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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밭과 순희는 울지 않는다!
제목 : 망종(芒種 Grain in Ear)
연도 : 2005
제작 : 중국, 한국
감독 : 장률
배우 : 류연희(최순희 역), 김 박(창호 역), 주관현(김 씨 역), 왕동휘(왕경관 역)
장률 감독의 가족은 일제 때 조부가 만주로 이주했고 1962년 길림에서 태어났다. 연변대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에서 소설가 겸 중국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왔다. 예술가적 기질이 발동한 것이다. 한 번도 영화를 공부해본 적이 없는 장률은 영화감독인 친구와의 논쟁 끝에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영화에 도전했다. 그리고 단편영화 <11세>를 만들었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베니스 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초청되었고 그는 평론가들로부터 독특한 예술세계를 만들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대사 없이 실험적인 사운드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그의 놀라운 연출력에 심사위원들은 매료되었다. 고정된 카메라의 시선이 관조적이면서도 화폭을 연상케 했다. 아름다운 화면에서는 질감을 느끼는 듯했고 빛과 색조는 살아 숨쉬는 듯 움직임을 생생하게 포착해냈다는 평이다. 또한 인물의 숨결까지 생생하게 화면에 담아냈다는 찬사가 쏟졌다. 그리고 장편 <당시>를 찍은 뒤 정식으로 영화감독 데뷔를 하게 된다.
<당시>가 발표되자 전세계 영화계에서는 또 한번의 탄사가 끊이질 않았다. 그의 전작 <11세>에 이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더욱 심도 있게 구축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효과적인 공간 활용과 그에 따른 촬영, 탄탄한 스토리의 구성력이 돋보이는 뛰어난 연출이 다시 한번 빛났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작은 공간에서 미동조차 없이 얼어붙은 카메라는 언뜻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관객의 이화와 동화로 그것들이 변화할 수 있고 새로운 감정과 운율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현란한 카메라 무빙과 촬영기법으로는 전달 할 수 없는 깔끔함 속의 정교함으로 새로운 느낌의 영화예술을 만들어 냈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망종(2005)>은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었으며 프랑스 독립영화연합에서 증정하는 ACID상을 수상했다. 또한 페사로영화제, 베소울국제영화제, 시네마누보 필름페스티벌 등 다양한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세계 영화계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세 번째 장편영화인 <경계(2007)>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하였으며 같은 해, 홍콩국제영화제, 파리시네마,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 특히 1977년 이리 열차 폭발 사건을 소재로 한국에서 작업을 한 <이리(2008)>, 두만강을 경계로 연변 조선족 소년과 북한 소년과의 우정과 비애를 다룬 <두만강(2011>을 발표하면서 그의 영화적 주제인 소수민족과 경계인의 아픔과 삶의 질곡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망종>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고 대중적으로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예술적 특징을 분명히 보여준 역작이자 단연 독보적으로 빛나는 작품이다. 단편<11세>와 데뷔작 <당시>를 통해 연마되고 숙성된 그의 예술적 혼과 테크닉이, 내용과 형식의 조합이 완벽하게 계합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망종> 역시 호흡이 길고 롱 테이크의 장면들이 있다. 하지만 <당시> 보다는 빠른 템포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주인공의 감정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감독은 기존의 고정된 카메라를 고수하면서도 극적효과와 감정의 변화를 위한 핸들 헬딩의 카메라로 역동적인 화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순희의 뒤를 따르는 카메라) 또한 객관성과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깊고 멀리보는 딥 포커스 촬영을 주로 하면서도 인물의 감정에 따라 클로즈 업과 포커스의 변화를 적재적소에 사용한다. (아들 창호가 불의의 사로고 죽었을 때 그 모습을 보는 순희의 얼굴) 대사의 부재 내지는 극소화, 배우들의 양식화된 동작과 표정은 꾸밈없는 무채색이고, 간이 없어 담백하고, 생생한 신선함으로 다가와 사실적 묘사를 극대화시킨다. 그만의 색깔이 너무도 분명하고 선명한 영화 문법을 사용하고 있은 것이다. 그래서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마치 다큐처럼.
영화의 내용은 대략 다음 같다.
