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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화요일부터 2월 14일 월요일까지 14일간 이야기입니다.
2/1(화) 집 아래 체육공원 밤 10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트랙 20바퀴 달렸습니다.
2/2(수) 시댁 고향에서 홀로 생활하시던 시어머니께서 서울에서 설을 쇠게 되어 남편과 막내만 떠났습니다. 큰아이와 나만 남은 집은 갑자기 휑한 기분입니다. 아파트 주차장은 반 이상이 비었습니다. 섬의 한 부분을 차지한 소도시, 손바닥만 한 아파트라 하더라도 민족 대이동의 물결을 이곳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갑자기 적적해집니다. 잘못하면 이런 명절에는 길을 나섰다가 가게들이 문을 닫아 낭패를 보기도 쉽습니다. 큰아이와 나는 집 밖의 분주함과는 다른 각자 자신의 시간으로 차분하게 보냅니다. 오후 4시 50분 저녁놀을 보고 싶어 과학단지로 올라갑니다. 며칠 전 딸기밭에 농부가 김매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딸기 모종 둘레로 비료를 뿌린 걸 볼 수 있습니다. 달리며 오늘이 섣달그믐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일자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오늘 같은 섣달 그믐날 밤이면 늦게 놀러 다니지 못하게 당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월 초하루인 내일 아침에 제상을 받기 위해 모든 귀신들이 나와서 돌아다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이 50이 가까운 이 나이에도 이렇게 다시 상기되는 것을 보면 마음속에 스며오는 압박 같은 그 무엇이 있음을 직감합니다. 공사 중인 도로는 아직도 진흙탕입니다. 과학단지 진입로를 지나 과학단지 안 요양원 남쪽 언덕에 아기노루가 펄쩍 달아나다 가만히 서서 나를 응시합니다. 그리고는 금방 풀 더미 속으로 사라집니다. 오후 6시 20분 어둠이 서서히 내리려고 합니다. 짧은 2~3분 간격 안에 과학단지 안 가로등들이 군데군데 켜집니다. JDC 건물 앞에서 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합니다. 제주대학 진입로를 거쳐 5.16도로를 따라 내려옵니다. 길마다 공사 중이지 않은 길이 없습니다. 내리막길이라 달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제주여고 버스정류소를 지나 간월동을 거쳐 신설동으로 집에 도착합니다. 저녁 7시 50분이 되었습니다. 섣달 그믐날 세 시간을 길에서 해넘이, 어스름, 초저녁 함께 보냈습니다.
2/3(목) 설날입니다. 작년 3월에 영면하신 법정 스님의 책 3권 <산에는 꽃이 피네>, <아름다운 마무리>, <내가 사랑한 책들>을 보았습니다. 내가 깊은 산, 깊은 계곡, 어느 암자에서 맑은 샘물 들이 킨 기분입니다. 속이 달고 시원해집니다. 길게 달리기를 할 때면 온갖 삶의 그물망에서 툭툭 끊기는 해방감이 들곤 하는데 지금이 그렇습니다. 나를 잊을 수 있습니다. 충분히 내가 지금 여기 여러 복잡함과는 또 다른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아침에 큰 아이와 떡국을 먹었습니다. 답답해 괴로워하는 큰 아이와 대조적으로 나는 해방 속에 있습니다. 언제나 시간은 마음 떠난 연인처럼 냉소를 뿌리며 밀쳐 달아납니다. 밤 10시 5분부터 110분 연북로 달립니다. 운동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정월 초하루 잿빛 밤하늘입니다.
2/4(금) 방학이라 작은 아이를 사촌들에게 서울 구경 시켜주라 하고 남편 혼자 돌아왔습니다. 이틀간의 고요를 뒤로 하여 가족 셋은 친정 가족들이 복작대는 곳에서 명절 뒤끝을 보냅니다. 오늘 달리기는 쉽니다. 18년 만에 이곳에서 노동운동하던 친구의 남편이 처갓집에 다니러 왔다가 연락이 왔습니다. 깊은 밤 동석한 옛 동지들과 그간의 회포를 풀었습니다. 마라톤 시작해서 술자리, 저녁 식사 만남을 야속하다 할 만큼 피하고 있습니다. 늘 쉬운 것은 물론 아닙니다.
