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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에서 비둘기를 쪼개는 방법(창 15:9-17)
아브라함은 비둘기를 잘 쪼개지 않아 정성 들여 바친 헌제가 솔개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성약 시대는 말씀을 이루는 시대이기에, 지금은 말씀으로 비둘기를 쪼개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비둘기를 잘 쪼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 심사숙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원리에서 배웠듯이 쪼개는 이유는 선악을 분립하기 위함입니다.
즉 타락성을 분별해서 본성에로 다가가는 생활이 결국 쪼개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비둘기는 소생을 상징하는 제일 작은 제물입니다.
즉 가장 기초적인 사소한 것을 잘 분립하고 성별하는 생활을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양과 암소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잘 쪼갰습니다.
그런데 비둘기는 보기에 너무 작고 하찮게 여겨, 요렇게 조그마한 거야 쪼개나 안 쪼개나 그게 그거지 하는 생각으로 쪼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탄이 침범하는 조건이 되어 후손이 400년간 고역을 치러야 하는 크나큰 탕감 조건을 제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잘 것 없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거역하면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게 되어 섭리를 그르치게 되고, 크나큰 가중된 탕감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소한 것을 잘 쪼갬으로써 자신의 타락성을 자각하고 보다 본성으로 다가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우리들은 별생각 없이 습관성에 의해 일상적인 생활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상생활 속에서 분립 생활을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쪼개야 할 비둘기는 바로 사소하다고 생각하고 소홀히 여기기 쉬운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자신의 일상생활을 중히 여기게 될 때 비로소 비둘기를 잘 쪼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비둘기를 잘 쪼개려면 우선 매일 반복되는 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일상생활에서 지극히 사소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먹고, 자고, 숨 쉬고, 보고, 듣고 말하는 것 등 가장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첫 번째 먹는 것을 어떻게 쪼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먹는 것을 쪼개는 것은 하나님의 실체로 생각하고 먹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만물은 제3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만물에 담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만물을 통해 당신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만물을 먹고 건강한 육신이 되게 하십니다
곧 만물은 하나님의 사랑이 실체로 변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만물을 취할 때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인 것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어야 비둘기를 쪼개는 것입니다.
단순히 배고파서 먹고 맛있다고 먹으면 분립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만물을 위해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 지으신 목적은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은 인간에게 먹힘으로, 즉 인간을 위해 희생함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창조원리입니다.
인간에게 먹혀 인간의 에너지가 되어 그 인간이 창조목적을 이루게 되면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데 간접적으로 공을 세우게 됩니다. 만물은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으므로 인간이 그 뜻에 따라 만물을 섭취해줘야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물을 섭취할 때에도 내가 먹어줌으로 이 만물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동참시킬 수 있다는 심정으로 먹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만물은 어린이가 미끄럼틀 탈 때 야호 하고 미끄러져 내려가듯이, 만물도 우리 식도를 통과할 때 야호하고 기쁜 심정으로 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아버님 말씀)
그러면 그 만물은 신나서 내가 인간의 에너지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그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배치된 악한 일을 하게 되면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먹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만물이 내 뱃속에서 괴로워하기 때문에 쉽게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시간을 지켜서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수리적 하나님이시란 것을 우린 원리를 통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천리의 순리에 따라 식사시간도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2번이나 3번 먹지 4번 5번 먹고 싶다고 자기 먹고 싶은 데로 먹으면 이 또한 원리에 위배됩니다.
더구나 야식은 불식이라는데 야식까지 챙긴다면 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혹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은 양을 지켜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위의 절반 정도만 먹으라는 것입니다. 3분의 2를 초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를 혹사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성전을 혹사하는 것이 됩니다.
많이 먹어서 만든 병은 하나님도 긍휼히 여기지 않습니다.
같은 지구에서 한쪽은 많이 먹어서 다이어트 해달라고 기도하고 다른 한쪽은 먹을 것이 없다고 먹을 것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지막 신토불이에 의해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토불이란 몸과 땅이 둘이 아니므로 그 땅에서 생산된 것을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텃밭을 일구어 손수 농사지어 먹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신토불이가 더 중요합니다.
