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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미술과 사진의 경계구분이 없어지고 오히려 현대미술에서 사진의 비중이 증가되는 현 추세 속에서 사진이 혼합매체 영상의 축으로 변환된 현대미술의 흐름을 사진적 측면에서 전개해 보고 지난 20여년간 한국 현대미술 현장에서 혼합매체 영상을 꾸준히 실험해오던 일군의 작가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혼합매체 영상의 수용 및 방향을 고찰하며, 나아가 한국 현대사진의 혼합매체 영상에 대한 인식과 최근 경향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이제 사진은 그 자체로서 미술과 함께 조형예술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 굳이 사진과 미술을 구분하려는 시도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 "카메라 시각의 독보적 특질이 미술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 넣지 않고서는 지난 150년 또는 그 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는 미술의 연구는 불가능하다"는 반 데른 코크의 말이나, 19세기 사진예술의 대표적 대변자이자 평론가인 프란시스 베이가 "회화를 사진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을 역설한 것은 미술과 사진의 역사적 고려를 잘 대변해준 말이다.
사진의 발명이래 그것을 맨 먼저 수용했던 부류가 화가들이였던 점과 당시 사진가들 역시 많은 수가 화가였다는 점이 사진술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예술이기보다는 단지 화가들의 대용물에 불가한 하나의 응용분야로서 간주돼 사진술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등식은 초창기부터 이미 제거되어 있었다. 회화와 사진은 그 각각의 매체의 생산방식과 본질에 있어서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의 해명이 아니라 두 매체가 지향한 목표인 사실성 재현 및 그 효과의 문제에만 매달린 나머지 사진은 거의 한 세기 혹은 그 이상을 회화의 표현방식을 따라야만 했다.
사진이 사진만의 독자적 미학을 갖는 예술로서 당당히 나설 수 없었던 데에는 '예술' 여부를 규정하는 당시 사회의 이념과 제도적 틀의 완고함도 한가지 이유가 되겠으나 보다 큰 이유는 '손'을 대신할 '기계'의 영상 제작방식으로부터 새로운 미학을 끌어낼 주제의 부재를 들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의 시각이 단순히 대상묘사나 소재를 제공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화가들에게 새롭게 보는 방식을 일깨워주고 직접적인 체험에서 얻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회화적 영상세계에로 눈뜨게 하는, 요컨대 화가의 시각을 확대시켜 준 역할이 오늘날까지 미술과 사진, 나아가 조형예술 전반에 걸친 사진적 공헌도의 근본적인 요소가 된 것이다.
혼합매체에 대한 역사적 측면을 보면 뉴 비죤(New Vision)이 제일 먼저 다가온다. 포토그램, 포토 콜라쥬, 포토 몽타쥬 등의 미학이 회화의 세계에 편입되고 재해석됨으로써 현대 미술에 사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 준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다다의 출현은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밀착시켜주었는데, 「다다」와 「초현실주의」등장은 사진을 회화의 영역에 안주하려는 생각을 갖게 했다.
1920년대 뉴 비죤(New Vision)의 모호리 나기나 만 레이(Man Ray) 같은 추상 작가들은 기존의 사진영역에서의 표현확대와 시각매체로서의 사진을 보다 다양하게 이용하려 했다. 이들 다다이스트, 초현실주의자들은 복제물을 이용한 콜라쥬 형식을 채택하거나 새롭게 보는 방식에 따라 카메라의 시각을 확대했으며, 다양한 형식실험과 매체의 혼성을 시도했다. 혼합매체 영상을 말할 때 그래서 이들을 제외하곤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1920년 초현실주의 및 뉴 비죤니스트(New Visionist)들의 포토 콜라쥬, 몽타쥬는 다시 1960년대에 꽃을 피운다. 1960년대 이래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센버그, 재스퍼 죤스, 데니스 오펜하임, 죠나단 보로프스키 등 팝 아트(Pop Art) 및 컴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d)의 작가들은 개념미술계열의 데이비드 호크니, 윌리암 웨그맨, 브루스 나우만으로 연결되는 현대미술의 주류에서 사진을 새롭게 차용한다. 이때부터 사진에 새로운 혼합매체에 대한 인식이 싹트고, 시각실험을 위한 수단들이 만들어진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은 팝 아티스트중에서도 사진을 사용하는 방법이 독특했다. 초기 입체물 등과 실크 스크린 그리고 판화기법 응용에서 보여준 하나의 '삶의 양식'을 시각화했으며, 워홀이 이용한 혼합매체에는 사진이 사용되었다. 척 클로즈는 8×10 또는 20×24 대형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용하여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 일부를 실제 크기보다 훨씬 확대해서 땀구멍이 하나씩 드러날 정도로 극 사실적으로 묘사해냈다. 척 클로즈가 혼합매체로서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카메라가 인간이 실제로 보는 방식과를 반대로 피차세를 본다는 사실에 있다.
