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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근대 그리고 원시적 열정」, in 원시적 열정(Primitive Passions:... , 1995)(정재서 옮김, 이산, 2004), pp. 17-87. (P. 360) 년 4월 16일 / 360쪽
레이 초우(Rey Chow, 1957-, 周蕾, 주뢰), 홍콩출신 미국 활동, (여성)문예비평가.
Writing Diaspora: Tactics of Intervention in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Indiana University Press, 1993.
Primitive Passions: Visuality, Sexuality, Ethnography, and Contemporary Chinese Cinema.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5.
* 중국 20세기는 격변기이다. 세계도 마찬가지이며, 두 차례 큰 전쟁으로 미국과 소련의 주도권으로 냉전시대를 만들었다. 중국은 안으로 내전을 겪고, 한 차례 문화대혁명(1966-1976)을 거치면서, 등소평의 개혁(1979-1994)으로 새로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나간다. 1989년 천안문 사건의 아픔을 딛고 현재 시진핑(習近平, 습근평) 체제로 미국과 맞잡이 하려 한다.
** 이 책의 주제는 영화 이미지의 시각성(Visuality)이다. 거기에다가 문화 의식의 변천을 덧붙였다. 시각성으로서 영화는 내용이고 이미지는 표현이다. 글쓰기가 내용이면 기표작용은 표현이다. 글로 쓰자니 뭔가 이상하다. 저자는 이런 구분을 하고 있지 않다. 영화이미지와 (문학)글쓰기가 대조로서 설명될 수 있는가? 둘 다 매체라고 할 수 있지만, 빛(영상)을 통한 매체와 인쇄를 통한 매체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내가 보기에 루쉰의 전환에서 영상이 촉발이었지만, 그는 역시 중국 지식인으로 인쇄매체를 이용했다. <여기서 지나가는 이야기로 중국어에는 음성에 4성이 있는데 노래에서는 표현이 잘 안되어, 노래를 들어서는 내용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가사를 읽고 나서야 내용이 무엇인지를 파악한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은 노래가 나오면 자막을 넣어야 할 것 같다. 영상매체의 특징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있다. 잘 만들어진 영화(이미지)는 이야기 전달(나레이티브)도, 대화도 없어도 전달을 넘어서 감화되고 동화되고 공감한다.>
시각성에서 원시적 열정으로 이행은 과한 것 같다. 원시적열정이라기보다 중국의 전통으로 회귀가 여러 번 등장하는 이유를 찾았어야 할 것이다. 영상 매체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그 과거의 전통에서 길어 올린 것은 문자의 전통이라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하려고 하는 측면이 있다. 그 모습은 단순히 과거 전통만이 아니라, 삶의 변전의 전통일 수 있다. 중국이야 역사적 과정에서 외부의 침입과 개입으로 얼마나 많은 변전을 겪었으면서도 용광로처럼 새로운 탕(湯)을 끓여내지 않았던가? 중국만이겠는가? 문화는 탈영토화의 길을 걸으면서 삼발 정(鼎)에 끓여내는 탕이 달라지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탕에 대해 알지 못했는지 언급이 없었다. 문화의 영역과 차원은 어느 하나를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시각성이란 영상의 이미지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영상은 시각성보다 넓게 가상성이다. 또한 영상의 매시지는 그림의 내용보다 빛이 먼저이다. 얼마나 빨리 멀리 가는가? 일초에 지구 일곱 바퀴 반은 돌지 않는가. (51ULA)
이 글이 영상 이미지와 글쓰기에 연관을 문제거리로 삼았음에도 글의 전반은 영상매체가 미치는 영향과 그 효과에 대한 글이라 할 수 있다. 영향은 관객뿐만이 아니라 지식인 또는 제작자 등에게 자기의식의 재현에 관한 것과 시대의 인물을 선전(프로파간다)과 신화화를 들 수 있다. 효과란 학문 간에 실질적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인류학과 민족지학에서 자료로서 또는 재료로서 사용이다. 게다가 문화적 측면을 여러 방향으로 다룰 수 있으면 정치와 역사에도 여러 각도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영상매체가 글자매체나 소리매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간이 인식에서 90%가량을 시각에 의존한다는 물질적인 측면이 크다. 게다가 의식의 형성에서 인상의 각인이 이미지라는 측면을 생각해보면 영상매체의 힘을 크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영상매체의 보관(추억)과 재현(상연)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면서 기억 총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어쩌면 개인의 의식이 보관과 재현을 통해서 자의식이 변형되어, 개인 스스로도 변신이 될 정도까지 이르게 될 수도 있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르겠다.
인격성의 변화가 신체에 물질적 도구(칩이든 다른 장기든)의 주입에서 일어나는 것이 먼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영상 이미지의 역사적 과정을 반성과 성찰을 통해 보건데 인격의 정립보다 변신이 더 문제거리로 등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잊어버림(망각)도 필수적이다. 망각을 구체적 추억으로 되돌린 것이 트라우마 일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 새로운 추억 만들기를 영상을 통해서 하는 것이 일반화되는 것이 의식의 확장이라 하여왔는데, 그 가상성에서 실재성으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자아가 문제거리로 등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어찌하여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 길(道)이 아닌 길을 가는 것, 과거가 아닌 것을 과거로 만드는 것, 삶이 아닌 것을 삶으로 만든다는 것이 아닐까? (51ULA)
* 소제목에서 용어에 대해 할 말이 있다. 감각기관(감관感官)의 명칭으로 5관으로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이며, 그 감관을 통한 내용으로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에 감(感)을 붙여서 색감, 청감 .. 등등이고, 그 표현(행위)로는 시청후(視聽嗅미촉, [맛], [피부(皮膚)살])에는 각(覺)을 붙여서 시각, 청각, 후각 .. 등등이다. 그런데 명칭이 다 구별되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논제에서 시각은 안감관(眼感官)의 문제가 아니며, 게다가 감관의 실행인 시각(視覺)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색감(色感) 또는 색경(色境)에 대한 것이 될 것이다. 이 색감은 질적이며 형태를 갖지 않는다는 면에서 진동하는 변화의 상태에 가깝다. 벩송은 경험의 자료와 관념의 자료의 중간쯤으로 이미지라고 부를 것이다.
자. 이미지라면 하늘, 바다, 강물의 색감이라는 것은 경계라기보다 깊이가 있다. 조각과 건축에서 색감이 아니라 촉감에 토대를 둘 것이다. 회화(미술)은 색감 또는 색경일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사진과 영화는 색경에 가깝다. 이렇게 물을 수 있다. 흑백에도 색감이 있는가? 우리는 당연히 있다고 할 것이다. 색감이란 눈(안감관)으로 너비와 두께를 인지하는 내용이다.
이쯤에서 레이 초우(Rey Chow, 1957-, 周蕾, 주뢰)에서 번역어 시각은 “시각(Visuality)”이다. 이에 맞는 프랑스어 단어는 없다. 시각(la vue)이라기보다 통찰로서 비전(la vision)에 연관이 있을 것이다. 또는 영상화(visualisation)이 있고 영상장치(le visuel)라는 용어가 있다. 그런데 영화와 관련을 따져본다면 들뢰즈가 영화에서 쓰는 용어로 가상화(virtualisation)와 가상성(virtualité)에 더 가깝다. (51U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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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적 열정(Primitive Passions: Visuality, Sexuality, Ethnography, and Contemporary Chinese Cinema, 1995) - 레이 초우(Rey Chow, 1957-, 周蕾, 주뢰)
•Pt. 1. Visuality, Modernity, and Primitive Passions.
•Pt. 2. Some Contemporary Chinese Films.
