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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장 1-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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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흔히 롤러코스트에 자주 비교합니다. 오르락내리락, 최고점, 최저점을 왔다 갔다 합니다. 고속 회전도 하고 추락과 상승을 반복합니다. 1년 신앙 주기를 보면 사순절 기간에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부활절에 정점에 올라섭니다. 봄을 지나면서 꽃구경 좀 다니고 가정의 달 여러 행사를 보내면서 서서히 내려갑니다. 여름이 되면 무더위에 몸도 마음도 지치고, 휴가 다녀오고, 추석 명절 지나면 급격히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최저점에 도달합니다. 그러다가 대림절 기간에 다시 서서히 오르면서 성탄절과 송구영신 예배를 기점으로 최고점에 올라섭니다. 분주한 신년을 보내고 설 명절을 지나고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하향곡선을 그립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는 이러한 사이클이 우리의 신앙곡선입니다.
“나는 신앙이 오르락내리락 안하는데”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두 가지 경우입니다. 하나는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 하셔서 평안가운데 계신 분이고, 또 하나는 이것도 저것도 관심 없거나 안주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서 신앙이 멈춰서 있는 상태입니다. 멈춰서 있는 데도 내 신앙이 안정되어 있다고 착각 하고 계실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본적인 신앙곡선에 근거한다고 가정하면 부활절 이후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예상이 됩니까? 부활절 기점이 정점이기 때문에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습니다. 어떻습니까? 부활절 이후 한 주간 우리의 신앙이 잘 유지되고 있으시지요? 부활절 직후가 신앙생활에서 조심해야할 시점입니다. 내려가는 폭이 적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급격하게 내려가시는 분들은 성탄절 때까지 오랜기간 신앙의 암흑기가 될 것입니다. 마치 이러한 신앙의 사이클은 사사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평안함이 너무 길어지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다가 거역함이 계속되면 징계를 내리고 가지것들, 누리는 것들을 다 빼앗기게 만듭니다. 징계 받은 후에 그때서야 회개하고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찾습니다. 하나님은 긍휼하심으로 다시 기회를 줍니다. 다시 찾은 평안을 누리다가 마음이 흐트러지면 또다시 범죄하고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평안하고, 범죄하고, 회개하고, 구원받는 순환적인 사이클이 사사기의 구조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현재 생활하는 신앙 패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셔서 신약시대, 교회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교회공동체가 구성되고 신앙의 연수가 더해지면서 신앙이 성숙되어지고 강건해져야 하는데도 여전히 롤러코스트 같은 신앙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권면의 말씀이고, 12절이 권면의 핵심 구절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제일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이 “나는 구원 받았다, 나는 믿음을 지녔으니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없다, 나는 오래도록 믿어 왔으니 할 만큼 다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무사안일주의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구약의 예로 들어 설명을 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바다 한 가운데를 건너면서 구원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갈라진 홍해 바닷물 가운데 마른 땅을 걸어서 지나간 것을 세례 받은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반석에서 나오는 물, 즉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또한 하늘에서 내려주는 신령한 음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도 먹었습니다. 세례 받고, 신령한 음료를 마시고, 신령한 음식을 먹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하게 자신들은 “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싯딤이라는 곳에서는 바알브올(바알) 우상 앞에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는 일이 발생하여 하나님이 염병을 내림으로 단 번에 이만 삼 천 명이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 모세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자 뱀에 물려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을 구원해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자신이 잘 서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수많은 배신과 거역을 일삼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멸망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 조상이 그렇게 선줄로 생각하다 망하는 길로 간 것을 다 알면서도 어찌하여 그렇게 안일하고 경계심이 없는냐, 너희가 믿음을 지녔다고 해서 선줄로 생각하다가 만약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또 다시 범죄 하다가는 영원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경고합니다.
