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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의 선율이 울려퍼지는 홍대의 라이브 클럽. 그 속에서 헤드뱅잉과 슬래밍에 익숙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춤추는 연주자의 손짓과 선율에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인다. 언뜻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지만, 가야금을 뜯는 가수 정민아(국악 01년 졸) 동문은 이미 홍대 클럽의 인디 씬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가야금을 통한 오버크로스 멜로디는 정 동문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그대로 전하며 듣는 이의 가슴에 장르를 뛰어넘는 애틋함을 남긴다. 전래민요 ‘새야 새야’와 사라 본의 대표곡인 재즈넘버 ‘Lullaby of Birdland’까지. 지난해 12월 정 동문은 첫 정규앨범 ‘상사몽(相思夢)’을 발표하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그만의 색깔을 전한다. “가야금은 내 음악의 색깔일 뿐” ‘아침에 지하철로 출근하며 창문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정민아의 음악 때문이었다.’ 정 동문의 지인의 블로그에 씌어 있던 글이다. 그리고 이 블로그의 타이틀이 ‘상사몽’이었다. 가야금의 음색 속에 애잔함이 묻어나는 정 동문의 음악색깔이 잘 드러나는 노래인 ‘상사몽’은 황진이의 시에 곡을 붙여 탄생했다. 이밖에도 ‘새야 새야’, ‘뱃노래’ 등 기존 민요를 새롭게 편곡한 동명 곡, 다른 악기와의 독특한 리듬을 추구한 ‘바람 부는 창가에서’ ‘로봇일기’ 등 가야금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처음 라이브 무대에 섰을 때에는 가야금을 기타처럼 연주하며 노래까지 부르니 많은 분들이 무척 신기해했어요. 새롭고 재밌는 음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죠. 그렇다고 해서 제 음악이 국악의 대중화 같은 거창한 목표를 가진 것은 아니에요. 그냥 제 음악의 색깔일 뿐이죠. 이번 앨범에서는 퍼커션과 드럼, 해금, 콘트라베이스 등 많은 악기들과 함께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고 있어요. 25현 개량 가야금을 연주하는 이유도 애틋한 선율을 내는 가야금의 매력과 함께 다른 음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화성까지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홍대 클럽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텔레마케터 정 동문은 첫 정규앨범 발표와 함께 가야금과 현대 음악의 접목을 통해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불어 정 동문가 지금까지 생계 수단으로 현재 텔레마케터로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규앨범을 발표한 지금도 낮에는 역삼동의 한 인터넷 소액결제 회사에서 전화상담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라이브클럽에서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그래서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던 날에는 라디오 출연과 인터뷰 때문에 하루 휴가를 냈단다. 앨범 홍보와 방송 출연, 라이브 연주 때문에 눈코뜰새없이 바쁘지만 정 동문은 아직 텔레마케터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생계를 책임지는 120만원의 월급도 음악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텔레마케터는 아직 제 1의 생계수단입에요. 내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할 때고, 음악과 직장 모두가 내게는 소중한 일입니다. 텔레마케터 일 역시 정말 좋아하거든요. 나는 다른 이를 위로해 주는 일에 큰 기쁨을 느껴요. 텔레마케터에게 욕지거리를 하며 전화를 거시는 분들도 있지만, 화가 난 고객들에게 사정을 설명해 이해시키면 그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죠. 어느 하나도 지금은 놓칠 수 없어요. 두 가지 일을 모두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죠. 반드시 음악으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홍대 클럽에서 가야금으로 라이브 연주를 하는 텔레마케터. 물론 가능성있는 뮤지션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힘은 정 동문의 음악이 전부였지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력들 역시 당장 정 동문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 동문은 조심스러운 한편 당당하다. 이제 막 정규앨범을 발표했고,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지금의 기회와 관심도 소중하지만, 결국 정 동문은 음악으로 얘기하는 가수이기 때문이다. 직업도 음악도, 다른 어떤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정 동문 스스로의 기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머물러 있다. “아직 여러분께서 주목해 주시는 것도, 그리고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요. 그저 제 음악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제 얘기 전해주셔서 더 감사하죠. 관심받는 일이 싫을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두렵지는 않아요. 