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보 스님으로부터 미국인으로 첫번째 계를 받고 스님이 된 길버트 대혜스님
曼華 / 본지 편집위원
불기 2547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특집으로 1964년 서경보 스님이 도미로 시작된 미주한국불교계와 깊은 인연을 맺은 미국인 3인-대혜스님, 페이지교수, 랑케스터 교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혜스님은 본지가 확인한 미국인으로서 첫 번째로 한국불교계에서 주는 오계를 받은 사람이다. 그는 서경보스님으로부터 1968년 오계를 받고 1973년에는 대혜라는 불명으로 삭발을 하고 때로는 법복을 입고 전문적으로 수행과 포교에 뛰어들었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페이지 교수는 대원스님을 초청하여 무량사(구 대원사)를 창건하도록 하였고, 랑케스터 교수는 미국불교학계에 한국불교를 소개하고 버클리대학교에서 한국인 불교학자를 많이 양성하였다.
Don Gilbert 씨는 1909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출생하였다. 올해 한국식으로는 95세인 그는 아직도 건강하다. 십대에 집에 있는 책을 보고 요가를 수행하기도 했던 그는, 16세에 마담 브로바스키가 결성한 신지학회 회원이 되었고 현재도 신지학회의 S.F.회원이다. 그는 또 20세부터 13년동안은 곡예사로 이름을 날렸는데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영화와 텔레비젼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뉴욕의 Palace Theater는 이런 곡예사 중 출중한 기량을 가진 사람들만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많은 공연을 하였다. 길버트씨는 그의 동료와 함께 “Gilbert Brothers”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해외에서도 공연하였는데 3년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유럽과 멕시코, 카나다등지에서 활동하였고, 영국왕실의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와서 사업으로서 연예계 에이전트 그리고 후에는 광고와 출판 사업도 하였다.
여러 가지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길버트씨는 이미 어릴 적부터 동양사상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돈 길버트 (대혜스님)과 서경보스님
길버트씨가 서경보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캘리포니아 Walnut Creek에 있는 Bob King이라는 친구의 집에서 가진 모임에서였다. 이 모임은 서경보스님을 모시고 법문을 듣기 위한 것이다. 서경보스님과의 첫 대면에서 길버트씨가 느낀 것은 굉장히 지혜로우며 다정다감하고 유머감각을 지닌 아주 밝은 분이라는 것이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길버트씨는 평소에 가져왔던 많은 생각들의 일치를 느끼게 되었으며, 이런 분과 함께 한다면 무슨 일이든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래서 서경보스님을 자주 친견을 하였으며 스님의 설법하는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였다. 1968년 서경보스님으로 부터 계를 받은 후 길버트씨는 미국 각지에 불교를 포교하였다. 길버트 씨가 서경보스님으로 계를 받은 것은 스님이 1964년 미국에 들어온 후 서양사람으로는 한국불교계로부터 계를 받은 지금까지 알려진 맨 첫 번째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일이다. 이후 1973년 7월 13일, 서경보스님으로 “서양인에게 맞게 불법을 펼쳐보라”는 당부와 함께 ‘대혜(The Great Wisdom)’라는 법명을 받은 길버트씨는 불제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때부터 삭발을 하였다. 그러나 법복은 절에 갈때와 법회를 할때만 입었고 평상시에는 사복을 입었다. 이것은 서경보 스님께서 “미국 실정에 맞게 행동하고 불법을 펼치라”는 말씀에 다른 것이다.
1978년 4월에 청룡종( Blue Dragon Buddhist Order)을 설립했다. 그렇지만 이 단체를 법인화 하지 않았고 제대로 규모와 격을 갖춘 절을 세운 적은 없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캘리포니아 Arcarta에 있는 James Walker가 운영하는 “내면을 위한 학교(Internal School)”에서 선, 염불, 경행등을 가르치고 법회를 열고 선수행을 지도하였다. 이때 법문을 듣거나 참가한 사람들은 대학생들이 다수였는데, 일반인을 위한 대혜스님의 법문이 있을 때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삼보사를 창건한 이한상 거사 부부와 돈 길버트
대혜스님은 삼보사 개원식에서 축사를 한 이래 삼보사 화재전까지 삼보사의 각종 행사에 참여했다. 1980년대 초 대혜스님은 Master Dawn Bill을 대동하고 1년 내지 1년 반 정도 매 주말 삼보사를 방문하여 약 10여명의 영어 사용자들을 위한 법문, 경행과 일일수행 지도를 했으며 선수행을 지도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는 콜로라도 볼더를 자주 방문하여 선 수행을 지도했다.