멸망의 징조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쉽게 저지르고,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시선을 벗어나려고 하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내 생각으로 처리하겠다는 고집을 부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무시하면서 내가 취하고 누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내가 위치하고 서 있는 자리가 나를 자랑하는 자리가 되고 남을 억누르는 권세가 되는,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행동들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모든 일, 나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광범위한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자신들이 선줄로 생각하기는커녕, 넘어지기로 작정하고 사는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믿음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이 제대로 서있다고 생각하는 안일함과 나태함과 게으름 때문에 함부로 우상숭배를 따라간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했던 것처럼, 그렇게 끝까지 믿는 것이지, 어느 정도 까지만 믿는 다거나, 내가 생각한 선 까지만 믿으면 다 됐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좋은 것은 눈에 보일 때나 내 것인지, 한 순간에 다 빼앗기고 나서 땅을 치고 후회 한들 더 이상 내 것이 아닙니다. 선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마음껏 즐기고 하나님께 감사 하되, 내가 계속 서있는 상황을 유지시켜 나가도록, 나를 넘어지게 하는 내 주변의 장애물들을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은 믿는 자들이 조심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두 가지를 특별히 조심하라고 당부 합니다.
첫째, 넘어지지 않도록 최우선적으로 가장 조심하여야 할 죄는 음행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든, 아니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나간다는 사람들 중에 뜻밖에 무너지고 한 순간에 망신을 당하는 일들의 대부분이 음행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높아지고, 부유해지고, 크게 성공했을 즈음에 음행이라는 수단을 이용해서 한순간에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이제는 다 됐다, 다 왔다, 다 이루었다라고 생각했을 때, 하나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파괴시킬 수 있는 수단이 음행을 저지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음행은 선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대표적인 범죄이고, 모든 우상숭배를 대표하는 죄악입니다. 음행은 거룩하신 하나님과는 완전하게 대비되는 더러움의 상징이고, 음행하려는 생각과 그리고 행동으로 까지 옮기는 것은 영적 간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죄의 목록들을 열거 할 때 음행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음행은 그만큼 심각한 죄이고 너나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전염이 되는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이라는 장소에서 음행함으로 엄청난 숫자가 죽임을 당한 것과 같이, 음행으로 인해 가정은 물론이고, 교회 공동체가 붕괴되는 일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6장의 말씀에 모든 죄는 몸 밖으로 짓는 죄이나 음행은 우리 몸에다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면서,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기에 주님과 연합하면 영적으로 하나가 될 터인데, 어찌하여 음행함으로 창녀와 한 몸이 되려 하는가, 음행을 피하라, 너희 몸은 값으로 산 것이니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거룩한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 합니다. 거룩한 성전이 음행으로 물들면 주님과 나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담을 치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음행을 하면 주님과 연합하지 못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머무실 수 없기 때문에, 불행해지고, 나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빼앗기게 됩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하고 멀리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 죄악이 음행입니다. “나는 괜찮겠지, 나는 문제없이 잘 대처하고 있으니 염려하지마”라고 생각하는 자만심을 버려야 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든지 음행의 죄 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음행은 하나님이 반드시 판단하시고 징계하실 것입니다. 죄와 결단코 공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음행으로 오염된 우리 몸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어떤 아픔이 있어도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음행의 죄악을 도려내고, 제거하려 하실 것입니다. 내 몸에 죄를 짓는 음행은 곧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거역하고 배반하는 크나큰 우상숭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깨끗함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음행과 더불어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시험입니다. 우리는 시험이라는 문제가 닥치면 오해하고, 원망하고, 좌절에 쉽게 빠집니다. 또 시험이 닥쳐오면 감당해 내지 못하고 낙담하고, 낙심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을 병들게 만드는 시험이 닥쳐올 때 다음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첫 번째, 하나는 하나님은 결코 나를 넘어지게 만드려고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말씀 13절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곧 이런 것이라는 정의를 내려 줍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려고 시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세워주고, 성장하도록 연단하기 위해서 감당할 시험을 주시고, 피할 길도 내어 주십니다. 