2/5(토) 날씨가 쾌청합니다. 밤 9시 55분부터 110분 연북로 달렸습니다. 따뜻한 기운마저 들어서인지 가족이 함께 운동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늘 에밀 자토페크를 그린 소설 <달리기>를 읽었는데 그의 우스꽝스런 동작들이 떠오르자 웃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에밀은 집안이 가난해서 학교 공부를 마칠 수가 없었습니다. 신발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그 공장에서 생산한 신발을 광고하기 위해 육상 팀에 선수로 에밀이 뽑히게 됩니다. 처음부터 달리기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진가를 보이게 되면서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는 오로지 훈련만으로 지구 세 바퀴를 돌았다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어떤 개인과, 국가, 민족의 역사든 승승장구 끝없는 발전만, 흥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세계적 선수로 가장 높은 고지를 유지하다 내려오는 지점과 맞닥뜨릴 때는 안타까움도 컸지만 여지없이 인간사 흥망성쇠가 함께 있구나라는 보편적 사실에 대해 다시 느낍니다. 젊게 집중해서 잘 살아내기 위하여 나는 달립니다. 극복이 아닌 인내를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인내의 가치는 인간을 성숙한 아름다움으로 잇도록 도와주리라 믿습니다. <장거리 주자의 고독>을 읽을 때 역시 주인공 스미쓰 역시도 매일 새벽 아침이면 온 땅이 뒤집어 쓴 서리가 녹지 않은 시간에 똥물 묻은 빵조각 하나 배에 기별 할 수 없는 상태로 오로지 달려야만 했습니다. 가난의 경험, 배고픔의 경험, 고난의 경험은 인간의 정신을 차고 맑게 합니다. 달리기를 할 때면 굳센 삶을 살았던 그들이 다시 내 안에서 살아 있는 정신으로 꿈틀댑니다. 무척 기분이 좋아집니다. 텅 빈 기쁨, 나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2/6(일)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여섯 시간을 아파트 바로 옆집과 붙어 있었습니다. 두 가족이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두 집 남편들이 술이 부족해 우리 집에까지 와서 2차로 이어졌습니다. 만 17년을 이웃으로 함께 살다 새로 집을 짓고 이사를 가게 되어 이별주를 하는 겁니다. 갓난아기들을 데리고 아파트가 들어서자 올망졸망 함께 입주해서 살기 시작했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은 자라 큰 아이가 옆집은 고3, 우리는 고2가 되었으니 그럴만합니다. 우리 큰 아이나 작은 아이 모두 옆집을 참 좋아합니다. 처음에 이사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큰 아이는 '내가 나중에 크면 옆집처럼 친절한 이웃으로 살아야지.' 말을 할 정도입니다. 잘 지내던 이웃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가는 길을 축하하는 이별주를 위해 오늘 달리기는 쉬어도 아쉽지가 않습니다. 서로 얼굴 한 번 붉힌 적 없이 참 좋았습니다. 이사 가서도 가족 모두가 행복하길 빕니다.
2/7(월) 가마동 합동 훈련일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날씨가 포근합니다. 운동장 안은 겨울이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초롱초롱한 별과 초승달이 선명합니다. 트랙 13바퀴 달리고 돌아옵니다. 신라 한증막 맞은편 보도블록을 단숨에 오릅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서 처음입니다. 후후, 후후. 숨이 찹니다. 그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니 기분 좋은 밤입니다.
2/8(화) 비가 내렸습니다. 운영위원 회의 참석과 조부님 기제 지내느라 시간이 빠듯합니다. 집 아래 체육공원 오후 5시 40분부터 트랙 9바퀴 달리는 것으로 시간을 훔쳤습니다. 20여일 앞으로 마라톤 하프 출전일이 다가옵니다.