인간은 지구와 닮은 꼴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바다 것 70%, 육지 것을 30%로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채소 70%, 고기를 30% 비율로 먹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구의 구조가 바다 70%, 육지 30%이고 또 식물이 70%, 동물이 30%이니 이 신토불이 원칙에 의해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채소도 육지 채소보다 바다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하고, 고기도 육류보다 바닷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양 섭리를 하신 목적도 인간의 먹을거리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해결하기 위한 것도 계셨음을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신토불이의 원칙에 의해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비율에 맞게 모든 만물을 섭취하여 창조목적을 성취시켜주는 것이 바로 성약 시대의 비둘기 쪼갬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잠자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잠자는 것을 통해 비둘기 쪼개는 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잠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품속에서 잠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의 부모가 하나님이시니 당연히 하나님의 품속에서 잠들어야 하지요.
또한 하나님의 품속에서 하나님의 사랑, 즉 생소를 받기 위해 잠을 자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인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충전해서 그 영인체가 육신에게 힘(생령요소)을 주어 건강하고 기쁘게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잠을 자는 것은 낭비가 아니고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잠을 자지 않아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생소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그냥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지켜서 자고 일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먹는 것처럼 잠자는 것도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원리이니까요.
아버님은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태양의 주인이 종보다 늦게 일어나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태양보다 먼저 일어나서 태양아 내가 일을 해야 하니 네가 와서 불을 밝혀라고 명령을 하면, 태양이 네에 주인님 잘 알겠사옵니다.
이렇게 우주의 주인으로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태양이 주인님 주인님 이제 그만 일어나셔요 하면, 나는 아직 밤이다 하고 커튼 치고 잠을 자려고 하시지는 않으신지요?
밤은 잠을 통해서 섭리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밤의 정점인 0시에서 4시까지는 잠을 충분히 자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생소를 충전해야 하니까요.
그것을 위해 11시부터 잠자리에 들고 4시에 일어나서 5시면 훈독회를 시작하는 것 아닙니까?
아버님께서는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깊게 자야 합니다. 숙면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숙면을 취해야 짧은 시간 자고도 충분히 생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잠자는 위치와 방향도 중요합니다.
지구는 자석으로 되어 있어 북쪽은 S 극, 남쪽은 N 극입니다.
이 지구와 일치된 자세로 잠자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머리는 북쪽으로 다리는 남쪽으로...
그것이 도저히 안될 때에는 지구가 돌아가는 방향으로 즉 머리는 동쪽으로 다리는 서쪽으로...
차를 타고 가실 때 뒤로 앉아 가는 것 하고 정면으로 앉아 가는 것하고 비교해 보시면 쉽게 체휼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님은 아버님의 존영도 북쪽에 걸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상황이면 동쪽에...
이렇게 우린 잠자는 것도 비둘기 쪼개듯 잘 분별해서 자야 합니다.
다음으로 숨 쉬는 것도 잘 쪼개야 합니다.
숨을 쉬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늘 사랑하시고 싶어 공기를 통해 당신의 손길을 뻗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 언제나 너와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형진님 가르치셨지요. 들이쉴 때 하나님의 사랑을 들이쉬고 내쉴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
숨을 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못 느끼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숨 쉴 자격이 없는 것 아닙니까?
돈 한 푼 안 내고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숨 쉰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 날강도요, 도둑놈입니다.
사탄의 자식이니 하나님 것을 마음대로 강탈하고 훔쳐다 쓰는 것 아닙니까?
숨 쉬고 싶으면 하나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효도하기 싫으면 숨 쉬지 말고 코를 봉해야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님이 말씀하셨지요. 코를 막고 몇 분이나 버틸 수 있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공기가 서러워합니다. 공기가 치를 떱니다. 공기가 너무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숨 쉬는 것도 순리대로 쉬어야 합니다.
들이쉬면 반드시 내쉬어야 합니다. 누구나 다 잘 하고 있습니다.
욕심부려 공기가 아깝다고 들이쉬기만 하는 바보가 있나요?
그런데 욕심부려 들이쉬기만 하겠다는 것이 타락인간 아닌가요?
자기를 잘 돌아볼 일입니다.
그리고 공기는 온 우주의 기입니다. 공기 속에는 만물의 모든 향기가 총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공기를 통해 우리에게 우주의 모든 기를 불어넣어주시려고 하십니다.
그 크신 사랑을 알고 감사히 우주의 기를 받고 우주를 잘 주관하고 다스려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리는 효자 효녀가 되어야 비둘기를 잘 쪼개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음으로 천천히 숨을 쉬어야 합니다.