많은 이들이 좋아해 주시지 않는다고 내 음악이 다른 어떤 것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맘을 잡아끄는, 자연스러운 음악을 하고 싶어요” 중학교 시절 다만 집에 가야금이 있어서 가야금 연주를 시작한 정 동문은, 이후 국악고에 입학하며 가야금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국악고 입학을 위해 ‘입시용’으로 배운 정 동문에게, 쭈뼛대는 자신과 달리 아름다운 조화를 들려 준 친구들의 합주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본교를 졸업한 후 남들처럼 국립국악원과 국악 관현악단 입단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수차례 고배를 마셨고, 결국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정 동문은, 힘겨웠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당시 PC 통신을 통해서 다양한 음악을 들었어요. 메탈과 하드락도 좋아했죠. 가야금을 연주하는 국악고 학생이었지만, 헤비메탈 그룹 Pantera의 음악을 들으며 헤드뱅잉을 했어요. 인디밴드들의 음악도 좋아했어요. 당시 어어부 밴드의 PC 통신 팬클럽을 만든 초대 운영자이기도 해요. 그래서 실용음악학원을 다니며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서양음악의 화성학도 공부했죠. 물론 클럽에 다니며 인디밴드들의 음악을 듣는 것도 거르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집 근처인 안양의 클럽 오렌지 폭스에서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게 됐어요. 주말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하면 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생각할 것도 없이 지원했어요. 그리고 클럽 운영자이던 록밴드 고스락의 베이시스트 조한동 씨께서 나를 무대에 세우신 거예요.” 그렇게 무대에 선 후 정규앨범을 발표하기까지, 정 동문은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텔레마케터로 생활하며, 가야금을 들고 라이브 무대에 올랐다. 삶과 음악 모두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정 동문은 앞으로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자연스러운 음악”을 하고 싶단다. 늘 가야금을 연주하겠지만, 그 음악은 락, 재즈, 혹은 힙합, 트롯트(?) 일수도 있다. 영화음악도 꼭 한 번 만들고 싶다. “황진이가 딱인데”라며 아쉬워하고 있지만, 어떤 영화가 정 동문의 음악에 어울릴 수 있을지는 역시나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정 동문이 좋아하는 영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럴 수도 있지” ‘한’을 읊조리는 가야금 연주자인 정 동문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유머감각이 뛰어났고 굉장히 달변이었다. 취재를 마친 후 스케줄이었던 라디오 방송현장을 잠시 구경할 때에도, DJ였던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씨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입담을 자랑했다. 오히려 DJ가 “가야금과 재즈라는 것 참 생소한데요?”라고 묻자, “그건 잘 모르시는 말씀이에요”라며 농담섞인 핀잔을 주기도 했다. ‘러브레터’, ‘뮤직웨이브’ 등의 TV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정말 반응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달변의 힘이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을, 기자는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건 참 신기하네요”, “상상이 안 되는데요”, “잘 안 어울릴 것 같은데”라는 질문을 유난히 남발했던 기자에게 정 동문은 오히려 “왜요?”라고 되묻곤 했다. 정 동문의 좌우명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것을 듣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좌우명 있어요. ‘그럴 수도 있지’가 내 좌우명입에요. ‘이것이 옳다, 저것이 틀리다’라며 열을 올릴 필요없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인정을 하면 얼마나 좋아요. 사람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 천지고, 못 할 것 같아도 해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한다는 것이 중요하죠.” 홍대 클럽에 가야금을 연주하는 텔레마케터. 어느 하나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일들을 실제로 정 동문은 해내고 있다. 혹 기자는 어울림이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단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정 동문이 말하는 어울림의 기준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의 모임, 단지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 약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지금도 정 동문의 노래를 블로그에 스크랩 해놓고 쉼없이 듣고 있다. 사견임이 분명하지만, 정말 음악이 좋다. 그래서 모든 한양인에게 추천하고 싶다. 정 동문의 음악이 취향에 안 맞는 한양인도 분명히 있겠지만. 뭐, 그럴 수도 있다. | |
변 휘 취재팀장 hynews69@hanyang.ac.kr 사진 : 한소라 학생기자 kubj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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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텔레마케터'..는 아닌데 말이죠..... ㅎㅎ
그래도 "정말 음악이 좋다. 그래서 모든 한양인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부분, 좋네엽... ㅋㅋ
오늘 혹 공연있나해서 들어왔는데 .. 너무 멋지십니다~~!!!
옮겨놓고 이제 읽어봤는데 이야 기사 정말 잘써줬네요 ㅠㅠ
정 동문...
난 공 동문.
기사 맘에 든다. 사진도... 굿~
나도 기사 맘에 들어요. 역시 학생의 시각이라 그런지 뭔가 진솔함과 순수함이 더 와 닿는 듯...^^ 민아씨의 장점. 나이답지 않은(?)-- 뿌리깊은 나무같은 여유와 자연스러움으로 계속 좋은 음악하리라 믿어요. 화이삼~
정 동문님 안녕하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