사탄이 주는 시험은 좌절과 분노를 주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내 연약함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더 붙들게 해줍니다. 시험을 피하지 마십시오. 정면으로 돌파해 나가면 피할 길까지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더 큰 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전 보다 더 강건해져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더 좋게 해주시려고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시험에 대해 조심해야 하는 두 번째는, 내가 시험 받는 대상이 아니라, 교만이 하늘을 찔러서 오히려 내가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시도를 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고, 예수님도 사탄을 향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 한다는 것은 곧 불신, 불신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발상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향해, “이거 해결해 주면 내가 믿지, 이런 것도 모르면서 못하면서 무슨 하나님이야,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 생황을 이런 지경으로 만들었겠어?”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하나님을 시험하며, 비난하고, 조롱합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알고자 의심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못 믿는 것, 불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행위는 걸려 넘어져도 아주 크게 걸려 넘어지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멸시합니다. 또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면서도 원망하고 증오합니다. 불화와 불만을 증폭시킵니다. 사람들은 늘 불안하기 때문에 의심하면서, 원망하면서, 오해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려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시험합니까? 아무도 하나님을 시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과 인간이 언제나 원수가 되어서 떨어져 있도록 불화를 일으키는 주범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고 시험하도록 뒤에서 조종합니다. 사탄이 시험을 조장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불신해야 인간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게 만들도록 매사에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동은 사탄의 종노릇 하는 바보 같은 일이고,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어 패망과 심판의 징계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혹시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생각이 든다면 고린도 전서 10장 13절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능히 감당할 시험만을 주시는 분입니다. 시험이 있다하여도 피할 길도 알려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생각이 들어오면 사탄이 나를 넘어뜨리려는 흉계임을 알고 물리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지 곤경에 처하게 하고, 상황을 힘들게 만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선줄로 생각했던 신앙인들은 음행을 조심하고, 시험을 잘 감당해 가면서, 항상 넘어질까 조심며 살아간다면,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저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중에 평안이 가장 좋다고 여깁니다. 저는 목사로서 여러분이 참으로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평안하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근심, 걱정 없는 평안의 상태야 말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참 자유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음행과 시험을 이기고 계속해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통로와 해법이 주어져 있습니다. 무엇이 통로이고, 무엇이 해답이겠습니까? 요즘 선거철이라 홍보용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리고 있고, 기발한 착상의 문구들이 눈이 뜁니다. 어느 후보자의 홍보 문구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경제이고, 해답은 투표이다” 저는 이 선거 문구를 보면서 그리스도인이 평안을 누리는 해답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문제는 동행이고 해답은 성경이다”
“성경을 늘 가까이 하십시오. 성경을 계획적으로 읽으십시오. 성경을 묵상하십시오. 성경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성경대로 순종하십시오. 성경에 쓰여진 대로 살아가십시오. 성경만이 인생의 해답이 숨겨져 있고, 성경만이 믿음을 지켜줄 방패이고, 성경만이 세상에서 휘둘리지 않는 지킴이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제가 해답을 말씀드렸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고 또 교회에서 지겹도록 강조하는 말이라 “내가 알아서 하면 되지, 또 부담주시네” 하시면서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저는 이 말씀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성경만이 해답이라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했고, 제 자신도 이 방법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해답을 하나하나 얻어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해답은 성경 안에 다 들어있기에, 성경 읽고, 깨닫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의뢰하고 응답을 받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해결방법도 없다는 것은 영원한 불변의 진리입니다.
성경이 답이라는 것은 다 압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하는 부담감은 있으나 몸이 안 따라 줍니다. 성경에서 무엇을 찾아내고 안정을 얻기에는 우리 삶의 패턴은 시간이 너무나도 촘촘하고 촉박합니다. 성경읽기를 반짝 하는듯하다가 금세 지루함을 느끼고 게을러지고, 열심을 내다가 오래 못가서 포기하고, 해야 되는 것은 아는데 일 하느라, 먹고 사느라 몸이 고단하고 지쳐서 책이라는 것을 접할 시간 내기도 버겁습니다.
