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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과 상상력
-상상력을 확장해 주는 시-
(시인 이 근 모)
목 차
1. 여는 말
2. 상상력을 확장해 주는 시
3. 맺음 말
1. 여는 말
시 창작에 관하여 강의를 하는 시인 모두, 시를 쓸 때는 수학의 정답 같은 글이 아닌
독자로 하여금 사고하며 상상력을 부여 받을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고 말 할 뿐 아니라
이를 시 창작의 기본 ABC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를 한다. 그러면 여기서 상상력 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개념 정리를 하고나서 이야기를 전개 할까 한다.
먼저 상상(想像)이라는 낱말의 뜻을 알아보면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이나 존재하지 않은
대상을 머릿속에 그려 보는 것’ 이라고 정의하며 심리적으로 ‘현재의 머릿속에 없는 표상
(表象)을 만들어 내는 마음의 작용’을 의미한다. 또한, 상상력(想像力)이라 하면 일종의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말로 ‘상상을 하는 능력’을 말한다.
누구나 다 상상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상상을 얼마만큼 확장 시켜 나갈 수 있는가는 그
상상을 확장 시킬 수 있는 능력, 즉 상상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상상력은 누구
나 다 똑 같은 능력이 되는 것이 아니고 개인차가 있다고 본다. 그러기에 이 상상하는 능력
을 키우는 사람은 더 좋은 글도 쓸 수 있고 그런 글을 접했을 때의 감상 능력도 뛰어날 것
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주제의 이야기를 펼쳐볼까 한다.
2008 년10 월 9 일 자 한겨례 신문에서 안도현 시인의 문학칼럼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본다. 그 칼럼의 핵심은 ‘단순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놀아라’ 라는 것이었다.
칼럼의 서두가 주제에 관한 핵심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그 당시 그 서두 글을 메모해 두
었던 것을 여기에 먼저 소개해 본다.
"비유는 일상적 언어 규범에서 일탈해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언어 용법이다.
은유, 직유, 재유, 환유의 뒷글자인 유(喩)는 ‘말하다’는 뜻의 ‘구’(口)와 ‘옮기다’라는 뜻을
가진 ‘유’(兪)의 결합이다. 즉, 비유란 말의 원래 뜻을 옮겨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뜻이
다. ‘개나리꽃은 노랗다’는 일상 언어를 ‘개나리꽃은 병아리 부리다’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바꿔보자. 이 병아리 부리 속에는 노란 색깔 이외에도 개나리꽃의 모양, 꽃잎의 연약함, 봄
의 이미지 등이 첨가된다. ‘노랗다’는 일상 언어의 평이함이 전면 확장되어 의미의 전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의 글은 비유의 개념을 확실하게 손에 잡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비유로 인하여 독자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확장 시킬 수 있는 맛을 보여 주었다는 것
이다. 이렇듯 대상과 대상을 연결하는 비유에서 일부러 꼬이게 하고 비틀고 덧칠하지 않아
도 얼마든지 상상력을 확장 시킬 수 있다고 본다. 아마 그래서 안도현 시인도 “꾸미지 않고
단순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놀아라”하고 주문하였다고 본다.
상상력의 확장에 대한 나의 소고를 여는 말을 통하여 언급하였다. 주제와 관련있는 시 인지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면서 나의 졸시 몇편으로 상상력을 확장 시키는 시를 감상해 볼까 한다.
2. 상상력을 확장해 주는 시
시를 읽고 감상하면서 그 시에 대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기 위해 가급적 시작노트 또는 시 감상에 대한 설명을 피하고 그저 시만 올리는 것으로 할까 하였으나 여러분의 시 감상을 통한 상상과 나의 시작 노트가 어떻게 다르고 차이가 있는가를 비교해 보시라는 뜻에서 간단히 시와 함께 시작노트까지 기술해 본다.
12월32일 / 이근모
그는 근로자 대기소 앞을 떠나고 있었다
새벽 별빛 밴 검정 운동화도
그를 따라 떠나고 있었다
커피 자판기 앞에서 뒹굴던
일회용 종이컵들도
함께 떠나고 있었다
인스턴트 커피향과 공사장 분진으로
두껍게 배어있던 작업복도
오늘만큼은 가볍다
새벽이슬 옷깃에 적시며
목 늘어놓고 기웃거려야 했던
일당쟁이 설움도 그 어디에 없는
자판기 동전 쏟아지는 소리만이
시간 멈춘 시계의 초침 소리 대신하고
태양마저도 억겁으로 불 지핀
세월 힘겨워 모습 감추는 오늘은
삼라만상 모두 한 가슴으로
심장의 맥박 같이하는 12월 32일.
