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쪽에 위치한 비슬산 행으로 알고 탔던 버스가 마산의 무학산(儛鶴山)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올해 봄 날씨가 유난하게 변덕스러워 진달래가 만개했어야 할 4월 말임에도 비슬산이 아직 봄기운에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4월 산행은 진달래 산행이었기에 비슬산을 대신해 무학산(儛鶴山)으로 변경된 것이었다.
무학산(儛鶴山)의 옛이름은 두척산이었지만, 신라 말기의 대학자였던 최치원 선생이 멀리서 산을 바라보고, 마치 학이 춤추는 것 같다고 하여 무학(儛鶴)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해발 760미터를 갓 넘는 산이지만, 말 그대로 바다에서 출발한 산 높이기에 쉽사리 볼 수는 없는 산이었다.
마산에 들어선 버스는 들머리를 찾기 위해 다시 시골의 좁은 마을길과 임도를 타고 산모퉁이를 아슬아슬하게 여러 번 돌아 만날재에 일행을 하차시켰다. 아침 일찍 나왔기 때문에 등산복이 아닌지라 옷을 갈아입어야 했지만, 산길 한가운데에 내렸으므로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일행이 먼저 출발하고, 반대편으로 조금 올라가니 이름 모를 이의 무덤이 보였다. 무덤가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안녕하슈~’ 인사를 건넸지만, 충청도 사투리가 낯설어서인지 말이 없으셨다. 완전 무장을 끝내고, ‘그럼 기슈~’란 말을 남겼을 때, 비로소 웃으시는 듯 보이셨다.
10분 정도나 뒤쳐졌기에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려 했지만, 처음부터 경사가 너무 가파르게 펼쳐져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이 목구멍에 차서야 맨 끝 일행을 따라 잡았다. 그리고 산행의 첫 꼭지점인 대곡산(大谷山)에 이르렀다. 산마루에 서있는 대곡청송(大谷靑松)이 이곳이 대곡산 정상(516m)임을 알리고 있었다.
대곡산에서 무학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긴 오솔길 능선이었다. 산뜻한 오솔길을 한참 걷다가 시야가 조금 트인 곳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마산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진해만이 깊숙이 들어와 아늑한 항구를 이루고 있었고, 조그만 돝섬이 여러 척의 배들과 함께 마산 앞바다의 풍경을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듣자하니, 저 돝섬에 ‘가고파랜드’라는 놀이 공원이 있어 마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가본적은 없지만, 이름이 너무 멋지다는 느낌이었다.
마산은 참 행복한 도시라는 생각을 했다. 뒤로는 무학산이 있어 겨울에도 목도리처럼 따뜻하게 감싸주고, 앞으로는 바다가 있어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천혜의 배산임수(背山臨水)지형 구조를 타고났으니, 이 얼마나 멋진 동네인가? 멀리 마창대교가 보였다. 올 7월이면 창원시와의 통합으로 행정구역상의 ‘마산시’가 사라지고,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로 통합창원시에 편입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늘 무학산 아래 마산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진달래로 유명한 산이지만, 오솔길 가 곳곳에는 산벚나무가 만개해 있었다. 큰 키로 군데군데서 화려하게 꽃잎을 날리는 산벚나무는 연도에 늘어선 채 열심히 달리는 마라토너를 응원하며 꽃가루를 뿌리는 것처럼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고, 마음을 신나게 해주었다.
멀리 무학산 정상이 보일 때 쯤 진달래 능선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진달래가 막 불타오르고 있는 듯 했으나, 가까이서 보면 타다가 부슬비 맞은 장작처럼 맥없어 보였다. 등반대장님의 설명으로는 며칠 전 무학산에 눈이 와서 기세 좋던 진달래가 눈(雪)에 맞아 세가 한풀 꺾였다고 하셨다. 4월에 그것도 우리나라 최남단에 가까운 마산에 눈이라니...... 올 봄 날씨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듯 했다.
무학산 정상에는 이미 많은 산우님들이 점심상을 펼쳐놓고 있었다. 간혹 라면이라도 끓여먹을 작정으로 가스버너에 불을 붙이신 분도 있었지만, 곧 산불감시원으로부터 압수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른 분들이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모니, 이른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 내 배에서도 시장기가 맹렬하게 돌았다. 일행 분들이 꺼내 놓은 찬을 나누어 놓고,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산에 올 때마다 평소보다 더 잘 먹는 것 같았다.
점심 자리를 치우고, 중리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더 이상 마산 시내가 내려 보이지 않는 코스였다. 조금 길고도 지루한 내리막이 이어졌다. 지루함을 달래려 옆에 있는 나무들을 벗 삼았다. 막 태어난 애기 손만큼 조그마한 나뭇잎들을 수줍게 내밀고 있는 나무들이 한없이 귀여웠다. 손에 든 스틱으로 악수를 청해보기도 하고,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수줍어서인지 선뜻 응하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더 귀여웠다.
날머리에 도착해보니, 도로가 한가운데였다. 신호등 너머 오른쪽으로 중리역이 보였다. 화장실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기차 노선표를 보며 중리역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가늠해 보았다. 마산에서 진주로 가는 첫 역이었다. 어쩌면 언젠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내려 본 적은 없지만 한번 쯤 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학산 산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처음 계획되었던 비슬산은 아니었지만, 무학산만의 멋과 향기가 느껴진 산이었다. 특히, 마산이란 도시와 무학산의 절묘한 조화를 엿볼 수 있었던 낭만적인 산행이었다.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어우르며 지낼 때 모두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2010. 4. 25. 마산 무학산 산행을 마치고..]
원본출처 : http://www.cyworld.com/tomhuck
첫댓글 사진이 저장은 되는데, 올라가질 않네요. 지도한장 빼구는.. 이유가 뭔지..
항시 느끼지만 문장력도 그러하고 하나하나 산행의 느낌이 생생한게 대단합니다...
수박군님의 산행기가 없으면 산행후에도 항상 목마름이 느껴집니다.산행기를 읽고 나야 드디어 산행이 끝난것같거든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렇게 산행기를 쓰시는 수박군님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