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마경 강좌 -18 [전국비구니회관(법룡사)]
第四 菩薩品. 4. 지세보살과 마왕파순 5. 法樂(법락)
4. 지세보살과 마왕파순
佛告持世菩薩(불고지세보살)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여행예유마힐문질)하라
持世(지세)가 白佛言(백불언)하되 世尊(세존)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아불감임예피문질)하나이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憶念(억념)하니 我昔(아석)에
住於靜室(주어정실)이러니 時(시)에 魔波旬(마파순)이
從萬二千天女(종만이천천녀)하야 狀如帝釋(상여제석)하고
鼓樂絃歌(고악현가)로 來詣我所(내예아소)하야
與其眷屬(여기권속)으로 稽首我足(계수아족)하고
合掌恭敬(합장공경)하야 於一面立(어일면립)이어늘
我意謂是帝釋(아의위시제석)이라하야 而語之言(이어지언)하되
善來(선래)라 憍尸迦(교시가)여 雖福應有(수복응유)나
不當自恣(부당자자)니 當觀五欲無常(당관오욕무상)하야
以求善本(이구선본)하며 於身命財(어신명재)에
而修堅法(이수견법)이니라 卽語我言(즉어아언)하되
正士(정사)여 受是萬二千天女(수시만이천천녀)하야
可備掃灑(가비소쇄)니라 我言憍尸迦(아언교시가)여
無以此非法之物(무이차비법지물)로
要我沙門釋子(요아사문석자)니 此非我宜(차비아의)니라
所言(소언)이 未訖(미흘)에 時 維摩詰(시 유마힐)이
來謂我言(내위아언)하되 非帝釋也(비제석야)라
是爲魔來(시위마래)하야 嬈固汝耳(요고여이)니다
卽語魔言(즉어마언)하되 是諸女等(시제여등)을
可以與我(가이여아)니 如我應受(여아응수)니라
魔卽驚懼(마즉경구)하야 念(념)하되 維摩詰(유마힐)이
將無惱我(장무뇌아)일가하야 欲隱形去(욕은형거)나
而不能隱(이불능은)하고 盡其神力(진기신력)하되
亦不得去(역불득거)라 卽聞空中聲(즉문공중성)하니
曰波旬(왈파순)아 以女與之(이녀여지)라가
乃可得去(내가득거)리라 魔以畏故(마이외고)로
俛仰而與(면앙이여)어늘 爾時(이시)에 維摩詰(유마힐)이
語諸女言(어제여언)하되 魔以汝等(마이여등)으로
與我(여아)하니 今汝(금여)는
皆當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개당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니라
卽隨所應(즉수소응)하여 而爲說法(이위설법)하여
令發道意(영발도의)케하고 復言汝等(부언여등)이
已發道意(이발도의)인댄 有法樂可以自娛(유법락가이자오)요
不應復樂五欲樂也(불응부락오욕락야)니라
佛告持世菩薩(불고지세보살)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여행예유마힐문질)하라. 부처님이 지세보살에게 고하기를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라.”
持世(지세)가 白佛言(백불언)하사되 世尊(세존)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아불감임예피문질)하나이다. 저도 그 분에게 나아가서 문병할 수가 없나이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왜냐하면 憶念(억념)하니, 기억해 보니까 我昔(아석)에 住於靜室(주어정실)이러니, 저도 옛날에 고요한 방에 있었습니다.
時(시)에 魔波旬(마파순)이, 그 때 마왕파순이 魔波旬, 이랬습니다.
從萬二千天女(종만이천천녀)하야, 마왕파순이 만 이천 천녀들을 데리고, 아주 아리따운 천녀들 만 이천 명이나 데리고 狀如帝釋(상여제석)이라. 그 모습이 마치 제석천왕처럼, 그러한 모습을 갖추고서 鼓樂絃歌(고악현가). 온갖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이런 말이지요. 온갖 노래 뭐 풍류도 잡히고, 온갖 악기를 다~, 뭡니까? 만 이천 명이나 천녀들의 그 아리따운 모습에 별의별 악기를 다 들고, 노래를 부르면서 나타났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來詣我所(내예아소)하야 與其眷屬(여기권속)으로, 제가 있는 곳에 와서 그 권속들로 더불어 稽首我足(계수아족)이라. 제발에다 척~ 다소곳이,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는 것만 해도 좋은데, 거기 와서 떡~ 발에다 머리를 조아려 예배를 하고 合掌恭敬(합장공경)하야 於一面立(어일면립)이어늘,
합장공경해서 한쪽에 가서 다소곳이 서거늘, 我意謂是帝釋(아의위시제석)이라하야, 저는 생각하기에 ‘이 사람들이 제석천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而語之言(이어지언)하되, 그들에게 말하기를 善來(선래)라 憍尸迦(교시가)여, 잘 오셨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교시가여 雖福應有(수복응유)나 不當自恣(부당자자)니, (아주 너무 그렇게 화려하게 하고 오기에) 비록 복이 응당히 있긴 있어, 그럴만한 복이 있긴 있지만 마땅히 스스로 방자하게 써서는 안 되나니 當觀五欲無常(당관오욕무상)하야, 마땅히 오욕이 무상하다는 것을 관해서 以求善本(이구선본)하며, 선의 근본을 구할 것이며 於身ㆍ命ㆍ財(어신명재). 이 육신과 목숨과 재물에 있어서 而修堅法(이수견법)이니라. 견고한 법을 닦을지니라.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법문 참 좋지요? 너무 화려하게 그렇게 하고 왔으니까요.