2/9(수) 애조로 특별 훈련하기로 한 날입니다. 회장님이 택일을 잘하셨습니다. 날씨가 완연한 봄입니다. 마음까지 풀리는 기분입니다. 오전 10시 연동성당 도착하니 단출합니다. 회장님과 이승훈 프란치스코 형제님과 나 셋뿐입니다. 같이 달리다 두 분 형제님이 점점 간격을 만들며 앞서갑니다. 수산저수지 아래쯤 왔을 대 전지훈련 왔는지 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맞은편 도로에서 선수들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자 프란치스코 형제님이 종점을 돌아 훈련 선수들 뒤에서 달려가는 중이었습니다. 회장님은 어디가고 혼자서, 왜 저쪽 방향에서 달리고 있지 의아심은 들긴 했지만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서로 손 인사 하는데 형제님이 이렇게 계속 가도 되냐고 묻는 것 같아 그렇다고 대답해서 나는 반환점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의외로 반환점에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시다가 프란치스코 형제님 보지 못했냐고 물으셔서 방금 전 맞은편 길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 보았고 그냥 그쪽으로 가도 된다는 말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두 분이 서로 도착지점에서 다른 일을 보았던것 같기도 합니다. 다시 회장님과 함께 출발지점을 향해 나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손에 꼈던 장갑을 벗어야 할 만큼 날씨는 아주 따뜻합니다. 속이 꽉 찬 양배추, 푸르게 올라오는 보리밭, 아슬아슬하게 가지 끝에 앉은 까치, 보기 드물게 얼굴 내민 늦겨울 태양, 눈을 온통 입은 한라산, 그 밑으로 잔설들을 안고 있는 오름들, 가볍게 흔들거리는 퇴색한 억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회장님은 오랜 감기와, 외국 다녀오신 일들로 연습을 하지 못해 달리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20km 도착하니 2시간 40분. 속도에 변화 기미는 없습니다. 다만 달리는 동안과 달리기를 마쳐서도 힘들지 않다는 것 말고는 그렇습니다. 프란치스코 형제님은 훨씬 빨리 도착했을 텐데 보이지 않습니다. 회장님은 형제님을 찾아 나서고 나는 수업 때문에 그냥 급히 귀가했습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형제님 자동차 키는 회장님 차에 맡긴 상태, 형제님 핸드폰은 형제님 자동차-연동성당-에, 애조로 코스는 초행, 어디가 종점인지 모르는 형제님은 주차한 지점을 모르고 지나쳐 오라 골프장 입구까지 갔다 사색이 다 되어 돌아오는 중에 회장님이 차로 가서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수산저수지 아래서 만났을 때 잘 듣고 대답했어야 했습니다. 이승훈 프란치스코 형제님 고생 많았습니다. 미안합니다.
2/10(목) 함박눈이 내리며 바로 녹습니다. 우의를 입고 오후 4시 30분부터 집 아래 체육공원 트랙 15바퀴 달렸습니다. 날씨는 정처 없습니다.
2/11(목) 쉬었습니다. 인문학 글쓰기 공부 하는 날입니다.
2/12(토) 밤 9시 30분부터 연북로 115분 달렸습니다. 내일 새벽 6시에 영지학교에서 35km 달린다는 고대승 프란치스코 형제님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2/13(일) 자전거를 타고 영지학교 새벽 6시 10분에 도착했습니다. 제주마라톤클럽회원들이 학교운동장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고 mbc 기자들이 촬영 중이었습니다. 3월 27일 mbc 평화마라톤 홍보용으로 촬영 중이라 했습니다. 가마동회원 고대승 프란치스코, 김태선 요한, 현길순 안드레아, 강훈일 다니엘 형제님과 나 5명이 제주마라톤클럽회원들과 뒤에서 합류하여 함께 달렸습니다. 훈련부장님이 출석하기로 되어 있는데 자매님이 갑자기 아프셔서 참석 못하신 채로 6시 18분에 출발했습니다. 영지학교에서 연북로 동쪽 끝 지점인 한일베라체 교차로를 돌아 영지학교-민오름 입구-해역사-수목원-연동성당-애조로-수산봉 아래 반환점을 돌아오는 35km 훈련입니다. 나는 꼴찌로 달리다 어느 지점에서 돌아온다는 계산으로 평상시 속도와 다르지 않게 달렸습니다. 수목원 흙길 거의 통과 지점(7시 15분경)에서 프란치스코 형제님이 공항 가야된다고 돌아가며 인사합니다. 7시 32분에 애조로 막 들어섭니다. 해는 이미 환히 밝았고 날씨는 흐리고 춥습니다. 달릴 때는 춥지도 덥지도 않고 힘든 것도 없이 그냥 달립니다. 7시 45분경 다니엘 형제님이 맞은편 길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손 인사를 건넵니다. 한 명씩, 두 명씩 마라톤 클럽회원들도 나와 마주해서 돌아갑니다. 아직 반환점을 돌아오는 분들 같지는 않습니다. 8시 10분경 광령 1리 버스정류소와 외도동 입구 교차로가 있는데서 8시 10분에 나는 방향을 바꿉니다. 