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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 다윗 왕(솔로몬의 부왕)은 어느날 궁중의 한 세공인을 불러서 "자신을 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라"고 지시하며, "반지에는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큰 절망에 빠졌을 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넣도록 해라" 라고 주문하였습니다.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에 새겨넣을 글귀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습니다. 세공장의 고민을 들은 솔로몬 왕자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써준 글귀가 '아무리 기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곧 지나갈 것이고, 아무리 슬픈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역시 곧 지나갈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는 의미의 'This, too, shall pass away'입니다. |
This too shall pass away.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어느 날 다윗왕이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 명했다.
"날 위해 반지를 하나 만들되 반지 안쪽에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도
결코 교만하지 않게 하고,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도 결코 좌절하지 않으며 스스로
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반지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다.
잠시 생각에 빠진 솔로몬은 이렇게 적으라고 일러주었다.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이다
(유대 경전 주석서 미드라쉬의 '다윗왕의 반지' 중에서).
유대인들은 이 구절을 붙잡고 독일 나치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This, too, shall pass away /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반지
http://blog.naver.com/rissa5?Redirect=Log&logNo=220044166175
[삶의 향기-이지현] 그래서 우리가 응원한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823986&code=11171344&cp=nv
2014.11.30 13:37 신고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또한 지나가리라
- Lanta Wilson Smith (랜터 윌슨 스미스) -
When some great sorrow, like a mighty river,
Flows through your life with peace-destroying power
And dearest things are swept from sight forever,
Say to your heart each trying hour:
“This, too, shall pass away.”
엄청난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평화를 진멸하는 힘으로 그대의 삶을 관통하여 흘러
가장 소중한 것들을 목전에서 영원히 휩쓸어 갈 때,
힘겨운 순간마다 그대의 가슴에 이를지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When ceaseless toil has hushed your song of gladness,
And you have grown almost too tired to pray,
Let this truth banish from your heat its sadness,
And ease the burdens of each tring day:
“This, too, shall pass away.”
쉼 없는 수고가 그대가 부를 기쁨의 노래를 잠재우고
너무나 지쳐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
이 진리가 그대의 가슴에서 슬픔을 추방하고
힘겨운 나날의 무거운 짐을 덜게 할지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When fortune smiles, and, full of mirth and pleasure,
The days are flitting by without a care,
Lest you should rest with only earthly treasure,
Let these few words their fullest import bear:
“This, too, shall pass away.”
행운이 미소 짓고 흥겨움과 유쾌함이 충만한
하루하루가 아무런 근심 없이 훌쩍 지나갈 때,
그대가 지상의 보화에만 만족하지 않도록
이 몇몇 낱말이 자신의 의미를 벅차게 지니게 할지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When earnest labor brings you fame and glory,
And all earth’s noblest ones upon you smile,
Remember that life’s longest, grandest story
Fills but a moment in earth’s little while:
“This, too, shall pass away.”
진지한 노고가 그대에게 명성과 영광을 가져다주고
지상의 모든 고귀한 자들이 그대에게 미소 지을 때,
인생의 유구하고 웅대한 이야기도
잠시 머무는 세상의 찰나를 채울 뿐임을 기억할지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작품 읽기
작품 자체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구절로 더 유명한 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막상 『햄릿』보다 더 유명한 것과 비슷한 예다.
그러나 햄릿의 대사와는 달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시인의 순수 창작이 아니다. 이 말의 최초 처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아 그중 어느 것이 정확한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중세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의 문집이라는 설, 솔로몬왕의 일화를 다룬 유대인의 민담이라는 설 등등
다양하다. 이처럼 출처에 대한 분분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 글귀와 관련된 이야기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람과 물건이 있다. 왕과 반지다.