복이 비록 응당히 있지만, 당연히 그럴만한 복이 있다 하더라도 함부로 그렇게 쓰지 말라. 이런 구절을 볼 때 그 유명한 법연스님이, 당신의 제자, 원오스님이 한 家를 이루어서 법을 펴려고, 예를 들어서 지금 같으면 하나의 수행 처 내지 대중처소. 또는 포교당. 무엇이라 생각해도 좋습니다. 스스로 나가서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교화 처를 장만하고, 거기서 교화를 하려고 하는데, 법연스님이 딱 네 가지를 일러 줬습니다. 그 유명한 법연사계라고 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 복이 있더라도 그렇게 함부로 방자하게 쓰지 말라. 그런 말이 있는데, 거기도 법연스님이 제자가 나중에 선지식으로 출세를 해서 큰 회상을 마련하고 교화를 펴는데 딱 네 마디 일러줬어요.
그것이 法演四戒(법연사계).
福不可受盡(복불가수진)이라. 복이 설사 많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 받아쓰지 말라. 福不可受盡이라. 참 아주 우리 일상생활 하는데 있어서 너무 중요한 교훈입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풍요롭게 삽니까? 뭐든지 그냥 마음먹은 대로 다 되지 않습니까? 편리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다 받아쓸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런 이야기가 있지요.
어떤 수행자 두 사람이 더운 여름날 산길을 넘고 마침 강물을 만났는데, 한 수행자는 그냥 벗어젖히고 강물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는데, 한 수행자는 겨우 팔만 걷고 물을 조금 찍어가지고 겨우 얼굴에 바르고, 조금 찍어가지고 얼굴에 바르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이 강물이니까 얼마나 많습니까? 들어가서 목욕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래서 목욕하던 수행자가 물었어요. “아니 땀을 그렇게 흘리고, 시원한 물이 이렇게 많은데 들어와서 시원하게 목욕을 할 것이지, 왜 그렇게 고양이 세수하듯이 물을 찍어서 얼굴에 바르느냐?” 이렇게 하니까 그 수행자가 하는 말이, “흐르는 물은 한이 없지만, 내가 수용하는 복은 한이 있다. 내가 쓸, 나에게 해당된 물의 양은 한이 있다.” 그랬어요. 참~ 그것 얼마나 근사한 말입니까?
물은 한이 없이 흘러요. 하지만 내가 쓸 것은 한이 있다 이 겁니다.
내 복은 한이 있는 겁니다. 그 “물이라고 해서 내 마음껏 써 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그럼 물이야 아무 상관없다 손치자. 하지만 내 복은 거기서 얼마나 마이너스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참 아주 좋은 교훈이지요. 우리가 아주 고준한 그런 높은 도리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그런 교훈도 참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勢不可使盡(세불가사진)이라고 그랬어요.
조실이 됐다고ㆍ주지가 됐다고 세력이 아주 당당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조실이고ㆍ주지라고 해서, 한 사찰의 책임을 다 맡았다고 해서 마음대로 그 세력을 행사하지 말라. 勢不可使盡. 아무리 안목이 높고, 또 거대한 사찰 하나를 맡아서 좌지우지 할 수 있다 하더라도 勢不可使盡. 절대 그렇게 함부로 다 쓰지 말라. 늘 겸손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교환해가면서ㆍ남을 배려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라. 그 다음에
規矩不可行盡(규거불가행진). 그런 말이 있습니다.
規矩는 법이잖습니까? 법도가 서있다 하더라도, 계율이 있고ㆍ규칙이 있고ㆍ어떤 청규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 행하지 말라ㆍ다 행하지 말라.
법도 딱 세워 놨다고 해서 거기에, 예를 들어서 안 맞으면, 조금 어겼다고 하면 사정없이 잘라버린다든지, 가차 없이 내쫓는다든지 이렇게 하지 말라.