영국의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또한 카메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회고전에서 보여준 포토 콜라쥬를 이용한 인물연작 사진은 그가 다른 포토 콜라쥬를 이용한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원근법을 무시하거나 역이용하여 사물을 재구성하여 보여주었다. 그는 시·공간의 이미지 중첩을 통해 3차원적인 공간을 압축시켜 제한된 공간이 아닌 확대된 공간으로 표현하여 사진이 아닌 결점, 즉 눈과 다르게 보인다는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사진의 중첩을 통해서 호크니는 사진속의 연속적인 시간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사진을 평면위에 겹치기를 시도한다.
70년대 개념미술(Conceptual Art)과 80년대의 뉴 페인팅(New Painting) 은 사진을 새로운 영상으로 적극 활용하려 했다. 개념미술가 중에서 브루스 나우만과 길버트와 조지 그리고 윌리암 웨그맨과 로버트 커밍이 두드러졌는데, 브루스 나우만은 자신의 신체를 특이한 상황으로 연출한 여러 장의 컬러사진을 제작하였으며, 영국 출신으로서 공연예술가로서 유명한 길버트와 조지 두 사람은 사회에 대한 공포심리 등을 여러 장의 사진을 격자로 겹쳐서 표현했다. 윌리암 웨그맨과 로버트 커밍은 자기 자신들의 지각에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로서 자기 자신의 억제할 수 없는 풍부한 상상력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서 사진을 이용했다. 80년대 들어 우리는 본격적으로 혼합매체 영상의 축으로써 사진의 활용을 주시하게 된다. 현대미술에서 1980년대를 들어 제3의 새로운 물결이라 말한다. 이른바 「뉴 웨이브」, 그 명칭이 가리키는바 그대로 사진을 새롭게 활용하려는 뜨거운 정열을 표명한다. 루카스 사마라스와 신디 셔먼은 현대사진 측면에서도 대단히 비중이 큰 사진가였다. 사마라스가 폴라로이드로 찍은 2×3인치 포맷의 소형작업이 그의 최초의 사진들이었다. 1970∼71년대 들어서면서 카메라 자체내에서 일어나는 다중노출과 색조의 변화에 착안해 그의 실험사진작업은 계속되었고 이와 동시에 때로는 완성된 사진인쇄 표면에 그림과 드로잉을 그려 넣기도 했다.
신디 셔먼은 최근 미국 현대화단에 등단한 신예 예술가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사진작가로서 본격적인 회화와 어깨 겨룸을 하면서 사진을 독특한 시각적 미디어로서 활용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스스로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셔먼은 최초의 사진작업은 70년대 후반 영화광고용 스틸과 유사한 <Film Still>이라는 일련의 작은 흑백 스냅들이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이전의 어느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극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차원, 이른바 극적이고 충격적이며 마음을 교란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셔먼은 사진이 개념미술과 마찬가지로 선입견을 갖는데 반발했으며, 예술이면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 주는 것, 의문을 갖게 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어떤 것을 만드는데 대해 왜 고민하는가를 질문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듀안 마이켈즈는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사진가로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개념미술가로서도 유명하다. 그는 사진이 주는 시·공간의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연작사진 (Sequence Photographs)에 몰두하였다. 여러편의 시퀀스 사진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의식세계의 지극히 사적이고 잠재적인 영상을 실질적인 현실 상황적 사진에 대비시켜가면서 시·공간의 변화에 따른 정신 분석학적인 형태 변화와 무의식 세계에서 도출되는 꿈에 대한 해석을 했다. 또 사진에 글을 써 사진과 글자라는 혼합매체 영상이 되게 했다.
현대사진가중에서 혼합매체의 개념을 수용하면서 사진의 표현영역을 확대시킨 작가로는 바바라 카스텐, 로버트 하이네켄, 올리비아 파커, 피터 비어트(Pater Beard), 특히 케서린 잔센, 그리고 돈 로댄 (Don Roden)등이 있다. 또 화가로서 사진을 이용한 작가들로서는 나오미 세비지(Naomi Savae), 비 네틀(Bea Nettle), 베티 쿤(Betty Kuhn) 등이 있다. 케서린 잔센(Catherine Jansen)은 옷장유리, 텔레비젼 스크린, 침대보, 액자, 벽 등에 인쇄를 시도하여 실제 가구속에 금진된 사진적 영상으로 새로운 사진문화 환경을 조성했다.
오늘날 컴퓨터의 용도가 다양해짐에 따라 컴퓨터를 통한 혼합매체 영상도 나오고 있다. 리타드 비트의 "Electrostatic Photography"는 간단히 말하면 복사기를 이용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X - Ray 사진이나 건축설계도면 혹은 꽃에서부터 마른 곤충까지 자신의 개념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복사판 위에 콜라쥬시켜 자유롭게 재표현 해내고 있다.
전체보기☞ [한국사협](1991년 1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