•Pt. 3. Film as Ethnography; or, Translation Between Cultures in the Postcolonial World.
제1부 시각, 근대 그리고 원시적 열정 17
모든 언어 기호가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그때까지와는
다른 별개의 기호로 번역되는 때이다.
- 로만 야콥슨, 「번역의 언어적 측면에 대하여(1959)」
문학적인 글쓰기가 영화에 그 자리를 양도하는 것은
근대의 전형적 징후인가, 그렇지 않으면 퇴행의 징후인가?
피에르 파울로 파솔리니 「영화에 대한 경구(警句)」
[§1.1.] "한 편의 뉴스영화가 근대중국사를 바꿨다":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말하기 20
1904년에서 1906년 사이, 루쉰(鲁迅, 로신, 1881-1936)은 가난한 유학생으로 일본의 센다이(仙台, 선태) 의학 전문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20)
루쉰의 이야기는 뤼미에르 형제의 에이전트에 의해 1896년 중국에 의해 처음으로 영화가 소개된 지 불과 10년만에, 그리고 대략 중국인들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무렵의 일이긴 하지만, 단순히 글쓰기 이력에 대한 유명작가의 자서전의 한 부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콜로니얼한 ‘제3세계’에서 새로운 종류의 담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21)
이 에피소드는 새롭게 출현하고 있던 ‘근대성’이, 특히 시각에 기초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는 세계 곳곳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루쉰의 경험은 마르틴 하이데거와 발터 벤야민과 같은 유럽지식인들이 근대에 대해 섰던 것을 선취했다. ..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예술작품의 근원(Der Ursprung des Kunstwerkes, 1935)」에서 .. 예술작품이 관람객에게 미치는 효과를 떠다박지름이나 주먹질에 비유했고,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1935)」에서 예술의 효과를 충격이라는 말로 묘사했다. 잔니 바티모(Gianni Vattimo, 1936-)는 이 두 논문이 같은 해인 1936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방향감을 상실했다는 것에 대한 집착”이라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22) [독일에서 나찌가 기술의 발달을 자랑하려는 시기에 예술이 방향감을 상실했다고 하는 것은 국가 권력에 대응에 문제거리일 것이다.]
시각과 권력의 관계는 포스트 콜로니얼한 비서양 사회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영화라는 새로운 미디어에 의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루쉰의 반응은 시각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지표(指標)인 것이다. (23)
모든 시각적 조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어떻게”라는 문제이다. .. / 다시 시각적[영화 이미지의] 조우라는 우발적 사건으로 돌아가자. 정확히 말해서 루쉰이 보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가? (23) [어떻게 만큼이나 어디서(어느 지위에서) 보았느냐도 중요하고, 그리고 담론으로는 “무엇”에서 다루어야 한다.]
다시 시각적 조우라는 우발적 사건으로 돌아가자. 정확히 말해서 루쉰이 보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가? (25) [시각이미지와 조우, 즉 메시지의 전달로서 빛이미지는 소통을 넘어서, 정보의 일방적 전달(즉 명령)이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업 중에 영상으로 일방적 전달이 아니더라도 무심한 일본인 학생에 비해 유학생 루쉰의 충격은 컷을 것이다. 웃음에서 같은 무리에 속하지 않으면 웃지 않듯이, 같은 무리에 속하지 않은 중국 유학생은 무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글쓰기로 바뀔까? 중국이 당시 일본에 비해 후진국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중국은 적어도 문혁이 이후에도 영상메시지보다 문자메시지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51UKJ)]
영화라는 미디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직접적이고 잔혹하고 날것 그대로의 힘이다. .. 본다는 그 자신의 행위를 통해 루쉰이 직면한 것은 첫째, 마치 매개 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은 영화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투명성이었고, 둘째, 이 새로운 미디어의 힘과 처형 그 자체의 폭력성 사이의 친연성이었다. (26)
... 루쉰에게 눈에 비치는 것과 시각은 어떤 위협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 루쉰은 문학으로 도피하여 ‘해결’하려고 하지만 시각이미지가 가하는 위협은 언제나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 그것은 두 가지의 조합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중국의 후진성, 빈곤, 무력함, 만연한 무심함과 같은 병적인 내용이나 ‘제재(題材)'였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 다른 근대 세계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해줄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언어‘에 대한 정식 요구였다. (27) [첫째 위협은 중국 국민으로서 느낌]
전향을 이야기하는 모든 내러티브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루쉰의 이야기는 억압[억제]된 양면가치성(ambivalence)으로 특정지어 진다. (28) [한 면에 양면이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나아가는 방향의 이중구속이 있다. 물론 이중구속보다 훨씬 더 많은(물론 다중구속이지만) 역으로 이중구속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석의 힘의 방향을 보라!]
여기서 우리는 눈에 비친 것과 시각이 초래하는 위협의 둘째 중요한 의미에 도달한다. 만일 루쉰이 받은 첫째 충격이 국민의식이었다고 하면, .. 둘째 충격은 문학이나 글쓰기가 전통적으로 점하고 있던 역할을 빼앗고, 그것을 대체할지도 모르는 강력한 미디어가 자기가 만난고 있다는 그의 인식과 관련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28) [이런 생각은 사후 약방문이다. 물론 루쉰이 유학 후에 상하이에 살면서 새로운 영상매체(미디어)의 중요성을 깨달았겠지만, 중국의 전통과 변화의 속도 상, 글쓰기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식민시대에 첨단의 기술보다 전통적 전달매체로 문자(책자, 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내가 보기에 적어도 문혁에도 문자매체는 서구와 달리 중요했다. 이 글을 참조해 보면, 영상매체의 중요성은 제5세대 감독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위협의 둘째 의미는 관객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양성되는 국민의식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문화를 전통적으로 지배해왔으나 이제는 그것이 끝나려 하고 있던 그 당시 지식인의 의식이었다. (29)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생산력의 발달이 따라야 하고, 그리고 무상교육으로 인민의 자의식이 향상되어야 한다. 의료와 교육의 무상은 필수적이다.]
루쉰의 이야기가 늘 문학적, 역사적으로 오독되어 온 사정은 폴 드망이 말하는 비평적 맹목성의 한 예증이 될 것이다. (30)
[§1.2.] 문학이라는 기호를 탈중심화하기
마틴 제이의 「근대의 시각적 체제」라는 논문에서 “시각은 근대를 지배하는 감각이며, 우리는 그것이 모든 곳에 만연해 있는 사태에 종종 직면 한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이 시대의 시각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쉽게 알 수 없다”고 말한다. (31) [「근대의 시각적 체제(Scopic Regimes of Modernity)」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인용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현대의 비(非) 서양 세계 연구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의 오리엔탈리즘(1978)으로부터 이론적인 자극을 받아 포스트콜로니얼 한 시각문화를 유럽의 문화적 패권과 결부지어 고찰하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31) [미국식 표현이다.]