規矩不可行盡. 참 그것도 정말 깊이 생각해 봐야할 일입니다.
법도를 세우는 것은 좋습니다. 또 있어야 합니다. 대중처소에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요. 청규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계율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것을 다 곧이곧대로 여법하게 한다고 그것을 그대로 칼날처럼 날 세워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好語不可說盡(호어불가설진)이라. 이것은 저보고 하는 말 같기도 한데요. 좋은 말이라고 해서 다 하지 말라. 그랬어요. 하하하하하하 좋은 말이라고 해서 다 하지 말라. 좀 아껴둬라. 好語不可說盡. 이 네 가지로써 제자가, 말하자면 교화를 펴러 떠나는 마당에 일러준 것입니다. 참 법연선사 아주 훌륭하지요? 그래 法演四戒 라고 해서 아주 유명하게 전해내려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卽語我言(즉어아언)하되, 곧 나에게 말하되
正士(정사)여, 보살이시여 受是萬二千天女(수시만이천천녀)해서,
이 일만 이천 천녀,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받아가지고 可備掃灑(가비소쇄)니라.
청소시키고ㆍ밥해오고ㆍ차 끓이고ㆍ시봉하고ㆍ빨래하고 그렇게 하는데 사용해라. 일만 이천 천녀를 ㅎㅎㅎ 그렇게 사용하라고 합니다.
참 이것 法演四戒하고 너무 아주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我言憍尸迦(아언교시가)여, 제가 말하기를 “교시가여 無以此非法之物(무이차비법지물)로, 이 非法. 법답지 아니한 이 물건으로써
要我沙門釋子(요아사문석자)니, 나 에게, 이 사문 석자에게 요구하지 말라.” 非法으로써 나 에게 왜 非法을 행하도록 그렇게 왜 요구하느냐? 그것이 어디라고, 만 이천 천녀를 갖다가 나보고 어쩌라고 뭐 청소하고ㆍ빨래하고ㆍ밥하고ㆍ차 끓이고 이런 때 쓰라고? 어림도 없는 그런 소리하지 마시오. 이랬어요.
此非我宜(차비아의)니라. 이것은 내가 마땅히 써야할 일이 아니니라.
라고 했더니 所言(소언)이 未訖(미흘)에 時 維摩詰(시 유마힐)이 來謂我言(내위아언)하되,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 때 유마힐이 떡~ 나에게 와가지고 하시는 말씀이 非帝釋也(비제석야)라.
이 사람은 제석천이 아니야, 是爲魔來(시위마래)야. 마군이가 변장을 해서 온 거야. 큰일 난다. 그래서 嬈固汝耳(요고여이)니라. 진실로 그대를 희롱하는 것이다. 또 흔든다ㆍ요란하게 한다ㆍ어지럽히려고. 그대를 어지럽히려고 하는 것이다. 嬈자는 어지럽힐 요 자입니다. 그대를 짐짓 어지럽히려고 하는 것이다.
卽語魔言(즉어마언)하되, 그러면서 곧 그 마군이에게, 제석천으로 변장한 마군이에게 말하기를 是諸女等(시제여등)은, 이 모든 여자들은 可以與我(가이여아)니, 나에게 주라. 이 사람은 받을 자격도 없고, 겁도 내고 그러니까 전부 나에게 달라. 如我應受(여아응수)라. 내가 마땅히 받아서 쓸 것이다. 나에게 주면 딱 좋겠네, 나에게 주라. 그렇게 하니
魔卽驚懼(마즉경구)라. 그 때 마군이가 그만 놀라고 두려워서
念(념)하되, 생각하기를 維摩詰(유마힐)이 將無惱我(장무뇌아)일가?
‘유마힐이 장차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것일까?’ 라고 해서
欲隱形去(욕은형거)라.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서 도망가려고 한다.
而不能隱(이불능은)하고, 그런데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해도 감출 수가 없어요. 워낙 유마힐 거사의 법력이 세니까요. 盡其神力(진기신력)하되, 그 신력을 다 했지만 亦不得去(역불득거)라. 도저히 도망갈 수가 없다.