우선 이 시에서 밑줄 부분의 단어, 검정운동화, 커피자판기, 일회용 종이컵, 인스턴트,
공사장 분진, 일당쟁이 설움, 자판기 동전, 시간 멈춘 시계, 등 IMF 이후 지금의 직장 현실과 기층 민중들의 암담한 삶을 표상 해보고자 나 열 해 본 단어들이다. 핏기 없이 소모되어가는 레디메이드¹⁾(Ready_Made) 인생의 그 암담한 현실을 아우러지게 하여줄 그날을 기대해 볼 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현실에선 없겠지만 마음만은 그런 날을 기대하고 만들어 보자는 의미에서 달력에 없는 한해를 마무리 하는 12월32일을 택하여 써 본 글이다.
그런 날의 상상은 어쩌면 현실로 다가 올 수도 있기에...
이 시의 작성 배경은 당시 내가 근무 하던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의 일부 업무가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민간위탁의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모든 운영비와 인건비를 보조해 주면서, 거기서 얻어지는 수익금이 모두 민간위탁자에게로 돌아가는 불합리성을 시정코자 민간위탁을 직영으로 돌리는 과정에서 민간위탁자에게 채용되었던 근로자, 그들의 처리 문제를 고심 하면서 썼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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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레디메이드(Ready_Made)란
원어 그대로 해석하면 ‘이미 만들어진’이다. 프랑스의 미술가 마르셀 뒤샹이 창조한
미적 개념의 용어다. 사전적 의미로는 ‘기성품의’, ‘전시용품의’ 작품이라는 뜻이다.
토담집 영혼 / 이근모
토방의 흙 냄새 문틈으로 스며든다.
스며드는 흙 냄새로 살 비비며 내일을 걱정하던 아내,
어느 날 갑자기 끼니를 이어주던 산나물 대신 앞산의
큰 바윗덩어리 하나 가져와 자신의 허파 속에 살게
하더니 그 혼백은 바위가 살던 자리로 여행을 떠났다.
슬픔은 토담집 영혼의 이브자리에 파고든 등잔 같았다.
이웃집 전깃불은 밝기도 한데 토담집 단칸방 등잔불은
침침하기만 하다.
침침 속에 젖어드는 고요는 언제나 쓸쓸하다.
기름도 바닥나 등잔불마저 꺼진 방안의 어둠은 오히려
눈부셔 온갖 상상의 나래 휘몰아 목이 긴 슬픈 목덜미로
하루를 지탱하던 의식들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다.
토담집 영혼은 매일밤 온몸에 어둠을 걸치고 여행을 한다.
쓸쓸한 그의 영혼,
토방의 흙냄새를 가슴에 두르고 소똥 밟았던 아내의 신발도
향기로와 토방 위에 소중히 올려놓는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살 터울이다.
나의 아버지 연세 59 세 되던 해 어머니는 57 세의 짧은 생을 폐암으로 마감 하였다.
한 때는 인근의 옹기종기 모여 있는 8 개 마을의 공동 생활권 내에서는 두 번째라면 서러울 부자 집이었는데, 내가 중학교 진학 할 쯤에 정치 병에 물든 나의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날려버리고 빚더미에 앉아 5칸 접 집 솟을대문 집을 처분하고 조그만 토담집을 마련하여 그 곳에서 생활 하던 중 내가 성년이 되어 공직 생활을 막 시작 할 무렵 폐암과 투병하시던 어머니는 치료다운 치료 한번 제대로 받아 보시지도 못하고 소천 하셨던 것이다.
그 당시 의료보험 제도가 없다보니 부모 형제를 부양하는 나의 박봉이 의료비를 감당할 힘도 없었지만 암에 대한 의료기술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못한 때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선친께서는 그 후 어머님과 사별 하신 후 30 여년을 더 장수하시고 소천 하셨는데 항상
어머님을 고생 시킨 후회감에서 당신님의 아내를 못 잊어 하셨던 나의 아버님을 생각하며 쓴 글이다.
해창만 추억 / 이근모
갯내음 물씬 물씬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던
해창만²⁾ 포구는 아련한 추억의 산실이 되었다.
갯벌 향하여 터뜨리는 다이너마이트 소리에
눈물 머금고 탯자리를 내주어야만 했던 갯내음은
마지노선 같은 방파제에 기대어 슬피 울어야 했다.
가을이 익어 가는 날
아득하게만 보이는 푸른빛이 너무 시리어
모람모람³⁾ 하늘 에도는⁴⁾ 구름은 햇살을 꼬여서
여름 먹고 통통하게 살찐 벼이삭 그림자를
소리 없이 낚아채어 노란 융단으로 깔아 놓는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강줄기 따라 늘어선 갈대는
고향 노래 부르며 이주의 한을 달래고 있고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 버거워
마을 어귀 당산나무 이파리에 재갈 물린 바람,
쉬는 것도 잠깐, 갈대의 유혹 뿌리치고
가는 길 재촉한다.
