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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마지막 관전기입니다. 10월 27일, 설레이는 마음으로 춘천호반체육관에서 열리는 삼성생명과의 개막전에 간 게 엊그제 같은데 이로부터 벌써 4개월 여가 지났고, 7라운드의 기나긴 정규리그는 오늘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제가 2004년 겨울리그부터 여자농구를 봐왔는데, 우리은행이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러니까 지난 삼성생명전에서 져서 탈락이 확정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마음 속에 실망감과 허탈감이라는 것이 1프로 이상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누누히 말씀드렸듯 이번 시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음 시즌도 있는 것이며 우리은행이라는 팀이 언론에 누차 알려진 대로 시즌 전과 시즌 중에 '큰 일'을 겪은 어려운 팀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번 시즌은 선전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마지막 6,7 라운드에서는 강팀에 속수무책으로 깨졌던 국민은행과 신세계와는 달리 우리은행은 언필칭 '고춧가루'의 역할 이상을 해내며 강팀에 선전했습니다. 끝내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패배의 쓴 잔을 마시게 된 것은 강팀들과 전력 상 큰 차이 때문이 아닌 집중력 등의 종이 한 장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신한은행이나, 삼성생명, 금호생명에게 우리은행은 분명 다른 두 팀과는 달리 상대하기 어려운 팀이었을 것입니다.
이번 오프 시즌 때 어떠한 선수 변화가 있을 지는 감히 예상못할지라도 오프 시즌동안 지금의 실력에 조금만 다듬질을 한다면 다음 시즌에는 4강, 아니 1~2위를 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마지막 관전기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번 신세계 전은 다른 신세계 전들과는 달리 우리은행에게는 어려운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일단 모르긴 몰라도 우리은행은 불과 경기 이틀 전에 4강 탈락이라는 쓴 잔을 마셔셔 선수들이 자신도 모를 허탈감에 빠져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세계 같은 경우에는 불과 하루 차이더라도 이미 탈락했으니 조금은 우리은행보다 심적으로 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세계 전에 특히 강한 우리은행의 더블 포스트의 체력 문제입니다. 특히 김계령 선수는 매 경기마다 전투를 방불케 하는 집중 마크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파울도 많이 당하고 파울을 심판이 불지 않더라도 여기저기 잔부상이 많이 생기기에 짜증나고 힘듭니다. 김계령 선수는 주장답게 이러한 조건 하에서도 열심히 그리고 잘 뛰어 주었지만 심신이 너무 지쳐 보였던 건 사실입니다. '얼굴이 반쪽이 된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생각해볼 정도로 말입니다.
또한 경기장은 부천 경기장이었습니다. 뭐 경기장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시는 분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신세계는 홈에서 특히 강한 면모를 보여 왔습니다. 신세계가 챙겼던 10승 중에 대부분이 홈에서 챙긴 것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4일 경기에서도 우리은행은 절대 우세에도 불구하고 부천 홈에서 2점차의 진땀승을 거두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경기 초반 신세계의 외곽이 불을 뿜었습니다. 특히 어제 경기에서는 김정은 선수의 활약이 양 팀을 통틀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보았던 김정은 선수는 3점은 그리 시도하지 않고 대부분의 공격을 어깨를 이용한 돌파로 하거나 돌파하다가 빈 자리의 선수한테 빼주는 식으로 하는데 오늘은 외곽슛을 많이 쏘았고 그 슛들은 우리은행 팬들의 간담을 서늘케 할 만큼 정확도가 높았습니다.
1쿼터에는 솔직히 '저 팀이 신세계 맞나?'라고 의심이 될 만큼 신세계는 잘 풀렸습니다. 우리은행은 김계령 선수가 상대의 약점인 포스트를 공략하려 했으나 양지희 선수와 양지희 선수에 대한 신세계 선수들의 헬프 디펜스로 공격은 거의 성공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파울을 안기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 파울이 신세계에게 후반에 타격을 많이 주었긴 했지만 어땠든 1쿼터에 신세계는 잘 풀려도 너무 지나치게 잘 풀렸습니다.
2쿼터에 10점 이상의 차이가 났을 때는 우리은행이 부천에서 꼴찌 자리를 얻어가나하고 불안했습니다. 지난 삼성생명전에서도 그랬듯이 정상치에서 50프로는 벗어난 듯한 슛 난조를 보였고 신세계의 올 스위치 수비에 고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세계는 2쿼터의 우세의 댓가로 많은 파울을 해야 했으니 이 또한 신세계가 후반에 불리했던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경기 후반 김은혜 선수의 활약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주 매치업 상대였던 김정은 선수에게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시위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부진을 보였어도 작년 시즌 삼점 1위를 차지했고 우리은행 선수 중 가장 외곽슛의 깊이를 깊게 가지고 있는 김은혜 선수입니다. 신세계로서는 김정은 선수의 맹활약에 잠시 김은혜 선수에게 방심했나 봅니다.
