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만의 독특한 술문화 ‘가맥집’
성업중인 가맥집 일반음식점으로 허가
외지인들이 전주하면 음식을 잘 하는 도시로 인식하고 있다. 밑반찬이 수십 가지 올라오는 백반(白飯)을 비롯,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이미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 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할 것이 있다면 전주만의 독특한 술 문화가 있다. 바로 ‘가맥’집이다. ‘가맥’이란 가게+맥주 즉 ‘가게에서 파는 맥줏집’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여름이면 전주시내 골목에 있는 슈퍼나 구멍가게들은 하나둘씩 테이블과 의자를 밖에 내다 놓고 맥주와 안주를 팔기 시작했다. 저렴하게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친구와 함께 어울려 부담 없이 술 마실 수 있는 곳이 가맥집이었다. 전주의 가맥집 중에서 손님들이 즐겨 찾는 곳은 ‘J슈퍼’다.
전주 가맥집의 역사는 경원동 경원슈퍼가 시발점이라고 한다. 경원슈퍼는 J슈퍼와 한 거리를 두고 맥주를 팔았었다. 이곳에서 맥주를 시키면 서비스로 닭발을 튀겨서 줬는데 이것이 가맥집의 원조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경원슈퍼 가맥집이 없어지고, J슈퍼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 J슈퍼는 현재 전주 가게맥줏집의 대표주자로 꼽히고 있다.
가맥집에서 가장 맛있는 안주는 당연 갑오징어와 황태다. 불에 살짝 구워서 방망이로 두들겨 다진 갑오징어를 찢어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 맛은 일품이다. 또한 청양고추와 들깨가루를 잔뜩 넣어 만든 소스에 노란 황태구이를 찍어 먹는 맛은 별미 중 최고의 별미다. 짭쪼름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소스는 가히 중독성이다.
이처럼 가맥집이 인기를 끈 것은 맥주 1병에 2,000원이란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안주 때문이다. 그리고 가맥집이 아파트나 주택가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귀갓길에 잠깐 들러 목마름을 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름철 ‘가맥’을 찾는 주당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때 아닌 기업형 가맥의 세무조사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자유업종인 슈퍼마켓에서 가정용 맥주의 대량 판매와 조리 음식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전주만의 고유한 술문화로 자리잡은 가맥에 대한 세무조사는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자는 가맥의 현장을 찾았다.
12일 밤 10시 전주 평화동 사거리에 있는 가맥집. 입구에 들어서자 15명 이상의 손님들이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가맥집 손님들은 대부분 직장인을 비롯해 대학생, 주부, 나이가 60이 넘은 노년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삼삼오오 둘러않은 이들은 맥주와 마른안주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맥집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부담 없는 가격을 꼽았다. 맥주 1병이 2,000원에 판매되며 ‘뻥튀기’와 ‘땅콩’이 무료로 제공되고 갑오징어, 황태, 노가리, 학꽁치, 골뱅이무침, 계란말이 등의 안주가 1만원 안팎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이 덜하다는 것. 또한 밖에서 자연적으로 대화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회사원 이모(29·구이면)씨는 “친구끼리 가장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공간이 가맥집”이라며 “병맥주 맛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가맥집을 다시 찾게 된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54·평화동)씨는 “야근을 하고 퇴근길에 가맥집을 자주 찾다 보니 근 10년 동안 단골이 됐다”면서 “퇴근길에 잠시 들려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집이 바로 가맥집”이라고 했다.
다시 11시 반 정도 삼천동의 또 다른 가맥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에도 10여명의 손님들이 술을 마시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이곳 주인 유영임(52ㆍ여)씨는 가맥집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소리에 “세금은 당연히 내야 하는 것”아니냐며 “세금을 내야 나도 살고 나라도 살고 서로 상생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맥에서 일반음식점으로 허가를 내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손님 중 삼천동에 사는 백종필(52)씨는 “없는 사람이 벌어먹기 위해 가맥을 하는데 그걸 세금을 매긴다는 건 너무 심한 느낌이 든다.”며 “있는 사람들은 탈세해서 돈을 버는 판인데 그들에게 세금을 추징할 생각은 않고 애꿎은 서민만 울리고 있다”며 가맥집 세금부과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평화동에서 가맥집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세무서에서 세금을 징수한다면 맥주값을 더 받아야 한다”면서 세금 물것에 대비해 최근 일반 음식점으로 허가를 냈다.”고 말했다.
이에 전주세무서 운영지원과 담당자는 “보도자료 업무는 부가가치세과에서 하는데 가맥집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은 현재로서 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무것도 없다”며 “세금은 본인들이 신고해서 자진납부 하는 것이지 세무서가 임의로 세금을 과세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전주의 가맥집은 약 300개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영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