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좌樹下坐와 정사精舍 / 인도불교의 승원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① 승원의 기원은 수하좌
인도불교의 수행자들은 출가와 함께 4의지四依止, 곧 행사의行四依에 관해서 고지 받게 된다. 4의지란, 의·식·주와 약에 관한 것으로 각각 착분소의著糞掃衣(타인에게 필요 없는 천의 의복만을 입는다)와 상행걸식常行乞食(언제나 걸식을 유지한다), 그리고 의수하좌依樹下坐와 용진부약用陳腐藥(소의 오줌을 발효한 최소한의 약만을 사용한다)을 가리킨다.
이 중 주거와 관련되어 의수하좌, 즉 나무 밑을 거주처로 삼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마을 안의 나무 밑이라기 보다는 명상하기 좋은 적정처寂靜處인 아란야를 지칭한다.
인도는 더운 기후이기 때문에 별도의 주거시설이 없어도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집착을 여의려고 하는 수행자로서는, 나무 밑을 잠시 깃들다 가는 삶의 형태도 가능하다고 하겠다.
붓다 역시 수행과정에서 이러한 환경 속에 계셨다. 그러나 불교의 수행은 무집착을 통한 정신적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최소한의 생활일 뿐, 이러한 수하좌만을 국집해서도 안 된다. 즉, 수하좌만 고집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청빈에 대한 집착인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승원이 있으면 승원에서 생활하고, 승원이 없으면 수하좌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즉, 상황에 따른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승원생활에 비해서 수하좌가 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출가자는 최소한의 생활방식이 되는 수하좌를 고지 받게 된다고 하겠다.
② 죽림정사의 유래
불교가 승가라는 수행공동체를 통해서 유지·발전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동기거처인 사원의 탄생은 불교의 역사에 일대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불교사상 최초의 절은 죽림정사이다.
정사란 부지런히 노력하는 수행자가 사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사원과 같은 말이다. 죽림정사는 붓다 당시 중인도의 마가다국에 있었던 절인데, 기증자는 빔비사라왕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죽림정사와 관련해서는 가란타장자가 보시한 것이라는 설도 있어 주목된다.
죽림정사가 ‘가란타죽원’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보아, 기증자는 빔비사라왕 보다는 가란타장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 빔비사라왕과 관련해서는 이곳에 60채의 집을 지었다는 내용이 보이므로 이 부분이 와전되어 빔비사라왕이 기진한 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즉, 터의 보시자는 가란타이고 정사를 지은 주체는 빔비사라인 것이다. 다만 왕과 결부될 때 해당 사원이 더욱 높은 권위를 가질 수 있으므로, 후에는 두 가지 모두를 빔비사라왕에 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 같다.
‘대숲절’이라고도 번역되는 죽림정사는 대나무가 많은 대나무동산이다. 대나무는 물성物性이 차기 때문에 대나무동산은 무더운 인도에서의 수행처로 적합하다. 또한 인도 대나무는 우리 대나무와는 달리 가시 같은 것이 있어서 사람들이 꺼리는 바이다. 이 역시 수행처로서는 용이함이 된다. 다만 대숲에는 상대적으로 서늘한 기운이 있기 때문에, 뱀이 많이 서식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뱀에게 물리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고는 하였다.
③ 기원정사의 규모
죽림정사가 인도불교 최초의 사원이었다면, 최고最高의 사원은 단연 기원정사이다. 또한 죽림정사가 영취산과 더불어 마가다국 왕사성의 불교거점이라고 한다면, 기원정사는 코살라국 사위성의 불교중심이었다.
기원정사는 당시 전인도의 최고 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수달須達, 즉 급고독장자가 건립한 곳이다. 기원정사와 관련해서는 황금으로 땅을 덮어서 터를 구입하고, 문을 포함하여 경행처經行處·강당講堂·온실溫室·부엌食厨·목욕탕浴屋 및 제방사諸房舍들이 두루 갖추어져 있었다고 『오분율』은 전하고 있다. 또 법현의 『불국기』에는 7층이었다는 설도 제시되어 있다. 즉, 매우 장엄하고 화려한 사원이었던 것이다.
일견 사원이 너무 편안한 구조를 갖추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불교는, 정신의 집착을 버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물질의 집착을 버리는 것이 주가 되지 않는다. 즉, 고행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환경이 좋은 것은 보다 효율적일 수가 있다. 이는 마치 노력만으로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환경에서 적절한 노력이 겸비될 때 보다 좋은 결과가 맺어질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좋은 학교일수록 1년 예산이 더 많고 교육시설이 더 좋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기원정사는 당시 전인도 최고의 불교학교라고 하겠다. 붓다께서는 이곳에 19 ~ 25년을 머무시며, 제자들을 지도하셨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원정사, 즉 기수급고독원을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경전들이 탄생하게 된다.
④ 승가람마僧伽藍摩
인도불교의 사원명칭에는 승가람마라는 것도 있다. 승가람마란 본래는 수행자들이 모여 사는 원림園林으로 아쉬람ashram(적절한 수행공간)과 비슷한 정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승가람마는 중국에 와서 승가람僧伽藍이나 가람伽藍으로 축약되어 불리게 된다. 우리가 사원을 가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종이가 비쌌고, 또 붓을 사용한 필기도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예전부터 단어를 축약하곤 했다. 그런데 이러한 축약에 어떤 특정한 원칙이 없다. 그래서 음사도 마구 축약하곤 하는데, 단체라는 의미의 승가僧伽를 승僧으로 아미타를 미타로 하는 등 다양하다.
가장 충격적인 경우는 선나禪那를 선禪으로 축약한 경우이다. 선나는 음사이기 때문에 선이라는 글자에는 당연히 명상과 관련된 의미가 없다. 선의 본래 의미는 봉선封禪의 예에서 살펴지는 것처럼 ‘터를 닦는다’는 것이다. 즉, 축약의 결과 음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자 아예 선이라는 글자에 ‘고요하다’는 뜻을 추가해 버렸다. 그래서 선에는 오늘날과 같이 고요하다는 의미가 내포되게 된다.
승가람마와 같은 경우도 승가람으로 축약했다가, 가람으로 재 축약한다. 결국 가람이라는 단어는 인도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중국적인 엉뚱한 축약의 문화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즉, 가람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에서 완성되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