양정옥 선수의 오반칙 퇴장은 신세계에게는 1톤짜리 망치의 충격 이상이었습니다. 신세계의 선수층은 우리은행만큼이나 젋습니다. 물론 장선형 - 정진경 선수야 그렇겠지만 김정은 - 박세미 - 배혜윤 - 양지희 선수의 평균나이는 우리은행의 선수진의 나이 못지 않게 적습니다. 여러 게시판에서 우리은행에 포인트가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신세계에게도 그에 못지 않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어야 겠습니다.
박세미 선수를 보면 김진영 선수와 스타일이 비슷합니다. 공격형 포인트가드로 분류가 된다는 거 말이죠. 게임 운영의 빈도 못지 않게 삼점이나 페넌트레이션 등 자기 공격의 빈도가 높은 선수가 박세미 선수입니다. 좋게 말한다면 듀얼 가드고 나쁘게 말한다면 1번과 2번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고 할 수 있는데 신세계에는 박세미 선수의 범위까지 조율할 수 있는 포인트가드가 필요합니다.
임영희 선수나 박선영 선수의 '퓨어 가드화'가 신세계로서는 꼭 필요할 것입니다. 양정옥 선수의 어깨에 운영과 조율까지 무겁게 맡긴다는 것은 양정옥 선수에게 고문을 하는 것입니다. 양정옥 선수를 순수 2번으로 돌려야 하고 그를 조율하는 포인트가드가 박세미 선수말고 필요합니다.
그리고 심판님들에게도 드릴 말씀이 몇 마디 있습니다. 심판의 역할은 경기를 공정하게 이끌어나가는 것이라는 것은 저기 태백산 암자의 동자까지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 외에 또 한가지 필요한 것이 있는데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의 부상을 막기 위한 경기 운영입니다. 이것도 공정 운영에 포함되는 이야기겠지만 말입니다.
여러 경기를 보다보면 코트에 선수가 정말 아파서 쓰러져 있는데도 경기를 속행시키고, 결국엔 쓰러져 있는 선수의 팀 선수가 파울로 경기를 중단시킨 다음에야 쓰러진 선수에 대한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어느 팀이 파울을 적게 하느냐 많이 하느냐, 경기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떠나서 코트에서 부상 선수가 나오는 것은 절대적으로 방지해야 합니다.
축구에 보면 가끔씩 인쥴리 타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심판이 경기를 잠시 중단시키고 쓰러져 있는 선수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조치를 취합니다. 중계에서 보면은요. 최근 여자농구가 7라운드로 늘면서 선수들의 피로도도 그만큼 높아지고 그에 따라 후반기에 부상으로 코트에 쓰러지는 선수들이 늘고 있는데 연먕 측이나 심판진 측에서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부상 선수가 생기면 일시적으로 경기를 중단시키고 그 선수에 대해 조치를 취했으면 합니다.
지난 주 인사이드 WKBL에서 심판들을 취재했는데 심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후배들아 부상당하지 말고 시즌 잘 마무리하렴." 이를 위해서는 심판들의 '융통성'이나 '기지'가 필요하겠습니다.
우리은행의 경기를 보아하면 최근에 김계령 - 김진영 선수의 콤비 플레이가 경기당 최소한 하나씩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6라운드 마지막에서는 상대의 자유투 후 바로 코트로 돌진하는 김진영 선수에게 김계령 선수가 멋있게 아울렛 패스를 하는 장면이 나오더니 지난 삼성생명 전부터는 멋있는 컷인 콤피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김계령 선수가 볼을 받는 동시에 김진영 선수가 돌진 - 노룩 패스 - 레이업.
이런 콤비 플레이를 팬들 입장에서는 한 경기당 많이 보고 싶겠지만 상대의 수비도 만만치 않아서 사막에서 오아시스 보는 것만큼이나 보기 힘든 장면이 되었는데 다음 시즌에는 이런 모습 많이 눈앞에서 보고 싶네요.
올림픽에서의 순위 결정전을 보면 보통 5~6위 순위 결정전은 조금은 김이 빠지는 경기라는 것을 살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프로농구 이번 시즌 5~6위 순위 결정전은 마치 결승전을 방불케 하듯 박진감 넘치고 팬들의 간을 꺼냈다 들여놓았다 했습니다.
