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곡식, 조
귀농가족 여러분 모두 안녕하신가요? 일은 잘 돼 가고 있나요? 풀은 그저 미리미리 해치우는 게 상책입니다. 혹시 허리가 아파서 고생하시는 분 계시면 연락주세요. 하루 30분 정도 가볍게 움직여서 싹 나아버리는 기똥찬 방법을 옆 동네로 귀농한 형한테 배웠습니다.
이번에 고른 곡식은 조입니다. 화천 사내면 광덕리 사시는 최명춘님을 뵙고 말씀 들었습니다. 최명춘님(45세)은 80년대 후반 농민운동하다가 팔뚝질하고 짱돌 던지는 것 말고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89년에, 그게 유기농업인지도 모르고 혼자서 유기농업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옛날에 농약 비료 없을 때 농사짓던 방법으로 지어보자는 생각으로요.
8천 평 정도를 짓는데, 지금도 매년 처음 짓는 새로운 작물이 있고,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면 한 해 스무 가지 정도를 짓게 된다고 하십니다. 북향으로 앉아 있는 화천 시골교회 맞은 편에 남향으로 마주보는 집에 살고 계십니다(화천군 사내면 광덕3리 188번지. 033-441-5621).
4~5년 전부터 포트에 모를 냅니다. 162구 짜리 쓰고요, 25일에서 한 달 정도 길러서, 로타리 치고 골 째서 15내지 20센티미터 간격으로 심어요.
문: 트렉터에 삽 네 개 달고 째나요?
답: 그렇게도 하고, 경운기로도 하고요.
트렉터에 배토기라고도 하고 휴립기라고도 하는, 삽을 네 개 달고 째면 75센티 두둑이 세 개 만들어지는데, 다시 골 쨀 때 한 골을 밟고 가야하기 때문에 한 번에 두 고랑씩 만들 수 있다. 옥수수, 콩, 기장, 수수 등 대부분의 잡곡은 이렇게 밭 만들면 된다. 그냥 삽 들고 두둑을 만든다면, 삽날 폭 정도로 골 만들면서 왼쪽으로 한 삽, 오른쪽으로 한 삽 놓으면 된다.
문: 포트 하나에 한 알씩 넣나요?
답: 아니요. 서너 알 씩 넣지요.
문: 그럼, 나중에 정식할 때, 떼서 해요?
답: 아니요. 그냥 그게 한 포기예요. 떼지 않고 포트 하나에 한 구멍씩 심습니다.
문: 간격이 15내지 20센티면 꽤 밀식이네요?
답: 안 그래요. 옛날에는 두둑에 골 키고 씨앗을 쭉 뿌려서 김매면서 솎았는데 그거에 비하면 넓게 잡아주는 거예요.
문: 옛날에는 그렇게 지었던 건가요?
답: 먼 옛날에는 모르겠고, 모 기르기 전 얘기예요. 이 동네에서는 다 그렇게 했는데 하여튼 제가 제일 먼저 모를 길러서 심었으니까요. 모 기르면 품이 5분의 1 정도로 적게 들어간다고 보시면 돼요.
문: 5분의 1이나요?
답: 그냥 직파하면, 풀하고 곡식이 구분이 안 돼요. 싹이 손가락 두 마디쯤 올라오면 애벌 김을 매는데, 곡식하고 풀이 구분이 안 되니까 싹 날 근처는 안 건드리고 옆만 긁고 가는 거고, 두벌 맬 때 그 풀도 잡고 솎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일단 모를 길러서 자리 잡아 딱딱 심어 놓으면 김매기도 좋고, 표시가 딱 나니까, 솎을 필요도 없고 하니까 빠르고 쉽죠.
문: 김은 어떻게 매시는데요?
답: 그냥 호미로 긁고 나가요. 두 번만 매주면 돼요.
문: 풀 막 올라올 때 잡으시는 건가요?
답: (웃으면서) 그럴 때도 있고, 그 때 놓쳐서 자라버리면 손으로 잡아 뽑을 때도 있고. 그러면 품이 훨씬 더 들지.
문: 김 두 번 매주면 땡인가요? 달리 해 주시는 거 없어요?
답: 예. 없어요.
문: 비닐도 안 씌우고요?
답: 예. 안 씌워요.
문: 포트 한 판이면, 몇 평이나 심어요?
답: 글쎄, 그것까지는 계산을 안 해 봤는데...
문: 올 해 심으신 거 생각해 보시면 되잖아요?
