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인류 17만년 전 땅속줄기 구워먹은 흔적 발굴
남아공 보더 동굴 잿더미 속에서 숯덩이 형태로 출토
2020.01.06 07:22 연합뉴스선사 인류가 약 17만년 전에 이미 녹말이 풍부한 식물의 땅속줄기를 캐내 구워 먹은 흔적이 발굴됐다. 이는 인류가 비슷한 식물을 구워 먹은 기록을 훨씬 더 앞당겨 놓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 진화연구소(ESI)의 린 웨들리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남아공 동부 콰줄루나탈의 에스와티니 접경에 있는 레봄보산의 ‘보더'(Border) 동굴에서 발굴된 식물의 땅속줄기인 지하경(地下莖·rhizome)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를 통해 발표했다.
이 땅속줄기들은 동굴 내 불을 피웠던 곳의 잿더미 안에서 원통형의 작은 숯덩이 형태로 모두 55개가 발굴됐다.
연구팀은 고대 땅속줄기의 크기와 형태, 관다발 구조 등을 분석해 ‘노랑별꽃’으로 알려진 ‘히폭시스'(Hypoxis) 종으로 밝혀냈다.
특히 레봄보 산을 비롯한 콰줄루나탈 일대의 땅속줄기 식물을 수집해 비교한 결과, 현대 히폭시스 종 중에서도 잎이 가는 H.앙구스티폴리아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했다.
H.앙구스티폴리아의 땅속줄기는 흰색 육질을 갖고있으며, 쓴 주황색 육질을 가진 약재용 히폭시스 종보다 먹기에 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히폭시스 종은 낙엽성이지만 H.앙구스티폴리아는 연중 푸른 잎을 달고 있으며, 지금처럼 과거에도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팀은 히폭시스 종 땅속줄기에 영양분과 탄수화물이 풍부해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빈번하게 이동하던 선사 인류에게는 도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주식이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히폭시스 종 땅속줄기는 날것으로 먹을 수도 있지만, 섬유질이 많고 딱딱해 굽는 것이 껍질을 벗기거나 소화하는데도 편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보더 동굴의 선사 인류가 주변에서 히폭시스의 땅속줄기를 캐낸 뒤 현장에서 먹지 않고 동굴로 가져와 조리했다는 것은 음식을 서로 나눠 먹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웨들리 박사는 “히폭시스 땅속줄기는 재 속에서 구워졌으며 이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이 현재 발굴된 것”이라면서 “조리를 했다는 것은 정황 증거밖에 없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보더 동굴에서는 땅을 파는 데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끝이 뾰족한 약 4만년 전 막대기가 출토됐는데, 이런 막대기가 히폭시스 땅속줄기를 캐는 데 이용됐을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보더 동굴은 1934년에 처음 발견된 뒤 지속해서 발굴이 진행되면서 약 7만4천년 전 어린이 유골을 비롯해 다양한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