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과 관련하여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수업을 잘 하기 위한 교사들의 노력은 상당하였으나 그 방법적 접근은 서로 제각각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제각각의 노력들은 정보를 가공하여 네트워크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는 관심이 없거나 인색하다. 더러 다양한 정보들이 네트워크화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정보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경우도 드물다. 활용은 무비판적 수용과는 다르다. 무비판적 수용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가 동학년 협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학년 교육과정 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학년의 특정 교사에 의해 작성된 학년 교육과정 편성 운영 계획이 학년의 전 학급에서 동일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운영의 편의성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과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교육활동들이 전년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고 교수 방식이 잘 개선되지 않는 연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교실 상황이 동일한 경우란 없다. 따라서 가공된 정보가 그대로 적용될 개연성은 희박하다. 그런데도 동일한 방법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것은 실패를 내재하고 수업을 하는 것과 같다.
풍경 하나
어느 학교의 수학 시간. 원둘레를 구하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이런 류의 시간들은 교사가 칠판을 중심으로 원둘레를 구하는 공식의 원리를 설명하고 공식에 기계적으로 수치를 대입하여 구하는 행위가 대부분이었다. 공식으로 구한 원둘레가 실측되는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학생들이 하는 일이란 원, 반원, 또는 특정 각도를 이루는 원의 일부분 등에 대해 공식을 적용한 둘레 또는 호 구하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 수업은 운동장에서 이루어졌다. 줄자가 동원되고 이를 가지고 모둠별로 실제로 운동장을 종이 삼아 큰 원들을 그렸다. 줄자를 이용하여 원둘레를 실제로 재어보고 공식으로 구한 결과와 비교하였다. 그리고 원둘레를 지름으로 나누어 보는 활동을 통해 원주율을 확인하였다.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 모둠원들은 서로 힘을 합하여 열심히 지름이 서로 다른 크고 작은 원이며, 특정 각도만큼의 원들을 그렸다. 학생들은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거리고 모둠별로 자기들이 그린 원을 실측하고, 공식을 대입해 구하고, 그 둘을 비교해 보고,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토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풍경 둘
어느 교생실습을 하는 학교의 도덕 시간. 교생들에게 도덕 공개 수업을 한다는 공고가 있었다. 공개 수업은 특별한 준비도 없었고 여느 수업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떻든 많은 예비 선생님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많은 눈동자는 안중에도 없는 듯 학생들과 눈맞춤을 하고 있었다. 수업 과정은 참으로 단순하였다. 질서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학습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거의 한 시간 내내 학생들과 묻고 답하고, 다시 묻고 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때로는 학생끼리 묻고 답하기도 했다. 이 경우 교사는 학생들의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 최소한의 범위에서 적절히 개입을 할 뿐이었다. 공개 수업 장면에서 흔하게 보아왔던 화려한 자료도 없었고, 특별히 의도적으로 꾸민 흔적도 없었다. 동기유발을 위한 특별한 장치가 있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선생님이 있었고, 학생들이 있을 뿐이었다. 예비 선생님들은 처음에 무엇을 보라는 것인지 궁금해 했고, 이내 따분해했다. 그런데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 차츰 학생들의 의견이 활기를 더해 감을 관찰할 수 있었다.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을 꼬집기도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자기의 잘잘못을 솔직히 이야기하기도 하며 앞으로 의 행동에 대한 다짐을 하기도 하였다. 강요가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다른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해 보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를 알게 된 것이다. 수업 속에는 학생들의 웃음과 다른 친구들에 대한 칭찬과 배려가 있었음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따끔한 질책도 있었다.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문제 제기에 대한 결론에 도달해 가고 있었다. 모든 활동은 학생들 스스로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히 선생님의 주된 일은 학생들의 의견이 논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주고 가끔씩 특별한 경우 보충해서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수업이 끝날 즈음 학생들은 질서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각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학생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