그렇다고 어쩌겠습니까? 66권 성경책을 우리의 인생지침서로 주셨으니 아무리 귀찮고, 시간에 쫒기고, 싫증이 나더라도,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한은 성경이 내 짝꿍이다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과 함께 뒹굴어도 보고, 넘어져도 보고, 깨져도 보고, 회복과 치유도 경험해보고, 희망이라는 메시지도 받아봐야 합니다. 성경과 함께 하는 여러 과정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서 성숙을 이루어가고 강건한 믿음의 소유자가 됩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기에 인내가 필요하고 고통과 아픔의 시간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경험으로 봤을 때 성경 말씀은, 죄로 인해서 변형되고, 왜곡되고, 뒤틀리고, 틀어져 버린 우리의 심성을 치유하고 교정시켜 주는 능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성경이 이해되고 말씀 한절 한절이 주는 의미가 제대로 느껴지기 시작하면, 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죄의 종류도 많아지고, 이런 것 까지도 죄였구나 생각되면서, 죄가 얼마나 심각하게 내 자신을 꼼짝 못하도록 옭아매고 있었는지 실감합니다. 성경 말씀은 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만의 상처들을 싸매주고, 잘못된 가치관과 모난 인성들도 서서히 다듬어 갑니다. 어디에서도,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성경이주는 참 평안과 위로는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죄악의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위로에 너무나도 감사해서 이 찬양을 오래도록 부르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이 땅에 오직 주 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얼마나 많은 회개의 눈물과 감사의 고백들을 쏟아내며 불렀던 찬양인지 모릅니다.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성경에 내 마음을 가까이 접근시켜 보십시오. 놀라운 일들이 내 안과 밖에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를 읽어 드립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바람에 흔들거리며,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꿋꿋하게 버텨낸 후에야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처럼, 신앙도 인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 자아를 산산히 부숴버리고, 내 속을 다 뒤집고 찌꺼기들을 다 쏟아내서 그 안에 성령의 일하심을 채워 나가는 과정은 흔들리며 피는 꽃과 같은 상황입니다. 바람이 오면 피하지 않고 바람을 온 몸으로 다 받아내고, 비가 내리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 비를 다 맞으며, 꽃이 피는 그 날만을 기다리며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선줄로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저도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았지만 또 흔들리고 또 넘어지고,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을 절감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부활의 주님을 만난다는 약속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낙심되면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아직도 견고한 내 마음 중심의 단단한 자아의 돌덩어리가 깨질 때까지 선줄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조심하여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완성형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불완전 하고 미완성형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나를 쳐 주시고 세워주시는 성경 말씀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 사랑에 감사한다고 하면서, 성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중적인 삶으로는 결코 행복질 수 없습니다. 성경 속에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만 명심하면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 말씀이 내 인생에서 성경을 꼭 붙잡으라는 주님의 권면으로 받아들이시고, 그리고 내가 성경과 씨름하며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라는 명령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면서 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성령 하나님과 늘 동행하십시오. 자칫, 선줄로 생각하여 빠질 수 있는 음행과 시험을 경계 하면서, 아무리 바빠도 성경과 늘 가까이 하는 습관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신앙의 최고 정점에 이르러 있는 굳건한 부활신앙을 잘 지키시고,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며, 성경 말씀에 힘입어 날마다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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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선줄로 생각했던 우리의 신앙생활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시고,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가슴에 새깁니다. 부활신앙을 더욱더 굳건하게 지켜 나가면서,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경 말씀을 늘 가까이 하여 음행과 시험을 잘 이겨내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그날 까지 인내함으로, 주님이 가신 길을 묵묵히 따라가도록 성령님 동행하여 주옵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시며, 넘어지지 않도록 강건하게 세워주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60403 주일설교.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장 1-13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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