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혜광고등학교 25회 동기회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sooy
    2. 양산중부
    3. 박정모(3-4)
    4. 황대*
    5. peter
    1. 박규태
    2. 가을맨-방수용
    3. 앰프--김기정
    4. 토함산
    5. sc임서방
 
카페 게시글
☆ 웃을수있는 여유를... 스크랩 옛날광고
하빵-정호 추천 0 조회 120 11.03.19 00:1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1970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콘 아이스크림’으로 태어난 <브라보 콘>은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간 팔린 개수는 무려 40억개.누적매출은 9,000억원이나 된다.

판매된 제품의 포장지를 연결하면 68만 km나 되며

이 수치는 경부고속도로를 800여회 왕복하고 지구를 15바퀴 돌 수 있을 정도다.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말하던 시절.

그때 역시도 여자아이들은 개구쟁이 남자아이들 때문에 ‘수난의 계절’을 겪어야 했다.

끊고 도망가던 남자아이들 때문에 참 많이 울기도 했던 ‘고무줄 놀이’ 가 지겨워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치마를 들추고 도망가는 ‘아이스케키’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공포는 바로 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지며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콩알탄>이었다.

못된 사내아이들은 교실 의자에 <콩알탄>을 올려놓기도,

어떤 녀석은 여자 화장실에다가 한 웅큼 던지고 도망치기도 했었다.

지금은 웃으며 추억하는 물건이 되었지만, 그때 여자아이들에겐 정말 ‘공포의 콩알탄’이었다.

이 공알탄은 지금도 일부 인터넷 쇼핑몰에서 '추억의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요즘 학교 앞에서 ‘어린이 미술학원’하나쯤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70년대 미술학원이란 대부분 입시생들을 위한 곳이었고,

어린이들에겐 운동장, 담벼락, 신문지가 그림을 그리는 도화지 였을 때다.

이때 어린이들이 가장 갖고 싶은 물건은 바로 이 <왕자 파스>, <왕자 그림물감><왕자 포스터 칼라> 이었다. 미술시간에 부모님이 새로 사주신 크레파스를 열면 친구들은

모두 부러운 얼굴이 되곤 했었다.

지금 30~40대가 된 세대들은 모두 기억할 <왕자 파스>.

그런데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크레파스’가 아니라 ‘파스’라고 했고, ‘공주 파스’는 없었을까?

 

 

옛날광고는 아니지만, 70~80년대에 중 고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억할 당시의 ‘버스 회수권’을 찾았다.

지금의 어린세대들은 피식 하고 웃을지 모르지만

당시 이 버스 회수권은 학생들의 재산목록 1호 였고

(없으면 집과 학교를 가지 못하니) 단지 이 회수권으로 버스만 타는 것이 아니라

학교 앞 잡상인들의 물건이나 불량식품도 사 먹을 수 있었던 요긴한 물건(?)이었다.

또한 영리한 학생들이 ‘10장 한 세트’인 회수권을 조금씩 적게 오려서 11장을 만들어 쓰는 일이

빈번해지자 후에는 사이즈가 커지며 ‘8장 한 세트’로 바뀌었다.

오래만에 발견한 회수권을 통해 추억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그 당시 군것질 거리를 말해줘도 지금 어린 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불에 구워 찢어먹던 ‘쫀드기’, 빨대에 들어있던 ‘아폴로’, ‘눈깔사탕’과 함께

70년대 어린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과자가 바로 <뽀빠이>다.

 

만화가 우리 사회에서 저급 혹은 저질 문화라는 인식의 굴레를 벗어 버린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만화는 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책이 아닌,

담배연기 자욱한 ‘대본소’에서나 읽을 수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만화를 좋아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1

982년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전문지 <보물섬>은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다.

 

 

해마다 명절 같은 특별한 날이 돌아오면 손쉽게 준비할 수 있는 각종선물세트가 단연 인기이다.

심지어 한 온라인쇼핑몰에는 군인들을 위한 선물세트까지 생겨났을 정도라고 한다.

선물세트의 인기는 옛날이라고 해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커피세트와 양말세트 등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있는 품목들이 당시에는 귀한 선물이었다.

 

 

1953년에 동아출판사에서 처음 출판된 <동아전과>는 이제 무려 5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985년에 두산그룹이 동아출판사를 인수하여 ㈜두산 출판BG(두산동아)에서 아직도 변함없이

<동아전과>는 출판되고 있다.

 

 

1981년, 농심은 이제껏 라면이란 끓여먹는 식품이라는 발상에서 탈피하면

‘끓는 물만 넣고 먹는’ 신개념의 라면을 출시한다.

