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시장과의 인연
조 윤옥
비오는 날이라 남대문 시장으로 향하고 싶었다. 아침에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따라가면 가기에 수월하기에 일찍 서둘렀다. 마석이라 교통체증으로 막히는 시간을 피해 오전 9시 십분 전후로 출발하여 국민대 앞으로 빠지면 한 시간 내로 광화문을 통과할 수가 있다. 그렇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에는 두 시간의 소요시간이 드는 버스와 국철을 타야 한다. 오늘은 비가 장마전선으로 장대비가 쏟아져 남편이 시장입구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런 날은 나를 기억해 주고 찾는 시장 상인이 있다. 비가 오면 더 심하게 여기저기 쑤시는 아줌마들로 새벽잠을 못자고, 무게 나가는 짐 보따리를 늘 움직이며 생활하는 상인들은 아픈 곳이 많다. 여유 있게 쉴 수 없는 좁은 공간에 화학섬유에서 뿜어 나오는 독성으로 찬 환기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사람들은 중병이 걸리면 공기 좋은 시골로 들어가는데 나는 반대로 낮에는 서울로 나왔다. 유방암 수술 후 사람과 더불어 대화하며, 운동도 하는 회복의 기회를 거꾸로 잡았다. 너무 옛날부터 알아 온 불안한 시선들 나를 보는 안쓰러움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출퇴근길에 부부의 충분한 대화가 회복에 키치는 영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낮 동안은 사람이 많고 활기찬 장소를 찾다보니 남대문을 택했다. 남대문의 국보적 1호의 가치도 나를 매료시켰고, 공기 좋은 남산도 매력이 있었다. 하루 종일 다람쥐 체 바퀴를 돌듯이 공기가 나쁜 것 같으면 남산을 올라갔다 내려와 다시 상인들 곁으로 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그들이 아프다하면 만져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관절과 혈액의 문제라 장사를 하다 병원에 가는 것이 딱해 주물러주다 상가 고객도 만져주다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17시면 문을 닫는 상인들과 퇴근을 같이 하여 남편 사무실로 간다. 환자의 주제 넘는 행동은 엉뚱했지만 나는 그 길로 공부를 시작했다. 남을 도와주려는데 항상 부족한 생각과 더 배워야 한다는 의욕이 생겨 이렇게 십 여 년이 넘는 동안 경기 대학 약손. 대한 경락과 태국 마사지. 중국학원 침술과 오행을 배워 전문인이 되었다. 그리고 신학과 함께 공부하며 나름대로 자유롭게 다닌다. 주에 두 번 이상을 시장으로 간다.
그들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나는 살아가는 강인함과 서민의 애환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의지를 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위로와 공부가 주 임무도 깨닫게 되었다. 최선을 다하려는 기질도 상인들의 삶에서 배웠다.
남대문은 숭례문 옆 남창동에 위치한 최대의 재래시장으로 “남문안장” 이라 불리며 태종 14년에 새 도읍지인 남대문 근처에 가게를 지어 상인들에게 빌려준 것이 시초로 지방의 특산물을 사고팔다가 선조 때 조선농업 주식회사로 설립하여 미곡 어류 잡화 과일 등을 팔다 1922년 경영권을 일본인이 손에 넘어가 있다가 해방과 함께 다시 활기를 뛴다. 미군의 군용원조 물자를 비롯하여 도깨비 시장이라 하여 없는 물건이 없다고 할 정도이었다. 상인은 북한 출신의 생활력 강한 실향민이 70%를 차지하였다. 이제는 창의적인 젊은 세대로 상인이 움직여가는 2만 2천 평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 전통 공예품. 한국적인 선물. 바이어 선물이며 가격에 비해 품질이 좋은 중저가 상품으로 중간 도매인들은 새벽 3시에 사가고, 낮에는 소매상인, 밤에는 길 가운데 야시장이 서 외국 관광 코스가 되었다. 24시 영업으로 3파트인 셈이다.
백화점에 밀리지 않기 위하여 쇼핑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현대화하고 새로운 홍보전락을 짜야 한다. 환경과 문화가 어우러진 고급화를 지향해야 세계적인 한국 문화로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도에 관광 특구로 지정된 저력을 바탕으로
보다 활발하게 활성화 되어야 한다.
젊은이들로 상인 연합회가 주축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삶의 힘을 얻었다. 병든 정신적 불구에서 원기를 찾아 건강한 생각으로 전환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다.
지금 다시 시장은 위기를 맞은 것 같이 보인다. 서민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자금이 돌지 않아 가게 주인이 바뀌고, 새로운 업종으로의 전환의 고비를 맞고 있다.
밀려 줄을 서던 커먼프라자 옷가게, TV를 탄 빵집, 갈치조림 음식점도 예전만 못하다. 더욱이 남대문 시장 통을 들어섰는데도 북적거리지 않는다.
그 대신 새벽장인 도매시장이 늘어나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을 잡아야 한다. 내국인도 함께 힘을 합쳐 빠른 시간에 내수가 활성화되도록 잦은 발걸음을 했으면 좋겠다.
시장이 재 기능을 하여 활발해지면 상인들은 혈액이 잘 돌아 육체적 건강도 회복되리라 믿는다. 고민하고 걱정하면 뼈가 마른다고 하지 않는가
재래시장이 살고, 서민의 애환이 줄어야 실물 경제의 체감온도도 올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대기업이 재래시장과 골목상권까지 참여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여긴다.
이런 생각 저런 의견들. 때로는 걱정으로 몇 마디 위로하고 아픈 곳을 주물러 주는 것이 다인 나는 오늘은 이불도 장만하고, 며느리 선물과 손자의 옷가지를 사며, 내 옷도 기분 좋게 샀다. 깊숙한 비상 주머니를 털었다.
메고 들고 묵직한 가방의 무게가 하루의 만족이 되어 밀려와 일단은 패션쇼도 해 보고 흡족하여 옷장을 뒤 업고 정리도 한다.
그리고는 이 글과 시를 밤새도록 쓴다.
밖은 밝아지더니 벌써 육시가 넘었다.
200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