깊게 들이쉬고 끝까지 내쉬면서 공기의 맛을 음미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하는 호흡이 되어야 합니다.
오래 사는 동물일수록 천천히 호흡한답니다.
복식호흡 같은 것을 하면서 되도록 천천히 숨 쉬는 생활을 습관화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귀를 잘 분립하라고 했습니다.
듣는 것을 잘 분립해야 한다는 뜻이죠.
듣는 귀를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듣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실 수가 없으니 만물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상대를 통해 말씀을 내리십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우칠 수 있어야 내가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사탄의 자식이면 사탄의 말로 듣겠지요.
타락한 인간은 욕을 듣더라도 하나님이 뜻이 계셔서 자신을 책망하시는 것이라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탕감이 잘 됩니다.
오히려 칭찬받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칭찬에는 쉬이 자만하고 교만에 이르러 실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알아듣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말만 들으려 하지 말고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말을 하는지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말을 하는 자의 심정을 파악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또한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고 존경심을 갖고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소리를 아름답게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베토벤은 천둥소리를 듣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보통 천둥소리나 번개가 치면 두려워합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나요.
하지만 심령이 맑으면 천둥소리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들리고 번개도 아름다운 불꽃놀이로 보일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으로 인도하는 소리와 악으로 인도하는 소리는 성별해야 할 것입니다.
내 귀를 성별하지 못하면 아름다운 소리도 두려움으로 들을 수 있는데 하물며 사망의 소리에 유혹당하여 그리로 빠져들면 어찌 하나님께 갈 수 있겠습니까?
사망의 소리는 선악과처럼 먹음직하고 보암직도 합니다. 너무나 달콤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정보나 지식의 홍수시대입니다.
사탄도 하나님께 배웠는지 홍수로 쓸어가네요.
그 사탄의 홍수에 쓸려가지 않으려면 우린 훈독회를 통해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것입니다.
늘 말씀을 읽고 들어서 죄악을 성별하는 생활이 성약시대의 비둘기 쪼개는 모습이겠지요.
사망으로 인도하는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보는 것은 듣는 것이랑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영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귀하게 볼 줄 알고 선하게 볼 줄 알고 아름답게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 예술의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는 것도 사망으로 인도하는 것들은 철저히 성별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말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을 주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말을 하나님 대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담아서 말씀하라는 뜻이겠죠.
그러니 당연히 상대를 위해 말씀해야 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죄악을 분립해주는 말씀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심정으로 말씀해야 합니다.
비판이 아닌 살려주기 위한 분립의 말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상대를 위해서 말씀을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 말씀은 죄악을 분립해주고, 또한 아름답고 선해야 하겠지요.
하나님께 보고하듯 늘 존경어를 쓰기에 힘쓰고 칭찬하고 선을 담아서 말해야겠습니다.
자식이라고 아랫사람이라고 함부로 반말하고 하면 그 속에 계신 하나님이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늘 하나님께 보고하는 심정으로 말을 하므로 나 자신이 말씀화되어 가도록 해야 죄악이 성별 됩니다.
그리고 되도록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긍정의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부정을 좋아하고 거역을 좋아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공산주의 이론을 보면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합니다.
정반합의 이론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혈통이 말에도 녹아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등 일본어에도 그런 말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しなければならない (...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어에도 있더군요
긍정은 긍정, 부정은 부정으로 족합니다.
굳이 긍정을 부정의 부정으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것이 습관이 되면 내 혈통이 사탄을 닮아갑니다.
이렇게 우리가 언어를 잘 성별하므로 죄악을 성별 해낼 수 있으므로 언어생활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쪼개는 생활을 잘 해야 심령이 성장할 수 있는 기대를 구축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내가 쪼개야 할 비둘기를 잘 쪼개어 분립해야 심령이 선화되고 부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활 속에서 비둘기를 잘 쪼갠 후 양을 쪼개고 암소를 쪼개야 온전한 제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둘기 쪼개지 않음으로 쪼개진 양과 암소도 무위로 끝난 아브라함의 헌제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즉 소생기를 잘 다진 후에 장성 완성을 쌓아 올려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지극히 작은 것에서 우리의 심령이 악화되고 있음을 절대 명심해야겠습니다.
지극히 작은 사소한 것이 우리의 영생을 결정합니다.
비둘기 하나 쪼개지 못하면서 하늘 앞에 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불성설임을 재삼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