예를 들어 티모시 미첼(Timothy Mitchell, 1955-)은 이집트에 대한 연구에서 서양은 19세기 이래 “세계 자체를 일종의 끊임없는 전시회로 정리하고 서열화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고 쓰고 있다. (31)
하이데거는 「전환」, 「세계화의 시대」, 「예술작품의 기원」과 같은 소론에서 근대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고 있는데, 미첼과 견해를 같이하는 비평가들의 논의에도 그와 유사한 점이 있다. (31)
하지만 역설적으로 시각성을 그렇게 이해한 결과 반오리엔탈리즘 비평은 유럽의 ‘응시’ - 영화, 민족지, 관광 등이 전형적인 예이다 - 의 세부를 꼼꼼히 분석하게 되었다. (32)
오리엔탈리즘 비판은 유럽의 ‘응시’의 미세한 움직임을 폭로하는 데는 분명 성공적이지만, ‘서양’과 ‘동양’의 관계를 관객의 전시물의 관계로 입론(立論) 해버리면, ... 기 드보르(Guy Debord, 1931-1994),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 1943-2011), 폴 비릴리오(Paul Virilio, 1932-), 잔니 바티모(Gianni Vattimo, 1936-) 등과 같은 미디어 이론가들의 저작에 의하면, 시각이란 세계를 급속히 균질화하고 투명상태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속도의 테크놀로지 일부이다. (32)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의 동쪽이지만, 그들은 히말리야 동쪽을 거의 모른다는 점에서, 한자문화권은 오리엔탈리즘과 다른 문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겉보기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세부적으로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티벳, 몽고까지 생각해야 할 것이고, 러시아 이지만 시베리아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51UKJ)]
1920년대, 1930년대, 1980년대의 중국 영화에 대한 논의에서 폴 피코위츠(Paul Pickowicz, 1945-)는 시각 이미지에 대한 경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5.4운동기의 문학가와 지식인들은 대부분 영화라는 미디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거부했다. 대중을 위한 근대문화와, 문화의 민주화를 목표로 한다고 입으로는 떠들면서도, 지식인은 영화에 대해서 비웃기만 했고 1910년대와 1920년대 5.4운동을 상하이 영화 스튜디오로 ‘파급시키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따라서 루쉰의 이야기에는 의학엣 문학으로 근본적인 전향 말고도 또 하나의 다른 전향, 즉 전통으로의 재전향이 있다. (34) [문학으로 전향이 전통으로 전향이다.]
... 루쉰이 그가 「분월(奔月)」에서 풍자한 바 있는 신화적인 주인공 예(羿)와 다르지 않다. 예는 일찍이 대지를 보호하기 위해 열 개의 태양 중 아홉 개를 쏘아 떨어뜨린 영웅이지만 지금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활을 쏘는 초라한 남자로 전락해 있다. 예가 식량으로 허구한 날 까마귀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 상아(嫦娥)는 달로 도망쳐버린다. (34-35)
루쉰의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영화나 사진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근대 중국문학에서 시각 테크놀로지에 의해 야기 되는 보다 광범위한 인식론론적 문제의 깊이 관련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샤오훙(蕭紅, 소홍, 1911-1942) .. 바진(巴金, 파금, 1904-2005) .. 선충원(沈從文, 심종문, 1902-1988) .. (36)
딩링(丁玲, 정령, 1904-1986), 빙신(氷心: 冰心, 빙심 1900-1999), 루인(노은, 盧隱, 1898-1934), 링수화(凌叔華: 릉숙화, 1900-1990), 쉬즈모(徐志摩: 서지마, 1897-1931) 같은 작가드이 새로운 방향의 글쓰기를 추진하는 원초적 내면성을 발견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36)
제이 레이다(Jay Leyda, 1910–1988)는 루쉰, 샤오훙, 선충원 등과 같은 작가들이 글쓰기를 통해 ‘언어에 구속된 영화’에 교훈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36-37)
후스(胡適, 호적, 1891-1962)를 비롯해서 1910년대와 1920년대의 새로운 언어와 문학의 열렬한 선동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새로운 언어와 문학에는 과거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라는 요구가 더해졌다. (38)
미셸 푸코 ..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1975) ... (38)
게다가 근대 중국에 있어서 지식인의 ‘전향’에는 이중의 움직임이 있다. 첫째로, 테크놀로지화된 시각 이미지가 출현한 시대에 엘리크 계급이 구제의 수단으로 문자문화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다. 둘째로 근대 제국주의의 억압을 받은 ‘제3세계’ 국가의 엘리트 계급이 전근대적인 육체적 고문과 눈길을 끌 만한 구경거리에 의한 규율과 처벌 개념을 교육에 의해 보다 효율적이고 ‘진보적’인 규율과 처벌 개념으로 전환하려 하는 움직임이다. (39)
... 문학과 영화의 상호관계 .. [1] 영화와 같은 미디어의 발달과 근대 중국작가들의 탐구 사이의 관계를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다. ...[2] 문학과 영화 모두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고찰되지 않았다. ... [3] 지식인에게 영화의 등장은 언ㅇ어기호와 문학기호가 지위를 상실하는 획기적인 순간이었다. .. [4] 사진이나 회와의 경우와 다르게 영화에서는 가시적인 것이 시간 안에서 움직이기도 한다.
[§1.3.] 원시적 열정의 출현 40 (primitive passions)
문학기호의 지위 상실과 더불어 역사가 등장한다. .. 루쉰의 중국소설사략(中国小说史略)(1924, 1934)이다. ..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 1896-1982)식으로 표현하면 ‘중국인’이라는 기호 이미지가 생긴 것... (40-41)
일면적으로 중요한 것은 표상에 있어서 ‘인민’의 점증하는 존재감이다. (41)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 중국의 태평천국봉기(太平天國之蜂起, 1850-1864)에서, 우리나라에서 동학(1860)의 등장에서 ‘인민’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새로운 세기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외세에 의한 개방을 한 일본도 명치유신(明治維新 1868)을 겪으며, 인민이 등장한다.]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서양에서 현재 ‘고고한’ 모더니즘 예술로 일컬어지는 것은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고갱(Paul Gauguin 1848-1903),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 등의 화가들과 결부되어 있지만, ...(41) [여기 화가들을 임의로 나열하여 제시한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자유주의라니(?)... 마네 이후의 고전 예술에 대한 “낙선자 전시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샐리 프라이스(Sally Price, 1943-), 매리애너 투르고브닉(생몰x), 모더니스트 인류학의 집필자같은 학자들은 모더니즘의 예술적 야망과 인류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토대가 서로를 어떻게 강화시켰는지를 밝히고, .. (41)
영미문학의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 헨리 밀러(Henry Miller, 1891-1980) 같은 ‘고고한’ 모더니스트 ‘반란자들’의 유명한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섹슈얼리티의 해방과 신성화를 꼽을 수 있다. (42) [저자가 모더니스트 반란자들이라니, .. 들뢰즈 표현으로 탈주자들이며, 달리 새로운 길을 마련하는 자작가들이다.]
드래건 레이디(Dragon Lady: The Life and Legend of the Last Empress of China, 1992라는 책에서 스털링 시그레이브(Sterling Seagrave, 1937–2017)는 청 왕조의 서태후(西太后)에 대한 황당무계한 이야기... ‘한족(漢族)’의 눈에 이미 ‘만족(蠻族)’으로 보였던 서태후는 에드먼드 백하우스(Edmund Backhouse, 1873–1944) 경 같은 영국인 중국학자의 손에 걸리자 두말할 필요 없이 ‘원시인’[야만인]이 되고, ... (42)
원시적인 것[primitive] - 서벌턴(subaltern)[하층민, 가신], 여성, 아동 등 - 을 포착함으로써 확실하게 중국 근대 문학은 ‘근대적’인 것으로 되었다 .. [작자가 말하는 원시적이라니.. 이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심층으로서 인민이며, 들뢰즈 표현으로 리좀이다. 이들이 지식인 또는 사회에 인자로서 주목받는 것은 서구에서 “공산당 선언문(1848)”년 이후 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태평천국봉기(太平天國之蜂起 1850-1864)가 계기일 것이다. 동서양이 시간상 별반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1910년대와 1920년대의 원앙호접파(鴛鴦胡蝶派) 문학의 야한 감상성(感傷性)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어서 대량소비에 적합한 재료가 되었다. (43) [욕망의 다양한 분출 중의 한 계열일 것이다.]