아들 창호와 함께 고향 갈 날만을 기다리며 삼륜차를 끌고 김치를 파는 32세 조선족 여인 최순희. 그녀는 일상의 상처들을 무심하리만치 담담게 여기고 큰 욕심 없이 착하고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최순희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은 자꾸 그녀를 구석으로 내몰아 버린다. 운전학교 직원 식당에 김치를 정기적으로 납품해 주는 조건으로 그녀와의 성관계를 요구하는 식당 관리인. 그러나 돈에 굴하지 않는 그녀는 매몰차게 거부한다.
하지만 지날 때마다 따뜻한 말을 건네며 김치를 사주는 조선족 김 씨에게는 남모를 연정이 움튼다. 결국 김 씨와 사랑을 나누지만 부인에게 적발되고 순희는 창녀로 내몰리는 쓰라린 배신을 경험한다. 조선족으로서 그녀의 고난과 봉변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노점 단속반에게 자전거를 빼앗기고 그 자전거를 다시 사야만 하는 설움도 겪는다. 다행히 단골 손님이자 노점상 허가증을 내준 친절한 왕경찰은 알게 되지만, 그 역시 그녀가 궁지에 몰리게 되자 집으로 돌려 보내주는 대신에 성관계를 요구한다. 어떠한 순간에도 좌절하거나 고통스러워 하지 않는 최순희는 평소와도 같이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그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도 않고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그녀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은 너무나 평온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생활해 가고, 그녀는 아들에게 떠나온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아들 창호마저 기차길 옆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게 되자 최순희는 이 모든 속박과 굴종을 벗어던진다.
영화는 시작하고 10여분 동안 대사가 없다. 아니 전반적으로 말이 없다. 처음부터 중국 변방의 을씨년한 풍광들이 나열된다. 조용한 기차역, 허름하고 부서진 회벽과 가옥 그리고 공장 굴둑들, 몰려다니며 노는 아이들과 노래소리, 밤거리와 거리의 여자들, 한산한 거리와 상점, 따가운 햇살과 지친 사람들, 삼륜 자전거로 이리 저리 다니며 조선김치를 파는 조선족 여인과 중국전통 부채춤을 추는 무리들 등등. 장면이 나열되고 그 장면 속에 나오는 인물들을 스치듯이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일상적 소음과 노랫소리, 음악도 잠시 흐르다 사라질뿐이다. 일체의 인위적 관계나 자연적 접촉도 보이지 않는다. 날 것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그게 현실이고 사실임에도 너무 생경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너무 두렵고 겁이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두려움과 맞서나가는, 척박한 현실에 씨앗을 심어나가는 조선족 여인의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살인죄로 잡혀간 남편대신 철부지 어린 아들을 키우는 그녀만의 꿋꿋한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영화는 망종을 전후한 시기이다. 음력으로 5월 경이다. 망종은 보리를 베고 난 다음 볍씨를 뿌리고 모내기를 할 시기를 일컫는다. 영화에서도 길거리 창녀인 주인공 여동생의 입을 통해 망종의 노래가 흐르기도 한다. 또 녹음진 나무 그늘과 따가운 햇살, 조선족 선희가 넓고 푸른 보리밭을 바삐 걸어가는 장면에서도 계절은 이른 여름임을 알 수 있다. 망종은 사실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다. 절기 뿐만 아니라 '나쁜 씨앗, 몹쓸 종자, 행실이 아주 나쁜 사람, 사람이 죽어서 저승가는 때'를 일컫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도 선희는 여동생과 술을 마시면서 자신은 그렇게 좋은 여자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자신은 그렇게 좋은 종자가 아니란 뜻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잘해주고 관심있는 같은 조선족 유부남과 대낮에 정사를 벌이고 하고, 왕경관에게 몸을 허락해 그 댓가로 파출소에서 나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복수를 위해 결혼식 음식인 김치에 황소도 죽이다는 쥐약을 듬뿍 넣고 집단 살인을 자행한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단정히 차려입은 하얀 브라우스와 치마(그전까지 소희가 입은 품 큰 남방과 펑퍼짐하고 칙칙한 바지에 반해 마치 소복 같은 느낌)로 차려입은 소희가 푸른 보리밭을 반 미친듯이 걸어가는 모습에서 망종의 다의성을 영화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 그것도 조선족이 거의 없는 변방에서, 하물며 여성으로, 더군다나 애딸린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난의 행군이다. 첩첩 가시밭길이다. 조선김치만이 그녀와 자식을 버티게 해주는 밥줄이다. 김치 판 쌈지돈이 그들의 희망이다. 아들이 그러게 보채는 낡은 TV라도 살 수 있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연을 살 수도 있으며, 언젠가는 고향으로 떠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치를 먹어치울지도 모르고 새끼를 깔지도 모르는 쥐새끼를 잡을 약값이기도 하다. 남루하고 지저분하지만 그들의 집에 들어와 해를 끼칠 쥐새끼들은 모조리 죽여야 한다. 구석구석 쥐약을 뿌려 잡아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이자 생존방식이다.
