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부화
이신
네게로 보냈던 모든 시선과
네게로 보내는 끝 모를 걸음이
이 생에서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와 내가 치열하게 부딪쳐도
너에게 건너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유령같이 떠오르는 목마름이
깨달음의 숫자만큼
심장에 실금을 그어대고 있었다
나는 내 기억과 이별하는 동안
길고 높은 기린의 목, 겁 많은 사슴의 눈
도망치는 가젤의 힘센 뒷발을 품은
너른 초원이 되고
향유고래 몇 마리 한가롭게 헤엄칠
시리고 너른 바다 하나를 품게 되었다
지금은, 눈물을 다 쏟아내고
죽은 갈대가 사각사각 제 몸을 베는
흑백의 계절,
견고한 아픔의 뼈를 가진 빛으로
절망의 껍질을 깨야 할 때
실금을 향해 온 몸을 힘껏 던진다
여우비
몽글몽글 흰 털의 양떼가
하늘에서 바람을 베고 누워있고
나는 오래된 길 위에서
한가로이 싱싱해지고 있었는데
마른 땅이 비를 불러 흠뻑 젖는다
맑은 하늘과 비가 함께하는
어이없는 시간,
바람의 그녀가 물의 숲에서 보내온
순백의 청첩장을 들고 폭우처럼
흘러내렸던 그때,
몹쓸 여우 내음이 훅, 끼쳐오던
그 비!
한 동네는 창문을 닫고
옥상은 황급히 빨래를 걷고
부산하게 젖은 표정을 감춘다
온 힘을 다해 닫은 가슴에 퍼붓던 슬픔은
오로지 얼룩으로만 남았을 뿐
다시, 푸른 길 위로는 우루루우루루
양떼가 몰려가고
햇빛의 춤들은 기운차게 푸르러간다
이신 전남 안마도 출생. 2005년 《시와시학》 으로 등단.
첫댓글 몹쓸 여우!
짝사랑, 실연은 원래 아픈건가?
치열하게 공부하는 시간 쪼개서 온려준 시 잘 일코 갑니다
오자 미안해요
고맙습니다~♡
치열하게 달려온 시간들이
어딘가에 가 닿기를
가을처럼 깊어지기를 _( ) _