1978년 Tracy로 거처를 옮긴 이후 차츰 이웃들과 친분을 돈독하게 하면서 매주 목요일 저녁 정기모임을 가져왔으며 최근 들어서는 고령으로 인해 건강에 많은 신경을 쓰고는 있으나 그러나 여전히 불교와 참선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요청이 있을 때는 언제나 마다하지 않고 바른 길을 나선다고 한다. Tracy 선원은 1995년에 설립되어 약 20명의 회원이 있으며 매월 모임에는 15명 가량이 출석한다.
대혜스님은 그 동안 두 번 한국을 방문하였다. 1987년 처음 방문시에는 서경보 스님 사무실을 방문하고 한국관광을 하였으며, 서울에서 열린 세계평화를 위한 불교국제연합회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대혜선사는 사람들이 불법에 접근할 수 있고 아상으로 인해 스스로 만들어 내는 문제들을 인식해 나가기 위해 해학의 역할을 중요하다고 보고 이 해학을 통해 불법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는 불교를 소재로 한 해학적인 만화책을 출판하였는데 <해파리 뼈(Jellyfish Bone)>, <圓을 거꾸로 놓다(The Upside Down Circle)> 이다. 이 책들은 현재 절판되었다.
Blue Dragon Buddhist Order에 관련된 푸른 용의 전설
푸른 용의 전설은 고대로부터 알려진 것이다.
깨달음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청룡이 살고 있는 동굴에 들어가 그와 대면해야 한다.
땅 표면 아래 깊숙한 곳, 아무도 모를 곳에 이 청룡은 살고 있다. 청룡의 임무는 깨달음의 보배를 수호하는 것이다.
청룡이 잠을 자는 곳 앞에는 깊고도 어둠컴컴한 못이 있는데, 동굴에 들어간 사람은 그 못에 뛰어 들어 청룡과 함께 헤엄을 쳐야 한다.
이 청룡이 하늘로 오를 때는 그의 깊고 어두운 굴에서 나와 지구의 위로 높이 비상하여 비를 내린다.
청룡이 몰고오는 비는 새 생명의 비로 지구 만물에 푸르고 싱싱하게 새기운을 불러 넣어주며 재생을 하게 한다.
이 청룡이야 말로 모든 존재의 중심을 상징한다.
청룡은 불빛에 비추어 보거나 만질 수 없다. 이 청룡이야 말로 사물을 볼 수 있게하는 근원이 되는 빛이기 때문이다.
실로 청룡에게는 성질이 있을 수 없으니 그가 바로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청룡이 없이는 나타나는 세상이 있을 수 없음에도 이 청룡자신은 나타날 수 가 없어 이 청룡을 잡거나 만지거나 냄새를 맡거나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활동속에 이 청룡은 반드시 있다.
이는 이 세상의 현상들은 존재하지 않는 무엇에 기인하여 나타나는 이치와 같다.
본지는 이 기사를 쓰는데 버콜즈 샴바라출판사 사장, 삼보사 주지 범휴스님과 김석주 거사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소중한 자료를 보내주고 인터뷰에 응한 돈 길버트(대혜 스님)과 그의 전법 제자 Master. Dawn Bill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Master Dawn Bill은 1975년부터 캘리포니아 Icata시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하러 온 대혜스님을 만나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을 시작하여 1976년 수계를 받고 2000년 3월에는 서경보스님 계보의 길버트 선사가 창시한 청룡종( Blue Dragon Buddhist Order) 계승자로 임명되었다.
The staffs of Modern Buddhism express ourt deepest thanks to Rev. Don Gilbert and Master Dawn Bill for meeting with us for an interview and supplying us with so many valuable and precieous historial documents and photographs for this article.
Blue Dragon Buddhist Order 에서 사용하는 반야심경
2003년 5월 1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