갯벌 굴쩍에 발바닥 베어 가며 멱감던 어린 시절
그리움 달래려 해창만 들녘을 거닐어 보건만,
포구 언저리 맴돌며 만선의 뱃고동과 어우러지던
물결은 어디로 가고 풍년가 갈 곳을 찾지 못해
통곡으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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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해창만 : 전남 고흥군 포두면에 위치함.
(지금은 간척지가 되어 이름만 있고 만은 없음)
주3)모람모람 : 가끔가끔 한데 몰아서.
주4)에도는 : 곧바로 나아가지 않고 멀리 피하여 돌다.
근대화의 물결에 떠밀려 피폐해 가는 고향에 바친 애가(哀歌)이자, 헌가(獻歌)로 노래한 시다. 가슴속 아련한 파문을 일으키는 여운을 이끌어 보고자 써본 시다. 그 여운 안에서 고향의 엘리지(Elegy)⁵⁾를 상상으로 확장 시켜 보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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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엘리지 : ① 비가 ② 애가 ③ 만가, 만가[애가]조의 시.
세월을 낚는다 / 이근모
세월을 낚으려면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
비워내지 않고 채우려고만 한다면
그 세월을 채울 공간이 없으리라
비움 가운데 바라보는 세상이
제대로 보여지는 세상이요
거기 보약으로 다가오는 대어가 있으리라
희망과 슬픔이 살다간 자리
진실과 믿음이 서로 만나는 자리
그리움은 빈 달빛으로 쌓이고
기다림은 채워지기를 바라는 꿈이 되리라
그리하여 우리들은 그 어느
인연의 끝에서 흔들리는 풀꽃으로
조그만 그리움을 낚는 것이다
진실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면
빈 마음으로 세월을 낚을 줄 아는
그대는 인생의 낚시꾼
한 줄기 빈 마음을 낚을 줄 알아야 한다
눈앞의 이익만 좇아
세월의 낚시터를 옮겨다니는 자
그 찌가 솟아오르는 날
대어는 놓쳐버리고 그대는
하나의 낚싯밥으로 사라지리니.
강태공의 낚시질을 당시의 일반인은 고기 낚는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 역시 세월을 낚고 있었는데 ---. 그래서 가장 하질의 낚시꾼은 고기요, 그다음은 사람의 마음이요, 그리고 최상의 낚시는 아마도 세월이 아닐까?
채움과 비움을 조화롭게 다룰 줄 알 때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세월을 다룰 줄 알 것이라고 나만의 해석으로 써본 시다.
그 채움과 비움 안에서 우리의 상상은 무한한 날개를 펴는 것이기에 ---.
이 시에서 확장 시킬 수 있는 상상은 뭘까?
그것은 아마 세월이라는 단어 안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제시해 본다.
세월은 ‘하이덱커’⁶⁾ 식으로 말하면 시간일 것이다.
‘시간’ 이는 바로 존재이자 인간 그 자체를 의미 할 것이다.
유한성(有限性)에 서있는 우리 인간이 평생 줄서기나 하고 정승 집 개 죽으면 문상 가는
그런 작태가 관료사회의 높은 직위 좋은 보직의 위치에 있는 자 일수록 더 심 함을 어느
회식자리에서의 아부 발언 작태를 보고 나만의 느낌을 적어본 아포리즘⁷⁾(교훈시)의
의미를 담아본 시로 그 아포리즘에서 상상을 확장 해 볼 것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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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하이덱커 :『존재와 시간』이라는 철학서를 편찬하여 세상을 흔들어 놓은 Freiburg 대학총장을 지낸
철학가.
주7)aphorism(아포리즘) : 격언 ,경구, 잠언, 즉, 짧게 생각을 함축하여 쓴 명언들이나 속담
봄의 소묘 / 이근모
반 평도 되지 않은 유리창 안에 광활한 우주가 물너울 친다.
아담과 이브의 공허가 밀애를 공모하며
파릇한 들판에 몽상(夢想)을 펼치고
그 너머 풍경,
시냇물 솟아오르고 산등성이 구름 타고 흐를 제
계곡을 달리는 바람꽃은
세속 등진 스님의 공양을 위해 뜸 들이는 김으로 피어오른다.
숲 속의 웰빙주택 빌라엔
유한부인(有閑夫人) 밥 타는 줄 모르고 콧노래 부르는데
논두렁 길, 새참 이고 가는 아낙의 함지박에서는
갈증이 배어있는 열무김치 싹이 튼다.