언젠가 고향으로 떠날 날을 위해 그들은(선희와 그이 아들 창호, 그리고 옆집에 사는 창녀들) 기차역이 가까운 집터에 산다. 기차와 역사는 왔다가 떠나는 곳, 부초처럼 흐르는 곳, 이정표만 남기고 또 떠나야 하는 고단한 삶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그곳은 희망을 잠시 키울 수 있는 임시 휴게소이다. 잠을 잘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으며, 푸른 창공에 연을 날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연은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게다가 아들 창호가 길에서 주워온 스프레이로 살아있는 닭과 연을 온통 파랗게 칠까지 한다. 파란색 또한 희망이고 꿈이다. 간절한 염원과 소망이 켜켜이 묻어있다. 언제 고향으로 갈거냐는 창호의 말에서도, 죽은 쥐를 손으로 잡아 버리는(이전에는 쥐만 봐도 비명을 지르던 그녀였는데) 그녀의 행동에서도 결연한 의지가 배어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장한 비애감이 돋보이는 희망찬가는 창호가 뜻밖의 사고로 죽은 뒤 벌판에서 그녀가 쓸쓸히 날리는 푸른 연이다.
살기 위해 김치를 팔았을 뿐이고, 같은 조선족 남자의 호의에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고(그 마저도 순희를 성적으로 대했으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희를 창녀로 몲), 김치 판매를 위한 노점 허가증을 위해를 왕경관의 선의를 받아들였을 뿐이다.(왕경관 역시 의도된 친절로 그녀를 성적 노리개로 삼음. 참고로 중국 공안의 부패를 표현했다는 이유로 이 영화는 중국에서 상영이 금지 당함)
약자에게 있어서 강자의 도움은 은총이다. 김치 한포기 팔아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고, 살아갈 길을 열어주는 선처는 코가 땅에 닿아도 모자랄 고마움이다. 그러나 그 선의가 위선과 배신이라면, 자식마저 돌보지 못해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했다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굴레를 끊고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의지로. 남의 배려가 아닌, 남의 도움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여성의 힘으로. 푸르고 넓은 보리밭은 헤쳐가는 순희처럼. 절대 울지 않는 순희 처럼.
* 힐링 포인트
1. 마치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처럼 열차가 붙지 않는 맨 처음 컷과 영화의 처음과 끝에 반 복해서 등장하는 장면으로 순희
가 자전거를 타고 김치 팔러가는데 반대에서 중국 전통 부채춤 무리가 나타나 서로 부딪치는 장면
2. 영화의 처음과 끝에 창문의 커튼을 닫는 순희의 모습(자신을 능욕하고 거부하는 외부세 계에 대한 저항이자 자기 보호
를 암시)
3. 파출소 여경관에게 조선족 춤을 가르쳐주는 장면
4. 사고로 죽은 아들을 화장하고 돌아온 뒤 푸른 연을 날리는 장면
5. 순희를 농락한 왕경관의 결혼 피로연에 쓸 김치에 쥐약을 타는 모습
6. 하얀 옷을 차려입고 집밖으로 나가 역사를 지나고 푸른 보리밭까지 가로 지르며 가는 마지막 장면
* 덤으로 볼 추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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