옛날 한 권세 있는 왕이 현자들에게 슬플 때 기쁘게, 기쁠 때 슬프게 해 줄 수 있는 반지를 만들어
바치라고 명했는데, 현자들이 질박한 반지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글귀를 새겨 왕에게 바쳤
다는 것이다.그런데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이 현자들이 아니라 반지 세공장이라는 설이 있다. 반지를
제작하여 바치되 기쁠 때 오만하지 않고 슬플 때 용기를 잃지 않게 해줄 글귀를 반지에 새겨 넣으라는
왕의 주문에 장인이 고심 끝에 생각해낸 말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골격만 놓고 보면 같은 이야기지만 세부적인 차이가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전자의 경우 눈에 띄는 것은 현자들이 바친 반지가 제왕의 권위와는 어울리지 않게 질박했다는 점이다.
현자들은 왕에게 정녕 필요한 것은 반지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물질은 결코 사람을 바꾸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왕의 권위는 그가 누리는 세속적인 영광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후자의 경우 특이한 것은 왕의 지엄한 명령이 일개 장인에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반지 세공장이 반지를
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지만 지혜의 말을 생각해 내는 일은 아무래도 장인의 몫이 아닌 듯 여겨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간다. 궁전에서 반지 세공장 말고 그 누가 그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이 공들여 만들어준 반지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던 권력
자들의 덧없는 부침浮沈을 평생 목격했을 것이다.
浮沈(부침)> 浮沈 - 물속에 떠올랐다 무속에 잠겼다 함 * 浮 - 뜰 부 * 沈 - 잠길 침 (심)
더불어 이 두 버전의 이야기를 아우르는 감동의 공통분모가 있는데, 그것은 왕이 자신이 휘두르는 권력
의 대상자에게 지혜를 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왕이 분명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그 글귀에 감복하여 겸
손하게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었다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에게선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겸손함이 아닐 수 없다. 남의 나라의 얘기지만
아브라함 링컨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글귀의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겼던 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1859년 행한 한 연설에서 그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 영광과 고난에 대해 언급하며 위의 왕의 일화와 함께
이 글귀를 인용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자신이 인용한 지혜의 말을 삶에서 보여준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껏 소개한 내용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감상하는 데 약간의 도움은 될망정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는 아니다. 이 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모두 시 안에 있다. 이 시는 구조상 앞 두 연과 뒤 두
연이 마주보는 형태를 하고 있어 슬픔과 기쁨, 고난과 영광이 엄정한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배열이 교차적이 아니라 순차적인 까닭에 시인의 관심이 슬픔과 고난의 순간보다 기쁨과 영광
의 순간에 집중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전반부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가언명령적인 메시지, 즉
일종의 위로 혹은 선택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교훈적인 충고처럼 들린다.
반면 후반부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그것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행해야 하는 정언명령적인
메시지처럼 들린다. 시적 화자의 정체를 신적인 존재로 상정하면 이런 추정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믿는 또는 믿고 싶은 신은 애통하고 핍박받고 버려진 자에게 자신의 모든 자비를 베풀기에 권력
과 명성과 영광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자에게 나누어줄 자비를 남기지 않는 신이다.
시가 유명해지면 시인도 덩달아 유명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랜터 윌슨 스미스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
하다. 영시를 전공하는 학자들에게도 그의 이름은 매우 생소하다. 그래도 이것이 반대의 경우보다는 훨
씬 건강하다.
명성은 자자한대 그의 시 한 편 제대로 기억되지 않는 시인이 얼마나 많은가? 정녕 훌륭한 시는 시인을
압도하여 그의 이름을 지워버리는 시인지 모른다. 자신의 시로 명성을 구하고자 하는 시인은 기억해야
하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 작가 소개
랜터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 1856~1939)
- 미국의 시인. 찬송가 작사가로 주로 알려져 있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철저하게 기독교 교육을 받았
으며 목사와 결혼했다. 오랜 세월 교회와 그 성도들을 헌신적으로 섬겼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종교적
열정과 결합되어 많은 찬송가를 작사했으며 80세가 넘어서도 작품 활동을 그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