그 용기모양을 친근한 단어인 ‘사발’로 쓰면서 <사발면>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실 이런 용기라면의 시초가 농심은 아니었다.

이미 1972년에 삼양식품에서 <컵라면>을 출시했었지만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 채 쓸쓸히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불운을 맛봐야 했다.

(물론 삼양은 사발면이 인기를 끌자 컵라면을 다시 출시한다.)

 

 

미국 사이나미드 제약회사가 개발, 판매하고 있던 종합비타민

<게브랄 티 (Gevral T)>가 국내에 수입된 것은 1982년 유한양행에 의해서였다.

정기적으로 복용하면 몸에 좋던 이 종합비타민을 광고하기 위해

광고맨들은 ‘힘’을 컨셉으로 정하고 그 모델을 찾는다.

최초의 모델은 바로 그해 시작된 프로야구에서 강타자로 이름을 떨진 MBC청룡의 감독겸 선수

‘백인천’이었다. 그리고 나중 이 제품의 모델은 ‘천하장사 이만기‘로 교체된다.

 

 

1974년 처음 소개된 <하이면>은 분명 라면과는 달랐다.

우리나라 최초의 습면 우동이라는 이름으로 삼립식품이 출시한 이 제품은

우동 면발에 김 가루를 섞어 넣은 스프로 끓인 후 고춧가루를 풀어 먹으면

한 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금방 잊혀졌다.

 

 

197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간 겨울이면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렸던

하이면은 전국노래자랑의 영원한 MC 송해와 여운계를 모델로

“하이면 끓어요.”라는 광고 카피가 덩달아 유행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어쩐 일인지 상점이나 마트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김맛, 해물맛, 튀김맛 하이면이 생산, 판매되고 있다.


 

그러니까 나이키, 리복, 아이다스가 무슨 뜻인지도 모를 때.

신발을 테니스화, 농구화, 스니커즈로 구분조차 하지 않을 때.

그때도 이미 우리에겐 특별한 신발 브랜드가 존재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말표 고무신>이었다.


물론 고무신이 다 똑같은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을 테지만,

어쩐지 말표 고무신은 시장에 즐비하게 펼쳐져 있는 고무신 들 중

‘최고의 가격과 품질’을 자랑했었다.

인터뷰365가 찾은 말표 신발의 광고(사진)는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69년의 광고다.

이제 서서히 고무신의 시대가 저물고 본격적인 운동화의 시대로 들어가는 순간

말표 신발 역시 주력제품인 고무신과 함께 다양한 스타일과 디자인의 신발들을 소개하고 있다.

분명 누가 뭐라해도 <말표신발>, <말표 고무신>은 우리나라 최초의 메이져 신발 브랜드였다.

 

 

1971년 농심이 첫 선을 보인 이후, <새우깡>은

명실상부한 ‘국민과자’의 위치를 이제껏 놓친 적이 없다.

생새우 5.3%, 건새우 분말 0.4%, DHA 3.6mg이 첨가되었으며

소맥분, 탈지대두 등으로 구성된 새우깡은

그렇게 35년 이상 대한민국 최장수 과자의 기록을 세워가며

매운 맛, 쌀 첨가, 오징어 먹물 맛 등 여러가지 변종을 만들어 왔다.


<새우깡>이라는 제품명은 당시 농심 신춘호 회장의 어린 딸이 ‘아리랑’을 ‘아리깡 아리깡…’

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새우와 깡을 결합하여

<새우깡>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몇해전 일본 가루비 제과에서 판매하는 <갓빠에비센>이라는 과자와 맛과 포장이 거의 비슷하며

표절시비가 붙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새우깡>은

반세기가까이 모든 국민에게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도 사랑받을 것이다. 진짜인지 조금 과장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80년대 초반 소개된 ‘새우깡 한 봉지엔 3마리의 새우가 들어있습니다.’ 라는 광고를 찾았다.


 

196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담배껌>이다.

이 당시 우리나라 성인남성의 흡연율은 거의 세계최고의 수준이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연자들이 담배로 인해 발생되는 건강의 문제를 모르지는 않았을 터,

그래서 담배 한 대 생각날 때마다 담배 대신 담배처럼 생긴 껌을 씹으라는 이 상품은

성인남성들의 환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아빠처럼 폼나게 담배를 물고 흉내내고 싶어하던 어린이들에게도 대 환영을 받으며,

일약 해태제과를 유명하게 만든 효자상품이 되었다.

 
다음검색
댓글
  • 11.03.19 20:51

    첫댓글 아련한 추억이네...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이었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