아지랑이 타고 돌아보는 봄나들이 길
매운 고추 울음으로 유리창에 머무는 무애(無碍)의 순간
눈(雪)빛 끌고 달려온 아담의 하얀 봄이
겨울 저쪽에 두고 온 이브의 풀빛 사랑 못 잊어
두견이 피리 소리로 버들가지에 걸터앉는다.
세상 모든 이치가 음양의 원리라 해서 남과여, 남극과 북극 등, 극과 극이 있고
이 극은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 아니면 진리다.
극과 극은 벌어지는 사이가 적당해야 된다. 그리고 그 극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아야 한다.
요즘의 사회 일반 현상, 특히 경제적 상황 그리고 정치적 상황, 이에 뒤질세라 줄서기
한 공직자들의 행태 모두가 양극화 현상으로 모 아니면 토라는 식이다. 이러한 현실을
나름대로 그려본 시다.
양극화를 없앤다는 봄소식은 한낱 허공의 메아리 일뿐 푸른 봄 아닌 하얀 봄이고,
윤리성의 문제로 지탄 받는 아담과 이브가 공모하여 부자 되고 출세하는 세상, 놀고
먹으며 투기에 밝은 졸부들, 유한부인 웰빙시대에 농촌 아낙의 고단한 삶...
진정한 봄은 언제쯤일까 두견이 피리 소리가 버들가지에 걸터앉을 때쯤일까?
독자에게 판단과 상상을 유보해 본다.
메밀밭에서 / 이근모
산야초 영혼들이 햇살 몰고 와
고창 들녘 노릿노릿
가을을 여물게 한다
메밀밭 하얀 웃음
사잇길 놓아
이내 속 달빛을 마중하고
낙조(落照)는 구시포로 달려가
석쇠 달구어 전어를 굽는다
석쇠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갯내음
도솔 계곡 바람 타고
메밀 꽃향기와 열애를 할 제
별빛 불러 모은
선운사 주지 스님
산야초 넋들 위해
독경을 한다.
※ 이내 : 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
이 시 역시 앞에서 감상한 봄의 소묘와 일맥상통한다.
요즈음 유난히 소외계층이 급증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정책이 있으나 이 시를 쓸
당시(2006년 9월) 소외 계층이라는 용어가 생기기 전이였다.
나는 산야초가 바로 소외계층이 아닐까하는 예감이 문득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창 메밀밭 구경을 가자는 주변의 권유로 무심코 따라 나섰던 고창의 메밀밭 축제,
그곳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과 마침 무슨 영화 인지는 몰라도 영화 촬영까지 하는
행사 때문인지 인파로 북적 거리고 있었다.
고창 들녘의 나락은 풍년을 예고하고 있었고 메밀밭의 메밀꽃은 주변의 산야초(들풀)와
조화를 이루며 그 멋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관광객 모두가 그 행사의 주인공인
메밀꽃에만 관심과 찬사를 보내면서 메밀꽃과 함께하는 기념사진 찍기에 열중이었다.
메밀꽃의 기에 눌려 소외 받고 있는 산야초들---
그들이 있기에 자연이 탄생하고 어우러지는데, 이것이 바로 작금의 사회라는 것을
느끼면서 소외 받고 있는 국민을 달래줄 진정한 지도자를 상상하고 그려 보면서 쓴 시다.
퉁소 / 이근모
곧은 심지 하늘 향해
세상을 점령 할 듯
영혼을 점령 할 듯
마디마디 한을 맺고
마음 비운 너의 참 뜻
너에게 둥지 틀고
참선(參禪)의 가부좌(跏趺坐)로
눈을 감고 바라보니
바람 붙들고
통곡하고 있구나
감아야만 들리는
너의 울음소리
무슨 설움 있기에
그렇게도
슬피 우는가
감아야만 보이는
너의 빈 마음
무슨 꿈 이루려고
그렇게도 힘차게
뻗고 있는가
가슴으로 말하는
너 앞에서
외길 걷는 나그네
울음에 빠져들어
눈을 뜰 수 없구나.
우리 민족은 恨을 가슴에 안고 사는 민족이다.
민족의 역사 자체가 바로 恨으로 엮어 있다.
이러한 한을 풀어내는 방법의 하나가 풍류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은 풍류를 즐겼을 것이고 이 풍류를 통하여 호연지기 같은 서로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풀어 갔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을 해본다.
개인의 삶 역시 외롭고 허전함을 느낄 때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싶고 그 상대에게 의지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의 심정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는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하기 보다는 눈으로 소리를 들어보고 귀로 빛깔을 보고 감은 눈으로 바람을 보는
오관의 작용을 통해 상상력 확장과 함께 자신의 심정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하루의 고독한 일과를 마치고 밤늦게 퇴근을 하는데 쌍촌동에 위치한 호남대와
상무고 사이에 있는 숲에서 누군가가 외롭게 앉아 퉁소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
했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한참을 머무르고 바라보면서 그때의 심정을
나만의 상상으로 읊어본 글이다.