.. ‘원시적 열정’ 이라고 부르는 용어를 좀더 엄밀하게 정식화해 두고 싶다. (44)
1. 원시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문화적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다. (43) [인민이 부상되는 것은 19세기의 전반적 현상이다. 독일 낭만주의에서도 있다. 리좀의 흐름은 계몽주의 또는 증기 기관과 모터의발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리좀이 다양체로서 분출하는 것은 맑스말대로 하부가 상부를 규정하려 든 것이다. 최소한 그 반사의 이미지가 반영되는 것은 분명하다.]
2. 우세한 전통문화의 기호[기표]가 의미작용을 독점하지 못하게 되면서, ..(44) [상부의 허위가 무너진다고 해야, 종교는 아편이며... .]
3. 기원은 이제 민주적으로 (재)구성되고 ..(45) [저자의 사회구성체에 대한 의식의 부족으로 보인다. .. 인민의 활동.]
4. 5.
6. 20세기의 중국 같은 ‘제1세계’ 제국주의와 ‘제3세계’ 내셔널리즘 사이에 끼여 있는 문화에서는 원시적인 것은 정확한 역설, ‘문화’와 ‘자연’이라는 두 의미작용 양식의 합금이다. (45-46) [기술문화와 자연문화 사이의 문제일 것이다. 서구 문명과 토속 문화 사이에 이질성의 접속이 문제이다.]
7. (46) [전반적으로 저자 개인적 취향으로 정리한 것 같아 보인다.]
[§1.4.] 「신녀(神女)」 46
「신녀(神女)」(聯華影業公司, 1934)는 우융강(吳永剛, 1907-1982) 감독의 무성영화이다. 제목 ‘신녀’는 매춘부를 가리키는 중국어의 완곡한 표현이다. 폴 클라크가 쓰고 있듯이, ...(46, 47)
맑스(Marx)와 프로이트(Freud)가 말하는 페티시의 의미를 조합하면 내가 전통 문화의 기호인 문학기호의 지위 상실로 논의해온 것이 눈에 들어온다. (48) [기호라..]
파올로 파솔리니(1922-1975)가 고전적 에세이 「시로서의 영화」(The Cinema as Poetry)[1965]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물체나 대상물에는 “다양한 의미가 부여 되고 그 존재 자체에서 폭력적으로 ‘말한다’”
「신녀(神女)」는 영화의 혁신성과 원시적 열정 사이의 친연성을 보여 주었다. [ 1937년 영화. / 들뢰즈가 영화1: 이미지-운동(Cinéma 1: L'image-mouvement, 1983)와 영화 2: 이미지-시간(Cinéma 2: L'image-temps 1985)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더 신기하다.]
[§1.5.] '학제성' 시대의 중국영화 51 .
[저자는 시기를 분명하게 하지 않았다. 영화가 가지는 사회적, 타학문과의 연관에 대한 간략한 소회인 셈이다.]
.. 학제적 연구 .. 인류하과 영화연구 ... 영화는 문화수집의 기능을 갖는다[자료(document)]. .. 인류학은 민족지적 실천이라는 정의(定義) 안에서 그런 문화 수집 행위로서 영화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53)
이점을 예증하기 위해 시각 이미지를 중요하게 만든 또 다른 계기인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으로 눈을 돌려보고 싶다. (540
[§1.6.] 1960년대 중국의 초상화
[폴 클라크를 여러번 인용하는데 그를 찾을 수 없었다]
... 모리스 마이스너(Maurice Meisner, 1931-2012)는 이 별종의 미디어 문화가 불러일으킨 흥분 ... [우리나라도 대단했다. 내가 초등 시절(60년대) 여름 방학에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보여주었다. 지금으로 기억나는 영화는 없지만 말이다.]
배우인 장원(姜文, 강문, 1963-) .. “ ... 문화대혁명은 최고 거물 로커 마우쩌둥[(毛泽东]이 출연하고, 모든 중국인이 그의 팬이 되어 열광하는 마치 거대한 로큰롤 콘서트 같았다.”(56-57)
우원광(吳文光, 오문광, 1956-) 감독의 「1966년 나의 홍위병시절(1966,我的红卫兵时代, 1992)」(주식회사 워크, 일본, 1992) .. 인터뷰 외에도 영화에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록 밴드 코브라가 신곡 「1966, 붉은 열차」를 리허설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57)
「소비에트 영화의 스탈린 신화」라는 에세이에서 앙드레 바쟁(André Bazin, 1918-1958)은 공산주의 국가의 영웅이미 사용에 관해서 흥미로운 분석을 하고 있다. .. 스탈린의 생존 시에 형성되고 있다는 데 놀라워한다. (58)
바쟁과 파솔리니의 통찰은 1960년대 마오쩌둥의 이미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이해하는데 좋은 방법을 제공해준다. (60)
앨리스 카플란(Alice Kaplan, 1954-) (60)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의 용어를 사용해서 만일 개인이 ‘호명’[(appellation)]되는 것이라면, 개인은 단순히 영화의 관객으로 호명될 뿐 아니라 영화 그 자체로 호명된다. 그들은[개인은] 주체, 관객으로서 뿐만 아니라 객체, 구경거리, 영화로서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이다. (61) [ 지배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객체로 만드는 경우가 ‘호명’(appellation)이 아닌가? 주체로 돌려 세운다는 것은 저항이 있을 경우가 아닌가? ] 바쟁이 타잔영화와 스탈린 영화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타잔 영화가 다큐멘터리인 척하지 않는 점이라고 적고 있다. .. 타잔의 관객처럼, 소련과 중국의 젊은이들은 대량 소비의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61) [소설의 가능한 상상 속에 독자가 읽는 동안 참여하는 듯하지만 독자는 바깥에 있다. 영화(특히 기록영화)의 현실적 가상성 속에 개인은 참여자가 아니라 박수치는 관객이며, 실재성도 전혀 다르고 현실화도 물질성을 달리한다는 것을 알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현재 남북 또는 북미의 만남을 보라. 가상성 속에서 현실화는 항상 기대 또는 바람일 뿐이지 않는가? 관객이 주체가 되는 것은 추억(절편)들의 중첩과 상호연관을 반성하고 나서, 기억의 총체로서 성찰할 때, 주체가 된다. 그 주체는 스스로의 노력(권능)을 실행(화행론)한다. - 시간은 거울 반사가 아니라, 깊이에서 길어올리는 반성과 성찰에서 지속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51ULA)]
비릴리오Paul Virilio, 1932-)가 반복적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전쟁 테크놀로지와 시각 테크놀로지의 치명적인 상호의존성, “근대 전쟁기계의 힘.. 과 새로운 근대 관찰기계의 기술적인 성능의 결합”이다. 히틀러(Hitler, 1889-1945)와 무솔리니(Mussolini, 1883-1945)는 지각과 파괴가 동일선상에 있고 영화적인 비전과 전쟁이 밀접하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비릴리오는 쓰고 있다. (62) [왜 국가가 수행하는 전쟁은 종합적일까? 들뢰즈의 전쟁기계는 국가에 전유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전쟁이란 점에서 기계들의 총합이 아닌가?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위기 상황에서 전쟁기계는 국가에 대해 강도의 힘과 속도의 힘을 갖는 것이 아닐까? 국가는 이 전쟁기계를 제거하면서(하고나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리라. (51ULA)
비릴리오는 ..“ 사진을 발명한 니세포르 니에프스의 말처럼 만약 사진이 빛으로 새기는 하나의 방법이고, 육체가 그 자신의 빛으로 자신의 흔적을 각인해가는 것이라면, 핵무기는 니에프스와 다게르의 암실과 군사용 서어치 라이트의 후계자이다.” (62-63)
[§1.7.] 자연으로의 회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영화에서의 시각성 64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의 영화는 내가 ‘자연으로 회귀’라고 부르는, 그때까지와는 다른 대안적인 ‘의미’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 그런 자연 영상에는 풍경, 농촌생활, 그리고 억압받는 여서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64) [들뢰즈, 소수자(minorité)와 되기를 참조해 보라.]