해안교 다리를 지나며 저 멀리 수목원 주변 오름 자락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기원전 490년 아테네 북동쪽에 있는 마라톤 광야에서 40km를 달려 그리스가 페르시아군을 맞아 승리했다는 소식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하고 죽은 병사를 떠올려 봅니다. 영지학교 출발해서 달려오고, 도착하기위해 달려가는 앞 지점의 오름 자락을 보니 그 거리가 정말 짧은 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느껴집니다. 내가 그 먼 거리를 달리기 위해 이렇게 가고 있구나. 나 스스로에게 믿기지 않은 대견함으로 환기됩니다. 난생 처음 이렇게 오랜 시간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어떤 고달픔이라곤 전혀 없이 말입니다. 광평리 근처쯤 왔을 때 자꾸만 추월해 돌아가는 제주마라톤클럽회원들이 있었는데 8시 45분경 안드레아 형제님이 지나가며 힘내라고 북돋아 줍니다. 반환점 돌아오시는 길임을 나중에 알았는데 대단합니다. 애조로에서 수목원 입구지점과 연북로에서 민오름 입구 지점에 제주마라톤클럽 회원들이 마련한 물, 음료, 바나나가 놓여 있어 감사히 물로 목을 축였습니다. 연북로 한라도서관 근처 9시 20분경 요한 형제님이 추월합니다. 가마동 회원 모두 나 보다 앞서 도착합니다. 10시 영지학교 도착했습니다. 경기 종료 끝난 마당처럼 모두 흩어져 없습니다. 요한 형제님만 나의 소지품 전달 때문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3시간 40분 난생 처음 가장 오래 가장 멀리(약 25km) 달렸습니다. 앞으로 더 멀리로 거리가 계속 늘어나겠지만 오늘 아침 역시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추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전거타고 돌아오는 불과 10분 거리임에도 손가락 끝이 동상 걸린 것 같이 아픕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괜찮습니다.
2/14(월) 가마동 합동 훈련일입니다. 낮에 간간이 눈이 내려 걱정했는데 자전거 타도 문제없습니다. 훈련 시작 전 종합운동장 2바퀴 달렸습니다. 7시 회원들과 스트레칭 함께 마치자 운동장에 물이 고여 운동화 끝이 젖으면 발가락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애향운동장 바깥 둘레를 달리자고 훈련부장님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이 코스는 처음입니다. 500m 흙길입니다. 11바퀴 48분 달렸습니다. 강훈일 다니엘 형제님이 함께 속도를 맞춰주셔서 더 잘 달릴 수 있었습니다. 형제님은 통계청 근무하시는데 직장에 동호회가 있어 건강문제로 마라톤 한지 20년이 되었다 합니다. 제주 가마동에는 동광성당 소속 회원이 많기도 하지만 실력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배움을 주시는 분들이 도처에 계십니다. 은총 주시는 하느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아쉽게 이사 가는 이웃 이야기, 달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이승에 아니 계신 법정스님 글편 이야기, 자전거 타고 동산 오르는 이야기.....
신 나게 맛 나게 사람 사는 이야기 걸쭉한 글쟁이 단편소설이다.보면 볼 수록 꿀맛이다.
이 삼년 후 모니카 풀을 벤 후 굵직한 달리기 이야기가 책으로 엮이면 참 볼만하겠다.
마라톤 자서전(회고록) 행복을 이야기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표제를
원작자에게 사정을 말하고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제목을 얻었다는
일본인 소설가 하루키가 지은 책을 어저깨 읽었지요.
이진희 모니카에게도 한번 강추합니다.
2010. 9. 29. 저의 첫 훈련일지 '1. 달리기, ~ 동반자'에서 하루키 책을 읽고 뛰고 싶어졌다는 기록을 썼습니다. 2009년 가을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감동받았습니다. 그는 대학교 친구랑 결혼해서 지금 환갑이 넘은 나이에 둘이서 아이도 낳지 않고 신혼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가 책을 쓰면 부인이 모든 글의 교정을 봐 줍니다. 그는 현재도 이팔청춘의 삶을 계속 살아갑니다.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집중력을 위해 달려야겠다고. 가브리엘 형제님 감사합니다.
달라다가 보면 힘들때는 무릅에서 신호가올때 장런하면서 느끼고 근력도 함께 키우고
살도 평균으로 유지하여야 하는것을 배운 날이었어요 ^^ 몰라서 시작점을 지나가면서 더 연습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