아직 / 이근모
그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우린 아직 청춘이다.
아직 가시지 않은 흥분에
찬란을 비상해 보지만
계절은 아직 겨울이고
봄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나도 아직, 너도 아직, 우리도 아직
수면안대 잡고 있는 대낮 그림자도 아직 이다.
사방 고요 안에 퍼져가는 아직 이여
촛불 기도도 아직 이다.
도망치는 대낮의 마침표 찍는 아직에
저녁이 먼저 온다.
그래도 별이 뜨기에는 아직 멀었고,
누군가가 묻는다.
샛별 언제쯤 반짝 이냐고---.
우리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이 무한한 욕망으로 인하여 인간이 이루어 내고자 하는
이상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위의 시 ‘아직’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언제나 미완으로
갈증을 주고 그 갈증을 해갈 시켜줄 꿈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미완의 공간과 시간에
수렴 될 수 있는 말 ‘아직’에서 끝없는 상상을 펼쳐보시길 권한다.
그날까지 / 이근모
고독할 순간
나는 즐거워야 할 의미를 찾아야 했다
슬퍼할 순간
나는 행복해야 할 의미를 찾아야 했다
고독과 즐거움, 슬픔과 행복
엇갈린 궁합은 아가리를 벌리고
삶에 빗장을 걸었다
해거름 땅거미에 하늘이 깔리던 자리
그 자리에서 나는
오늘도 갈증을 달랬다
여명이 빗장을 걷어내는 그날까지.
앞서 소개한 ‘아직’이라는 시와 이 시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아직’의 시에서 설정한 아직 오지 않는 길에서 구원의 의지로 구경적(究境的)인
삶을 희망하는 그런 메시지를 담아 오늘에 처해 있는 화자의 번뇌를 그려 본 것이다.
꿈꾸는 별 / 이근모
너와 나의 눈빛 사이에
별이 반짝인다.
만월 속 절구에선
인연을 찧는 메가
별들을 주워 담는다.
황소자리 별이
쥐자리 별을 향해
음매 하고 울면
은하를 건너는
주인 잃은 구름이
기우뚱 침몰하는
하늘에
너와 나의 서글픈 눈이 있다.
너와 나의 서러운 인연이 있다.
꿈을 꾸는 저 별 속에 - - -
‘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꿈, 희망, 소망, 그것도 현실 속에서 미래를 향한 ---
이 시에서 담고 있는 꿈의 메시지는 뭘까? 그리고 화자가 이야기 하는 ‘황소자리 별’ 과
‘쥐자리 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왜 화자는 별자리에 없는 별자리 이름을 가져
왔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독자 여러분의 상상 속으로 유보해 본다.
그리매 드리우는 생일에 / 이근모
5월 초엿새 미역국 펄펄 끓여
바다를 마신 날
종달새 서러운 풀빛 물고
청보리 밭에 날아드는데
6월 장마는 어디만큼 왔을까
엄마 젖 빠는 아이
종달새 울음,
빗물 길어 쑨 풋보리 멀국으로
배꼽을 잘랐는데
어느덧
서산마루에 걸친 노을
60성상 희로애락을
그리매로 드리우고
자식들 효도 철석 이는
바닷가에 서서
된장 바른 엄마 젖 보채던 그날을
갯내음으로 달래는데
초저녁 하늘에 떠있는
하얀 눈썹 파도에 잠기는
드리우는 그리매
드리우는 그리매.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의 참 뜻을 알기에 앞서 사르트르의 태생에 대하여 언급한다.
사르트르는 그 어머니가 작부 이다. 따라서 사르트르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다. 이러한 환경에 처한 사르트르는 인간의 탄생 문제를
신의 의지인가? 아니면 동물학적 생리행위에 의한 것인가를 놓고 갈등과 고민 속에 방황
하다 얻은 결론이 신의 장난이든 생리학적 장난이든 인간의 탄생에 있어서 또는 동물의
탄생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탄생 한다는 결론을 내고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명언을 남겼던 것이다.
이 뜻을 알기 쉽게 해석해 보자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어나는 생명체를 실존이라 하고, 어떤 의지를 갖고 만들어진 물체를 본질이라 가정할 때, 인간은 실존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본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한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동의 편리를 위해 자동차를 생산 했다면, 이것이 바로 본질인 것이다. 여기에 기초를 두고 우발적이고 허망한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은 자신의 자유에 모든 것을 걸고, 이성으로 절망을 인식해야했다.