.. 오래된 시각성이 ‘미학화’되어 간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첫째로 오래된 시각성은 과거와 고대의 잃어버린 것이라는 관념 및 기원과 점점 결부되어 왔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 [둘째] 시각의 역사에서 정교한 뉘앙스와 불가사의한 관습을 지닌 과거의 ‘중국문화’ 전체가 예스럽거나 골동품처럼 되어 일종의 ‘원시주의’를 양성하는 것이다.(65) [원시주의라기보다 고문헌(고유산)주의일 것이다. 슬기인의 역사가 깊다는 것은 지층이 두껍다는 것인데, 2천5백년 정도이다. 고고학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원숭이와 원생인류가 갈라진 6백만전부터 말이다.]
... 영화제작은 다시 한 번 기호의 탈 중심화를 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호를 ‘타자’의 기억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자연’이라 불렀던 저항력, 1960년대의 ‘중국이라는 그림’의 일종의 무의식으로 살아남은 저항력 쪽으로 기호를 향하게 하는 것이다. (66) [난해하다. 기호은 언어학의 말[대화](sermo, signification, 기호화)가 아니라 문화에서 기호(signe)로 읽힌다. 자연 즉 본성이 아닌가? 삶의 무의식은 본성의 발현이며 솟아오름인데, 저항은 우선 물질이 그리고 기존사회가 저항을 한다. 그 저항을 뚫고 새로운 생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천카이거(陳凱歌, 1952-), 텐좡좡(田壯壯, 1952-), 장이머우(張藝謀, 1950-)와 동시대 감독들[중국 5세대 감독]은 자기들 문화의 인류학자겸 민족지학자가 되어... 영화제작 자체가 미술관과 민족학 박물관으로 이분화된 공간이 된다. ,.. 메리 루이스 프랫(Mary Louise Pratt, 1948-)의 용어를 빌려 말하면, ‘자기 민족지(autoethnography)’의 공간이다. (67)
...그러한 비평가들의 견해를 집약해서 제프리 오브라이언Geoffrey O'Brien, 1948-)은 무언의 자연을 이용하는 것은 실제로는 중국의 현상에 대한 비판이자 정치적 저항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67-68)
천카이거.. “중국은 서부에는 산이 많고 동부에는 평지가 많다. 서부는 가난하고 동부는 부유하다. 중국역사에서 서부에서 동부로 퍼져나간 혁명운동의 예가 많다. 이런 정신에서 우리처럼 베이징 영화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졸업생들은 자신의 예술 창작의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비록 가난하고 척박하지만 가능성 가득 차 있는 이 황색의 대지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 감성은 인간의 진보와 생산성 우선이라는 미명아래 동원된 마오쩌둥의 농민운동의 결말이 대규모 생태계[도시환경] 파괴를 초래했다는 문화혁명 뒤에 명확해진 인식과도 연관이 있다. 따라서 현대중국영화의 산, 계곡, 바위, 하천의 고요하고 장엄한 경관이 시사하는 것은 실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아니라 자연의 무관심과 파괴력이다. (69) [하방은 필요하다. 저자는 자연에 대해 도구적으로 사고하는 것 같다. 이를 주지주의적 입장이라 부른다.]
.. [미국 사학자] 티모시 라이백(Timothy W. Ryback 1954-)은 유럽의 나치 범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1960년대 독일의 문화비평가 테오도르 아도르노(Adorno, 1903-1969)는 아우슈비츠 학살 이후 시를 쓰는 행위는 ‘야만적’인 것이 되었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독일 극자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이미 1938년에 ..“그러한 시대가 올까 / 나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거의 범죄가 되는구나 / 그토록 많은 공포에 대해 침묵하기 때문이라네.”
바쟁과 파솔리니에 의하면, 영화의 시간은 완결된 이해의 시간이다. 그들에게 영화 이미지는 언제나 사실보다 나중에 다가오는 것이다. (71)
.. 일단 생명[삶](의 시간)으로부터 차단되면 – 요컨대 일단 ‘죽으’면[절단되면] - 영화이미지는 제2의 삶, 인공적 시간, 움직임, 내러티브의 시간을 살기 시작한다. 파솔리니는 이렇게 말한다. ..(71) // “영화는 실제로 사후(死後)의 삶과 비슷하다.”(72) - [영화의 가상성은 추억들의 계열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른 삶의 계열로서 자기 삶과는 다른 삶(차히)으로서 현실화를 표현한다. 그 현실화는 개인으로서는 실현 불가능하더라도 실재성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소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로 전달되고 소통된다.]
영화의 투사적 효과 .. 두 개의 다른 시간 – 과거 회고와 미래 지향, 노스탤지어와 이상주의 – 이 합쳐지는 가장 적합한 장소[공간]가 된다. 영상은 과거의 회고(review)임과 동시에 미래의 예고(preview)이며, 과거를 집약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73) [현재의 이중성, 들뢰즈 표현으로 이중집게. 저자의 시각성은 다의성이 많다. 공시태로서 중첩, 통시태로서 나열, 병치, 연결접속은 영상이미지에 속할 뿐만 아니라, 의식의 전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의식이 물질적 토대를 갖는 다는 점에서만 이중구속이 있다. 물질적 토대를 떠나면(넘어서면), 언어의 내용와 표현이라는 이중성의 이중성, 불교의 불이(不二)론의 다층적 구조가 나타난다.] - [또한 시각성은 위상에 따라 세분화를 생산해 간다. 자료로서 민족지이지만 인민의 욕망과 자연의 토대가 함께 있다. 풍경으로서 구경(볼거리)에는 풍속과 유산(유습)이 있으면서도 토착적인 삶이 있다. 상징을 표현하는 의미에서 기표로서 권력자와 그를 뒷받침하는 지식인이라는 상층 대 인민과 소수자(이방인, 여성)라는 심층이 위상적으로 드러난다. 게다가 권력의 선전 대 인민의 이야기는 전자가 언설적이고 명령적인데 비해 후자는 간접화법적이고 기호적이라야 하는데, 선전의 억압 대 인민의 억제는 전자를 기호적 반복이며 후자는 활용성의 반복으로 표출될 것이다.]
중국영화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지방의 ‘원시적’[토속적] 관습, 의례, 관행의 풍경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1917-2012)이 ‘전통의 발명’이라고 부른 “형식화와 의례화 과정”의 일환으로 간주할 수 있다. (74) [풍경이 얼굴이 되는 과정이 전통의 발명 또는 전통의 의례화일 것이다. 얼굴을 머리 또는 몸체로 만들어가는 것이 주체화의 길일 것이다.]
[§1.8.] 여성의 장소 75 [여성의 지위 또는 위상]
폴 클라크(?-?)에 의하면, 제5세대 영화감독들이 남부의 부드럽고 습기 많고 풍요로운 풍경이 아닌 서북부의 모질고 메마르고 거친 풍경에 애착을 갖는 것은 중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인해질 필요가 있다는 그들의 메시지 때문이라고 한다. (75)
1990년대 페미니즘의 목표는 단지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전통적으로 여성을 통제하고 착취해왔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타자를 지배하고 착취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75) [아무 때나 욕망이란 말을 쓴 것 같다. 자본제국에서 자본의 탐욕은 끝이 없다. 탐욕은 주체화나 의미화를 실현하려는 욕망과 다르다.]