그런데 卽聞空中聲(즉문공중성)하니, 공중에서 들리는 소리가
曰波旬(왈파순)아, 말하기를 以女與之(이녀여지)로써, 마왕파순아 그 여자들, 12000천녀를 그 사람에게 줘라. 乃可得去(내가득거)리라. 그래야 네가 도망을 갈 수 있다. 12000천녀를 유마힐에게 주면 네가 도망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리가 들린단 말입니다. 魔以畏故(마이외고)로, 그래서 마군이가 두려워한 까닭에 俛仰而與(면앙이여)라. 하는 수 없이 줬다.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보면서, 둘레ㆍ둘레 살피면서 하는 수 없이 유마거사에게 주거늘,
爾時(이시)에 維摩詰(유마힐)이 語諸女言(어제여언)하되,
그 때 유마힐이 여러 천녀들에게 말하기를 魔以汝等(마이여등)으로,
마군이가 그대들을 나에게 다 주었다. 與我(여아)하니 今汝(금여)는 皆當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개당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니라.
지금 그대들은 다 마땅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을 발할지니라. 나에게 와야 청소시키고ㆍ밥시키고 그렇게 아니한다. 보리심이나 발해라.
卽隨所應(즉수소응)하여, 곧 응하는 바에 따라서 而爲說法(이위설법)하여,
그들에게 딱~ 맞추어가지고서, 그들의 수준에 맞게 설법을 했다.
그래서 令發道意(영발도의)케했다. 道意를 발하게 했다. 도에 대한 뜻을 발하게 하고,
復言汝等(부언여등)이, 다시 말하기를 그대들이 已發道意(이발도의)인댄,
이미 道意를, 도에 대한 생각을 냈다면 有法樂可以自娛(유법락가이자오)요,
法樂으로써 가히 스스로 즐길 것이고, 법으로써 즐기라 말입니다.
그동안 무슨 풍류 잡히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는 그런 것으로 즐기지 말고, 法樂으로써 스스로 즐길 줄 알아라. 不應復樂五欲樂也(불응부락오욕락야)니라. 더 이상은 오욕락 즐기지 말라. 이런 법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法樂이라는 말이 떡~ 등장을 했어요. 그래서 다음엔 法樂이라고 하는 제목이 등장을 합니다.
이 불자의 즐거움. 다시 말해서 “불교를 믿고ㆍ불교를 공부하는 즐거움과 그 재미가 정말 훌륭한 재미고 즐거움이다.” 불자의 생활 덕목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불자로서의 일반 생활의 덕목.
5. 法樂(법락)
天女卽問(천녀즉문)하되 何謂法樂(하위법락)이니까
答言(답언)하되 樂常信佛(낙상신불)하며
樂欲聽法(낙욕청법)하며 樂供養衆(낙공양중)하며
樂離五欲(낙이오욕)하며 樂觀五陰(낙관오음)이
如怨賊(여원적)하며 樂觀四大如毒蛇(낙관사대여독사)하며
樂觀內入(낙관납입)이 如空聚(여공취)하며
樂隨護道意(낙수호도의)하며 樂饒益衆生(낙요익중생)하며
樂敬養師(낙경양사)하며 樂廣行施(낙광행시)하며
樂堅持戒(낙견지계)하며 樂忍辱柔和(낙인욕유화)하며
樂勤集善根(낙근집선근)하며 樂禪定不亂(낙선정불난)하며
樂離垢明慧(낙리구명혜)하며 樂廣菩提心(낙광보리심)하며
樂降伏衆魔(낙항복중마)하며 樂斷諸煩惱(낙단제번뇌)하며
樂淨佛國土(낙정불국토)하며 樂成就相好故(낙성취상호고)로
修諸功德(수제공덕)하며 樂莊嚴道場(낙장엄도량)하며
樂聞深法不畏(낙문심법불외)하며 樂三脫門(낙삼탈문)하야
不樂非時(불락비시)하며 樂近同學(낙근동학)하며
樂於非同學中(낙어비동학중)에 心無恚碍(심무에애)하며
樂將護惡知識(낙장호악지식)하며
樂親近善知識(낙친근선지식)하며 樂心喜淸淨(낙심희청정)하며
樂修無量道品之法(낙수무량도품지법)이
是爲菩薩法樂(시위보살법락)이니라
於是(어시)에 波旬(파순)이 告諸女言(고제여언)하되
我欲與汝(아욕여여)로 俱還天宮(구환천궁)하노라
諸女言(제여언)하되 以我等(이아등)으로
與此居士(여차거사)일세 有法樂(유법락)하야 我等(아등)이
甚樂(심락)하니 不復樂五欲樂也(불부락오욕락야)로다
魔言居士(마언거사)여 可捨此女(가사차녀)하소서