우리은행은 4쿼터에 5점차로 앞서 갔습니다. 우리은행 팬 입장에서는 거기서 수비 하나만 성공하여 7~8점차로 벌여 쉽게 가서 가슴을 졸이는 것을 방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는 데로만 되면 무슨 경기입니까?ㅋ
4쿼터 초반인가 중반에(너무 긴장되서 시간을 못 봤던 관계로..ㅠㅠ) 김진영 선수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발목이 돌아간 부상이었는데 다시 코트에 들어설 수는 없었습니다. 4쿼터라면 김진영 선수가 꼭 필요한 시점이었고, 김진영 선수가 상대의 주표인 박세미 선수를 너무나 잘 막고 있었기에 안타까웠습니다.
이은혜 선수가 대타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세계는 이은혜 선수가 신인이라는 것을 감안한 듯 올코트 플레스를 썼습니다. 박세미 선수의 앞선에서의 강한 수비에 당황했으나 이은혜 선수는 이에 말리지 않고 잘 빠져나오더군요. 8초 룰를 노리던 신세계의 의도는 빗나갔죠.
4쿼터의 선전에는 원진아 선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0득점이라는 기록을 잠시 뒤로 하더라도 원 선수는 블루워커의 역할까지 충실히 해냈습니다. 많은 분들은 김은혜 선수의 위닝샷에 너무 감명을 받아 이를 잊어버리실지 모르겠지만 이는 이번 경기를 돌이켜볼때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원진아 선수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183이라는 좋은 신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자농구에서는 4번, 나아가서는 일부분이더라도 5번자리까지 볼 수 있는 신장입니다. 원진아 선수는 현재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니고 플레이를 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다음 시즌에는 원진아 선수 개인적으로는 보기 싫더라 하더라도 10킬로 정도 더 늘려 왔으면 합니다. 물론 원래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찌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하리라 봅니다. 꾸준히 관리만 한다면요.
예전에 조혜진 코치님이 신입 선수가 제대로 프로에 적응하려면 3년은 걸려야 한다고 인터뷰 기사에서 말씀한 적이 있는데 이은혜 선수같은 경우에는 최소한 2년의 세월을 이번 시즌에 뛰어넘은 듯 합니다. 물론, 강아정 - 배혜윤 선수같은 '특급 루키'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가드진의 부재라 문제시되던 우리은행팀에 다음 시즌의 포인트가드 재원이라는 것을 이번 시즌 확실히 보여 준 것은 신인상 못 받더라도 몇 번이고 칭찬해 주어야 하겠지요.
신세계는 끈질긴 팀입니다. 신한은행도 이에 혀를 내두를 정도니까요. 박빙의 승부는 김계령 선수가 퇴장당하고 배혜윤 선수가 자유투를 얻을 때까지만 해도 신세계 쪽으로 추가 돌아가는 듯 했습니다. 배혜윤 선수는 자유투에 강하니까요.
하지만 자유투는 가장 쉬운 득점방법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득점방법이기도 하다는 말이 적용했습니다. 특히 팀의 승패가 좌우되는 자유투를 던질 때의 부담감은 억만 겁 이상입니다. 얼마 전에 바스켓 여왕님도 이런 상황에서의 자유투를 놓친 바 있으니까요.
2구 중 1구 성공...김은혜 선수가 급히 공을 몰고 갔습니다. 남은 시간 9초..8초...7초...김은혜 선수의 회심의 레이업 슛은 김정은 선수의 목숨을 건 블로킹에 걸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은행의 승리를 장담하는 사람은 부천경기장에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농구라는 스포츠는 몇 초..아니 몇 분의 몇 초에 승부가 뒤바뀔 수 있다는 매력을 가진 스포츠입니다. 물론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은 간이 왔다갔다 하겠지만요. 예전 레지 밀러를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8.7초의 8득점의 대역사.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뉴욕 메디어스퀘어 가든의 약 9초간의 신적인 밀러 타임.
그것만하지는 않겠지만...남은 시간 2초...이은혜 선수의 베이스라인 패스...저는 눈을 감았더랬죠. 지는구나...하지만 눈을 뜬 순간 김은혜 선수의 손을 떠난 공을 링 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남은 시간 1초...박세미 선수가 혼신의 힘으로 버저비터를 던져보나 에어볼...51대 50 우리은행의 승리...
그때 제 간은 떨어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요..ㅋ
우리은행은 5위로 이번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10시즌 만의 플레이오프 탈락....어찌 보면, 매 시즌 최소한 4강 이상의 성적을 보아왔던 우리은행 팬으로서는 쓴시즌이겠지만 흔히 말하듯이 패배는 승리의 어머니입니다.
다음 시즌에 뵙겠습니다.
제 형편없고 길기만 한 관전기 읽어 주셨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복 받을 겁니다..ㅋㅋㅋ
다들 행운을 빌어요~~^^
첫댓글 다음 시즌엔 우승 하죠..^^ 통합우승..ㅋㅋ
명쾌한 분석글입니다ㅋㅋㅋ 다음 시즌엔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