커섹시스(cathexis) (75)
장이머우(張藝謀, 1950-)의 「오래된 우물(노정 老井 1986년)」(장예모, 장이머우, 감독, 주연) .. 「붉은 수수밭(红高粱, 1987)」, 「국두(菊豆, 1990)」, 「홍등(大红灯笼高高挂, 1991)」 (76)
천카이거(陳凱歌, 1952-)의 「황토지(黄土地, 1984)」(데뷔작, 장이모와 합작), 「현 위의 인생(边走边唱 1992)」 (76)
천카이거(陳凱歌, 1952-)의 처음 네편의 장편영화에서 ‘여성’ - 「황토지(黄土地, 1984)」(데뷔작, 장이모와 합작)의 추이차호(翠巧, 취교), 「대열병(大閱兵, 1985)」(장이모와 합작)에서 사춘기 소년의 백일몽에 나타나는 소녀들이든, 「아이들의 왕(孩子王, 1987)」에서 가수겸 요리사인 라이디(來娣, 래제)든, 「현 위의 인생(边走边唱 1992)」의 신비한 여성들이든, ..(77)
현존 자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는 흔한 소망 ... 이 소망은 7.4운동에서부터 마오쩌둥에 이르는 근대중국 혁명사상 전반에 미치고 있다. 모리스 마이스너(Maurice Meisner, 1931-2012)는 마오쩌둥을 논한 단락에서 이러한 유형의 소망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78)
천카이거의 불가시성 및 비육체성의 기호학과는 정반대로 장이머우의 ‘여성’은 바로 구결할 만하고 극적인 신체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81) 엿ㅇㅇ [§1.9.] '중국'이라는 기호를 탈중심화하기 82
폴 클라크(?-?)는 중국영화 제5세대 시대는 끝났다고 최근에 쓰고 있다. .. 이를 테면, 장위안(張元, 장원, 1963-)의 「어머니(媽媽, 마마, 1992)」(현대 베이징에서 정신지체아를 남편없이 혼자 키우는 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리사오홍(李少紅, 리소홍, 1955-), 「붉은 가마(血色清晨 혈색청신, 1992」(Bloody Morning)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예고된 살인의 기록을 각색한 살인사건 수사에 관한 이야기), 천카이거(陳凱歌, 1952-)의 「패왕별희(霸王别姬, 1992)」 .. 장이머우(張藝謀, 1950-), 「귀주 이야기(秋菊打官司, 1992」(중국 관료제에서 정의를 찾으려고 결심한 한 농민여성의 이야기).. (82) [그러면 1990년 이후는 제6세대인가?]
천카이거의 “문화는 내가 중국인이라는 것을 결정지어왔고, 나의 모든 관심은 거기에 있다.”는 발언에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완고한 토착주의(nativism)는 장이머우 같은 감독에게서조차 보이는데, 중국이라는 “희생자이자 제국”을 뛰어 넘어서 자기를 규정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완고한 토착주의의 담론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84) [ 2008년 올림픽 개폐막식의 총감독은 장이머우 였다고 한다.]
제레미 바르메(Geremie R. Barmé, 1954)는 한 자극적인 논문에서 “ 중국의 지식인은 동유럽의 지식인에 비해 일반적으로 전체주의에 복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85)
헝가리 반정부 시인, 미클로시 허러스티(Miklós Haraszti 1945-)의 말을 빌려서 바르메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현상황을 ‘벨벳 감옥’이라고 부른다. (85) [비판은 필요하다. 서구든 동구든 유럽인들의 글은 백색 이데올로기에 들어 있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들이 나서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
체코의 반체제 시인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 1936-2011)은 이를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부르고, 허러스티는 ‘벨벳 감옥’이라고 명명한다. (85) [죽의 장막이라는 표현과 닮았다. .. 나의 중국영화 읽기가 겨냥하는 것은 단순히 서양에 대한 중국의 ‘희생’과 ‘주변화’라는 테마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시적’ 열정이라고 불러운 악순환적[회고적] 감정의 복합체에 의한 ‘보이지 않는 폭력’을 해체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87) [저자의 의도와 용어를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87)
[이집트의 낫세르가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한 것은 폭력이 아니다. 중국이 홍콩을 반환 받아서 중국화 하자고 하는 것은 폭력일까? 국가주의의 폭력은 국가의 잉여를 수탈하는 방식을 그대로 묵인하는데 있다. 폭력의 확장과 미시적 포획은 국가 보다 자본제국의 훨씬더 교묘하고 교활하다. (51ULA)
(15:16, 51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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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 1903-1969) 독일 사회학자, 철학자, 피아니스트, 음악학자 그리고 작곡가. 그는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더불어 프랑크푸르트 학파 혹은 비판이론의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루이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 1918-1990) 프랑스의 맑스주의 철학자. / 이데올로기론: 첫째,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의 실제적 존재 조건들에 대한 그들의 “상상적인(imaginaire) 관계”를 표상한다. 둘째,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허상이 아닌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는 “물적(matérielle) 존재” 이다. [의식이 물화하는 과정은 거울 효과일 것이다], 셋째,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appellation)”한다 .
에드먼드 트렐로니 백하우스(Edmund Trelawny Backhouse, 1873–1944) 영국 중국학 전문가, 언어학자. <만주국의 몰락(2011). Décadence Mandchoue)>(중문판 제목은 <태후와 나>·사진) 이 책에서 서태후의 최후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1908년 11월15일 아침 서태후는 베이징 황궁의 접견실에서 위안스카이 등 두 명의 원로대신을 접견했다. 두 사람은 서태후에게 퇴위를 요구하면서 자신들을 젊은 황제(‘마지막 황제’ 푸이)의 섭정인으로 임명할 것을 요구했다. 화가 치민 서태후가 두 사람을 모반죄로 기소하라고 명령했다. 이 때 위안스카이는 리볼버 권총을 꺼내 서태후의 복부를 향해 3번 방아쇠를 당겼다. 서태후는 흥건하게 피를 쏟은 채 두 사람을 참수하라고 요구하며 최후를 마쳤다. 서태후를 시중들던 환관들은 통곡하기 시작했다.”/ 청나라 말기 2대 황제를 섭정하며 국정을 농락했던 ‘중국의 마지막 여황제’ 서태후(西太后·1835~1908·사진)의 죽음은 이질이나 노환이 아닌 측근인 군부 실력자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총격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Backhouse, Edmund; Bland, J.O.P. (John Otway Percy) (1910). China Under the Empress Dowager: Being the History of the Life and Times of Tzŭ Hsi. Retrieved 1 April 2013. 서태후(Tz'u Hsi, 1834–1908, dowager empress of China, 1861–1908) 47년 통치자(섭정 1861–73, 1874–89, 1898–1908) 황태후(empress dowager).