답: 저는 수수 네 고랑, 조 두 고랑 이런 식으로 심으니까, 그리고 기장도 마찬가진데, 수수 네 고랑에 기장 두 고랑 이런 식으로, 그렇게 심어야 수수가 버텨줘서 태풍에 안 넘어가거든. 그러니까 정확히 얼마나 들어가는지 잘 모르겠는데...
문: 키 작은 수수요?
답: 예.
문: 그거 다 자라면 얼마나 돼요?
답: 내 키 정도(눈짐작으로 170~178 센티미터).
문: 그런데도 안 넘어져요?
답: 안 넘어져요. 조나 기장은 송아리가 져서 고개를 숙이거든, 그랬다가 바람이 휙 불면 한쪽으로 쏠리면서 와장창 넘어가는데, 수수가 네 고랑이나 서서 버티니까 안 넘어간다고.
보통, 농사짓는 분들은 계산이 정확하고 암산도 빠르고 기억력도 뛰어나다. 글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폭 120 비닐 1000미터 한 단이면 4백 평. 4백 평에 30센티 간격으로 모를 하나씩 꽂는다면 모가 몇 개나 필요할까? 이런 식이다. 그러니, 연습 삼아 직접 셈을 해 보시기 바란다. 지금 이렇게 기억을 못 하는 걸 보면, 이 형님이 원래 농사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직접 여쭤보고 확인은 안 했지만 아마 내 말이 맞을 것이다.
문: 언제 심으세요?
답: 6월 5일 경에 정식해요. 직파할 경우에 4월 말이나 5월 중순에 뿌리는데, 포트도 마찬가지고요. 4월 말이나 5월 10일 정도에 씨앗 부으니까.
문: 파종 시기가 늦으면 어떤 문제가 있어요?
답: 아무래도 여무는데 차이가 있어요. 곁가지도 적고, 이삭도 작고.
문: 거름은 어떻게 내세요?
답: 돌려짓기로 짓는 거니까 안 내요.
문: 우와~! 정말 유기농 제대로 하시네요! 매년 돌아가면서 지으시는 거예요?
답: 아니, 그렇게까지는 못 하고 두 해 채소 지으면 한 해 잡곡 심는 식으로 해요.
문: 수확은요?
답: 많이 심으면 밑둥 베서 단 묶어서 세워야 되고, 조금 심으면 이삭만 뚝뚝 베면 돼요.
말려서 베고 터는 것은 다른 잡곡과 똑 같다. 특히 조는 안 마르면 안 털리니까 잘 말려야 한다.
문: 수확량은요?
답: 보통 평당 600~700그램 정도.
문: 방아는요?
답: 잡곡 찧는 방앗간이 따로 있어요. 화천에도 노동리에 방앗간이 있으니까 거기 가서 찧으면 돼요.
조는 그 작은 알곡이 쿵쿵 찧으면 껍질이 홀랑 벗겨진다. 조금 지어서 집에서 먹을 경우에는 마늘 찧는 도구를 사용해도 되고, 그냥 껍질째 먹어도 먹을 만 하다는 사람도 있다.
문: 도정비는요?
답: 15%
문: 값은요?
답: 학교급식으로 들어가는 건 소포장해서 500그램에 5~6천 원 정도 받고, 생협으로 나가는 건 키로당 6~7천원.
문: 우와! 그럼 괜찮은 거잖아요?
답: 에이, 일반시세는 훨씬 못 하지.
문: 수확시기는 어떻게 돼요?
답: 기장은 9월 중순, 조나 수수는 9월 말이나 10월 초, 그러니까 기장을 먼저 수확하고 조, 수수 수확하고.
문: 그럼 조는 작기가 벼랑 거의 같은 거네요?
답: 그렇지.
문: 4월부터 9월까지, 다섯 달 정도 자라는 거니까, 결국 조도 다비성 아니예요?
답: 거친 땅에도 되긴 되는데 소출이 적지. 거름이 있으면 아무래도 잘 나오고. 그런데 거름이 너무 많으면 세력 좋게 막 벌어지다가 다 넘어져버려...(웃음)...
문: 수확할 때가 됐는지 안 됐는지 어떻게 알아요?
답: 익으면 벌써, 색이 노~오랗게 변해요. 금방 알지.
조는 메조와 차조가 있다. 메조는 주로 새 모이로 나가는 거고, 사람이 먹는 것은 차조다. 차조는 청색이 나는 청차조도 있고 노란색이 나는 노란 차조도 있다. 노란 차조는 기장과 모양과 색이 똑같아서 가끔 혼동하기도 하는데, “기장이 훨씬 크다.” 조는 찬 기운이 강해서 열이 많은 사람이 먹어야 좋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