이성을 가진 인간과 비합리적인 세계 사이에 있는 모순이 부조리인데, 이것을 논리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즉 반항하며 허무감을 이겨내고 휴머니즘을 재건하자는
사상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존재라는 어휘를 많이 활용한다. 이럴 때 이 존재는 실존으로 봐야 할까?
본질로 봐야 할까?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는 그 자체가 무한한 상상력을 부여하고 있다 하겠다.
65회의 생일을 맞은 날 자식 며느리 사위와 함께 손자 손녀까지 다모여 축하 파티를
열어 주고 온 가족이 바닷가 구경을 갔지만 왠지 드리우는 그림자, 그것은 불현듯
떠오르는 부모님이셨다. 특히 효도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일직 세상을 하직한
어머니가 왜 그리도 그립고 불쌍하게 떠오르는지...
그런 심정을 억제 하면서 그리움에 대한 그리고 그 그리움 뒤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해 보고자 쓴 시다.
바람의 색 / 이근모
너는 항상 흔들면서 존재를 알렸다.
나를 사랑한다는 그녀는
바람을 더 사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내를 마구 흔들어댔으니까.
그러면서 내를 바람이라고 했다.
삶의 깊이가 가슴 한가운데에
나이테를 둥글게 둥글게 그려나갈수록
나는 정지한 세계를 사랑하려 했다.
그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는 세계는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기에.
흔들리지 않는 나에게
그녀는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구름 끼고 흐린 날에는 회색을
청명하고 맑은 날에는 파란색을
내 본연의 하얀색에 덧칠해가며
폭우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럴 때는 내면 깊숙이에서 핏빛 같은
붉은 톱날이 바람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바람을 사랑하는 그녀
오늘은 또 무슨 색을 칠할까
조용히 그녀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하루의 느낌표를 기다려 본다.
침묵을 꽉꽉 움켜쥔 채로
바람의 방향을 재고 있는
풍향계를 향하여.
위의 시 ‘바람의 색’은 당초 ‘번뇌의 총량 법칙’ 주제에서 다루려고 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빠져 ‘상상과 상상력’ 주제에서 다룬다.
‘바람’이라고 하는 단어는 많은 문인들이 즐겨 쓰는 단어일 뿐 아니라 이 단어가 의미하는 이미지와 메시지 또한 글 전체의 내용을 읽고 감상하고 난 후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여, 이 시는 번뇌를 토해내는 시 이면서도 그 번뇌가 무엇인가?
어떤 관계에서 온 번뇌인가? 등 상상력도 키워 볼 수 있다고 생각되어 ‘상상과 상상력’
주제에서 소개하니 독자 여러분에게 맡겨 이 시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상상하여 보시기
바란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먹고 산다. 그 사랑이 이성적이든 이성적이지 아니든---.
사랑이라는 것이 그 만큼 우리의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시 창작에 있어 대상의 ‘고유한 특성 잡기’에 대하여 언급한바 있었다.
이 고유한 특성 잡기는 무한한 상상력을 확장 시켜 준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의 시편들은
‘등나무’와 ‘대서(大暑)’ 등의 대상을 놓고 나름대로 그 대상의 특성을 잡아 써 본시로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을 확장시켜 드린다는 뜻에서 시작노트의 언급은 생략하고 7 편의 시만을 소개 한다.
등(藤)나무 / 이근모
사방은 고요하고
들리는 건 바람소리와
어둠을 타고 찾아드는 공허 뿐
싸늘한 밤공기는
나의 빈 가슴을 후려치고
외로움 소리 없이 토해내는 밤
나에게 따스한 길손으로
그리움이 묻어온다.
초조한 기다림, 기다림
그것은 나를
한 없이 무기력하게 만들고
마음 한 구석을 마구 헤집으며
신경을 마비시켜
온 몸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 날 밤 그녀가 찾아 왔다
나의 영혼이 품고있는 성스러움으로
나는 그녀에게 충실했고
그녀 역시 긴 허리 휘감아
나에게 안겼다
언제나 한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나는
그녀가 말하는 목소리에
가슴이 뛰었고
그녀의 몸 짓 하나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가 남겨준
사랑의 흔적에 허우적대며
언제나 그녀를 곁에
잡아 두고만 싶은 나
마지막 꽃잎을 떨구고
어둠속 바람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서로를 느끼는
충분한 사랑이 있기에
영혼과의 밀어가
강렬한 자극임을
부정해 본적 없기에
그녀의 말 뜻, 행동 하나에
또 다른 사랑이
차고 넘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밤
그녀와 함께 잠들 수 있기를
헤로인 보다 강한
욕망에 빠질 수 있기를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그녀를 가슴에 품고
날개 짓 하다
그녀 안에서 사그라지는
불나비가 되는---
대서(大暑)의 여자 / 이근모
무더위가 절정으로 신음하는 대서(大暑) / 나는 우산을 쓰고 햇빛을 먹고 있네. //
하늘엔 비구름이 / 내가 먹는 햇살을 시샘하고 //
온몸에 밴 땀 / 전율하는 내 몸을 애무질 하네. //
비는 내리지 않고 / 밀고 당기듯 애태우는 비구름. //
애태우게 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 애태우게 한다고 갈증이 더하나요. //
주룩주룩 빗물이 땀방울에 올라앉은 날 / 나는야 해 뜬 날 쓰고 있던 우산을 접고 //
내리는 빗방울로 땀방울 반죽하여 / 철떡 철떡 방아 찧었네. //
그립고 아쉬워 조이던 가슴
뻥뻥 뚫어지게 하려고
대서의 여자, / 그렇게도 나를 애태웠나 보네.