제레미 바르메(Geremie R. Barmé, 1954-) 오스트렐리아 중국학학자. 중국에 관한 영화제작. Seeds of Fire: Chinese Voices of Conscience(1988), with John Minford, New Ghosts, Old Dreams: Chinese Rebel Voices.(1992). with Linda Jaivin,
앙드레 바쟁(André Bazin, 1918-1958) 프랑스의 영화 평론가이자 영화 이론가. 1951년에는 자크 도니올발크로즈, 조제프마리 로두카와 함께 영화 잡지 《카예 뒤 시네마》를 창간하였다. 영화 만년필 설을 설파하며, 영화를 '제8의 예술'로 등극시킨 누벨바그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추종자로는 프랑스와 트뤼포와 장뤽고다르, 에릭 로메르로 프랑스 영화운동을 전 세계적인 붐으로 발전시켰다. / 영화란 무엇인가? I. 존재론과 언어(1958) 「XII.. 소비에트 영화에서 스탈린의 신화」(Le cinéma soviétique et le mythe de Staline. in Esprit, Nouvelle série, No. 170 (8) (AOUT 1950), pp. 210-235.)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 1892-1940) 유대계 독일인, 맑스주의자, 문학평론가, 철학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1935)」(《현대 사회와 예술》문학과 지성사, 1980)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독일의 극작가, 시인, 연출가. 주로 사회주의적인 작품을 연출했으며,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연극 연출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표현주의를 거친 신즉물주의적(新卽物主義的) 스타일로, 현실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과 풍자를 극화한 니힐리스트이다. 후에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산과 검은 성(La Montagne Sainte-Victoire et le Château noire, 1904)
레이 초우(Rey Chow, 1957-, 周蕾, 주뢰), 홍콩출신 미국 활동, (여성)문예비평가. Writing Diaspora: Tactics of Intervention in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Indiana University Press, 1993. / Primitive Passions: Visuality, Sexuality, Ethnography, and Contemporary Chinese Cinema.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5.
록밴드 코브라(Cobra (眼镜蛇乐队 Yanjingshe yuedui)(1989-) was an all-female rock band from Beijing, China. The band formed in 1989, becoming the first all-female rock band in mainland China
루이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 1787-1851) 프랑스의 미술가, 사진가. 사진술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의 발명.
기 드보르(Guy Debord, 1931-1994) 프랑스 철학자.
폴 드망(Paul de Man, 1919–1983) 벨기에 태생 미국 문학비평가, 문학이론가. 전쟁 시에 독일 협력자이며 반 유대주의자. 1948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 데리다 친구. 해체주의. (본명: Paul Adolph Michel Deman), Blindness and Insight: Essays in the Rhetoric of Contemporary Criticism. 2nd ed. 1983.]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 ,1966),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1975),
고갱(Paul Gauguin 1848-1903)
미클로시 허러스티(Miklós Haraszti 1945-) 헝가리 시인, 헝거리 작가, 기자, 교수. The elvet Prison: Artists Under State Socialism, 1988. / 1988년 헝가리에 아직 소련군이 주둔해 있던 시절, 한 25세 청년이 당시 유명 반체제 인사이자 작가였던 미클로시 허러스티를 찾아왔다.]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 1936-2011) 체코의 극작가, 77 헌장의 발기인. 대통령, The Power of the Powerless (Czech: Moc bezmocných) 1978 1989년에 벨벳 혁명(Sametová revoluce)[비폭력 혁명, 신사 혁명]을 이끌고 1989년 12월 29일 공산주의 연방 의회(Federální shromáždění)는 바츨라프 하벨을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40년 만에 비공산주의자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 되는 순간이었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독일철학자, 「예술작품의 근원(Der Ursprung des Kunstwerkes, 1935)」 [马丁·海德格尔]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 하이데거와 같은 해 태어났다. (비트겐슈타인도)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1917-2012) 영국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영국 공산당 당원. 공산당 역사가 그룹의 회원이다. 런던 대학교 버크벡 칼리지의 학장(President)을 지냈다. introduced the influential idea of "invented traditions". Eric Hobsbawm & Terence Ranger, ed. (1983). The Invention of Tradition.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 1896-1982) 러시아 태생 미국의 언어학자, 슬라브어 학자. 러시아 형식주의자 중 한 사람. 「번역의 언어적 측면에 대하여(On Linguistic Aspects of Translation, 1959)」 (러셀의 반박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용은 알아보지 못했다)
마틴 제이(Martin Jay, 1944-) 미국 지성사가. The Dialectical Imagination: A History of the Frankfurt School and the Institute of Social Research, 1923-50, 1973 / 내리깐 눈: 20세기 프랑스 사상에서 관점의 폄하(Downcast Eyes: The Denigration of Vision in Twentieth-Century French Thought, 1993) / "Scopic Regimes of Modernity." In Vision and Visuality: Discussions in Contemporary Culture No. 2, edited by Hal Foster, 3-27. Seattle, Washington: Bay Press. 1988. 「근대의 시각적 체제(1988)」 1988년이면 근대성에 대한 정리가 될 때인데..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1941)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이다.
앨리스 카플란(Alice Kaplan, 1954-) 예일대 출신(1981), 미국 불문학 여교수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 1943-2011), 독일 미디어 이론가. 문학평론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Richards Lawrence, 1885-1930) 영국의 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이다. 《사랑에 빠진 여인》(Women in Love, 1920)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 1928)
제이 레이다(Jay Leyda, 1910–1988) 미국 전위 영화제작자. 영화사가. Dianying/Electric Shadows: An Account of Films and the Film Audience in China.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1972.
뤼미에르(Les Lumières) 형제는 프랑스의 발명가 형제 오귀스트 마리 루이 니콜라 뤼미에르(Auguste Marie Louis Nicholas Lumière, 1862-1954)와 루이 장 뤼미에르(Louis Jean Lumière, 1864-1948) 형제가 활동사진을 만든 것은 아버지가 은퇴한 1892년의 일이었다. 1895년 2월 13일에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하여 특허를 받았다.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상영된 세계 최초의 영화는 《열차의 도착》 이라는 50초의 짧은 내용의 작품이었다.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50살)는 1863년 「낙선자 전시회」(Salon des Refusées)를 열었다.]
모리스 마이스너(Maurice Meisner, 1931-2012) 중국 현대지성사 분야의 최고 권위자. 그의 중국혁명과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연구는 사회주의 사상, 마르크스주의, 마오이즘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이루어졌다. Li Ta-Chao and the Origins of Chinese Marxism. Harvard East Asian Series, 27.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7).
헨리 밀러(Henry Valentine Miller, 1891-1980) 미국의 소설가이다. 〈북회귀선(北回歸線)〉(1934년)
티모시 미첼(Timothy Mitchell, 1955-) 아랍을 연구하는 영국 정치학자. Carbon Democracy, Verso, 2011. Rule of Experts: Egypt, Techno-Politics, Modernit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2. Questions of Modernity,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0 (editor and contributor). Colonising Egyp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1.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마티스 부인 초상(Madame Matisse, portrait à la à la Raie Verte, 1905)」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벗고 누운 여인(Nu allonge, 1917)」
무솔리니(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 1883-1945),
니세포르 니에프스(Joseph Nicéphore Niépce, 1765-1833) 프랑스의 발명가, 사진가. 특히 사진술의 선구자.
제프리 오브라이언Geoffrey O'Brien, 1948-), 미국 시인 영화비평가 번역가, 문화역사가. The Phantom Empire: Movies in the Mind of the Twentieth Century, 1995)
파솔리니(Pier Paolo Pasolini, 1922-1975)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시인, 평론가. He also thought that the cinema is the "written" language of reality which, like any other written language, enables man to see things from the point of view of truth. / "Pier Paolo Pasolini (1922–1975)". Cinematismo (in Italian) / The Cinema of Poetry Pier Paolo Pasolini, In Movies and Methods. Vol. 1. Ed. Bill Nichol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6. 542-558. / “The 'Cinema of Poetry'” (1965), “The Cinema as Poetry”는 찾을 수 없다.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스페인 출신 프랑스에서 활동한 미술가.