一切所有(일체소유)를 施於彼者(시어피자)가
是爲菩薩(시위보살)이니다 維摩詰(유마힐)에
言 我已捨矣(언 아이사의)니 汝便將去(여편장거)하야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으로
得法願具足(득법원구족)케하라하니 於是(어시)에 諸女(제녀)가
問維摩詰(문유마힐)하사대 我等(아등)이
云何止於魔宮(운하지어마궁)이니까 維摩詰(유마힐)이
言(언)하되 諸娣(제제)여 有法門(유법문)하니
名無盡燈(명무진등)이라 汝等(여등)은 當學(당학)이니라
無盡燈者(무진등자)는 譬如一燈(비여일등)이
燃百千燈(연백천등)하야 冥者皆明(명자개명)하되
明終不盡(명종부진)이니 如是(여시)하야 諸娣(제제)여
夫一菩薩(부일보살)이 開導百千衆生(개도백천중생)하야
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영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하되
於其道(어기도)는 亦不滅盡(역불멸진)하며
隨所說法(수소설법)하야 而自增益一切善法(이자증익일체선법)이
是名無盡燈也(시명무진등야)니 汝等(여등)이
雖住魔宮(수주마궁)이나 以是無盡燈(이시무진등)하야
令無數天子天女(영무수천자천녀)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면
爲報佛恩(위보불은)이며
亦大饒益一切衆生(역대요익일체중생)이니라 爾時(이시)에
天女(천여)가 頭面禮維摩詰足(두면예유마힐족)하고
隨魔還宮(수마환궁)하야 忽然不現(홀연불현)이러이다
世尊(세존)하 維摩詰(유마힐)이
有如是自在神力(유여시자재신력)과 智慧辯才(지혜변재)일세
故我不任詣彼問疾(고아불임예피문질)하나이다
天女卽問(천녀즉문)하되, 천녀가 곧 묻기를
何謂法樂(하위법락)이니까? 무엇이 법락입니까? 우리보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그런 것을 못하게 하고, 법락을 즐기라고 했으니 뭐가 법락입니까? 答言(답언)하되
樂常信佛(낙상신불)하며, 항상 부처님을 믿는 것을 즐기라. 信佛. 부처님을 믿는 것을 즐기라. 또
樂欲聽法(낙욕청법)하며, 법문 듣기를 즐기라. 樂欲聽法. 법문 듣기를 즐기라. 또
樂供養衆(낙공양중)하며, 대중들에게 공양 올리는 것을 즐기라.
樂離五欲(낙이오욕)하며, 五欲 떠나는 것을 즐기라.
樂觀五陰(낙관오음)이, 五陰을 관찰하는 것을 즐기라.
如怨賊(여원적)하며, 오음이 怨賊과 같음을 관찰하는 겁니다. 이것이 그야말로 五陰을 盜賊(도적)이라고도 하고, 사대를 독사라고도 하고요. 그런 표현이 앞에 있었지요? 五陰을 관찰하기를 怨賊과 같은 줄 관찰하는 것을 즐기라.
樂觀四大如毒蛇(낙관사대여독사)하며, 여기나오네요.
四大는 毒蛇와같은 줄 관찰하는 것을 즐기라.
樂觀內入(낙관납입)이 如空聚(여공취)하며, 內入이 빈 마을, 텅 빈 마을, 귀신 나오는 텅 빈 마을 같은 줄로, 그렇게 관찰하기를 즐겨라.
樂隨護道意(낙수호도의)라. 道에 대한 생각을 잘 따라서 보호하는 것을 즐기며,
樂饒益衆生(낙요익중생)하며,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는 일을 즐기며,
樂敬養師(낙경양사)하며, 스승을 존경하고 봉양하는 것을 즐기며,
樂廣行施(낙광행시)하며, 널리 보시 행하는 것을 즐기며,
樂堅持戒(낙견지계)하며, 계행 굳게 지키는 것을 즐기며,
樂忍辱柔和(낙인욕유화)하며, 忍辱하고 柔和하는 것을 즐기며,
樂勤集善根(낙근집선근)하며, 善根을 부지런히 모으기를 즐기며,
樂禪定不亂(낙선정불난)하며, 禪定에 들어서 산란하지 않기를 즐기며,
樂離垢明慧(낙리구명혜)라. 때를 떠나서 밝은 지혜가 있기를 즐기며,
樂廣菩提心(낙광보리심)하며, 보리심을 더욱ㆍ더욱 넓혀가는 것을 즐기며,
樂降伏衆魔(낙항복중마)하며, 온갖 마군의 항복 받는 것을 즐기며,
樂斷諸煩惱(낙단제번뇌)하며, 모든 번뇌 끊기를 즐기며,
樂淨佛國土(낙정불국토)하며, 이 세상을 정화하고, 이 세상을 청정하게 하는 일을 즐기며,
樂成就相好故(낙성취상호고)로, 相好成就하기를 즐기고, 상호성취하는 까닭으로 修諸功德(수제공덕)이다. 모든 공덕을 닦아야 相好가 成就돼.
