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풀뿌리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렸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렇게 자문해 보는 이유는 민의(民意)의 가치가 왜곡되는 현상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의회조차 본연의 기능이 변질된 채 작동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보니 ‘지방자치 무용론’까지 거론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제왕적 중앙 권력의 분산을 통한 주민자치 완성이라는 이상적인 민주주의 구현의 명제가 무소불위의 지방권력에 의해 훼손되는 사례들이 왕왕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견제와 감시라는 기능에 충실해야할 지방의회마저 패거리 정치와 집권 토호세력들의 농간에 휘둘리며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집행부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비아냥 소리마저 듣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를 지켜보는 유권자인 지역주민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다 못해 들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에서는 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을 폐지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등 앞으로 일년도 채 남지 않은 민선 6기 지방선거의 변수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지난 2일로 민선5기 성남시 지방정부와 6대 지방의회가 선출된지 3년이 지났다. 공식 출범은 7월이었지만 인수위 구성 등을 통해 실질적인 지방정부로서 유형무형의 실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성남의 경우를 살펴보아도 그동안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음을 성남시민이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성남의 민선5기 지방정부도 수많은 시민들의 기대와 염원을 안고 출범했다. 무언가 과거 지방정부와는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충격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자체 사상 처음으로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 선언이 나왔다. 민선5기 지방정부 공식 출범 열흘이 채 안된 상황에서 터져나온 모라토리엄 선언은 시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성남시는 모라토리엄 상태를 졸업했다고 대대적인 홍보선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시의회에서 새누리당 박완정 의원이 이를 반박하는 ‘5분 발언’을 하는 등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아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상태이다. 이처럼 민선5기가 시작부터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성남시 재정상태가 정말 최악이었는지부터 시작해, 배후 음모론까지 나오기도 하는 등 지역사회에 분란의 불씨를 제공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밖에 민선5기 3년 동안 여론상 호의적이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수없이 많았다고 본다. 세간에서 ‘형제의 난’으로까지 비유된 시장과 친형인 회계사간의 불화로 인한 ‘막말녹취테이프’ 논란과 시의회 파행에 따른 준예산 사태 초래, 소송공화국 논란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서인지 과연 민선5기 성남시정부가 반환점을 돌고 이제 내리막길을 가속도가 붙은 채 달려가고 있는 시점에서 출범 당시 내건 구호대로 ‘시민이 행복한 성남, 시민이 주인인 성남’을 얼마나 구현했는지 의문이 앞선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큰 틀에서 보면 정치와 맥을 같이하는 시정운영도 통합과 상생을 외면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시민들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가능한 ‘성남발전’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시키기에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비판에서 현재의 성남시정부가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성남피플파워, 깨어있는 시민들이 많아야 권력 부패 막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주목해야할 만한 상황들이 성남지역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동안 비판적 시민단체가 실종되었다는 지적을 받는 성남지역에서 민선5기 후반기에 들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권리찾기’에 나섰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피플파워(people power)’가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아닌 듯싶다. 얼마 전 한 시민이 비위관련 징계의결 요구된 공직자가 명예퇴직할 수 있도록 한 성남시 고위직공무원을 배임죄 등으로 사법 당국에 책임을 묻는 고발장 제출을 신호탄으로, 한 시민단체도 성남시 산하기관의 부당인사를 결재해 결과적으로 시민 세금을 낭비한 경영진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며 사법당국에 고발하고 나서는 등 잇달아 시민들이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과거 필리핀에서 두차례에 걸쳐 대통령의 하야를 불어온 ‘피플파워(people power)’와는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성격은 달라도 그동안 공공기관의 비상식적인 행태에 침묵으로 일관해 왔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이제는 성남시민들도 원칙과 정도에서 벗어난 채 일탈 모습을 보이는 공공기관의 운영행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방관하지 않고 주권재민(主權在民) 원칙에 입각해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서 가지는 권리를 최대한 행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언(法言)에도 ‘잠자는 권리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주민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침묵한다면, 어느 누구도 지방자치 주인인 주민의 권리를 대신 보호해 주지는 않는 현실이다. 선거를 통해 권력 교체를 할 수 있는 유권자인 시민 스스로 깨달아 찾아 그 권리를 쟁취하지 않으면, 권력을 가진 측에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기득권 보호를 위해 발버둥을 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주민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서 행동으로 옮기는 깨어있는 국민, 지역주민들이 많아야 중앙권력이든 지방권력이든 부패를 막을 수 있고 진정한 지방자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후보자 현미경식 관찰해야 후회 않는다
이제 내년 6.4지방선거까지 남은 시간은 1년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성남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잘못된 권력집단이라고 지칭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대다수 시민의 의사에 의해 시정운영 및 의정활동이 이루어졌는가를 기준으로 유권자인 시민들 스스로 판단해야 내년 지방선거의 선택에서 실수가 적어질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만일 현재의 정치가 혐오스러운 유권자 시민들이 있다면 발을 딛고 있는 성남의 정치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내년에 펼쳐질 지방선거를 통해 정치판 쇄신에 직접 나서라고 권하고 싶다. 유권자의 유일한 무기인 표(票)로써 선거에 참여하지도 않고 현실에 대한 불평불만을 하는 유권자는 지방자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 다만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공직출마 후보자의 현란한 말솜씨에만 휘둘려 자신의 소중한 표를 도둑질 당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직후보자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대고, 세밀한 검증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공직을 맡겠다는 출마후보자가 과거 여성과 관련한 성추문에 연루되지는 않았는지, 또는 도덕적·반인륜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지 등을 포함해 공직후보자의 인품과 자질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그럴듯한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어설픈 판단으로 잘못 찍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 유권자의 냉철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의 ‘회고가(懷’古歌)가 생각나는 6월이다. /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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