메리 루이스 프랫(Mary Louise Pratt, 1948-) 스탠퍼드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연구, 뉴욕대에서 스페인어 포르투갈 언어 교수. 『제국의 시선(Imperial Eyes: Travel Writing and Transculturation. 1992)』
샐리 프라이스(Sally Price, born Sally Hamlin, 1943-) 미국인류학자. . Primitive Art in Civilized Places 1989
티모시 라이백(Timothy W. Ryback 1954-) 미국역사가. Hitler's Private Library: The Books That Shaped His Life, 2008. 논문이 1990년대에 나왔을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1978)(박홍규 옮김, 교보문고, 1991)은 중동과 인도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드러내는 언설들을 정리했다. / 안티 외디푸스(L'Anti-Oedipe: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1972)의 관점을 볼 필요가 있다.
스털링 시그레이브(Sterling Seagrave, 1937–2017), 미국 역사가, 드래건 레이디(Dragon Lady: The Life and Legend of the Last Empress of China, 1992(청나라 황태후 서태후), 『Lords of the Rim, 1995)』1985년 이래 프랑스인이되었다.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 소비에트 연방 지도자.
매리애너 투르고브닉 Marianer Trougovnick s.d. Marrianer Drougovnic
잔니 바티모(Gianni Vattimo, 1936-) 이탈리아 토리노 태생, 이탈리아 철학자. 근대성의 종말: 탈근대 문화의 허무주의와 해석학(La fine della modernità, Garzanti, Milan, 1985; fr. La fin de la modernité : Nihilisme et herméneutique dans la culture post-moderne
폴 비릴리오(Paul Virilio, 1932-) 프랑스 철학자. 속도의 철학.
中
딩링(丁玲, 정령, 1904-1986) 중국 여성 작가. 본명은 장위문(蔣褘文). 후난 성 린리(臨澧) 사람이다.
롼링위(阮玲玉, 완령옥, 1910-1935) 우융강(吳永剛, 1907-1982)[스물다섯] 감독의 「신녀(神女)」(聯華影業公司, 1934)의 주인공이다.
루쉰(鲁迅, 로신, Lǔ Xùn, 1881-1936) 중국의 소설가. 본명은 저우수런(周树人, 주수인)으로, 자는 예재(豫才)이고 루쉰은 새롭게 지은 필명이다. 이외에 영비(令飛), 하간(何干) 등 100개가 넘는 필명을 사용하는 등 반정부 논객으로 많이 활동하였다. 『아큐정전(阿Q正伝)』, 『광인일기(狂人日記)』, 中国小说史略(1924, 1934), 汉文学史纲要。
루인(노은, 盧隱): 廬隱(本名黃淑儀,又名黃英, 1898-1934)여성작가. 福建省閩侯縣南嶼鄉人,中國五四時期著名的作家。曾與冰心、林徽因齊名並被稱為「福州三大才女」。
링수화(凌叔華: 릉숙화, 1900-1990), 여류소설가 시인,与苏雪林、袁昌英合称“珞珈林山三个文学朋友”(珞珈三女杰)
리사오홍(李少紅, 리소홍, 1955-), 中国导演,山东威海文登人。 年 「붉은 가마(血色清晨 혈색청신, 1992」(Bloody Morning)
마오쩌둥/모택동(毛泽东, 1893-1976) 중화인민공화국 정치가, 국가 주석.
바진(巴金, 파금, 1904-2005) 중화인민공화국의 작가이다. 본명은 리야오탕(李堯棠, 이요당)이고, 자는 페이간(芾甘, 비감)이다.
빙신(氷心: 冰心, 빙심 1900-1999)여성작가,本名謝婉瑩,福建省福州市长乐人,中國现代女作家,晚年被尊稱為“文壇祖母”。
샤오훙(蕭紅, 소홍, 1911-1942)은 중화민국 여성 소설가, 수필가이다.
선충원(沈從文, 심종문, 1902-1988) 대표작은 <변성(邊城)>(1934) 외에 <종문자전(從文自傳)> 단편소설로는 <춘등기(春燈記)> <흑봉기(黑鳳記)>가 가장 대표적이다. 중국 농민들의 투쟁과 승리를 주제로 하여 35권 이상의 소설을 썼다.
쉬즈모(徐志摩: 서지마, 1897-1931), 남, 작가. 原名章垿,字槱森,小字又申,後改字志摩,浙江海寧人,中華民國著名新月派現代詩人,散文家
우원광(吳文光, 오문광, 1956-) 영화 <유랑 베이징: 최후의 몽상가(流浪. 北京: 最後的夢想者)1990> 영화 《1966,我的红卫兵时代》(1992)
위다푸(郁達夫, 욱달부, 1896-1945) 중국의 소설가. 대표작으로 『몰락(沈淪)』, 『잃어버린 양(迷羊)』 등이 있는데, 『몰락』은 몰락해가는 신경질적 개인의 성적 추구를 집중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거듭나며, 퇴폐적이며 자아 폭로적인 경향에 대해 찬양과 비난이 엇갈리면서 열딘 문학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장원(姜文, 강문, 1963-) 중국의 배우, 영화 감독.
장위안(張元, 장원, 1963-), 南京人,是中国大陆导演。1989年取得北京电影学院摄影系学士学位,「어머니(媽媽, 마마, 1992)」(현대 베이징에서 정신지체아를 남편없이 혼자 키우는 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장이머우(張藝謀, 1950-), 《붉은 수수밭(红高粱, 1987)》, 菊豆 1990《귀주 이야기 秋菊打官司, 1992 》, 《영웅英雄 2002》 出生于中国陕西西安,国际知名中国电影导演,2008年北京奥运会开幕式总导演,為中国大陆第五代导演的代表人物之一,美国波士顿大学及耶鲁大学荣誉博士 첫 감독은 1987년의 <오래된 우물(노정 老井 1986년)> 장예모(장이머우)가 주연입니다. 《인생 活着1994》
천카이거(陳凱歌, 1952-) 천카이거는 중국의 영화감독이다. 장이모와 함께 중국 5세대 감독의 대표로 꼽히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황토지(黄土地, 1984)》, 대열병(大阅兵 1986), 《아이들의 왕(孩子王, 해자왕, 1987)》, 《현 위의 인생(边走边唱, 1992)》 《패왕별희(霸王别姬, 1992)》
텐좡좡(田壯壯, 1952-), 中國導演、演員,北京人。「말도둑(盜馬賊, 1986)
후스(胡適, 호적, 1891-1962) 중화민국의 문학자·사상가이다. 본명은 후스먼(胡嗣穈, 호사문), 자(字)는 스즈(適之, 적지).
명치유신(明治維新 메이지 이신, The Meiji Restoration, 1868).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은 1966년 5월부터 1976년 12월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벌어졌던 사회상·문화상·정치상 소란으로, 공식 명칭은 무산계급문화대혁명(無産階級文化大革命, 우찬제지 원화다거밍)이고 약칭은 문혁(文革, 원거)이다.
문화열((文化熱) 1984-1986): 본격적으로‘열(열)’이 시작된 해는 1984년이다. 1984년은 ‘경제체제의 개혁으로 경제생활뿐만 아니라 생활방식과 정신상태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생활방식과 정신상태에 중대한 변화가’가 발생했음을 인정한 제12차 3중전회가 열렸던 해이다.’ - 약 2년간 계속되었다. 따라서 ‘문화열(문화열)’은 5·4운동의 부활이라고도 한다.
태평천국봉기(太平天國之蜂起 Taiping Rebellion) 1850-1864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대규모 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