아~! 이것 참 의미 있는 말이지요. 공덕을 닦아야 그대로, 아무리 어떻게 생겼어도, 그 생긴 모습대로 품위가 있고, 어떤 그 너그러움과 慈悲像. 이런 것은 저절로 우러나는 겁니다. 어떤 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모든 공덕 닦는 것으로써 相好成就하는 까닭에, 모든 공덕 닦는 것으로써 즐기라.
樂莊嚴道場(낙장엄도량)하며, 道場莊嚴하는 것을 즐기라.
樂聞深法不畏(낙문심법불외)하며, 深法을 듣고 깊은 도리. 유마경 같은 아주 깊고 높은 법을 듣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일로써 즐기라.
樂三脫門(낙삼탈문)하야, 이것이 空ㆍ無相ㆍ無作 ←이것을 三脫이라고 그러지요. 3해탈 문을 즐기고, 不樂非時(불락비시). 때 아닌 때를, 이것은 다른 어떤 3해탈과 반대되는 것을 여기서 非時라고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것을 즐기지 말고,
樂近同學(낙근동학)하며, 同學과 함께하는 것, 같이 공부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 공부하는 사람 가까이 해야지, 노는 사람 가까이 해봐야 소득이 없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 가까이 하기를 즐기며,
樂於非同學中(낙어비동학중)에, 동학이 아닌 가운데서도,
心無恚碍(심무에애)라. 그렇다고 공부 안 한다고 내치고 화내고 ‘저건 인간도 아니야.’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 말이 그 말입니다.
非同學 가운데서도, 동학이 아닌 가운데서도 마음에 걸림이 없는 것을 즐겨라. 그런 사람들에서도 다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그래? 너는 너 인생, 너의 상식대로 산다.’ 그렇게 아주 너그러운 마음 쓰는 것도 아주 즐거운 일입니다.
同學하고 어울려서 어떤 학문의 진취를 꾀하는 그런 것도 참 즐겁고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너그럽게 봐주는 그것도 사실은 아주 즐거운 일입니다.
樂將護惡知識(낙장호악지식)하며, 惡知識을 멀리한다. 그런 뜻입니다. 護자가 멀리하여 보호한다. 그런 뜻이에요. 惡知識을 멀리하는 것을 즐기라. 또
樂親近善知識(낙친근선지식)하며, 선지식을 친근 하는 것을 즐기라.
樂心喜淸淨(낙심희청정)하며, 마음이 기쁘고 청정함을 즐기라.
樂修無量道品之法(낙수무량도품지법)이, 한량없는 道品의 法을 닦는 것이
是爲菩薩法樂(시위보살법락)이니라. 이것이 보살의 법락이다. 보살로서ㆍ불자로서ㆍ불교인으로서 즐기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즐기라. 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於是(어시)에, 그 때에 波旬(파순)이 告諸女言(고제여언)하되,
여러 12000천녀들에게 말하기를 我欲與汝(아욕여여)로, 내가 그대들로 더불어 俱還天宮(구환천궁)하노라. 다시 함께 천궁에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듣고 가자.” 법문 그만 듣고 가자고 하니까
諸女言(제여언)하되, 여자들이 말하기를
以我等(이아등)으로 與此居士(여차거사)일세. 우리들로서 이 거사에게 주었다 이 말입니다. 이미 줬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有法樂(유법락)하야, 우리에는 법락이 있다. 我等(아등)이 甚樂(심락)하니, 我等은 그 법락으로써 심히 기뻐한다. 거사에게 주었고, 거사는 우리에게 이런 법문을 했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으로써 너무 즐겁고 좋다. 不復樂하고 五欲樂也(불부락오욕락야)이라. 더 이상은 오욕락을 즐기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魔言居士(마언거사)여, 魔가 말하기를 거사여
可捨此女(가사차녀)하소서. 이 천녀들을 그만 좀 놓아주십시오.
一切所有(일체소유)를 施於彼者(시어피자)가, 일체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是爲菩薩(시위보살)이니다. 이것이 보살이라면서요? 배웠다고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一切所有를 施於彼者.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이것이 是爲菩薩이니라. 이것이 보살이니라. 그러니까
維摩詰言(유마힐언), 유마힐이 말하기를
我已捨矣(아이사의)니, 나는 이미 놓아버렸다. 내가 그 사람들을 데리고 있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놓아버렸다. 汝便將去(여편장거)하라.
그대는 곧 데리고 가거라.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으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得法願具足(득법원구족)케하라하니, 법은 구족케 할지니라.
