론 인터뷰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는, www.chimtm.net의 방문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