레드 와인을 그라스에 부딪쳐 마시고 온밤을 너와 나는 현악기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는 거룩하였고 그라스에 찰랑찰랑 환희로 채워 우리의 목을 축여주었다.
가늘게 뜬 눈을 당신의 혀 밑에 밀어 넣으니 우리는 한 몸으로 숭고해졌다.
당신은 당신의 소리를 나에게 바쳤고 나는 나의 소리를 당신께 바쳤다.
아스라이 물결이 울려 퍼지고 열대야의 밤은 시침, 분침, 초침까지도 온전히 제자리에 멈추게
하였다. 멈춤의 시간은 더욱 영원한 세계로 치닫는 듯했고 당신이 켜는 현악기 소리 또한
잔잔한 물결로 반짝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다섯 번의 고지를 향해 열대야가 서서히 열기를 식혀 갈 때 그라스에 채워진 환희가 마르고
당신이 켜는 현악기 떨림은 다섯 번이나 팽팽하게 튕겨 나왔다. 우리는 이렇게 화음의 일치
속에서 사랑하였지만 열대야의 온밤을 정복하지는 못 했다. 나는 새벽을 맞으려 홀연히 일어
섰고 당신은 또 다른 새벽을 향해 현악기 줄을 당기고 있었다.
물망초 꽃말 / 이근모
포기한 머리를 따라주지 않는 마음아
이것이 우리의 인연이란 말인가
비우고 비워서 모든 것을 비웠는데
딱 하나 마음에서 비워내지 못한 것
너에 대한 포기였다
잊어야만 살 것 같아, 잊어야만 살 것 같아
잊으려 할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추억아
떠나야지 하면서 조용히 감은 눈에
필름이 스친다.
포기한 머리에 하얗게 김 서리고
가슴에는 뜨거운 서리가 맺히는 마음
이것이 우리의 인연이었던가
이것이 우리의 미움이었던가
이것이 우리의 미련이었던가
미움이 미움을 낳고
미련이 미련을 낳으며
우린 이렇게 떠나는 것이다
미움을 만들고 있는 사람아
미련을 만들고 있는 사람아
가녀린 물망초 꽃
말없이 훌로 피는구나.
※물망초 꽃 말:나를 잊지 말아요
콜록콜록 골방이 기침 멈춘 날 / 이근모
콜록콜록 기침이 꿈을 꾼다.
삼 년째 지붕을 이지 못해 영양실조 걸린
초가지붕도 골방의 기침에 전염되었나 보다.
구름 낮게 깔린 하늘 보며
콜록거리는 것을 보니 - - -.
어린 자식 유치 갈며 뽑아낸 이를
아버지는 지붕에 던지며 외친다.
오복 중의 오복아 튼실하게 뻗어나라
짚더미야 햇살 환한 웃음 빌어
이엉 엮어 지붕도 이으려무나.
염원은 먹구름 안에서 눈물 되어 흐를 때
골방의 노모 기침
이 빠진 잇몸에서 맴돌고
지붕에는 아이의 이가
낡은 지푸라기 잡고 허우적거린다.
비새는 골방에 놓아둔 양철 대아
똑딱똑딱 시곗바늘 소리처럼
비 그칠 시간을 재고
문풍지는 골방에 엄습하는
어두운 곰팡내를 말린다.
아이의 영구치아가 돋아나는 날
골방의 기침 소리 멎고
노모의 저고리가
이엉을 대신하여
지붕을 이었다.
종이 분쇄기 / 이근모
일과를 끝내고 퇴근 5분 전
종이 분쇄기가 톱날을 돌린다.
하루의 역사가 기록되었던 비밀을
종이 분쇄기가 주워담는다.
사각의 상자 안은 누구도 해독할 수 없는
암흑이 탈출구를 찾아 뚜껑을 연다.
FBI도 풀 수 없는 암호가 돼버린
비밀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꽃비 내리듯 - - -
내리는 꽃비는 침묵이다.