法의 願을 구족케 해라. 그러니까 於是(어시)에 諸女(제녀)가,
그 때에 여러 천녀들이 問維摩詰(문유마힐)하사대, 유마힐에게 묻기를
我等(아등)이 云何止於魔宮(운하지어마궁)이니까?
우리들은 어떻게 止於魔宮이니까? 이제 앞으로 어떻게 魔宮에서 살아야 됩니까? 云何止於魔宮. 우리는 어떻게 魔宮에서 살아야 됩니까?
維摩詰(유마힐)이 言(언)하되, 유마힐이 말하기를
諸娣(제제)여, 여러 누이동생들이여 有法門(유법문)하니, 법문이 있으니 名無盡燈(명무진등)이라. 이름이 無盡燈이라.
이름이 한량없는 등불. 하~~! 이것 좋은 말이지요?
無盡燈! 汝等(여등)은 當學(당학)이니라.
마땅히 배울지니라. 마지막으로 일러주는 겁니다. “가도 좋다. 마궁에 가도 좋다. 가되 이러한 역할을 하라. 무진등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가서 그대가 지금 여기서 보고 깨달은 것을 모두ㆍ모두 일러줘서, 또 많은 사람들이 그 법을 이해하게 한다면, 너희들이 거기에 갈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지요.
汝等은 當學이니라.
無盡燈者(무진등자)는, 무진등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譬如一燈(비여일등)이 燃百千燈(연백천등)하야, 이것도 또 유명한 말로 많이 인용됩니다. 비유컨대 하나의 등불이 백 개 천명의 등불을 불붙인다.
우리가 초파일에 등을 켤 때, 숫자가 많다고 여러 사람이 나눠서 켜는 것, 그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처음에 대표자가 성냥을 긋든지 불을 하나 딱 댕기면, 모든 사람이 거기 와서 붙여가서 하는 것이 옳습니다.
여러 곳에서 한꺼번에 붙이는 것 아닙니다. 한 등불에서 붙여가야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한 분의 깨달음을 통해서 5비구에게서 1250인으로, 그리고 오늘 날 우리들에게까지 불교가 전해지듯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어떤 전법의 형식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 초파일에 등 켜는 의식입니다.
그것을 모르고는 한꺼번에 그냥 들고 나가가지고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불을 밝히는 것, 그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것 크게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닙니다. 一燈이 燃百千燈이니까, 금방 한등 켜고 열 명이 붙여가고, 또 한 사람에게서 열 명이 붙여 가면 그것이 금방 10분 안에 그냥 한꺼번에 수천 명을 켤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 법을 여기서도 찾을 수가 있습니다. 無盡燈. 그래서 無盡燈입니다. 다함이 없는 등불이다. 한 등불이지만, 거기서 다 붙여가고ㆍ붙여가고ㆍ또 붙여서 간 곳에서 또 붙여가고ㆍ또 붙여가고ㆍ그렇게 하잖아요. 百千燈을 켜는 겁니다.
그래서 冥者皆明(명자개명)하되, 어두운 사람들을 다 밝게 하되
明終不盡(명종부진)이니, 거기까지입니다. 無盡燈者는 譬如一燈이니 燃百千燈하야, 冥者皆明하되 明終不盡이다. 여기까지요. 그 밝음은 마침내 다 하지 않는다. 더욱 더 밝아지지 밝음이 끝날 날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전법 포교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이고, 또 부처님의 그 법이 오늘 날 26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에게 까지 전해진 것도, 바로 이러한 노력에 의해서 우리에게 까지 전해진 것 아닙니까?
우리도 이러한 노력을 꾸준히 해야 되는 것이지요. 등불을 한 번 그림으로 그려 보십시오. 어두운 밤. 등불을 하나 누가 탁~ 켰다. 거기서 모두모두 붙여가는 겁니다. 붙여간 사람에게서 또 붙여가고ㆍ또 붙여간 사람에게서 또 붙여가고ㆍ이런 식으로 해서 캄캄하던 온 도량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지는 그런 것을 우리가 그림으로 그려 보고, ‘아~ 이것이, 불법이 한 사람에서부터 출발해서 장장 2600년의 세월동안 이렇게 세상을 밝혀왔다. 그런 뜻을 여기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如是(여시)하야, 이와 같아서
諸娣(제제)여, 여러 누이들이여 夫一菩薩(부일보살)이, 대저 한 보살이 開導百千衆生(개도백천중생)하야, 백 천 중생을 開導해서
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영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하되,
그들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하되 於其道(어기도)는,
그 道는 亦不滅盡(역불멸진)이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면, 내 아는 것이ㆍ내가 깨달은 것이ㆍ내 도가 손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불어나요. 가르칠수록 자기공부 되잖아요. 가르칠 때 자기공부가 많이 됩니다. 혼자 일방적으로 배울 때 보다 훨씬 더 되지요. 그래 꼭 가르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일반 불자들은 집에 가서 식구들 앉혀놓고 “오늘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했는데, 아 이거 좋은 말이더라.” 다 잊어버리시면 無盡燈. ←이 부분만이라도 펴놓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저절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쌓은 지식과 또 나름대로 들은 것이 거기 플러스가 되어가지고, 훨씬 더 좋은 해석과 설명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꼭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 공부를 위해서 가르치는 겁니다. 그 道는 亦不滅盡이라.