혀는 침묵을 둘둘 말아 어! 어! 아! 아!
소리만 낼 뿐 조각난 언어들을 맞춰도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다.
거슬러 간 시간에 마침표 같은 점하나 찍으니
조각난 문자에서 찾아낸 비밀은
어는 여가 분쇄된 그리고 아는 야가 분쇄된
문자라는 것만 해독하고 있었다.
종이 분쇄기 전원 스위치에 묻은 지문을 찾아
여~♪야~♬ 합창을 하는 불협화음 무대여, 무대야.
끝내 막은 내리지 않고 스피커만 요란하다.
종이 분쇄기도
스피커만은 조각내지 못하는가 보다.
조명만 반짝이는 무대에
촛불을 흔드는 관객들 손만 뒤엉킨다.
-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멸실 뉴스를 듣고 -
지리산의 봄 / 이근모
지리산에 찾아오는 바람
계곡을 씻는다
이름없는 영혼들 바람을 마시며
아들 딸 손자 손녀 발걸음 소리 듣는다
지난봄에 불던 바람 눈물을 닦더니
이번 봄에 부는 바람 가슴을 씻는다
얼은 계곡 풀리기도 전,
여름이 먼저 와버린다
땀방울, 철쭉 꽃술에 걸려 있고
지리산 봄바람 조상 안부 묻는다
가끔, 가끔 쳐다보는 천왕봉
무엇을 기다리나
수많은 발자국을 다 먹어 치우고도 - - -
봄 바람 나팔 소리로
기상을 알리기엔 늦은 오후
산봉우리 향하여 돌격을 외친다
풀잎마다 스민 묵념
떠도는 영혼을 달래면
어디선가 고향의 봄 노래가
산 정상에 걸린다.
눈길을 걸으며 / 이근모
온 누리가 한결같이 하얀 말을 하고 있다.
발자국 디딜 때마다 밟힌 눈이 말을 한다.
"뽀드득뽀드득"
그저 의미 없는 마찰음으로만 생각하고
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걷기만 하다가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무심히 들은 뽀드득 소리
그것은 단순 마찰음이 아니고
눈길 조심하세요 라고 하는 말이었다.
양지바른 곳엔 벌써 눈이 녹아
"질퍼덕질퍼덕"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그냥 눈의 우는 소리로만 알고
한 눈 팔고 걷다가 웅덩이를 밟아
구두와 양말에 물벼락을 맞았다.
젖은 구두 탈탈 털고 있을 때
자동차 쏜살같이 지나면서
차도의 질퍽한 눈을 내 양복에다 퍼부었다.
눈의 울음소리로만 알았던 질퍼덕 소리
이 또한 차 조심 웅덩이 조심 하세요 라고
하는 말이었다.
윙윙 바람이 분다.
저 바람 소리는 무슨 말을 걸어오는 것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바람을 피고 나면
윙윙 바람 소리 말을 들을 수 있으려나
내안의 연인과 눈밭에서 뒹굴고 싶은 날.
3. 맺음 말
상상과 상상력이라는 주제 하에 부족하나마 나의 졸시와 함께 상상력을 확장해 주는
시 감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안도현 시인께서 언급한 ‘단순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놀아라’ 하는 의미를 새겨 보았다. 만약 상상력을 확 장 시켜 준답시고 특정한 개념과
틀에 갇혀 대상과 대상을 연결하는 은유에서 비틀고 꼬며 덧칠 했다면 그 시가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확장시켜 줄 수 있었을까? 물론 상상력을 확장 시키는데 오히려 저해
되었으리라 본다.
하여, 나는 상상력을 확장 시켜주는 시는 단순하고 엉뚱한 사고력이 동원되는 시라고
본다. 어떤 특정한 개념과 틀에 얽매이지 않은 그런 상상력의 시라고 ---
끝으로 이렇듯 엉뚱한 상상력을 일깨우는 와이담 하나를 소개하면서 본 주제의 글을
마친다.
부산 가시나와 대구 머시마가 소개팅으로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서로의 궁금한 것과 인적 사항을 묻다가 부산 가시나가 물었다.
“고등학교는 어데 나왔는데예?”
그러자 그 머시마는 대구 달성고를 졸업 했는지라 달성고를 줄여서
“저 예, 달고 나왔습니더.”
그 말을 들은 요, 부산 가시나 가뜩이나 남자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했는데,
달고 나왔다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속 창자가 확 뒤집혀 도저히 못 참고 이빨 새로
침을 찍 한번 뱉고 선, 한마디 하는데
?
?
?
“짜슥, 무스마라는거 디게 자랑하네”
“그래, 니는 달고 나왔나?”
“나는 째고 나왔다.”
“째고 나와서 뜹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