또한 멸진하지 아니한다. 그랬지 않습니까?
隨所說法(수소설법)하야, 설법하는 바를 따라서
而自增益一切善法(이자증익일체선법)이라. 一切善法이 더욱더욱 불어나게 만드는 겁니다. 자꾸 더 불어나게 만드는 것이 是名無盡燈也(시명무진등야)다. 이것이 이름이 무진등이다. 汝等(여등)이 雖住魔宮(수주마궁)이나,
비록 魔宮에 살고는 있지만, 以是無盡燈(이시무진등)하야, 이 무진등으로써
令無數天子天女(영무수천자천녀)로, 무수한 천자와 천녀들로 하여금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한다면 이것이 爲報佛恩(위보불은)이라.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 된다. 그리고 亦大饒益一切衆生(역대요익일체중생)이니라. 또한 일체 중생들의 큰 이익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일러줬습니다.
爾時(이시)에 天女(천여)가, 그 때에 천녀들이
頭面禮維摩詰足(두면예유마힐족)하고, 유마힐 발에다가 머리로써 예배를 하고 隨魔還宮(수마환궁)하야, 마왕파순을 따라서, 말하자면 부처님 법을 전하는 법사가 돼가지고 당당하게 還宮하는 것이지요.
忽然不現(홀연불현)이러이다. 홀연히 나타나지 않더라. 홀연히 사라지고 없더라.
世尊(세존)하 維摩詰(유마힐)이 有如是自在神力(유여시자재신력)과 智慧辯才(지혜변재)일세. 세존이시여 유마힐이 이와 같은 自在神力과 智慧의 辯才가 있습니다. 故我不任詣彼問疾(고아불임예피문질)하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그분에게 가서 문병할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持世菩薩에게 한 이야기지요.
여기서 마왕파순의 문제ㆍ또 법락의 문제ㆍ그 다음에는 無盡燈.
그렇습니다. 어떤 도인이 훔치러온 도둑놈을 앉혀놓고 법문을 해서, 그 사람이 改心(개심)을 해가지고 아주 훌륭한 제자가 되고, 또 훌륭한 사람이 됐다고 하는 그런 사례들을 우리가 역사에서 많이 읽고 있지 않습니까?
역시 마왕파순이가 12000 천녀를 데리고 와서 유혹하려고 했다가, 시험하고 유혹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그 사람들을 전부 깨우치는 그런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
첫댓글 _()()()_
_()()()_
法演四戒....._()()()_
當觀五欲無常하야 以求善本하며 於身命財에 而修堅法이니라... 마땅히 오욕이 무상하다는 것을 관해서 선의 근본을 구할 것이며 이 육신과 목숨과 재물에 있어서 견고한 법을 닦을지니라...[樂常信佛하며 樂欲聽法하라][無盡燈은 譬如一燈이니 燃百千燈이라]..釋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_()()()_
譬如一燈(비여일등)이 燃百千燈(연백천등)하야 冥者皆明(명자개명)하되 明終不盡(명종부진)이다...하나의 등불이 백 천등의 불을 붙여 어두운 사람들을 다 밝게 하되 그 밝음은 마침내 다하지 않는다. 釋대원성보살님~ 고맙습니다._()()()_
酪成就相好故(낙성취상호고)로 修諸功德(수제공덕)하며...모든 공덕 닦는 것으로써 즐겨라..._()()()_
無盡燈者는 譬如一燈)이 燃百千燈하야 冥者皆明하되 明終不盡이니...유마경_()()()_
無盡燈者는 譬如一燈이니 燃百千燈하야, 冥者皆明하되 明終不盡이다..고맙습니다._()()()_
樂成就相好故로 修諸功德하며...고맙습니다. _()()()_
無盡燈....다함이 없는 등불...고맙습니다_()()()_
法演四戒와 無盡燈! 말을 잊게 하시는 유마경! 고맙습니다_()()()_
_()()()_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모든 공덕 닦는 것으로써 즐겨라..._()()()_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_()()()_
나무 아미타불
당신은부처님_()()()_
_()()()_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_()()()_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